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음식의 형태로 우리의 생명이 되어 오셨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나는 생명의 떡입니다.”,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은 먹기 좋은 생명나무이시다. 우리는 날마다 그분을 먹고 산다. 우리는 그분을 먹을 수 있다.

생명나무를 중심으로
생명나무는 온 우주의 중심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땅이고, 땅의 중심은 에덴동산이며, 에덴동산의 중심은 생명나무이다.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은 온 우주가 이 생명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나 사람에게나 이 나무보다 더 중요하고 중심적인 것은 없다. 우리는 사람이 이 생명나무 앞에 서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은 대단히 의미 깊은 일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생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함
이 나무는 사람이 하나님을 생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가? 이다음에 나오는 성경의 모든 책들은 하나님께서 생명이심을 계시한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는 하나님께서 음식의 형태로 우리의 생명이 되려는 뜻을 갖고 계셨음을 알려 주는 하나의 표징이다.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은 어느 날 육체로 오셨다(1:1, 1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다(요 1:4). 창세기 2장에서 생명나무로 나타난 생명은 육체 안에 계신 하나님, 즉 예수님 안에서 육체가 된 생명이었다. 예수님은 그분 자신이 생명이라고 하셨다(요 14:6). 더욱이 요한복음 15장에서, 그리스도는 나무이시고 포도나무이시다. 요한복음의 이 모든 내용을 종합할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바로 생명나무이심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그분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그분께서 음식의 형태인 생명나무로서 우리에게 오셨다는 뜻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시지만, 우리에게 음식으로 오신 그분은 낮으시다. 그분은 하나의 떡덩이시며, 심지어 상 밑에 떨어진 부스러기이시기도 하다(마 15:21-27).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음식이신 예수님은 위대하고 높은 분이 아니라 작고 낮은 분이시다. 우리가 먹는 것은 다 우리보다 작아야 한다. 우리보다 크면 우리 속에 집어넣을 수 없다. 음식이 우리보다 클 때에는 먹을 수 있도록 작은 조각으로 잘려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 되시기 위해 음식의 형태로 오셨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생명의 떡입니다.”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은 먹기 좋은 생명나무이시다. 우리는 날마다 그분을 먹고 산다. 우리는 그분을 먹을 수 있다.


그리스도를 예표함
생명나무는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고 사람을 기쁘게 하시며 만족시키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한다(요 15:1, 출 15:25).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기쁘게 하시고 만족하게 하신다.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간증한다. 우리는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나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항상 나를 만족시켜 주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생명나무이다.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 11장, 167-1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