이처럼 사랑하시어

한국복음서원2 0 3,240 2022.03.2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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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랑하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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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분을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려는 것입니다.(요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어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어”라는 이 말씀은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이 단호하고 무섭고 마음이 완고한 분이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이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오래 참고 자애가 풍성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출 34:6). 그분은 마음이 상한 사람을 가까이하시고 영 안에서 통회하는 사람을 구원하신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지만(롬 3:23),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다. 세상이 악을 행함으로 마음속에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지만, 그분은 세상을 사랑하셨다. 하나님은 죄지은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분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사람을 사랑하시며 그분과 원수 된 사람을 사랑하신다.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늘에는 사랑의 하나님이 계시고 또 사랑의 마음이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이 사랑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고 이 사랑의 마음을 아는 사람도 없다.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분의 독생자를 통하여 사람이 되시어 그분 자신과 그분의 마음을 이 땅 위에 나타내셨다. 

하나님의 독생자는 바로 주 예수님이다. 주 예수님께서 처음 일하신 곳은 나사렛의 회당이었으며 거기에서 사람들에게 한 단락의 성경 말씀을 읽어 주셨다. “주님의 영께서 나에게 임하시니, 이것은 나에게 기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나를 보내시어 포로 된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에게 시력의 회복을 선포하고, 억눌린 이들에게 자유를 주며, 주님께서 사람들을 기쁘게 받아들이시는 희년의 해를 선포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눅 4:18-19) 이 말씀을 읽으시고 난 후 그분은 그들에게 “이 성경 말씀이 오늘 여러분이 듣는 중에 이루어졌습니다.”(21절)라고 하셨다. 주 예수님은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위임을 선포하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포로 된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게 하시며, 눈먼 이들에게 시력의 회복을 선포하게 하시고, 억눌린 이들에게 자유를 주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기쁘게 받아들이시는 희년의 해를 선포하게 하신 것이다. 


한번은 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시어 상에 앉으셨다. 상에 죄 있는 여인이 와서, 예수님의 뒤에 다가가, 발치에서 울었다. 그 바리새인이 마음속으로 말하였다. ‘그분이 신언자라면, 이 여인이 죄인인 것을 알고 그녀를 거절했을 터인데!’ 주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그대의 죄들이 용서받았습니다.”라고 하셨다. 이 말씀이 그 여인의 눈물을 멈추게 하였다. 그 여인에게 또 말씀하셨다. “그대의 믿음이 그대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십시오.”(참조 눅 7:36-50) 이 말씀이 그 여인의 상한 마음을 위로하였다. 이 한 문장의 말씀은 얼마나 달콤한지. 이 한 문장의 말씀은 하늘의 마음을 나타내 준다.


간음하다가 잡힌 한 여인을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끌고 와서 주 예수님을 시험하여 말하였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인들을 돌로 치라고 명령하였는데, 선생님은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지십시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사람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물러갔다. 그들 모두가 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고 난 후에 주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그대를 유죄 판결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까?”라고 물으셨다. 그 여인이 “주님,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하니, 주 예수님께서 “나도 그대를 유죄 판결하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참조 요 8:3-11). 이것이 하늘의 마음이다. 하늘에는 유죄 판결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계시지만 그분은 유죄 판결하려고 하는 마음이 없으시다.


한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절하며 “주님, 주님께서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미시어 그에게 대시고 “내가 원하니, 깨끗하게 되십시오.”라고 하시자,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게 되었다(참조 마 8:2-3). 하나님의 손은 능치 못한 것이 없고 하나님의 마음은 거절한 적이 없다. 하늘의 손은 항상 할 수 있고 하늘의 마음은 늘 원한다. 


주 예수님은 많은 사람이 목자 없는 양처럼 시달리며 내버려졌기 때문에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오늘날 사람들은 얼마나 시달리는지. 실업, 가난함, 연약함, 계속되는 질병, 정처 없는 생활 가운데 그들은 유리하고 방랑하며 참으로 돌보아 줄 목자 없는 양과 같다. 여러분은 자신이 곤고하고 정처 없이 떠돈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은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시어 주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목양하고 돌보도록 여러분의 목자가 되게 하셨다. 다만 여러분이 그분을 의지하기를 바란다. 


“수고하며 짐을 진 사람들이여, 다 나에게로 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안식을 줄 것입니다.”(마 11:28) 이것은 주 예수님께서 힘든 세상 속의 죄인들에게 외치시는 소리이다. 하나님은 수고하며 짐을 진 사람들이 다 그분에게로 와서 안식을 얻기를 바라신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수고하고 짐을 지므로 안식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안식을 얻게 된다. 


“나는 나에게 오는 사람을 결코 쫓아내지 않을 것입니다.”(요 6:37) 이것은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분 앞에 오는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아무도 버리지 않으신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버릴지라도 그분은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신다. 주 예수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셨으나 그 마을 사람들이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다. 그분의 제자들이 “주님, 하늘에서 불이 내려 그들을 불사르라고 우리가 명령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말하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목숨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구하러 왔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참조 눅 9:52-56).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구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비록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절하고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했지만 그분은 여전히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신다. 


사람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도 그분은 자신을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해서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다. 그분은 원수를 위해 기도하시고 원수를 용서하시며 원수를 사랑하신다. 이것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원수를 용서하시고 원수를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보여 준다. 


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의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는 마음을 완전히 나타내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어 그분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게 하셨다. 이것은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서 “그분은 우리의 죄들을 직접 자기의 몸에 짊어지시고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들을 향하여 죽음으로써 의를 향하여 살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시어 상처 받으심으로써 여러분이 낫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분을 믿는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가 그분을 믿도록 하시는 것이다. 믿는 것은 영접하는 것이다.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요 1:12).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어 그분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가 영접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마음은 이미 사랑하셨으므로 우리의 마음은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손은 이미 주셨으므로 우리의 손은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사랑하시어 주셨으므로 우리는 믿고 영접하자. 하나님은 이미 사랑하셨고 이미 주셨다. 하나님은 이제 우리가 믿기를 기다리시며 우리가 영접하기를 기다리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기를 요구하시는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께 주시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접하기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믿기를 기다리시며 여러분이 영접하기를 기다리신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믿기를 요구하시고 여러분이 영접하기를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을 여러분 앞에 두시어 여러분이 믿기를 요구하시며 여러분이 영접하기를 기다리신다. 


멸망하지 않고


그분을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그분을 믿지 않는 사람마다 반드시 멸망한다. 믿지 않는 사람은 (1) 몸이 죽을 뿐 아니라, (2) 죽은 후에 영과 혼이 음부의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3) 장래 이 세상의 끝에 영과 혼과 몸이 다 유황의 불 못 가운데서 탈 것이며 영원토록 둘째 죽음의 고통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멸망에 포함된 고통이다. 주 예수님은 이미 죽음을 이기셨고 음부를 이기셨다. 그분은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을 구하시어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음부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유황의 불 못에서 벗어나게 하실 수 있다. 그분은 우리에게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요 11:26)라고 말씀하신다.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멸망하지 않는 것은 부정적인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긍정적인 것이다. 믿는 사람은 부정적인 면에서 멸망하지 않고, 긍정적인 면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영원한 생명은 장래에 얻을 복이 아니라 지금 주 예수님을 믿자마자 얻는 생명이다. 이 생명은 바로 주 예수님의 생명이고, 이 생명은 시간과 질적인 면에서 모두 영원하므로 영원한 생명이라고 불린다.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얻는다. 하나님의 아들이 있으면 생명이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없으면 생명이 없다. 생명이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생명을 그분의 아들 안에 두셨고 또 그분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의 아들을 영접할 때 우리는 그분의 생명을 얻게 된다. 하나님은 그분의 생명을 그분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할 때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된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다.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반드시 선을 행하고 잘 처신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을 준행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노정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며 그분을 믿기만 하면 얻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영원한 생명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이다. 다른 것을 할 필요가 없고 믿기만 하면 얻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며 우리를 괴롭히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하지 않으시고 또 우리가 해내지 못하는 것을 하게 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믿기만 하면 거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믿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어서 호흡하는 것처럼 쉽다. 사람이 호흡할 수 있으면 믿을 수 있다. 사람이 언제나 호흡할 수 있듯이 언제나 믿을 수 있다. 사람이 어디에서나 호흡할 수 있듯이 어디에서나 믿을 수 있다. 믿는 것은 시간과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고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누구나 원하면 다 믿을 수 있으며, 믿는 것은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여러분이 믿기를 원하면 여러분은 믿을 수 있다.


바로 지금 얻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생명은 주 예수님을 믿자마자 얻는 것이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장래까지 기다리거나 죽은 후까지 기다려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지금 예수님을 믿고 죽은 후에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신다. ‘믿는다’와 ‘얻는다’의 사이에는 시간의 간격이 없고 ‘기대함’이 그 사이에 끼어 있지 않다. 언제든지 믿기만 하면 언제든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오늘 믿으면 오늘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지금 믿으면 지금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아마 여러분은 자신이 이미 믿었지만 자신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는, 여러분이 느끼는지 느끼지 못하는지에 달려 있지 않고 단지 여러분이 믿는지 믿지 않는지에 달려 있다. 만일 여러분이 믿는다면 여러분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느껴도 좋고 느끼지 못해도 좋다. 만일 여러분이 믿는다면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해도 여러분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이다. 주 예수님은 “이것은 그분을 믿는 사람마다 …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려는 것입니다.”(요 3:16)라고 말씀하셨지, “믿고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느껴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여러분의 느낌을 상관할 필요 없이 주 예수님의 말씀을 믿기만 하면 된다. 우리에게 있는 영원한 생명의 근거는 자신의 느낌이 아니라 주 예수님의 말씀이다. 주 예수님의 말씀이야말로 중요하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고 난 후 여러분 자신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없다. 여러분은 “주 예수님을 믿습니까?”라고 묻기만 하면 된다. 여러분이 주 예수님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이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요 6:47) 이것은 아주 확실한 사실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우리에게 네 가지를 알려 준다. 


(1)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어 

(2)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3) 이것은 그분을 믿는 사람마다 

(4)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셨다. 하나님은 이제 우리가 세 번째를 이루게 하신다. 우리가 세 번째를 이행하면 네 번째가 우리에게서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고 이미 그분의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을 것을 요구하신다. 우리가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은 이미 이루셨다. 하나님은 이제 우리가 우리 편에서의 일을 이루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우리 편에서의 일을 이룸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목적이 성취될 것이며,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서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사랑하셨고’, 이미 ‘주셨다’. 우리는 지금 ‘믿고’, 지금 ‘얻는다’.

친구들이여, 다만 여러분이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리기를 바란다.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 저를 이처럼 사랑하시어 당신의 독생자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저는 이미 그분을 믿음으로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