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에서 출판하는 책들 여기저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성과 인성의 연결,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믿는 이들의 연결 모두를 지칭하기 위해 ‘연합(mingl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결을 묘사하려는 거의 모든 용어를 둘러싼 논란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연합’이라는 이 용어를 사용하겠다는 결정은 신중한 고려 없이 내려진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연합하다’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이는 고대의 이단인 에우티케스주의(Eutychianism)나 극단적 단성론(monophysitism)에 빠진 것이라고 반박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글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인성과 신성의 연결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는 바를 분명히 밝힘으로써, 모든 의심을 불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 본성을 지닌 한 인격(엄격한 신학적 용어를 사용하면, 한 위격)이 존재한다고 확증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우월하고 분별력 있는 영만이 신성하고, 그분의 영보다는 열등한 그분의 혼과 몸은 인간적이라는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의 개념을 거부합니다. 그 대신,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하나님이시자 온전한 사람이시며, 진정하고도 온전한 사람의 영과 혼과 몸을 소유하고 계신다고 확증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두 인격이 있다는 개념, 즉 하나는 영원부터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 안에 계신 사람 예수라는 개념을 거부합니다. 이 개념은 네스토리우스주의(Nestorianism)라 불리는데 아마도 잘못 붙여진 이름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오직 한 인격, 한 위격만이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한 인격은 개별적인 두 인격(하나님의 아들과 사람 예수)이 외적으로 하나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참으로 유일한 한 인격, 곧 온전한 사람이시자 완전한 하나님이신 분입니다. 이 인격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신성한 로고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너무도 철저하게 연결된 나머지 하나의 본성(헬, mia physis)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개념을 거부합니다. 이 개념은 단성론이라 불리며 그 극단적인 형태는 4세기에 에우티케스(Eutyches)가 주창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어쩌면 그가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육체가 되셨을 때와 부활하신 이후에도 두 가지 본성으로 존재하신다고 확증합니다. 그분은 신성에 있어서 아버지와 같은 본질이시고, 인성에 있어서 우리와 같은 본질이십니다.

우리는 신성도 인성도 아닌 제삼의 복합된 본성(a tertium quid)을 암시하는 개념을 거부합니다. 그 대신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육체가 되셨을 때와 부활하신 이후에도 분명히 전적으로 신성하신 동시에 인간적이시라고 확증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이렇게 이해할 때, 그 관계를 ‘연합’으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비록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연합’이라는 용어를 에우티케스주의나 단성론과 연관해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연관 짓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며, 사실 ‘연합’이라는 용어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연합에 대한 반박과 관련해서는 언제나 칼케돈 신경(주후 451년)에 호소할 수 있습니다. 이 신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너무도 철저하게 결합된 나머지 두 본성의 구분이 사라져 버릴 정도가 되었다는 주장을 분명하게 거부합니다. 칼케돈 신경은 그리스도께서 두 본성, 즉 신성과 인성 안에 ‘혼동되지 않고, 변하지 않고, 나누어지지 않고, 분리되지 않게’ 존재하신다는 진리를 지지합니다. 이 단어들 중 처음 두 개는 에우티케스주의를 반박하기 위한 것인 데 비해, 마지막 두 개는 네스토리우스주의를 반박하기 위한 것입니다.

특히 첫 번째 용어인 ‘혼동되지 않고’에 대해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연합을 경계하는 표현으로 흔히 잘못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인 ‘아싱크토스(asygchytōs)’는 그저 연합하는 것과 관련된 표현이 아니라 혼동에 이를 정도로 섞는 것과 관련된 표현이므로 ‘혼동되지 않고’로 번역되었습니다. ‘혼동’이라는 단어는 칼케돈 신경의 작성자들이 사용한 헬라어 단어 어간에 대응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헬라어와 라틴어에서 이 단어는 ‘한데 붓다’라는 뜻의 각각의 동사에서 비롯되었고, 본질이 너무 혼합되다 보니 혼동되고 정체성이 상실된다는 뜻을 지니는 데까지 그 의미의 폭이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연합(mingling)’이라는 용어는 이런 함축된 의미를 지니지 않습니다. ‘연합’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다음의 증거를 제시하려 합니다. <아메리칸 헤리티지 칼리지 사전(American Heritage College Dictionary)>에서는 ‘연합하다(mingle)’를 “일반적으로 개인적 특징을 잃지 않은 채로 결합하여 섞거나 합치다”로 정의합니다. <웹스터 새 국제 사전 제3판(Webster’s Thi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에서는 ‘연합하다’를 “다른 어떤 것과 합치거나 결합하되, 그 결합체 속의 구성 요소들이 구별된 채 남아 있게 하다”로 정의합니다.

같은 사전에서 ‘섞어 한데 합하다(mix)’라는 표제어에 대한 동의어 주석에는 다음의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 ‘연합’은 요소들이 결합 전과 후로 모두 구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합에 의한 결합은 ‘섞어 한데 합하는 것’보다는 더 성긴 형태이고 상호 침투의 정도도 덜하다. ‘인종 또는 종교가 다른 이들의 결혼(a mixed marriage)’, ‘남녀가 섞여 있는 그룹(mixed company)’ 및 ‘여러 감각이 뒤섞임(mingled sensations)’, ‘뒤섞인 감정(mingled emotion)’, ‘여러 건축 양식이 어우러진 거리(a street displaying mingled architectural styles)’라는 표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현대의 사전 전문 출판 기관에서 제시한 이 예들 외에도 우리는 일반적인 용례에서도 근거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이 어우러지다(joy mingled with tears)’라는 표현이나 ‘희망과 두려움이 뒤섞이다(hope mingled with fear)’라는 표현도 연합의 개념은 연합된 것들이 각각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정도로 철저하게 연결되는 것을 가리키지는 않는다는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따라서 ‘연합’이라는 단어를 반박하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영어 전문 기관이나 일반적인 용례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의미를 억지로 그 단어에 부여하지 않을 터라면 말입니다.

우리의 출판물에서 말하는 연합이, 우리가 신약의 계시에서 빗나가지 않으려면 반드시 인정해야 하는 바로 그 연합이라는 것을 우리는 지적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근거하여 그리스도를 두 본성을 지닌 한 인격으로 인정하는데, 이 점은 교회 역사에서도 확증되어 왔습니다. 이것이 정확히 어떻게 가능한지는 결코 완전히 이해될 수 없습니다. 칼케돈 신경의 방침은 이 연결을 기술할 때 네 가지를 부정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곧 두 본성의 연결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대신 두 본성의 연결이 무엇은 아니라고 정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따라서 칼케돈 신경은 두 본성이 “혼동되지 않고, 변하지 않고, 나누어지지 않고, 분리되지 않게”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용어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따르면, 또한 이 용어의 정의와 용례를 우리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연합’은 “혼동되지 않고, 변하지 않고, 나누어지지 않고, 분리되지 않게” 존재하는 연결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신성과 인성의 연결을 하나의 ‘연합’으로 기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반박이 본성들의 구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반면 인격의 하나는 덜 강조하는 것에서 비롯된 면이 어느 정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를 연합되신 분으로 말하는 것은 그분을 하나의 단위, 즉 단일한 정체성을 지닌 하나의 전체(whole)로 말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그분 안에 여전히 어떤 종류의 구별이 존재하지만 고유의 특성들인 두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이 상실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언급하기 위해 ‘연합’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이는 신성이 육체 되심을 통해 인성 안으로 이끌렸고 인성이 부활을 통해 신성 안으로 이끌렸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분의 두 본성이 용해되었다거나 이제 그분이 완전히 신성하지도 않고 완전히 인간적이지도 않은 제삼의 본성을 지니셨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연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불필요한 오해만 일으키고 너무 쉽게 고대의 이단을 연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연합이라는 ‘용어’를 주장하는 것은 단지 말다툼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진리를 가능한 한 최대한도로 이해하고 선포하려는 우리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믿는 이들에 관한 완전한 계시를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성경의 계시를 회피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 안에서 이루어진 신성과 인성의 연합을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연합을 확증합니다.

특히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 안에서 이루어진 신성과 인성의 연합은 신약에서 그 근거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일단 ‘연합’이라는 용어가 제대로 이해되었다면, 정통 기독교인은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신성과 인성의 연합을 거의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은 연합이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인데, 왜냐하면 신약은 분명하게 연합을 가리키는 용어들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와 그분의 믿는 이들의 연결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믿는 이들이 하나님에게서 났다고 말합니다(요 1:13, 요일 5:1). 모든 출생이 두 생명의 연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에게서 난 믿는 이들 안에도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과 사람의 생명의 연합이 분명히 있습니다. 믿는 이들은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불리며(롬 12:5, 고전 10:17, 12:12-13, 27, 엡 1:22-23, 5:30, 골 1:24), 그리스도는 몸의 머리이시다(엡 1:22, 4:15, 5:23, 골 1:18). 이 몸 안에서 그리스도는 그분의 믿는 이들과 분리되실 수 없도록 연합되어 계십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믿는 이들이 그분의 몸 안에서 너무나 철저하게 연합되어 있어서, 바울은 어느 곳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언급합니다(고전 12:12). 더 나아가, 종종 신약은 그 영께서 믿는 이들의 영 안에 연합의 방식으로 내주하신다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주님과 한 영입니다.”(고전 6:17)라고 말합니다. 여기의 영은 단순히 믿는 이들의 거듭난 영이 아니며 내주하시는 성령도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의 영은 “그 영이신 주님과 우리 영의 연합”(회복역 성경, 고전 6:17 각주 2)을 가리킵니다. 신약의 저자들이 우리의 영과 함께하시는 그 영을 연합된 한 영이라고 언급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위트니스 리의 다음의 훌륭한 각주를 제시합니다.

‘영(spirit)’이라는 단어는 로마서 8장과 갈라디아서 5장, 또한 신약의 여러 곳에서 사용되는데, 로마서 8장 9절과 16절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지 혹은 우리의 거듭난 영을 가리키는지 명시되지 않는 한 분간하기가 어렵다. 신약의 용법에 따르면, 이 절에 사용된 ‘영’이라는 단어는 삼일 하나님의 완결이신 그 영(롬 8:9)께서 내주하시고 그 영과 연합된 거듭난 사람의 영을 의미한다. 이것은 “주님(주님은 그 영이심—고후 3:17, 고전 15:45)과 합하는 사람은 주님과 한 영입니다.”라고 말하는 고린도전서 6장 17절과 일치하며, 여기서 한 영은 연합된 한 영이다.(회복역 성경, 롬 8:4, 각주 2)

그 영이신 주님과 그분의 믿는 이들의 연결은 너무나 완전해서 오직 ‘연합하다’라는 단어만이 그것을 온전히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다른 어떤 용어를 사용할 때, 그리스도께서 믿는 이들에게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의의와 중요성이 감소될 것이고, 그분과의 비밀한 연결에 대한 온전한 감상과 누림이 손상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