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버 자매는 일반 세상에서 뿐 만 아니라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누군가 그녀의 이름이 사막에서 샘이 나타난 것처럼 어렴풋이 나마 기억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일 뿐이다. 그녀는 영국인이었지만 영국 위인 전기 사전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그녀는 선교사였지만 위대한 업적을 이룬 데이빗 리빙스톤(David Livingston)이나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와 같지 않았다. 그녀의 일의 활동 영역은 크지 않았다; 중국의 한 구석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한 마을에 대부분 한정되었다. 그녀는 "온 세상은 내 교구"라 말한 요한 웨슬레(John Wesley)와 같지 않았다. 그녀는 찬송가를 썼지만 대부분의 기독교 찬송가에서 찾을 수 있는 찰스 웨슬레(Charles Wesley)나 아이삭 왓츠(Isaac Watts)가 쓴 찬송가와 같지 않았다. 그녀는 주님을 사랑했고, 영적 생명 안에서 성숙했지만 그녀는 현재까지 존재하는 많은 저서를 남긴 마담 귀용(Madame Guyon)이나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와 같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이 땅에 조용히 나타난 한 나그네였던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루이스(Louis, 수레목수였음)와 마르다 바버(Martha Gibbs Barber)의 딸로서 1866년 영국 수폴크 지방(Suffolk), 피젠홀(Peasenhal)에서 태어났으며 63세에 주님 곁으로 갔다. 그녀의 짧은 일생동안 그녀는 중국에 가도록 주님에 의해서 두 번 부르심을 받았다. 그녀는 그녀의 가족을 포기하고 한 미개의 나라에까지 수 천리 외로운 길을 여행했다. 그녀는 복주 가까이에 있는 한 마을에서 살았는데 이곳에서 그녀는 조용히 그녀의 모든 시간을 드려 주님을 위해 일했고, 1930년 3월 1일 그녀가 죽을 때까지 계속 신실하게 자신을 드렸다. 그녀의 묘에서 한 형제는 『그녀는 마리아처럼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막 14:8)라고 말했다. 그녀의 장례식에 있지 않았으나 그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던 워치만 니는 후에 그의 잘 알려진 책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그녀에 대한 감사함을 글로 표현했다. 마지막 장 『복음의 목적』 (「왜 이것이 허비인가?」란 제목으로 따로 출판됨)에서 그는 그녀의 말을 인용했다. 『주여, 나는 당신의 마음을 만족시키도록 기꺼이 나의 마음을 깨뜨립니다!』
한번은 누군가 그녀에게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합니까?』라고 질문했다. 그녀는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녀로부터 도움을 입은 중국인 젊은이들 중 몇 사람은 그녀에 대해서 조급해했다. 그들은 『왜 그녀는 나가서 집회들을 세우지 않고, 큰 도시에서 사역하지 않는가?』라고 궁금해했다. 대신 그녀는 아무것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작은 마을에서 살았다. 그녀가 그곳에 있는 것은 허비처럼 보였다. 한 형제는 거의 외치다시피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과 같이 주님을 아는 사람이 없고 당신처럼 성경을 산 방식으로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당신은 주위의 필요는 모르십니까? 왜 밖으로 나가서 무언가를 하지 않습니까? 여기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정말 시간과 힘을 허비하는 것이고, 돈을 허비하는 것이며, 모든 것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허비였는가? 오래 세월 후에, 그것은 분명해졌다. 그녀는 하나님에 의해 중국에 심겨진 하나의 생명의 씨였다. 이 씨는 분명히 외로움과 비천함과 격리됨을 통과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분은 그녀를 꽃 피우게 하셨고, 열매를 맺게 하셨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로부터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영적인 도움을 받았는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하나님이 그녀로 하여금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심이 매우 놀랍다. 그녀가 살아 있을 동안 하나님은 그녀가 이 사실을 아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롬 11: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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