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43일: 성도들이 주님과의 개인적인 교통을 갖는 것에서 온전케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3)

한국복음서원 0 6,300 2021.02.22 09:38

243일: 성도들이 주님과의 개인적인 교통을 갖는 것에서 온전케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3) 


성도들이 주님과의 개인적인 교통을 갖는 것에서 온전케 되고, 주님께 묻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을 바라봄으로써 그분으로 주입받고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되기를 배울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창 18:17, 20-25, 왕상 19:11-12 및 각주 121, 시 27:4, 고후 3:18; 찬송가 784장, 2, 5, 6절과 후렴).


창 18:17, 20-25 —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는가? …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너무나 크고,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 무겁구나! 내가 내려가서 그들이 행한 일이 모두 나에게 들려온 그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아보아야겠다.” 그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 소돔을 향하여 갔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아브라함이 다가가서 말씀드렸다. “정말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망시키시겠습니까? 혹시 그 성에 의인 오십 명이 있다면, 그래도 그곳을 멸망시키시겠습니까? 그 성에 있는 의인 오십 명을 위하여 그곳을 남겨 두지 않으시겠습니까?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게 하시는 그러한 일을 하셔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의인과 악인이 똑같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하셔서는 안 됩니다! 온 땅을 심판하시는 분께서 공정하게 행하셔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왕상 19:11-12 —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밖으로 나가 산 위, 여호와 앞에 서라.” 그리고 갑자기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불어 여호와 앞에서 산을 나누고 바위들을 산산조각 냈다. 그러나 여호와는 그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다음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여호와는 그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간 다음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여호와는 그 불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다음에 부드럽고 나지막한 음성이 있었다.


왕상 19:121, 부드럽고 나지막한 음성 — 하나님께서 부드럽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사실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신약 시대 안으로 이끌고 계셨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신약 시대에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천둥소리로 말씀하시지 않고 부드럽고 나지막하게 말씀하신다(비교 요일 2:27).


시 27:4 — 내가 여호와께 청하여 온 한 가지 / 그것을 구하리니 / 내 평생에 / 여호와의 집에 거주하며 /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 그분의 성전에서 여쭙는 것이라네.


고후 3:18 — 그러나 우리 모두는 너울을 벗은 얼굴로 거울처럼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반사함으로써 그분과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릅니다. 이것은 주 영에게서 비롯됩니다.


영한동번 찬송가, 784장, 2, 5, 6절과 후렴

2. 기도 안에 교통할 때 주께 맘을 열겠네
순수하고 진실하게 주 얼굴 앙망하리
   후렴:
   기도 안에 교통하여 영 안에 주 뵙겠네
     주의 임재 안에 묻고 은밀히 기다리리
5. 기도 안에 교통하여 주의 말씀 들으리
  주의 뜻을 새기면서 그의 갈망 이루리
6. 기도 안에 교통하여 주님 안에 잠기리
 주 영광으로 적셔져 주를 반사하겠네


사역의 말씀 발췌 

정상적인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도록 허락해 드리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 마음에 있는 어떤 어려움을 말해 내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기도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가서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것이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로 형제가 교회의 어려움을 걱정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임재를 만지며 하나님 자신을 받아들인다면, 교회의 어려움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그의 안에서 말씀하실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물으실 것이다. “너의 혈기는 어떠하냐?” 그의 마음은 교회의 어려움을 걱정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혈기가 어떠한지 물으신다. 그는 즉시 자신이 혈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고, 하나님은 그에게 다시 “교회의 어려움은 너에게 혈기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그것을 인정하며 “그렇습니다, 주님.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저의 문제입니다. 교회의 어려움이 아니라 저의 어려움입니다. 주님, 저를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 이러한 기도는 참된 기도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도록 해 드린다면, 그의 기도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기도이다. …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항상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도록 해 드리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가장 좋은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만지는 기도일수록 하나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말씀하시는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만지시며 우리 안의 상태를 얼마나 지적하시는지가 문제이다. 우리는 모든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기억 속의 일을 잊고,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만지시는 부분만 관심하며, 하나님께서 만지신 우리의 그 부분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물으시면 우리가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며 하나님의 표현이다. 가장 참되고 또 가장 가치 있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그분 자신을 표현하신 기도이다.(기도의 의미와 목적, 2장, 48-50쪽)

우리는 잠잠하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기를 배워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잘할 줄 모른다. 주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한다는 것은 바로 영 안에서 하나님을 한 번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에 우리는 많은 말을 멈추고 심지어 그것들을 떨쳐 버리는 반면에 단순히 영 안에 들어가 그분을 만나 뵙고 만지며 그분 앞에서 묵묵히 그분을 바라보고 앙망하기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또다시 그분을 바라보고 앙망하며 그분을 감상하고 귀히 여기기를 배워야 한다. 이것은 극히 달콤하고 타당한 일이다. 기도를 결코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구하는 것만으로 생각하지 말라. 아니다. 기도의 제목과 대상은 일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다. 먼저는 그분을 만나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분 앞에서 잠잠하며, 그다음은 그분을 세세히 바라보고 앙망하며 세밀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들이마시고 누리는 것이다.(하나님을 누리는 길, 5장, 73-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