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12일: 성도들이 주 예수님에 대한 신선한 사랑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한국복음서원 0 7,020 2021.01.21 08:57

212일: 성도들이 주 예수님에 대한 신선한 사랑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주님을 향한 성도들의 사랑이 다시 불타오르고, 그들이 주 예수님에 대한 신선한 사랑을 가지며 주님의 사랑에 대한 신선한 입맛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계 2:4, 각주 41, 렘 2:2, 아 1:2, 갈 2:20).


계 2:4 — 그러나 너에게 책망할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네가 첫째가는 사랑을 버린 것이다.


계 2:41, 첫째가는 — ‘첫째가는’이라는 의미의 헬라어 단어는 누가복음 15장 22절에서 ‘제일 좋은’으로 번역된 헬라어와 동일한 단어이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첫째가는 사랑은 그분에 대한 제일 좋은 사랑임에 틀림없다.


렘 2:2 — “가서,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고 예루살렘의 귀에다 외쳐라. / ‘네 어린 시절의 그 다정함과 / 네 신부 시절의 그 사랑을 나는 기억하나니 / 그때 너는 광야에서, / 씨 뿌리지 못하는 땅에서 나를 따라다녔다.


아 1:2 — “그이 입의 입맞춤들로 내게 입맞춤해 주었으면! / 당신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나은 까닭이랍니다.


갈 2:20 —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이제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생명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 안에서 사는 생명입니다.


사역의 말씀 발췌

(요한계시록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보낸) 첫 번째 서신에서는 교회 가운데 이기는 이가 되려면 주님을 향한 첫째가는 사랑을 회복하거나 혹은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2:4-5). 일곱 서신의 순서와 내용을 본다면, 교회의 황폐함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 문제가 생겼을 때 시작된다. 주님에 대한 교회의 첫째가는 사랑은 신선한 것이었고 교회가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섬긴 것은 모두 그 신선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일에 열심도 있었고 좋은 행위도 있었으며 또한 수고도 있었지만 그것들 안에 있어야 할 사랑을 잃어버렸다. …

매일 아침 우리는 반드시 사랑 안에서 주님과 교통을 가져야 하고, 사랑의 느낌이 있어야 하며, 신부 시절의 그 사랑이 있어야 한다(렘 2:2). 더욱이 우리는 그분 앞에서 새로운 헌신이 있어야 하며, 새로운 돌이킴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분께 “주님, 저는 제가 처음 당신을 사랑한 것같이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과 저는 신부 시절과 같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것은 예레미야서에서 말한 신부 시절의 그 사랑이다. 에베소에 보낸 서신에서는 첫째가는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실패하여 그들과 주님 사이에 신부 시절의 그 사랑을 잃어버린 것과 같다. 여러분과 내가 오늘날 황폐함 가운데서 이기는 이가 되려면 반드시 주님을 향한 신선한 사랑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날마다 “주님, 저와 당신 사이는 마치 신혼과 같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에 대하여 새로운 마음을 가지며, 당신을 향하여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당신 앞에서 새롭게 돌이키며, 당신에 대해서도 새로운 누림과 새로운 인식을 갖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러한 사랑에서, 즉 고린도후서 5장 14절에서 말한 우리를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어떤 일이 시작된다. …

우리는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여러분과 내가 오늘날 하고 있는 일들이 직업이 되었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여러분과 내가 오늘날 교회를 돌보고 있는 것이 다만 책임 때문인가? 여러분과 내가 오늘날 교회를 섬기는 것은 다만 열심에 불과한가? 만일 이와 같다면 여러분과 나는 완전히 끝난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만질 때 우리가 주님에 대해 신선한 사랑을 가지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하고, 사람들이 우리를 만질 때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맛본 사람들임을 느끼게 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생활하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없으며 오직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를 위하고 죄인을 위하고 주님의 길을 위하는 이유는 조금도 다른 이유가 없으며 오직 우리 안에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사랑스러움이 우리를 깊이 만지고 우리를 매혹하기 때문에 우리는 원망이 없고 욕심이 없다. 우리의 모든 수고와 모든 행동은 이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교회의 세 방면, 2권, 교회의 발자취, 137-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