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행 1:8, 13-14, 2:16-18, 21, 5:20, 41-42, 6:4, 13:32-34, 16:6-7, 17:16, 19:21, 28:31
Ⅰ. 사도행전은 인간 역사 속에 있는 신성한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계시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단체적인 나타남인 교회를 확산시키고 건축하기 위해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과 표현과 기능에서 하나님이 된 사람들이다 — 행 1:8, 14, 2:14상, 4:10-20, 31-32, 5:20, 38-39, 13:1-4, 26:16-19, 28:31.
A. 베드로는 사도행전에서 처음 복음을 선포했을 때, 외적인 인간 역사 속에 있는 내재적인 신성한 역사를 계시해 주는 요엘서에서 말씀을 인용하였다 — 행 2:17-21, 욜 1:1-4, 2:28-32.
B. 인간 역사 속에 있는 신성한 역사는 그리스도께서 ‘영원의 날들로부터 나아와서’(미 5:2) 시간의 다리를 건너 영원 미래 안으로 들어가시는 것이다(시 90:2). 그 결과 그리스도는 그분의 단체적인 나타남과 완전한 영광스럽게 됨을 위해 모든 민족이 갈망하는 분(학 2:7)으로서 그분께 선택받은 이들 안으로 분배되신다.
C. 요엘서는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시고 복합되신 영의 쏟아부어지심에 대해 말하는데, 이 영은 오순절 날에 쏟아부어지셨다. 이 영은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이시자 그리스도의 실재화로서, 그리스도의 나타남을 위한 분이시다 — 욜 2:28-29, 행 2:1-4, 16-21, 딤전 3:15-16.
Ⅱ. 사도행전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의 이름을 위해 고난을 받으며, 주님의 이름 곧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말함으로써 신성한 역사 안에 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계시한다.
A. 하나님의 신약 희년에 관한 요엘서의 예언과 그 성취에는 두 방면이 있다. 하나님 편에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천 안에서 그분의 영을 쏟아부어 주신 것이고, 우리 편에서는 모든 것을 성취하시고 모든 것에 도달하시고 모든 것을 획득하신 승천하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 행 2:16-18, 21, 욜 2:28-29, 32상.
1. 인간 역사 가운데 있는 우리의 신성한 역사는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려, 그리스도의 충만인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역사이다 — 롬 10:12-13, 엡 3:8, 19, 1:22-23.
2.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황금 같은 신성한 역사 안에 우리 자신을 계속 있게 한다. 이 역사는 에노스에서부터 시작하여(창 4:26), 구약과 신약을 거쳐 계속되며(욥 12:4, 창 12:8, 26:25, 신 4:7, 삿 15:18, 삼상 12:18, 시 116:4, 13, 17, 80:18, 88:9, 왕상 18:24, 사 12:4, 애 3:55, 57, 시 99:6, 사 55:6, 욘 1:6, 왕하 5:11, 사 41:25, 행 2:21, 7:59, 9:14, 21, 22:16, 롬 10:12-13, 고전 1:2, 딤후 2:22), 성경에 있는 마지막 기도로 끝을 맺는다(계 22:20).
B. 신성한 역사 안에 사는 동안 우리는 인간 역사 안에서 주님의 이름을 위해 고난을 겪는다. 그 이름, 곧 사람에게 모욕당했지만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하신 바로 그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모욕당하는 것은 참된 영예이다 — 행 4:18-20, 29-31, 5:41-42, 9:13-16, 고후 6:4, 11:23, 골 1:24-25.
C. 우리는 ‘담대하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함으로써 인간 역사 속에 있는 신성한 역사를 수행한다. 이 이름은 인격과 일에 있어서 주님의 존재 전체를 표현한다 — 행 9:27, 빌 2:9-11, 살전 2:2, 고후 4:5.
Ⅲ. 사도행전은 한 몸으로서 살고 움직이고 행동함으로써 신성한 역사 안에 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계시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몸 안에서, 몸을 통해서, 몸을 위해서 한다.
A. 주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도 계속해서 이 땅에서 수많은 사람들 안에서 살고 행동하고 행하고 일하시는데, 이는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분 자신을 그들 안에 분배해 주셨기 때문이다 — 요 12:24.
B. 사복음서는 우리에게 머리의 그림을 제시해 주고,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몸을 보여 준다. 사도행전은 사실상 그리스도의 행전, 곧 그리스도께서 그 영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몸 곧 그분의 재생산과 복사판인 교회 안에서 움직이신 행전이다 — 행 1:14, 2:14상, 42, 9:4-5, 28:13-15.
Ⅳ. 사도행전은 그들 자신을 거절하고 또 다른 생명, 곧 신성한 생명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삶으로써 신성한 역사 안에 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계시한다. 그리스도의 이러한 단체적인 생활이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이다.
A. 사도행전 5장 20절에 나오는 ‘이 생명’이 가리키는 생명은 유대 지도자들의 박해와 협박과 투옥을 이겨 낸 생명이며, 베드로가 전파하고 공급하고 살아 낸 신성한 생명이다. 베드로의 생활과 일을 통하여 신성한 생명이 그의 상황에서 매우 실지적이고도 현실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천사까지도 그것을 보고 지적했다.
B. 바울은 그의 영 안에 계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예수님의 영(그의 사람의 영과 한 영으로 연합되신 신성한 영)에 의해 그리스도를 살고 하나님을 섬겼다. 그는 휘장(실지적인 지성소인 그의 영) 안에서 살았고, 진영(종교라는 인간 조직) 밖에서 살았다 — 행 16:6-7, 17:16, 19:21, 롬 8:16, 딤후 4:22, 고전 6:17, 롬 1:9, 빌 3:3, 히 6:19-20, 13:13.
C. 인간 역사 속에 있는 신성한 역사 안에서 살며 우리의 인간 생명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에 의해 살기 위해, 우리는 주님께 열려 있는 그릇이 되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받아들이고, 주님으로 충만하게 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고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하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 행 9:15, 고후 4:7, 롬 9:21, 23, 비교 왕하 4:1-6.
Ⅴ. 사도행전은 기도와 말씀의 사역을 꾸준히 계속함으로써 신성한 역사 안에 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계시한다. 기도와 말씀의 사역을 꾸준히 계속하는 것은 하늘에서의 사역을 수행하시는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와 협력하는 사도들의 사역 안에 사는 것이다 — 행 6:4, 히 7:25, 8:1-2.
A. 기도에 의해 우리는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의 반향이 된다. 우리는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며, 사람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기도를 의지한다 — 행 9:11, 13:1-4, 골 3:1-3, 4:2, 엡 6:18, 단 6:10, 9:2-3, 고전 2:13, 고후 3:6.
B. 우리는 말씀의 사역에 의해 하늘에 속한 생명과 능력이신 그리스도를 다른 이들 안으로 나누어 줌으로, 그들이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강화되어 이 땅에서 그들의 하늘에 속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살게 한다 — 롬 15:16, 비교 사 50:4-5.
Ⅵ. 사도행전은 시편 68편에서 보여 주는 신성한 역사 안에 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계시한다. 시편 68편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움직임의 중심이시고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활동들의 실재이심을 보여 준다 — 시 68:1, 24.
A. 우리는 생명을 분배하시고 자신을 쏟아부어 주시는 영이신,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을 매일 누려야 한다 — 시 68:11-13, 19, 행 2:46-47, 5:42, 16:5, 20:31, 28:30-31.
B. 우리는 복음 전파에 있어서 전달과 확산을 위한 복음 전하는 이들의 ‘바닷가’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한다. 갈릴리 사람들로 이루어진 적어도 백이십 척의 복음의 ‘배들’이 오순절에 복음의 확산을 위해 ‘바닷가’에서 출항하였다 — 시 68:27, 창 49:13, 행 2:7, 13:31.
Ⅶ. 사도행전은 하나님의 맏아들이시자 다윗의 거룩한 것들, 신실한 것들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계속 누리고 살고 선포함으로써 신성한 역사 안에 살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계시한다. 다윗의 거룩한 것들, 신실한 것들은 우리에게 긍휼들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존재의 모든 방면이다 — 행 13:32-34.
A. 다윗의 씨이신 그리스도는 부활을 통해 태어나셔서, 다윗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확실한 긍휼들이신 하나님의 맏아들과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 행 13:33-35, 사 55:3-4.
B. 사도행전 13장 34절에서 바울은 이사야서 55장 3절의 확실한 긍휼들을 ‘다윗의 거룩한 것들, 신실한 것들’로 해석했고, 사도행전 13장 33절과 35절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맏아들이시자 거룩한 분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C. 이것은 이사야서 55장 4절로도 확증된다. 이 절은 확실한 긍휼들이 백성들의 증인과 인도자와 지휘관이신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것을 계시한다.
D. 하나님의 맏아들과 생명 주시는 영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그분께 선택받은 백성에게 주신 큰 선물이며, 이 선물은 ‘다윗의 거룩한 것들, 신실한 것들’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다 — 행 13:33-34.
E.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긍휼들과 축복들, 곧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이시고, 하나님은 이분을 우리에게 큰 선물로 주셨다. 이 선물은 영원한 언약의 실재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이며, 우리에게 모든 것을 포함한 은혜가 되는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모든 풍성을 포함한다 — 사 42:6하, 55:3, 고전 1:9, 행 13:43.
Ⅷ. 우리가 사도행전의 계속 안에 있고자 한다면, 다락방의 헌신을 함으로써 신성한 역사 안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 — 행 1:13-14.
A. 바닷가에서 베드로는 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그의 직업을 버렸지만, 다락방에서 그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버렸다 — 마 4:18-20, 행 1:13-14.
1. 그는 하늘에 속한 이상과 함께 서 있으면서 그의 조상들의 종교를 버렸다.
2. 그는 그의 고향, 그의 이웃들과 친구들과의 관계, 그의 친척들을 버렸으며, 기꺼이 그의 목숨을 내놓았다.
B.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헌신은 다락방의 헌신이다. 이러한 헌신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전 존재가 하늘에 속한 이상과 ‘결혼하도록’ 대가를 지불한다 — 행 26:19, 1:8, 20:24.
C. 우리가 하늘에 속한 이상을 위해 대가를 지불한다면, ‘우리 뒤에 있는 다리들을 불태울’ 것이고 되돌아갈 길이 없을 것이다.
D. 우리가 하늘에 속한 이상을 보았는지의 여부는 안약이신 기름 바르시는 영을 사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 계 3:18.
E. 주님의 회복의 길을 취하는 것은 값싼 일이 아니다. 이 길은 값비싸며, 큰 희생이 따르는 헌신을 요구한다.
F. 우리는 여기에 어떤 운동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회복을 위해 있다. 회복은 다락방에서의 구체적이고도 비범한 헌신에 의해서만 수행될 수 있다.
G. 다락방에 있던 백이십 명 모두는 하나의 번제물이 되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영 안에서 불타고 있었으며, 신성한 생명의 신성한 불로 다른 사람들을 불태웠다 — 눅 12:49-50, 행 2:3-4, 롬 12:11.
H.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큰 무리가 그분을 따랐지만, 그들은 주님의 움직임을 위해 주님께 아무것도 드리지 않았다. 주님의 움직임은 다락방에 있었던 사람들, 곧 눈이 열리고 마음이 감동된 사람들과 함께하였다 — 행 17:6하.
I. 세상을 완전히 바꾸고 시대를 전환할 사람들은 소수일 것이다. 우리가 다락방에 있고자 한다면, 우리는 주님께 구체적으로 기도하며 이렇게 말씀드려야 한다. “주님, 저는 당신의 증거의 회복을 위해 기꺼이 다락방에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