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올렸다 내렸다 하심

많은 청년들은 하나님께서 올렸다 내렸다 하시는 것을 참지 못한다. 얼마간 오르락 내리락한 뒤에 그들은 그만두고 싶어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위에 있는 것도 항상 밑에 있는 것도 원치 않으신다. 심지어 낮밤이 바뀌는 자연의 순환도 이것을 증거한다. 끝없는 낮이 없고 끝없는 밤도 없다. 오히려 낮과 밤의 순환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수년간 지속되는 낮과 밤을 갖도록 창조하지 않으셨다. 이것은 우리의 방법을 따른 것은 될지언정 하나님의 방법을 따른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여, 여러분은 여러분의 한계와 제한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얼마만큼 측량하셨으며 얼마만큼 여러분에게 할당하셨는지를 알아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제한과 한계는 매우 실제적으로 우리의 육을 처리한다. 우리의 천연적인 사람은 제한받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아신다. 그러므로 그분은 경계와 제한을 정하사 우리로 그가 우리에게 할당해 주신 분량 안에 머무르게 하신다.(고린도후서 라이프 스타디, 51장, 474, 478쪽)

우리 혼의 목자

살아 있는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생명 주는 영으로서 우리 안에 거하실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 그분은 우리를 돌이키기 위해 우리와 함께 가신다.

엠마오 길의 두 제자에게 주님이 어떻게 목자가 되셨는가를 생각해 보라. 이 제자들은 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지만 주님은 그들을 다른 방향으로 가도록 돌이키기 위해 그들과 함께 가셨다. 누가복음 24장 15절은,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토론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셔서 그들과 동행하셨으나”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그분은 그들에게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느냐고 물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제자들은 다음과 같은 말로 주님을 꾸짖었다. “그대는 예루살렘에 나그네로 머물러 있었으면서, 이 며칠 동안 거기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단 말입니까?”(18절).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슨 일입니까?”(19절)라고 물으셨다. 잠시 동안 함께 걸어간 후에 그들은 예수님께 함께 묵으시기를 간청했다(29절). 그런 다음 그분이 떡을 가지시어 축복하시고, 떼시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은 눈이 열려 그분을 알아보았다”(30-31절). 이것은 주님의 목양하심의 예이다.

가끔 주님은 엠마오 길의 제자들을 목양하심과 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목양하신다. 우리 또한 그분께 의미 없는 말을 할지도 모르며 의미 없는 질문들을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심지어 그분을 꾸짖을지 모르며 그분은 우리가 말하는 것을 모르는 체 하실지도 모른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주 예수님이 이런 방법으로 우리를 목양하고 계심을 간증할 수 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생명 주는 영으로서 그분은 우리의 체험 안에서 우리에게 목자가 되신다.(베드로전서 라이프 스타디, 21장, 199-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