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10일: 성도들이 신성한 요소를 가지고 신언하며 그들이 말함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공급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한국복음서원 0 4,658 2021.04.28 08:16
310일: 성도들이 신성한 요소를 가지고 신언하며 그들이 말함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공급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Pray that the saints would prophesy in the divine way and with the divine element and would be gained by the Lord to minister Christ with all His riches to one another through their speaking (1 Pet. 4:10-11 and notes 102 and 111; Eph. 3:7-8).

벧전 4:10-11 — 각 사람이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들로서 서로 은사를 공급하십시오. 말씀을 전하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하고, 봉사를 하려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영광과 권능이 그분께 영원무궁히 있습니다. 아멘.

벧전 4:10 각주 1, 다양한 —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는 5장에 있는 ‘모든 은혜’처럼, 생명의 풍성한 공급으로서, 여러 방면에서 우리 안으로 공급되시는 삼일 하나님이다(고후 13:14, 12:9). 우리는 선한 청지기들로서 우리가 받은 은사를 따라 교회와 성도들에게 단지 교리나 어떤 헛된 것이 아닌, 이러한 은혜를 공급해야 한다.

벧전 4:11 각주 1, 하나님의 말씀 — 이것은 신성한 말씀 혹은 계시가 있는 발언이다. 4장 10절에 언급된 대로 은혜를 공급할 때, 우리의 말은 신성한 계시를 전달하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발언이어야 한다.

엡 3:7-8 — 내가 이 복음의 사역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운행을 따라 나에게 주어진 은혜의 은사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 중에 가장 작은 이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으로 전하게 하시고

사역의 말씀 발췌
신언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신성한 말씀하심을 이루는 것이다. 신언은 우리가 과거에 했던 간증과는 다르다. 과거 우리의 나눔과 간증은 단지 주어진 메시지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메시지 대신에 더 많은 말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말하는 것이 신성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신언은 평범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의 요소를 가지고 그 안에서 신성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언 가운데는 반드시 하나님의 신성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 신성한 요소가 없다면 우리의 말함은 신언이 아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말을 하다가 옆길로 잘 빠진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말함을 위해 신성한 요소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가운데 신성한 요소가 더 많을수록, 우리의 말함은 신언이 될 것이다. 만약 내가 신성한 요소 없이 무언가를 말한다면 나의 말함은 신언이 아니다. 신언함은 신성한 요소를 가지고 신성한 길 안에서 신성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주의 회복의 오늘날의 전진, 5장, 77쪽)
신약에는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분명한 은사에 대해 유일하게 언급한 고린도전서 14장이 있다. 여기서의 신언의 은사는 탁월한 은사이다. ... 이런 종류의 말함은 서로가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 신언하고 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고전 14:26). 서로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기 위해 상호 교통 안에서 신언함으로, 우리는 양육받고 교정받으며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고 짜이게 될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몸을 자라게 할 것이며, 그 몸은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질 것이다. 모두가 상호 교통 안의 교회 집회 가운데서 신언할 때, 에베소서 4장 16절이 성취될 것이다.(주의 회복의 오늘날의 전진, 3장, 47쪽)
오늘날 교회 안에서 우리에게 사역이 필요하다. 니 형제님은 항상 은사들을 낮추고 심지어 유죄판결 하기까지 했다. 그는 항상 거듭해서 사역을 강조했다.
고린도전후서는 은사와 사역의 차이를 보여 준다. 첫째 서신은 은사들을 소극적으로 다루고, 둘째 서신은 사역에 관해 적극적으로 말한다. 교회는 은사보다 사역을 훨씬 더 필요로 한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서신에서 은사들을 낮추었다. 그러나 두 번째 서신에서는 사역이 거듭해서 강조된다. 우리는 이 사역을 받았고, 이 사역은 그 영과 생명의 사역이다(고후 3:6, 8). 오늘날 교회들 안에서 필요한 것은 은사들이 아니라 사역이다. 니 형제님은 계시를 받은 후 많은 고난들을 통과했다. 그런 후 사역이 그에게서 나왔다. 그는 사역을 가진 사람이었다.(위트니스 리 전집, 1973-1974년, 1권, 교회 및 지방 교회들의 역사, 8장, 1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