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집회

2026년도 7차 정기집회

  • 개요

    가을 학기 전시간 훈련 : 바울의 서신들 안에 있는 진리의 중점들 ―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

    • 메시지1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대한 하늘에 속한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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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2
      교회의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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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3
      경건에 이르도록 우리의 영을 훈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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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4
      건강한 가르침, 건강한 말씀, 건강한 말, 믿음 안에서의 건강함
      +
    • 메시지5
      예방 접종을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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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6
      영원한 생명을 붙잡는 하나님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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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7
      그리스도의 좋은 사역자
      +
    • 메시지8
      은혜로 강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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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9
      하락의 근본적인 요인 ? 바울의 완성하는 사역을 버리고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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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요

    봄 학기 전시간 훈련 : 바울의 서신들 안에 있는 진리의 중점들 ― 데살로니가전후서

    • 메시지1
      삼일 하나님 안에 있는 교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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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2
      삼일 하나님 안에 있는 교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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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3
      믿음, 사랑, 소망 ― 교회 생활을 위한 거룩한 생활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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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4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위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하게 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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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5
      삼일 하나님의 체현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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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6
      하나님의 왕국과 영광 안으로 부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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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7
      사도 바울의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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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8
      우리의 믿음이 크게 자랄 필요성과 서로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증가해야 할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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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9
      그 영의 거룩하게 하심 안에 있는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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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0
      신성한 아들의 자격을 위한 신성한 거룩하게 하심 ― 신약의 계시의 중심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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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1
      우리의 마음이 견고하게 되어 거룩함에 있어서 나무랄 데 없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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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2
      돌봄의 의미와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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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과 우리가 그분 앞에 모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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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4
      데살로니가후서에 있는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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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5
      불법의 비밀, 불법의 사람,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을 위해 우리가 치료하시는 그리스도로 재조성되고 완전히 거룩하게 되고 온전하게 보존되어야 할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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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16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이끄셔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이르게 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인내로 인내하는 데 이르게 해 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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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요

    가을 장로 국제 훈련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 메시지1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과 야곱의 하나님을 알고 체험하여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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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창 28:13, 33:20, 출 3:6, 14-15, 행 3:13, 갈 6:16, 살전 1:1
      Ⅰ. 우리의 하나님은 세 특정 인물,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그분께서 삼일 하나님이신 것을 암시한다 — 출 3:15, 마 28:19, 고후 13:14.
      A.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의 기초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없었을 것이다 — 출 3:15-16.
      1. 하나님의 백성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체험들을 통하여 그분의 백성이 되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체험들은 결국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절정에 이르렀다.
      2. 우리는 모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요소들을 가져야 한다. 이 요소들이 없이는 하나님의 백성 곧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될 수 없다.
      B. 창세기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대한 기록은 서로 중첩된다. 창세기는 이들 세 사람을 분리된 개인으로 묘사하지 않고, 단체적인 한 사람을 이루는 구성 요소로 묘사한다.
      1. 아브라함의 체험은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상징한다. 아버지 하나님은 유일한 근원으로서 사람을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며 사람이 믿음으로 살고 그분과의 교통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장비시키신다 — 창 12:1, 15:6, 17-18장, 19:29, 21:1-13, 22:1-18.
      2. 이삭의 체험은 아들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상징한다. 아들 하나님은 사람을 구속하시고, 사람에게 그분의 모든 풍성을 유업으로 주시며, 그 모든 부요함을 누리는 삶을 살게 하시고, 평안 가운데 살게 하심으로 복을 주신다 — 창 22:1-14, 25:5, 26:3-4, 12-33.
      3. (요셉을 포함하는) 야곱의 체험은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체험과 영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상징한다. 아버지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고 선택하셨으며(말 1:2, 롬 9:10-13), 영 하나님은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협력함으로써 선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사람을 변화시키시며 사람을 신성한 생명 안에서 성숙하게 하심으로써,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을 축복하고 온 땅을 다스리며 생명 공급이신 아들 하나님으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게 하신다 — 창 27:41, 28:1-35:12, 37장, 39-49장, 롬 8:28-29.
      Ⅱ. 우리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알고 체험해야 한다.
      A. 아브라함은 유일한 근원이신 하나님, 곧 ‘없는 것도 있는 것으로 불러내시는 분’이신 하나님을 믿었다 — 롬 4:17.
      1. 하나님의 목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성취되어야 한다 — 창 17:17, 19, 21.
      2. 하나님은 그분께서 아버지이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브라함에게 보여 주시기 위해 그에게 특별한 일을 하셨다 — 엡 4:6.
      a.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근원 곧 유일한 창시자이시며,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 마 15:13.
      b.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시고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롬 11:36, 고전 8:6, 엡 3:14-16.
      B. 아들 하나님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상징인 이삭을 통해 우리는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서 오는 것을 본다 — 창 24:36, 25:5.
      1. 창세기 22장에 있는 그림에 따르면, 이삭은 그리스도를 상세히 예표한다.
      2. 이삭의 원칙은 받는 원칙이다 — 창 25:5, 고전 4:7.
      a. 아들 하나님이 의미하는 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을 받으시며 어떤 것도 자신에 의해 시작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 요 16:15, 17:10, 5:19, 30.
      b. 이삭에게서 우리는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서 오며 우리의 위치는 받는 위치임을 본다 — 창 26:12-13, 롬 11:36, 고전 4:7.
      1) 이삭이 아브라함과 맺은 관계는 받아들이는 관계였다. 이삭의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을 공급자로 아는 것이다 — 창 24:36.
      2)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고,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나온다. 우리는 아들들이고,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온 것이다 — 고전 8:6, 11:12하.
      C. 야곱은 우리에게 성령에 대해 말해 준다. 야곱의 체험은 성령의 일을 상징하며, 야곱의 역사(歷史)는 성령의 징계를 보여 주는 예표이다.
      1. 야곱의 삶은 하나님의 다루심을 상징하는 삶이며, 야곱의 하나님은 다루시는 하나님이시다 — 창 31:38-41.
      a.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성령께서 어떻게 야곱을 징계하셨고, 그의 타고난 생명을 처리하셨으며, 그리스도를 그의 안으로 조성하셨고, 그의 안에서 그 영의 열매를 맺으셨는지를 암시해 준다 — 갈 5:22-23, 히 12:11.
      b. 우리가 야곱의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그 영께서 우리 안에 그분의 일을 수행하시어,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처리하시고 그리스도를 우리 안으로 조성하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2. 야곱의 역사는 성령의 징계를 보여 주는 그림이다 — 창 47:9, 48:15-16상, 히 12:9-11.
      a. 성령의 징계는 성령께서 우리의 바깥 환경에서 행하고 계시는 것, 곧 우리가 징계를 받도록 그분께서 모든 사람과 일과 사건을 안배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 롬 8:28.
      b. 성령의 징계를 통해서 하나님은 새 창조물의 요소가 우리 안에 건축될 수 있도록 우리 안에 있는 옛 창조물의 요소를 완전히 허물어 버리신다.
      3. 하나님은 삼일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으로 일해 넣어지시고 조성되시며 우리 안에 그분의 형상을 이루실 수 있도록, 성령의 징계를 통해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처리하신다 — 갈 4:19, 엡 3:16-21.
      D.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여호와 엘로힘, 즉 스스로 존재하시고 항상 존재하시는 삼일 하나님, 영원하고 위대하신 ‘나는 -이다’이시다 — 출 3:6, 14, 계 1:4.
      E.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부활의 하나님이시다 — 출 3:6, 15, 마 22:23-33, 행 3:13.
      F.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장막의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이들 각 사람은 천막에 살았다. 그들은 천막에 살면서 하나님의 영원한 장막, 곧 새 예루살렘성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 출 40:34-35, 창 12:8, 13:18, 26:17, 25, 33:18, 35:21, 히 11:9-10, 계 21:2-3.
      G.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이시고(창 15:6, 롬 4:2-3), 이삭의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며(고후 13:14), 야곱의 하나님은 신성한 징계를 통하여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고후 3:18, 히 12:5-11). 결국 야곱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창 33:20, 출 5:1), 곧 변화된 야곱의 하나님이 되셨다.
      Ⅲ.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과 야곱의 하나님을 체험한 결과는 하나님의 이스라엘, 곧 삼일 하나님 안에 있는 교회이다 — 창 35:10, 33:20, 갈 6:16, 살전 1:1, 마 28:19.
      A.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이방인 믿는 이와 유대인 믿는 이를 포함하는 참된 이스라엘이다(롬 9:6하, 2:28-29, 빌 3:3). 이들은 아브라함의 참된 아들들이고, 믿음의 가족이며, 새 창조물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 갈 3:7, 29, 6:10, 15-16.
      1. 참된 이스라엘, 곧 영적인 이스라엘은 교회이다 — 갈 6:16, 마 16:18.
      2.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하나님의 이스라엘 둘 다가 되었다. 우리의 운명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또한 하나님의 왕국에서 다스리는 왕들이 되는 것이다 — 갈 3:26, 6:10, 16, 계 5:10, 21:7, 22:5하, 12:5상.
      3. 하나님의 이스라엘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표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행사하며, 하나님의 행정을 수행한다 — 창 1:26, 28, 눅 10:19, 계 12:5, 7-11.
      B.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삼일 하나님 안에 있는 교회이다 — 살전 1:1, 마 28:19.
      1. 바울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사실상 교회가 삼일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살전 1:1, 고전 1:2, 12:4-6.
      a.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은 모두 그 영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 1장 1절에 그 영이 함축되어 있음을 이해할 수 있으며, 교회가 삼일 하나님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b. 성경에 따르면, 교회는 단순히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 안에 있다 — 마 28:19, 고후 13:14.
      c.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교회가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 안에, 곧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분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마 28:19, 엡 4:4-6, 요 14:20.
      2. 우리가 삼일 하나님 안에 있는 교회에 대한 이상을 본다면, 이러한 이상이 우리의 생각과 활동과 온 일생을 통제할 것이다 — 잠 29:18상, 행 26:19.
    • 메시지2
      아브라함을 대하시는 것에서 볼 수 있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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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행 7:2, 창 12:7-8, 13:14-17, 14:17-20, 15:1, 17:1, 18:1, 24:14
      Ⅰ.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대하시는 것에서 다음과 같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출 3:15)을 볼 수 있다.
      A.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아브라함에게 첫 번째로 나타나셔서 그를 첫 번째로 부르시고 그에게 첫 번째로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에게 거대한 자석과 같으셨고 또한 그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되심으로 그를 움직여 사탄적인 우상숭배의 나라에서 나오게 하셨다 — 창 11:31, 행 7:2-4상.
      1.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거듭 나타나심으로써, 아브라함 안에 그분 자신을 옮겨 부으셔서 그가 영적인 주입을 체험하게 하셨다 — 창 12:1-3, 7-8, 13:14-17, 15:1-7, 롬 4:3, 창 18:17-19, 비교 행 26:16, 22:14-15.
      2.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붙잡고 놓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견고하게 붙잡으신다. 그분은 결코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 요 10:28-30, 유 24.
      3.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분을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 하시는 분으로 계시되셨다. 하나님은 그분을 믿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요소이신 그분 자신을 옮겨 부으시어 그들의 믿음이 되신다. 이러한 믿음은 그분의 매력에 대한 신성한 반응으로서 그들이 그분을 귀히 여기는 것이다 — 창 15:1-6, 히 12:1-2상, 갈 2:20.
      B.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아브라함을 두 번째로 부르셔서 그에게 두 번째로 말씀하실 때, 그를 큰 민족이 되게 하시고, 그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시며, 그를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되게 하시고, 땅의 모든 족속이 그의 안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러한 약속은 아브라함을 매혹하여 신성한 약속의 좋은 땅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 창 12:1-4.
      1.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따르면, 여기서 약속된 복은 사실상 그 영이신 하나님 자신이다. 가장 큰 복은 우리의 누림을 위해 가장 주관적인 방식으로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시는, 과정을 거치시고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 주시는 영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신 삼일 하나님이다 — 갈 6:18, 빌 1:19.
      2.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을 축복하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 — 민 23:21, 24:5, 9, 비교 고전 1:2, 고후 5:17.
      C.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땅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아브라함에게 두 번째로 나타나셔서 그에게 세 번째로 말씀하실 때, 가나안 땅을 그의 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 창 12:6-7.
      D.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그분의 선민을 은밀히 돌보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파라오가 아브라함의 아내를 욕보이지 못하게 하심으로 아브라함을 구원하셨다 — 창 12:10-20.
      E.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위로와 격려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 아브라함에게 네 번째로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이 사방으로 볼 수 있는 데까지 가나안 땅을 그와 그의 씨에게 주실 것이고, 그의 씨를 땅의 티끌처럼 많아지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 창 13:14-17.
      1. 아브라함의 씨이신 그리스도는 반드시 우리 안으로 일해 넣어지셔야 한다. 그럴 때 그분은 그분의 증가를 위해 우리를 통하여 산출되실 수 있다 — 갈 3:16, 1:15-16, 2:20, 4:19.
      2. 가나안 땅은 우리의 누림을 위해 우리의 영 안에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으로서 계시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분을 누릴 때, 우리는 그분의 단체적인 표현을 위해 그분으로 조성된다 — 골 1:12, 2:6-7, 갈 3:14, 5:16, 25.
      F.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소유주이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아브라함이 네 왕들과 전쟁한 후에 그분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을 통해 그분의 축복과 함께 신성한 공급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다 — 창 14:17-20.
      G.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방패와 지극히 큰 보상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아브라함에게 다섯 번째로 (이번에는 이상 가운데서) 말씀하실 때, 네 왕들의 보복을 두려워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신성한 본성을 가진 그의 하늘에 속한 씨가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고, 땅에 있는 그 누구도 결코 이들을 건드릴 수 없을 것임을 알려 주셨다.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믿었고, 여호와는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 — 창 15:1-6.
      H.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깊이 잠든 아브라함에게 여섯 번째로 말씀하실 때, 인간 본성을 지닌 아브라함의 땅에 속한 씨가 이집트에서 체류자들이 되고, 이집트 사람들을 섬기며, 사백 년 동안 이집트 사람들에게 괴롭힘당하고, 사 대째가 되어서 가나안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또한 그분은 신실하신 하나님으로서 이집트의 나일강부터 큰 강인 유프라테스강까지 이르는 땅을 아브라함의 씨에게 주실 것이라는 언약을 그와 맺으셨다 — 창 15:12-21.
      I.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침묵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아브라함이 팔십육 세 때에 아내 사라의 말을 듣고 하갈을 아내로 취하고 그의 육체를 사용하여 아들을 얻었으므로(창 16:1-4, 15-16) 십삼 년 동안 그에게 침묵하셨고, 그가 구십구 세가 된 후에야 다시 그에게 나타나셨다(17:1).
      J.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충족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아브라함에게 세 번째로 나타나시어 그에게 일곱 번째로 말씀하실 때, 할례의 하나님으로서 그분의 선민에게서 육체에 속한 타고난 사람을 잘라 내셨는데,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새 창조물이 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새 창조물은 아브라함의 육체로 태어난 이스마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난 이삭으로 상징된다 — 창 17:1-21, 갈 4:22-31.
      1. 하나님은 ‘모든 것을 충족해 주시는 하나님(히브리어, 엘 샷다이)’으로 계시되시는데, 이것은 그분을 믿는 사람들이 그분을 누리고 모든 것을 충족해 주시는 그분의 공급을 끊임없이 누리면서 그분의 임재 안에서 행하고, 또한 하나님이 그들을 온전하게 하는 요소와 요인으로 그들에게 더해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 창 17:1.
      2. ‘엘 샷다이’라는 신성한 칭호는 두 개의 히브리어 단어로 구성된다. ‘엘’은 ‘능력 있으신 분’이라는 뜻이고, ‘샷다이’는 ‘가슴’ 혹은 ‘유방’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에서 유래하였다.
      3. 따라서 하나님은 유방을 가진 능력 있으신 분, 즉 모든 것을 충족해 주시는 능력 있으신 분으로서, 그분의 부름을 받고 계속해서 그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양육하시고 그들에게 힘을 주시며 넘치는 공급을 주시는 분이시다 — 빌 1:19-21상, 갈 3:2, 5, 요 1:16.
      4. 모든 것을 충족해 주시는 하나님은 육체에 속한 우리의 타고난 사람이 끝나도록 십자가에 못 박으시는 하나님이시고, 새 창조물을 위해 우리의 새사람이 발아되도록 부활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 — 창 17:1-21, 22:1-10, 골 2:11, 갈 5:24, 벧전 1:3, 고후 5:17, 빌 3:3.
      K.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인간적인 우정을 지니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사람으로 오셨을 때(아브라함에게 네 번째로 나타나셔서 그에게 여덟 번째로 말씀하셨을 때), 사람의 모습으로 인성의 수준에서 그분의 친구인 아브라함(대하 20:7, 사 41:8, 약 2:23)을 방문하셨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하나님과 함께 거닐었고, 하나님은 그분의 친구의 조카인 롯과 그의 가족이 살고 있던 소돔을 심판하는 것에 관하여 인간 친구들이 서로 대화하듯이 아브라함과 대화하셨다(창 18-19장).
      L.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인성 안의 우정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그분의 친밀한 친구인 아브라함을 기억하셔서 그의 조카 롯과 롯의 두 딸을 멸망하는 소돔 밖으로 내보내 주셨다 — 창 19:29, 12-22.
      M.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친근하게 돌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를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빼앗기지 않게 하심으로써 가까운 친구인 아브라함을 전능한 능력으로 구원하셨다 — 창 20장.
      N.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아브라함에게 아홉 번째로 말씀하실 때, 사라에게서 태어난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을 그의 유일한 아들로 인정하시며 그분의 은혜의 원칙을 지키셨다 — 창 21:1-12.
      O.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시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아브라함에게 열 번째로 말씀하실 때, 그의 사랑하는 외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심으로써 그분의 친밀한 인간 친구인 아브라함을 검증하셨다 — 창 22:1-10.
      P.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삼일 하나님(히브리어, 여호와이레)이시다. 그분은 아브라함에게 열한 번째로 말씀하실 때, 숫양을 준비하시어 (여호와의 천사, 곧 그리스도이신) 그분께 드려지는 번제물로 이삭을 대신하게 하셨다 — 창 22:11-14.
      Q.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축복의 삼일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아브라함에게 열두 번째로(마지막으로) 말씀하실 때, (여호와의 천사, 곧 그리스도이신) 그분께서 그에게 복을 주실 것이고, 그의 씨를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성하게 하실 것이며, 그의 씨(그리스도)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 창 22:15-18.
      R.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인간적인 수준의 우정을 지니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그분의 친구인 아브라함의 나이 많은 종을 인도하셔서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을 위해 신부를 얻게 하셨다 — 창 24장.
      Ⅱ. 총괄하자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그분의 나타나심 안에서, 부르심으로써, 이상 안에서, 그리고 인간적인 우정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말씀하심을 통해 이 땅에 있는 그분의 친밀한 친구에게, 그분의 마음의 갈망에 따라 신성한 삼일성을 위한 영원한 경륜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그 친구가 어떤 존재가 되기를 열망하시고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를 밝혀 주셨다.
    • 메시지3
      두 여자의 비유
      +
    • 성경: 창 16:1-17:14, 갈 4:21-31
      Ⅰ.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와 아브라함의 첩인 하갈은 두 언약, 곧 약속의 언약과 율법의 언약에 대한 비유이다 — 창 16:1-3, 갈 4:24.
      A. 자유가 있는 여자인 사라는 약속의 언약을 상징하는데, 이 언약은 신약인 은혜의 언약과 관련된다 — 갈 4:23-24, 창 12:7, 15:7-21.
      1. 이 언약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씨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씨를 얻기 위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하게 하려는 의도가 조금도 없으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는 씨를 산출하도록 아브라함 안에 무언가를 일해 넣고자 하셨다. 이것이 은혜이다 — 창 15:4.
      2. 자유가 있는 여자인 사라는 아브라함의 합당한 아내로서, 이 은혜의 언약의 상징이다. 그녀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삭을 산출했다.
      3. 은혜의 약속에서 비롯된 산물인 이삭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씨이다 — 창 17:19, 21:12하.
      B. 여종인 하갈은 율법의 언약을 상징한다 — 갈 4:24-25.
      1. 아브라함의 첩인 하갈은 율법의 상징이다. 이로써 우리는 율법의 위치가 첩의 위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창 16:1-3.
      2. 하갈로 상징된 율법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을 율법 아래 노예 노릇 하게 하고 속박받게 하여 율법의 노예들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어지게 한다 — 갈 4:25, 5:1, 4.
      3.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사람이 율법과 협력하여 육체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것을 상징한다 — 창 16:4, 15-16, 갈 2:16, 4:23상.
      4.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육체의 노력으로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산출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율법에 따라 자신의 육체의 노력으로 얻은 산물인 이스마엘은 하나님께 거절당했다 — 창 17:18-19, 21:10, 갈 4:30.
      C. 약속은 창세기 12장 2절과 7절, 13장 15절부터 17절까지, 15장 4절과 5절에서 주어졌고, 언약은 15장 7절부터 21절까지에서 맺어졌다.
      1.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약속의 언약이 율법의 언약보다 먼저 왔다. 하나님은 율법을 가져오실 의도가 없으셨고, 사람이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의 노력으로 율법을 지키게 하실 의도도 없으셨다.
      2.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것은 그분 자신을 사람 안에 일해 넣으심으로 사람을 통해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시는 것이다 — 창 15:4.
      D. 하나님께서 창세기 15장 7절부터 21절까지에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17장 1절부터 14절까지에서 할례로 확증되었다.
      1. 창세기 17장 1절에서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모든 것을 충족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아브라함에게 계시하셨다. 모든 것을 충족해 주시는 전능한 분이신 하나님은 은혜의 근원이시며, 그분 자신의 신성한 존재의 풍성을 그분께 부름받은 이들에게 공급하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씨이신 그리스도를 산출하게 하신다.
      2. 창세기 16장에서 아브라함은 자기의 육체를 사용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육체를 베어 내고, 그의 타고난 힘을 끝내라고 명령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오시어 그분의 은혜로 이삭을 낳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3. 할례의 영적인 의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육체를 벗는 것이며, 자아와 옛사람을 벗는 것이다 — 골 2:11, 13상, 빌 3:3.
      a. 영적인 할례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의 육체에 지속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 갈 5:24, 롬 8:13.
      b. 할례는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려고 애쓰는 육체를 처리하는 것이다. 할례의 의미는 육체에 대한 신뢰를 잘라 내는 것이다 — 빌 3:3.
      4. 할례로 언약을 확증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씨와 땅에 관한 것이다 — 창 17:2-8.
      a. 사람이 하나님을 표현하고 대표하게 되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씨와 땅이신 그리스도를 얻어야 하며, 이것을 위해 우리는 할례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힌 생활을 해야 한다 — 갈 5:24, 6:14.
      b. 육체와 자아와 옛사람이 끝날 때, 하나님께서 오시어 이삭을 산출하실 수 있는 문이 열린다 — 창 18:10, 14, 21:1-3.
      Ⅱ. 우리는 창세기에 있는 아브라함의 체험의 빛 안에서 갈라디아서 4장 21절부터 31절까지를 고찰해야 한다.
      A. 갈라디아서 4장 21절부터 31절까지에서 바울은 하갈이 땅에 속한 예루살렘으로 상징되는 율법을 의미하고, 사라는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으로 상징되는 은혜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 갈 4:25-26.
      B. 하갈과 사라는 두 언약, 곧 율법의 언약과 은혜의 언약을 대표한다. 율법은 사람이 무언가를 산출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으로 수고하는 것이지만, 은혜는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을 산출하기 위해 그분께 선택받은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 자신이다 — 갈 3:26, 4:6.
      C. 하나님께서 본래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은혜의 언약이었다.
      1. 이 언약에 필요한 것은 사람의 능력이나 노력이 아니라 많은 아들들을 산출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 갈 3:29.
      2. 이 언약은 신약과 동일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이 사실상 신약이었음을 의미한다 — 갈 3:8, 히 8:7-8.
      a. 신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연장이다 — 창 15:7-21.
      b. 신약은 하나님께서 아들들을 산출하시려고 아브라함과 맺으신 은혜의 언약의 완전한 연장이다. 이 언약에 의해 산출된 아들들 중 첫째가 아브라함 자신이었다 — 갈 3:26, 4:6, 히 2:10.
      D. 두 언약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두 종류의 자녀들은 본성상 서로 다르다 — 갈 4:24, 28-31.
      1. 율법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자녀들은 육체를 따라 태어난다. 약속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자녀들은 그 영을 따라 태어난다 — 갈 4:29.
      2. 육체를 따라 태어난 자녀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에 참여할 권리가 없지만, 그 영을 따라 태어난 자녀들에게는 완전한 권리가 있다 — 갈 4:30-31.
      3. 우리에게 은혜와 그리스도와 생명 주시는 영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영을 따라 태어난 자녀들이다 — 갈 6:18, 골 1:27, 고전 15:45하.
      a. 이 영은 이제 우리의 영 안에 계시며, 우리를 그 영을 따라 태어난 자녀들이 되게 하신다. 이것이 갈라디아서 3장과 4장에 있는 놀라운 계시이다.
      b. 그 영을 따라 태어난 자녀들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갈망이 성취되는 과정 안에 머물면서, 은혜와 그리스도와 복음의 복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을 누려야 한다 — 갈 3:14.
      E. 갈라디아서 4장은 믿는 이들의 어머니, 곧 위에 있는 예루살렘인 새 예루살렘이 사라로 상징되는 은혜의 새 언약임을 계시한다 — 갈 4:26.
      1.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이자 위에 있는 예루살렘인 새 예루살렘은 우리의 어머니이고, 이 어머니는 은혜의 새 언약이다 — 히 8:7-13, 12:22-23.
      a. 새 언약은 우리를 자유가 있는 자녀들로 산출하였기 때문에 우리의 어머니이다 — 갈 4:31.
      b. 우리는 새 언약 아래 태어났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의 어머니이다 — 갈 4:26.
      c. 이 여자는 새 언약이자 우리의 어머니이며, 우리의 어머니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2. 아버지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는 분이시고, 은혜는 언약이며, 언약은 우리 어머니, 곧 성(城)이자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자 새 예루살렘이다. 어머니로 말미암아 산출된 아들들은 어머니의 구성 요소들이며, 어머니는 아버지 하나님께 돌아가서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즉, 아버지 하나님에게서 나와 그 목적지인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 갈 1:3, 고전 8:6.
      3. 새 언약을 받고 이 언약을 지키는 것은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과 교회에 나아가는 것이다. 새 언약과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과 교회는 하나이다 — 히 8:7-13, 12:22-23.
      4. 믿는 이들의 어머니는 아브라함이 기다리던 성이다 — 히 11:10.
      a. 이 성은 히브리서 12장 22절에서 확인되는데, 이 절은 우리가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에 나아갔다고 말한다. 하늘에 속한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아내이자 신약의 믿는 이들의 어머니로서 그녀에게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들로 구성된다.
      b.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그분의 경륜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경륜은 은혜로 말미암아 태어난 많은 아들들을 산출하여, 하나님의 궁극적이고도 영원한 단체적인 표현인 새 예루살렘을 구성하는 것이다 — 계 21:1-2, 7.
    • 메시지4
      이삭을 바침과 죽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신 하나님을 체험함
      +
    • 성경: 창 22:1-18, 히 11:17-19, 롬 4:17
      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가서 번제물로 바치라고 지시하심으로써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 — 창 22:1-2.
      A. 브엘세바에서의 생활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번제물(이삭)을 산출한다.
      1. 이삭의 생활의 근원은 그를 번제물로, 곧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하나님께 드려지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 창 22:2, 7-9.
      a. ‘번제물’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는 문자적으로 ‘위로 올라가는 것’을 뜻하며,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 레 1:3과 각주 1.
      b. 번제물은 주로 사람을 죄에서 구속하시는 그리스도의 예표라기보다는, 절대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만족을 위하여 온전한 생활을 하셨고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그러한 생활을 하도록 그들의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 레 1:9, 요 5:19, 30, 6:38, 7:18, 8:29, 14:24, 고후 5:15, 갈 2:19-20.
      c. 번제물은 하나님께서 누리시고 만족을 얻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음식이다 — 민 28:2.
      2. 합당한 교회생활은 번제물을 산출한다 — 레 1:1-2, 롬 12:1-2.
      a. 브엘세바에서 생활하고 성장하며 여호와 엘 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모두 번제물을 산출하기 위한 것이다 — 창 21:33, 22:1-2.
      b. 우리는 교회생활 안에 머물수록, 더욱더 브엘세바에서 모리야로 이끌릴 것이다.
      B. 아브라함같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하나님께 되돌려드리는 공과를 배워야 한다 — 창 22:1-18, 롬 11:36.
      1. 이삭과 관련된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그분 자신께 번제물로 되돌려줄 것을 요구하셨다 — 창 22:1-2.
      2. 약속된 씨이신 그리스도(갈 3:16)를 예표하는 이삭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을 다시 자신에게 되돌려줄 것을 요구하셨다. 이것은 분명 아브라함에게 시험이었다 — 창 22:1, 히 11:17.
      3.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기본 원칙을 본다. 이 원칙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무엇이든지, 심지어 그분께서 우리 안으로 일해 넣으신 것과 우리를 통하여 이루신 것일지라도 결국에는 반드시 그분께 되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심지어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일지라도 붙잡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생활을 하게 된다.
      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가장 높은 요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그분께 되돌려드리는 것이다.
      Ⅱ. 창세기 22장 1절부터 18절까지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순종한 것을 본다 — 히 11:17-19.
      A. 아브라함은 그 어떤 것도 자신의 관념에 따라 시작하거나 행하지 않았다.
      B. 아브라함 안에 주입된 믿음은 그를 시온산의 또 다른 이름인 모리야산으로 이끌어 이삭을 번제물로 바칠 수 있게 하였다 — 창 22:1-2, 대하 3:1.
      Ⅲ. 아브라함은 자신이 이삭을 바친 장소를 ‘여호와이레’라고 하였다 — 창 22:14.
      A. 모리야는 ‘야(Jah)의 이상’, 곧 여호와의 이상이라는 뜻이다. 모리야산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보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보셨다 — 창 22:2.
      B. 창세기 22장 14절 하반절은 “여호와의 산에서 그것이 준비될 것이다.” 혹은 “여호와의 산에서 그분께서 나타나실 것이다.”라고 번역될 수 있다.
      1. 모리야산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것을 체험하고 분명한 이상을 받았다.
      2.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것은 그분의 이상과 함께한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것을 누릴 때마다 하나님을 보는 이상을 갖고 하나님도 우리를 보신다.
      C. 오늘날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것은 교회생활 안에 있으며, 교회생활에서 우리는 분명한 이상과 함께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준비해 두신 것을 갖는다.
      D. 주님의 회복 안에서 우리는 모리야산으로 올라가는 여행을 하고 있다. 모리야산에서 우리는 우리의 이삭을 바칠 것이고,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것을 누릴 것이며, 투명한 이상을 볼 것이다.
      Ⅳ. 이삭은 바쳐진 후,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부활 안에서 되돌아왔다 — 창 22:16-18, 히 11:17-19, 롬 4:17.
      A. 이삭을 되돌려받았을 때, 아브라함은 죽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신 하나님 곧 부활의 하나님을 믿고 체험했다 — 히 11:17-19, 롬 4:17, 고후 1:9.
      B. 이삭은 부활 안에서 되돌아왔을 때 더 이상 타고난 이삭이 아니라 부활한 이삭이었다.
      C. 이삭은 바쳐진 후에 부활 안에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내어졌고, 결국 복이 되었다 — 창 22:16-18.
      D. 우리의 생명 안의 모든 것은 반드시 죽음이라는 가장 큰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부활의 하나님께 길을 열어 드려야 한다 — 요 11:25, 고후 1:9.
      E.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을 하나님께 바친 후에, 그분은 그것을 부활 안에서 우리에게 돌려주실 것이다 — 히 11:17-19.
      1.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 모든 은사, 영적인 축복, 일, 성공 등은 반드시 죽음을 통과해야 하며, 결국 부활 안에서 우리에게 되돌아와야 한다.
      2.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것을 그분께 바치고 그것이 죽음을 통과한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부활 안에서 우리에게 돌려보내 주실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복이 될 것이다 — 창 22:16-18.
      3. 하나님의 복은 언제나 부활 안에서 임한다. 우리가 우리의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고 그 이삭이 부활 안에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복 아래 있을 것이다.
      Ⅴ.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되돌려드림으로써, 이삭은 새 예루살렘이 되도록 번성하였다 — 창 22:16-18, 롬 8:29, 계 21:2, 7.
      A. 새 예루살렘은 아브라함의 씨 곧 모래와 별들의 궁극적인 완결일 것이다 — 창 22:16-18, 롬 8:29, 계 21:2, 7.
      1. 새 예루살렘에서 열두 지파로 대표되는 사람들은 모래이고, 열두 사도로 대표되는 사람들은 별들이다 — 계 21:12, 14.
      2. 모래와 별들로 상징되는 두 백성이 함께 새 예루살렘으로 건축될 것이다.
      B. 창세기 22장에서 우리는 한 가지 기본 원칙을 보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되돌려드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번성하게 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1. 한 사람의 이삭이 하나님께 드려지고 부활 안에서 되돌아온 후, 셀 수 없이 많은 별들과 모래가 되었다.
      2. 우리가 우리의 한 알의 밀을 하나님께 드려 그분께서 그것을 죽음에 넣으시도록 허락해 드린다면, 그것은 부활 안에서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복 아래서 그것이 번성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요 12:24.
      Ⅵ.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장소인 모리야산은 결국 시온산, 곧 성전 건축을 위한 부지이자 좋은 땅의 중심이 되었다. 우리의 영적인 체험에서 모리야산은 결국 시온산이 된다 — 창 22:2, 14, 대하 3:1, 히 11:17-19, 12:22-23, 계 14:1-5.
      A. 아브라함은 시온산에서 번제물을 바쳐 하나님께 경배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 계 14:1.
      B.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자손이 일 년에 세 번 이곳에 와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이곳에서 하나님께 번제물을 바칠 것을 명령하셨다 — 신 16:16, 시 132:13.
      C. 오늘날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인 신약의 믿는 이들은 시온산에 있다 — 히 12:22-23.
      D. 결국 우리는 모두 영원한 시온산인 새 예루살렘에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께 경배할 것이다. 새 예루살렘 전체가 시온, 곧 하나님께서 계시는 장소인 지성소이다 — 계 14:1-5, 21:22.
      E. 주님의 회복은 시온, 곧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는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건축하는 것이다 — 계 14:1, 엡 4:16, 계 21:2.
    • 메시지5
      하나님의 선한 기쁨을 위해 은혜를 누리는 생활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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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창 26:3-4, 12-33, 갈 6:18, 고전 15:10, 고후 12:7-10, 계 22:21
      Ⅰ. 이삭은 하나님의 선한 기쁨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의 본이자 전형이다 — 창 24:36, 25:5, 26:3-4, 12-33, 롬 5:1-2, 행 4:33, 11:23.
      A. 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영으로서 우리 안으로 일해 넣어지신 하나님인데, 이 하나님은 우리의 누림을 위해 우리 존재 안에 일해 넣어지셔서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고,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하신다. 그 결과, 그분은 새 예루살렘을 완결하는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위해 우리 존재의 조성 성분이 되실 수 있다 — 요 1:16-17, 히 10:29하, 고전 15:10, 비교 갈 2:20, 고후 13:14.
      B.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이 운명은 창세전에 미리 정해졌다 — 엡 1:3-6, 2:7.
      C. 엘 샷다이 곧 모든 것을 충족해 주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충족해 주는 은혜로서,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그분의 신성한 존재의 풍성을 그분께 부름받은 사람들에게 공급해 주신다 — 창 17:1, 28:3, 고후 12:9, 빌 1:19-21상.
      Ⅱ. 아브라함의 타고난 힘과 스스로의 노력이 하나님께 처리된 후에 이삭이 태어났다(창 17:15-19, 18:10-14, 21:1-7). 이것은 이삭이 사라로 상징되는 은혜로 태어났다는 것을 암시한다(갈 4:23-28, 31, 벧전 3:7).
      A. “여호와에게 이룰 수 없는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 내가 생명의 때를 따라, 정한 때에 너에게 돌아오겠고, 사라에게는 아들이 있을 것이다.” — 창 18:14.
      1. 생명의 때(창 18:10) 곧 이삭의 출생을 위해 정한 때(17:21)는 하나님께서 방문하시는 때였다(21:1).
      2. 이삭의 출생은 여호와께서 오신 것이며, 여호와께서 오신 것은 은혜가 온 것이었다 — 비교 요 1:17.
      3. 이삭은 사람의 타고난 생명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힘으로 태어났다. 이러한 출생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후,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인 사라의 몸이 완전히 죽은 것같이 되었을 때 이루어졌다(창 18:11, 롬 4:18-19). 이것은 생명의 때,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때는 우리의 타고난 힘이 끝난 후에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B. 아브라함의 삶이 계시해 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그분의 풍성을 충만하게 누리고자 한다면 반드시 손실을 겪고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 할례 받아 잘리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혜를 알고 체험하는 것을 가장 크게 방해하는 것은 자아이다 — 창 17:11, 19, 비교 빌 3:3.
      C. 이삭의 삶이 계시해 주는 것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 종결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 비교 고후 1:8-9, 12, 12:7-10, 롬 5:1-5.
      Ⅲ. 이삭은 은혜 안에서 자라났다. 은혜 안에서 자라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음식과 생수로 우리에게 주어지신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누림으로 자라는 것이다 — 창 21:8, 벧후 3:18, 벧전 2:2, 고전 3:2, 6, 엡 3:8, 4:15.
      A. 이삭의 성장은 그리스도께서 신약의 믿는 이들 안에 태어나신 후에 그들 안에서 자라시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형상을 이루실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서 자라셔야 한다 — 고전 3:6, 갈 4:19, 찬송가 298장.
      B. 은혜의 영(히 10:29)은 생명의 은혜(벧전 3:7),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4:10), 모든 은혜의 하나님(5:10), 모든 것을 충족해 주는 은혜(고후 12:9)이시다. 이 은혜가 지금 우리의 영과 함께한다(갈 6:18).
      C. 매일 은혜를 받아들이고 누리는 길은 피와 말씀과 그 영과 교회에 있다.
      1. 구속하는 피, 언약의 피, 하나님 자신의 피는 죄악되고 부패한 사람들을 하나님에 대한 영원한 누림 안으로 이끌어 준다 — 행 20:28, 마 26:28, 레 16:11-16, 히 10:19-20, 요일 1:7, 9.
      2. 은혜의 말씀은 우리가 먹을 수 있고, 우리에게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이 될 수 있다 — 행 20:32, 렘 15:16, 요 6:63.
      3.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하나님의 넘치는 공급이신 은혜의 영은 그리스도의 동반자들인 우리에게 부어진 큰 기쁨의 기름이시다 — 히 1:9, 10:29하, 슥 12:10상.
      4. 하나님의 교회는 내리는 이슬과 같은, 신선하고도 상쾌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다. 이 은혜는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 하늘들에서 우리에게 임하여 우리를 적시고 변화시킨다 — 시 133:3, 애 3:22-23, 고후 13:14, 행 11:23.
      D. 매일 은혜를 받아들이고 누리는 길은 우리의 영으로 돌이키고, 우리의 영을 사용하며, 주님을 보좌에 앉으시게 하는 것이다 — 히 4:16, 롬 5:17, 21, 비교 계 4:2.
      1. 하나님의 보좌는 흐르는 은혜의 근원이다. 우리가 주님을 보좌에 앉으시게 해 드리지 못하고 보좌에서 물러나시게 할 때마다, 은혜의 흐름은 멈춘다 — 계 22:1, 골 1:18하, 계 2:4, 벧전 5:5.
      2. 우리가 주 예수님을 우리 안에서 보좌에 앉으시게 해 드린다면, 생명수의 강이신 그 영께서 은혜의 보좌에서 흘러나오셔서 우리에게 공급을 주실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은혜를 받아들이고 은혜를 누릴 것이다 — 계 22:1, 찬송가 557장.
      E. 매일 은혜를 받아들이고 누리는 길은 주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주님께 헌신하며, 온갖 기도로 주님의 말씀 안에서 주님을 접촉하는 것이다 — 고후 5:14, 엡 6:24, 레 6:12-13, 엡 6:17-18, 행 20:32.
      Ⅳ. 이삭은 또한 은혜 안에서 상속자가 되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상속자들로서 우리 유업의 보증이신 하나님을 누리는데,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유업으로 얻고 하나님도 우리를 유업으로 얻으시기 위한 것이다 — 창 21:9-12, 24:36, 25:5, 롬 8:17, 행 26:18, 엡 1:11, 14, 18.
      A. 이삭은 그의 아버지에게서 모든 것을 물려받았다(창 24:36, 25:5). 신약에서 부름받은 모든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조건 없는 은혜의 상속자들로서 우리의 누림을 위해 신성한 충만의 모든 풍성을 물려받는다(엡 1:3, 6, 3:8, 19).
      B. 이삭은 우리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삭은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아브라함의 모든 것을 누렸다 — 창 24:36, 25:5.
      C. 이삭의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다만 한 가지를 의미하는데, 바로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분이시고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 것은 받아들임으로써 오며 받아들이는 것이 승리의 비결임을 의미한다 — 엡 1:3, 빌 1:19, 요 1:16, 롬 5:17, 8:2.
      Ⅴ. 이삭은 은혜 안에서 순종했다. 우리는 은혜 안에서 순종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을 만나게 될 것이다 — 창 22:5-10, 요 1:17.
      A. 하나님의 은혜는 능력이 있어서, 우리가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도록 한다 — 딤후 2:1.
      B. 은혜는 모든 것을 왕으로서 다스릴 수 있다 — 롬 5:21, 히 4:16.
      C.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 은혜를 거절하고, 이 은혜를 무효화하며,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 갈 2:21, 5:4, 비교 창 16:16, 17:1.
      1.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쓸모없게 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며,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모든 유익을 빼앗기는 것이다 — 비교 요 15:4-5.
      2. 우리가 율법이나 성격 개조와 같은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향해 가고,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아 항상 그분을 누리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누림은 몰수될 것이다 — 비교 골 2:18.
      D. 우리는 은혜로 견고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 안에 머물며 은혜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다 — 히 13:9, 비교 갈 5:4.
      Ⅵ. 이삭은 백 배의 수확을 얻었으며, ‘부자가 되었고, 점점 더 부유해져서 아주 큰 부자가 되었다’ — 창 26:12-14.
      A.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자유롭게 자라 백 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좋은 땅이 되어야 한다 — 눅 8:8, 11, 15, 행 20:32.
      B.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넘치는 풍성을 계속 받아들여야 한다. 이 풍성이 바로 우리의 누림을 위한 하나님 자신의 풍성이다 — 롬 5:17, 요 1:16, 엡 1:7, 2:7.
      Ⅶ. 이삭이 하나님의 조건 없는 은혜를 누리면서 가는 곳마다 (우물로 상징된) 누림과 만족을 얻었을지라도(창 25:11, 26:15-25, 33), 그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제단을 세우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증거로서 천막을 세운 유일한 장소는 브엘세바였다.
      A.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의 운명은 어느 위치에 있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지만, 이러한 누림이 그들의 위치를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B. 우리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얻고 그분의 약속들을 물려받으며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는 생활을 하기를 갈망한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유일한 장소로 와서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
      C. 이 유일한 장소는 생명 공급을 위한 우물과 생명의 풍성한 흐름의 표현인 에셀나무가 있는 브엘세바로 상징된다 — 창 26:23-24, 21:25, 33.
      Ⅷ. 이삭은 하나님께서 좋은 땅과 유일한 씨에 관하여 그의 아버지에게 하신 약속을 물려받았다. 이 씨는 그리스도이고, 이 씨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다 — 창 26:3-5, 갈 3:14, 16.
      A. 마지막 아담이신 아브라함의 유일한 씨는 아브라함의 복이신 생명 주시는 영(좋은 땅의 실재)이 되셨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믿는 이들 안으로 자신을 분배하시어 그들을 아브라함의 단체적인 씨로 만드시기 위한 것이었다 — 갈 3:14, 16, 29, 고전 15:45하, 요 12:24, 사 53:10.
      B. 이 약속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여 하나님께서 단체적인 한 백성을 통해 그분 자신을 표현하시는 왕국을 이 땅에서 얻으시게 하기 위한 것이다 — 창 1:26, 막 4:26, 단 2:34-35.
      C. 우리가 은혜를 누림으로써 하나님의 왕국이 실현될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완전히 표현되실 것이다 — 계 22:21, 엡 2:10.
    • 메시지6
      벧엘의 꿈
      +
    • 성경: 창 28:10-22, 요 1:51
      Ⅰ. 야곱의 꿈은 하나님의 목표에 대한 꿈, 벧엘에 대한 꿈, 하나님의 집에 대한 꿈이었는데(창 28:10-22), 하나님의 집은 오늘날 교회이고(딤전 3:15) 하나님과 그분께서 구속하신 선택된 백성의 영원한 거처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것이다(계 21:3, 22).
      A. 하나님은 꿈을 갖고 계셨고, 그 꿈은 그분의 경륜의 완결인 건축된 성 곧 새 예루살렘을 가지시는 것이었다. 이 건축물은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사람이 하나님 안으로 건축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건축물은 하나님-사람이라는 건축물인데, 이 건축물 안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집이시고(시 90:1, 91:1, 9) 사람은 하나님의 집이다(사 66:1-2, 57:15, 요 14:20, 23, 15:5, 계 21:3, 22).
      B. 우리의 꿈은 하나님의 경륜의 완결인 새 예루살렘이 되는 것이다 — 계 21:9-10.
      C. 꿈의 원칙은 불가능한 어떤 일이 꿈속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 비교 눅 1:37, 18:27, 욥 42:2-3, 시 126:1, 렘 32:27.
      1. 모든 영적인 이상은 꿈이며, 모든 영적인 체험도 꿈이다.
      2. 대부분의 하늘에 속한 이상들은 고난의 시기에, 즉 우리가 사람에게 속한 것에서 단절되고 하나님께 속한 것을 신뢰할 때 우리에게 임한다 — 비교 창 28:10-12.
      3. 우리의 영적인 생활의 첫 번째 꿈은 우리의 구원이다. 교회생활 안에 들어오는 것도 꿈이며, 교회의 실행을 아는 것도 꿈이다.
      4. 모든 영적인 꿈의 중심은 사다리이신 그리스도, 곧 하늘을 땅으로 이끌어 오시고 땅을 하늘에 연결하시는 분이신 그리스도이다 — 요 1:51.
      Ⅱ. 창세기 28장에 있는 야곱의 꿈은 창세기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요점이며, 하나님의 계시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다.
      A. 그리스도께서 벧엘에 있는 하늘에 속한 사다리이시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구속받고 변화된 그분의 선택된 백성으로 구성된 한 집을 갖기를 얼마나 갈망하시는지에 관해서 우리에게 말해 준다. 하나님은 이러한 집을 얻으심으로 하늘(하나님)을 땅(사람)으로 이끌어 오시고 땅(사람)을 하늘(하나님)에 연결하시어 영원토록 이 둘을 하나로 만드신다 — 요 1:51, 창 28:10-22.
      B. 야곱의 꿈의 기록에서, 돌(창 28:11, 18, 22)과 기둥(18절)과 하나님의 집(17, 19, 22절)과 기름(18절)은 특출한 항목들이고 성경을 구성하는 기본 요인들이다.
      1. 돌은 하나님의 영적인 집인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한 기초 돌과 꼭대기 돌과 모퉁이 돌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 사 28:16, 슥 4:7, 행 4:10-12.
      2. 돌은 또한 변화된 사람을 상징한다. 변화된 사람은 변화시키는 요소이신 그리스도로 조성되어 하나님의 집의 건축을 위한 재료가 되고(창 2:12, 마 16:18, 요 1:42, 고전 3:12, 벧전 2:5, 계 21:11, 18-20), 하나님의 집은 오늘날 교회이며(딤전 3:15), 결국 하나님과 그분께서 구속하신 선택된 백성의 영원한 거처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것이다(계 21:3, 22, 요 14:23).
      3. 야곱은 돌을 베개로 사용했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관적으로 체험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한 요소가 우리의 존재 안으로 조성되어 (만족을 포함하는) 우리의 안식을 위한 베개가 되는 것, 다시 말하면 우리 안에서 견고한 지지대가 되는 것을 상징한다 — 비교 마 11:28.
      4. 꿈에서 깬 후에 야곱은 베개로 사용했던 돌을 기둥으로 세웠는데, 이것은 우리가 체험한 그리스도, 우리 안으로 일해 넣어지신 그리스도, 우리가 의지해 안식을 얻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건축물인 하나님의 집을 위한 재료와 지지대가 되시는 것을 상징한다 — 비교 왕상 7:17, 21, 갈 2:9, 계 3:12.
      5. 마지막으로 야곱은 기둥 위에 기름을 부었는데, 기름은 사람에게 도달하신 삼일 하나님의 완결이신 그 영을 상징하고(출 30:23-30, 눅 4:18), 기둥은 변화된 사람이 삼일 하나님과 하나 되어 그분을 표현하는 것을 상징한다.
      6. 이 돌이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 되었다(창 28:17, 19, 22).
      a.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과 그분께 구속받은 사람들의 상호 거처이다(요 14:2, 23). 즉 사람은 하나님의 거처가 되고(사 66:1-2, 고전 3:16, 엡 2:22, 히 3:6, 계 21:3), 하나님은 사람의 거처가 되시는 것이다(시 90:1, 91:1, 요 15:5, 계 21:22).
      b.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하나로 연합되어 조성된다.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은 인성 안에서 그분 자신을 표현하시고, 하나님과 사람 모두는 상호적이며 영원한 만족과 안식을 얻게 된다 — 시 132:13-14.
      7. 오늘날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는 벧엘의 실재, 곧 하늘에 속한 사다리와 돌과 기둥과 하나님의 집과 기름을 포함하는 야곱의 꿈의 성취 안에 있다. 이것은 영원한 벧엘, 곧 하나님의 영원한 집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것이다 — 딤전 3:15, 계 21:3, 22.
      8.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로 함께 연결되고 연합되고 합병됨으로 조성된다 — 요 14:23, 요일 4:15-16, 비교 행 17:24.
      Ⅲ. “야곱은 꿈을 꾸었다. 꿈에 보니 땅 위에 사다리가 세워져 있는데,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사다리 위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창 28:12) “예수님께서 또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요 1:51)
      A. 사다리는 야곱의 꿈의 중심이며 초점이다. 이 꿈은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인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야곱이 본 사다리의 실재이시기 때문이다.
      B. 인성 안에서 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하늘(하나님)을 땅(사람)으로 이끄시고 땅과 하늘을 하나로 연결하시는, 땅에 세워진 사다리이시다 — 비교 요 14:6.
      1. 주 예수님은 육체 되심을 통해 오심으로써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끄셨다 — 요 1:14.
      2. 주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 가심으로써 사람을 하나님 안으로 이끄셨다 — 요 14:6, 20.
      C. 오늘날 하나님의 거처인 우리의 거듭난 영(엡 2:22)은 하늘에 속한 사다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땅 위에 세워지시는 기반이다(창 28:12, 딤후 4:22).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영으로 돌이킬 때마다 하나님을 우리에게 이끌어 오고 우리를 하나님께 이끌어 주는 사다리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된다.
      1. “그러므로 형제님들,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히 10:19.
      a. 오늘날 지성소는 주 예수님께서 계시는 하늘에 있다(히 9:12, 24).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여전히 땅에 있으면서 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가?
      b. 그 비결은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 말한 우리의 영이다. 하늘에 계신 이 그리스도는 지금 우리 영 안에도 계신다 — 딤후 4:22.
      c. 하늘에 속한 사다리(창 28:12, 요 1:51)이신 그분은 우리 영을 하늘과 연결하시고, 하늘을 우리 영 안으로 가져오신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영으로 돌이킬 때마다 지성소 안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우리는 은혜의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2.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받고 은혜를 입어서 때맞추어 도움을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시다.” — 히 4:16.
      a. 의심할 바 없이 여기에 언급된 보좌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이다(계 4:2). 하나님의 보좌는 온 우주에 대한 권위의 보좌이다(단 7:9, 계 5:1).
      b. 그러나 믿는 이들인 우리에게 이 보좌는 은혜의 보좌가 되며, 지성소 안에 있는 속죄 덮개(시은좌, 출 25:17, 21)로 상징되었다. 이 보좌는 하나님과 어린양 모두의 보좌이기도 하다(계 22:1).
      c. 하늘에 있는 보좌에 앉아 계시는 이 그리스도는(롬 8:34) 또한 지금 우리 안에(롬 8:10), 즉 하나님의 처소가 있는(엡 2:22) 우리의 영 안에(딤후 4:22) 계신다.
      d. 하나님의 집이자 하나님의 처소이며 하늘의 문인 벧엘에서 그리스도는 땅을 하늘과 연결하고 하늘을 땅으로 이끄는 사다리이시다(창 28:12-17, 요 1:51). 오늘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처소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이제 우리의 영이 하늘의 문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사다리로서 땅에 있는 사람들인 우리를 하늘과 연결하시고 하늘을 우리에게로 이끄신다.
      e.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영으로 돌이킬 때마다 하늘의 문을 통해 들어가서 하늘에 속한 사다리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에 있는 은혜의 보좌를 만진다.
      D. 이 사다리가 있는 곳에 열린 하늘이 있고, 변화된 사람이 있으며, 이 변화된 사람 위에 기름부음이 있고, 이러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것이 있다.
      E. 하늘에 속한 사다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산출하신 것은 벧엘, 곧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며, 이 사다리의 최종 완결은 새 예루살렘이다.
    • 메시지7
      선택받고, 다루심받고, 파쇄됨
      +
    • 성경: 창 25:22-23, 31:38-41, 32:22-32, 34:30
      Ⅰ. 야곱은 하나님께 선택받았다. 그러므로 야곱에게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본다 — 창 25:21-26, 롬 9:11.
      A.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고 선택하셨다 — 롬 9:13, 말 1:2, 엡 1:4, 2:4.
      B. 야곱은 태어나기도 전에, 심지어 창세전에 선택받았다 — 창 25:22-23, 엡 1:4.
      1. 야곱은 하나님께 선택받았다. 이것은 그 자신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었고, 그 자신이 분투하고 싸워서 얻은 결과도 아니었다 — 창 25:22-23, 26.
      2. 야곱이 선택받은 것은 부르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롬 9:11.
      C. 야곱처럼 우리도 창세전에 선택받고 선정되었다 — 엡 1:4, 살후 2:13, 요 15:16상.
      1.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선택받은 영역이시다 — 엡 1:4.
      2. 하나님은 그분의 미리 아심에 따라 우리를 선택하셨다 — 벧전 1:2, 롬 8:29.
      3. 하나님의 선택은 그분의 주권적인 긍휼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이들로서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단계에까지 우리를 이끄실 것임을 신뢰해야 한다 — 롬 9:11-13, 16.
      4. 영원 과거에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신 후 미리 정하셨고 시간 안에서 우리를 부르셨다 — 롬 8:28-29, 엡 1:5.
      5.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선택받고 부름받았다 — 롬 9:11, 딤후 1:9.
      a. 창세기 1장 26절이 계시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하나님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통치권을 갖고 하나님을 대표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라는 것이다.
      b.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야곱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녀 하나님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통치권을 행사하여 하나님을 대표하는 하나님의 왕자로 변화될 때까지 그를 다루시는 것이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표이다 — 창 47:7, 10.
      Ⅱ. 야곱의 삶은 하나님의 다루심을 대표하는 삶이며, 야곱의 하나님은 다루시는 하나님이시다 — 창 31:38-41.
      A. 하나님은 야곱이 평생 분투하는 삶을 살도록 정하셨다.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인생의 마지막까지 야곱은 계속해서 분투하였다 — 창 25:22-26, 27:1-29, 41-46, 28:1-5, 29:1-36:43.
      B. 야곱의 삶과 체험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다루심을 본다 — 창 25:19-32:21.
      1.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야곱의 삶의 여러 환경을 안배하셨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이 야곱 위에 있으면서 야곱을 다루었다.
      2. 하나님께서 야곱을 다루신 것은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라 그를 이스라엘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 창 32:28.
      3. 하나님의 주권 아래 야곱은 여러 환경 가운데서 많은 고난을 받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다루심을 받음으로써, 변화되고 성숙하여 이스라엘이 되었다 — 창 35:10.
      C. 야곱의 역사는 성령의 징계를 보여 주는 그림이다 — 창 47:9, 48:15-16상, 히 12:9-11.
      1. 성령의 징계는 성령께서 우리의 바깥 환경에서 행하고 계시는 것, 곧 우리가 징계를 받도록 그분께서 모든 사람과 일과 사건을 안배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 롬 8:28.
      2. 성령의 징계를 통하여 하나님은 새 창조물의 요소가 우리 안에 건축되도록 우리의 옛 창조물을 완전히 허무신다.
      3.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 성령의 징계를 통해 다루심을 받는 동안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으로 조성되신다 — 갈 4:19, 엡 3:17상.
      4. 우리의 환경 가운데 있는 모든 일과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기 위해 주권적으로 사용하시는 도구이다 — 롬 8:28.
      Ⅲ. 창세기 32장 22절부터 32절까지는 야곱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체험, 곧 야곱이 파쇄됨을 말해 준다.
      A. 주님은 야곱이 얼마나 천연적이고 그의 타고난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드러내시기 위해 그와 씨름하셨다 — 창 32:24.
      1. 주님은 ‘야곱의 넓적다리 힘줄이 붙어 있는 엉덩이뼈를 치셨다’(창 32:32). 주님께서 신체 중 가장 강한 힘줄인 넓적다리 힘줄이 붙어 있는 야곱의 엉덩이뼈를 치신 것은 야곱의 타고난 생명, 곧 그의 타고난 힘을 다루신 것을 상징한다 — 창 32:25.
      2. 하나님에 의해 파쇄된 후에 야곱은 겉으로 보기에는 이전과 똑같았지만, 내적으로는 그의 타고난 생명이 다루심을 받았다. 주님께서 다루신 것은 그의 외적인 생활이 아니었다. 주님은 바로 그의 내적인 타고난 힘을 파쇄하셨다 — 창 33:1-4, 32:25, 32.
      B. 야곱의 체험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파쇄하셔야만 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철저한 방식으로 다루셔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 창 32:22-32.
      1. 종교의 방식은 사람의 외적인 행위를 바꾸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그분의 방식은 사람의 내적 존재를 변화시키기 위해 사람의 속생명을 다루는 것이다 — 고후 4:16.
      2. 주님께서 우리의 어떤 중요한 지점을 치실 때, 우리는 절뚝거리게 되고 우리의 내적 존재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게 된다. 그때부터 우리는 절뚝거리며 더 이상 온전하지 않게 된다 — 창 32:25, 31.
      C. 모든 믿는 이는 겉사람의 파쇄를 체험해야 한다 — 히 4:12.
      1. 그리스도께서 혼의 감금에서 해방되시려면 우리의 겉사람이 반드시 파쇄되어야 한다 — 엡 3:16-17.
      2. 영을 해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겉사람이 파쇄되어야 한다 — 히 4:12.
      3.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순수하게 흘러나오려면 우리가 반드시 파쇄되어야 한다 — 요 12:24-26, 19:34, 7:37-39, 출 17:6-7.
      a. 고린도후서 4장 12절은 죽음이 우리 안에서 활동한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곧 우리가 파쇄되는 것이다.
      b. 주님은 생수의 통로가 될 파쇄된 그릇들이 필요하시다. 우리가 더 많이 파쇄될수록,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서 더 많이 흘러나올 것이다 — 요 12:24-26.
      4. 우리 혼의 각 부분이 하나님에 의해 파쇄되어야 한다 — 마 16:24-25.
      a. 혼이 파쇄된다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우리의 생각을 사용하지 않거나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거나 우리의 의지를 행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 살전 5:23.
      b.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여전히 기능을 발휘하지만 파쇄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다루심받고 굴복되고 우리의 영에 복종하게 된 것이다 — 고후 4:16, 엡 4:23, 딤후 1:7.
      5. ‘매우 값진 순수한 나드 향유가 든 옥합’, 즉 ‘매우 값진 향유가 든 옥합’은 깨질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순수한 나드 향유가 흘러나와 그 집이 ‘향유의 향기로 가득 찰 수 있다’ — 막 14:3, 마 26:7, 요 12:3.
      a. 옥합(겉사람)이 깨지지 않는다면 순수한 나드 향유가 흘러나올 수 없다 — 막 14:3.
      b. 우리는 옥합을 향유보다 더 귀한 것으로 여기면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겉사람을 우리의 속사람보다 더 귀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 마 26:7, 고후 4:16.
      c. 겉 부분이 파쇄되지 않는다면 속부분은 흘러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상황이라면, 우리는 전진할 길이 없을 것이고 교회 또한 전진할 길이 없을 것이다 — 요 12:3.
      6.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건축하시려면 겉사람이 파쇄되어야 한다 — 엡 3:16-17상.
      7. 파쇄는 건축의 선결 조건이다 — 마 16:18, 엡 4:16.
      a. 교회가 건축되려면 우리는 겉사람의 파쇄를 체험해야 한다 — 엡 2:21-22.
      b. 우리가 봉사에서 다른 이들과 동역하고자 한다면 기꺼이 파쇄되어야 한다. 파쇄되지 않으면 동역은 불가능하다.
      8. 바울같이 우리는 몸의 이상 아래서 파쇄되어야 하고, 몸 안에서 우리가 건축되는 유일한 길이 파쇄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 행 9:1-31, 엡 4:16.
    • 메시지8
      성숙의 과정
      +
    • 성경: 창 47:7, 10, 히 6:1, 골 1:28-29, 엡 4:14
      Ⅰ. 창세기 37장부터 45장까지는 야곱이 성숙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A. 우리는 창세기 27장에서 빼앗는 사람을 보고, 37장에서 변화된 사람을 보며, 45장의 마지막에서는 성숙된 사람을 본다.
      B. 변화되는 것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 신진대사적으로 바뀌는 것이지만, 성숙되는 것은 우리를 바꾸는 신성한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 히 6:1.
      1. 변화의 마지막 단계는 성숙, 곧 생명의 충만이다.
      a.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오직 우리가 변화되고 성숙되는 것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 창 1:26, 골 1:28, 2:19.
      b. 성숙은 거듭해서 신성한 생명을 우리 안으로 분배받아 결국 우리가 생명의 충만을 갖는 것이다 — 요 10:10.
      2. 성숙은 용량이 확장되는 문제이다 — 시 4:1.
      a. 생명의 성숙은 성령의 징계를 받은 것의 총체이다 — 히 12:5-11.
      b. 다른 사람들은 생명이 성숙한 한 사람을 보겠지만, 그 사람이 수 년에 걸쳐 날마다 은밀히 받아 온, 성령의 축적된 징계는 볼 수 없다 — 고후 1:8-10, 창 47:7, 10.
      3. 하나님은 우리를 채우고 있는 모든 것을 비워 내시고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하시기 위해, 주권적으로 여러 사람과 일과 사건을 사용하실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 채워지도록 우리의 용량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이다 — 눅 1:53, 마 5:6.
      C. 야곱의 삶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성숙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을 계시해 준다. 어떤 일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1. 성숙되기 위해 야곱은 먼저 그의 마음의 보물인 요셉을 잃어버리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 창 37:31-35.
      2. 성숙한 믿는 이는 하나님께서 긍휼이 많으시고 모든 것을 충족해 주시는 분으로서 온갖 상황에서 필요를 채워 주신다는 것을 배웠다 — 창 43:11, 13-14, 17:1, 빌 1:19-21상, 4:11-12, 비교 딤전 6:6-8.
      3. 성숙한 믿는 이의 신뢰와 안식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능력에 있지 않고, 전적으로 모든 것을 충족해 주시는 그의 하나님의 긍휼에 있다 — 롬 9:16.
      Ⅱ. 아가 6장 13절에서 그리스도의 연인은 변화의 여러 단계를 거친 후에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성숙하여 그리스도의 재생산과 복사판인 술람미가 되어 그리스도와 결혼하도록 그분께 어울리게 되었다.
      A. ‘술람미’는 ‘솔로몬’의 여성형이다. 이것은 그녀가 생명이 성숙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성취를 위해 생명과 본성과 표현과 기능에서 그리스도와 똑같이 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 아 6:13.
      B. 아가 3장에서 그리스도의 연인은 성숙의 단계에 도달하여 가마가 되고, 결국 주님은 그녀를 예루살렘으로 간주하신다 — 아 3:9-10, 6:4.
      1. 그리스도의 연인은 자신의 타고난 사람이 파쇄되고 의지가 복종됨으로써 이 단계에 도달한다 — 아 3:6, 4:1, 4.
      2. 그리스도의 연인은 부활 안에 있는 새 창조물로서 그리스도의 승천 안에서 생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생명의 풍성으로 성숙하게 되어 하나님의 건축물 곧 하나님의 성소가 된다 — 아 6:4.
      Ⅲ. 우리는 우리 안에 심어진 신성한 씨 안에 담긴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본성이 발전하는 것을 체험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영원한 왕국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다 — 벧후 1:1, 4-11.
      A. 우리는 놀라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할당받았고, 이 믿음은 모든 것을 포함한 씨이다 — 벧후 1:1, 벧전 1:23.
      1. 모든 신성한 풍성이 이 씨 안에 있지만, 우리는 이 풍성을 부지런히 발전시켜야 한다. 성숙에 이르도록 자라는 것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 벧후 1:1-8, 3:18.
      2. 이러한 미덕들을 발전시킴으로써 우리는 생명이 자라 결국에는 성숙에 도달하여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되고, 장차 올 왕국에서 왕들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장비될 것이다 — 엡 4:13-15, 벧후 1:11.
      3. 우리는 믿음이라는 씨에서 시작하여, 미덕과 지식이라는 뿌리와 자제라는 줄기와 인내와 경건이라는 가지를 거쳐서, 형제 사랑이라는 꽃과 신성한 사랑이라는 열매에 이르도록 완전히 발전하고 성숙해야 한다 — 벧후 1:5-7.
      4.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본성의 궁극적인 발전은 신성한 사랑, 곧 ‘아가페’이다. ‘아가페’는 하나님 자신의 본성인 신성한 사랑을 가리키기 위해 신약에서 사용된 헬라어 단어이다 — 벧후 1:7, 요일 4:8, 16.
      a. 우리는 할당된 믿음이라는 신성한 씨가 발전하여, 신성하고도 더 고귀한 사랑으로 완결되도록 해야 한다 — 벧후 1:5-7.
      b. 우리가 신성한 본성에 참여하고 생명이 자라 성숙에 이를 때, 사랑이신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되고 사랑의 사람들, 심지어 사랑 자체가 된다 — 엡 3:19.
      B. 우리는 영원한 왕국 안으로 넉넉히 들어가기 위해, 신성한 생명과 본성이 자라고 발전하고 성숙되기를 부지런히 추구해야 한다 — 벧후 1:10-11.
      Ⅳ. 히브리서에서 바울의 부담은 믿는 이들을 구원의 초기 단계에서 이끌어 내어 성숙에 이르도록 전진하게 하는 것이었다 — 히 5:11-6:5.
      A. 성숙에 이르도록 전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과 하나님의 경륜의 길에 관한 의의 말씀, 곧 단단한 음식과 같은 말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히 5:12-14, 6:1.
      1. 히브리서가 쓰인 목적은 믿는 이들을 그리스도의 땅에서의 사역에 관한 선한 말씀에서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에 관한 의의 말씀으로 이끌어, 믿는 이들을 성숙에 이르도록 이끄는 것이었다 — 히 1:3, 4:14-16, 6:20, 7:25, 8:1-2.
      2. 의의 말씀은 하나님의 정의와 의,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통치적인 다루심에 관한 사상을 담고 있다 — 히 5:13.
      3. 의는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문제이다. 의는 하나님의 행정 안에서 하나님에게서 나오며,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에 관한 것이다 — 마 6:33, 시 89:14, 97:2, 사 32:1.
      B. 주님은 계속해서 우리를 성숙에 이르도록 이끌기를 원하시지만, 우리는 반드시 그분의 은혜로운 일과 협력해야 한다 — 히 6:1.
      1.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도달하신 것에 그분과 함께 참여해야 한다 — 히 1:9, 3:14.
      2. 우리는 남은 안식일의 안식에 들어가기에 힘써야 한다 — 히 4:9, 11.
      3. 우리는 긍휼을 받고 은혜를 입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한다 — 히 4:16.
      4. 우리는 단단한 음식을 먹음으로써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누려야 한다 — 히 5:9-10, 14.
      Ⅴ. 바울의 사역의 목표는 한 새사람을 위해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사람, 곧 충분히 성장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다 — 골 1:28-29, 3:10-11.
      A. 골로새서 1장 28절에서 ‘충분히 성장한’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또한 ‘온전한’이나 ‘완전한’이나 ‘성숙한’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B. 바울의 사역은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 안으로 분배함으로써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고 충분히 성장하여 온전하고 완전하게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C. 한 새사람을 위해 우리는 모든 믿는 이들에게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공급함으로써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충분히 성장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수고하고 분투해야 한다. 그럴 때 그들은 그분에 의해 살고 그분으로 인해 자라 성숙에 이를 수 있다 — 골 3:4, 2:19.
      D.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과 교통하는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그들 안으로 공급하여 그들이 생명 안에서 성숙하게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충분히 성장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새사람의 성장을 위한 것이다 — 골 3:10-11, 엡 4:13-14.
      E. 실재와 실행에서 한 새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자라야 한다 — 엡 4:15-16, 24.
      1.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자랄 때, 우리는 더 이상 서로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과 생명으로 취할 것이다 — 골 3:4, 10-11, 엡 3:17.
      2. 우리가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자라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 될 때,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우주적인 한 새사람이다 — 엡 3:11, 4:13-14, 24, 창 1:26.
    • 메시지9
      축복
      +
    • 축복
      성경: 창 47:7, 10, 48:9, 14-16, 20, 히 5:6, 7:7, 11:21, 민 6:22-27, 고후 13:14
      Ⅰ. 변화되는 것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 신진대사적으로 바뀌는 것이고, 성숙되는 것은 우리를 바꾸는 이 신성한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며, 축복은 생명의 넘쳐흐름이다.
      A.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려고 할 때, 자신이 체험한 삼일 하나님을 말했다 — 창 48:9, 15-16.
      1. 아브라함과 이삭이 그 앞에서 행한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2. 야곱을 ‘오늘까지 일생 동안’ 목양하신 하나님은 그 영이시다.
      3. 야곱을 온갖 악한 일에서 구속하신 천사는 아들이시다.
      B. 야곱은 그의 운명과 존재가 전적으로, 목양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삼일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삼일 하나님으로 축복하기 위한 것이다.
      Ⅱ. 축복의 의미는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의 생명의 성숙을 통하여 넘쳐흐르시는 것이다.
      A. 하나님은 사람이라는 통로 없이는 그분 자신을 다른 사람들 안으로 흘려 보내실 수 없다. 하나님께서 통로로 사용하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하나님으로 적셔지고 침투된 사람이다 — 빌 1:23-25.
      B. 생명의 성숙은 생명이신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문제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충만할 때 하나님의 넘쳐흐름을 갖게 되어 만나는 모든 사람을 축복할 수 있다 — 찬송가 655장.
      Ⅲ. 영적 체험에 따르면 야곱과 요셉은 한 인격이다. 요셉은 성숙한 이스라엘의 다스리는 방면, 곧 야곱의 성숙한 본성 안에 조성되신 그리스도를 대표한다. 온전하신 분이신 그리스도로 조성된 성숙한 성도인 야곱은 요셉을 통해 다스렸다 — 창 41:39-44, 히 6:1상, 갈 6:8, 5:22-23.
      A. 요셉으로 예표되는 다스리는 방면은 우리 존재 안으로 조성되신 그리스도이다 — 갈 4:19, 롬 5:17.
      B. 성숙한 생명의 다스리는 방면은 항상 주님의 임재를 누리는 생명이다. 그분의 임재가 있는 곳마다 다스리는 권세인 권위가 있다 — 창 39:2-5, 21-23.
      Ⅳ. 야곱이 성숙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가장 분명한 표시는 그가 다른 사람들을 축복한 것이다.
      A. 야곱이 이집트에 도착하여 첫 번째로 한 일은 파라오를 축복한 것이었다(창 47:7, 10). 히브리서 7장 7절에 따르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서 축복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야곱이 파라오보다 더 윗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B.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려면 우리가 반드시 생명으로 가득 채워져서 이 생명이 다른 사람들에게 넘쳐흘러야 한다. 야곱의 성숙한 생명은 축복으로 가득했다. 그는 파라오와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했고(창 48:8-20), 자신의 아들들을 축복했다(49:1-28). 야곱의 아들들이 받은 그러한 축복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운명과 관련된 예언이었다.
      Ⅴ. 축복의 원칙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축복하는 것이다 — 히 7:7.
      A. 윗사람인지 아랫사람인지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분량의 문제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그리스도의 분량에 따라 윗사람이거나 아랫사람이다.
      B. 비록 침례자 요한은 그리스도께 매우 가까이 있었지만,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았다.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가까이 있을 뿐 아니라 그들 안에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천국에서 가장 작은 사람도 요한보다 크다 — 마 11:11.
      C.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 많이 소유하여 다른 이들보다 더 크다면, 우리는 다른 이들을 축복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제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축복하기 때문이다.
      D. 다른 이들을 축복하는 것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참여하고 누린 바로 그 그리스도로 사람들을 축복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 많이 누린다면 다른 이들에게 공급할 그리스도를 더 많이 갖게 된다.
      Ⅵ. 성경에서 축복의 첫 번째 사례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한 것이다(창 14:18-20). 멜기세덱은 그리스도의 예표이다(히 5:6).
      A. 축복은 하나님의 넘쳐흐름이고, 이러한 넘쳐흐름은 제사장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우리는 모두 제사장들(계 1:6, 벧전 2:5, 9), 곧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B.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가까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하다.
      C.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없앤다. 제사장은 멀리 떨어진 사람들을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끈다 — 비교 출 28:9-12, 15-21.
      D. 우리가 제사장에게서 축복을 받기 전에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거리가 있을 수 있지만, 제사장이 우리를 축복한 후에는 이러한 거리가 없어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려 하나님에 대한 누림에 함께 참여한다.
      Ⅶ. 민수기 6장 22절부터 27절까지에서 우리는 제사장들이 주는 축복의 본을 본다. 이 축복은 구약의 축복이나 신약의 축복이라기보다는 삼일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이다. 이 축복은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 우리의 누림을 위하여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는 삼일 하나님이다.
      A. “여호와께서 그대에게 복을 주시고 그대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라는 말씀은 아버지와 관련된다 — 민 6:24.
      1. 아버지는 그분의 사랑 안에서 온갖 방면에서 온갖 방법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비교 엡 1:3). 아버지는 또한 그분의 능력 안에서 온갖 방면에서 온갖 방법으로 우리를 지켜 주신다(비교 요 17:11, 15, 벧전 1:5).
      2. 주님은 아버지께 그분의 이름 안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기를 기도하셨다(요 17:11). 이것은 분배하시는 삼일 하나님 안에 우리를 지켜 주시는 것이다. 주 예수님은 계속해서 아버지께서 우리를 악한 자의 손에서 지켜 주시기를 기도하셨다(요 17:15).
      3. 우리는 절대적으로 삼일 하나님의 분배 안에 지켜지고 완전히 악한 자 밖에 있게 되는 축복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것은 어떠한 큰 축복인가!
      B. “여호와께서 그대에게 그분의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라는 말씀은 아들과 관련된다 — 민 6:25.
      1. 주 예수님께서 곧 태어나실 시기에 누가복음 1장 78절에서 사가랴는 “돋는 해가 높은 곳에서 우리에게 임하여”라고 예언하였다. ‘돋는 해’는 신성한 삼일성 중에서 아들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육체 되심이 빛을 비추는 방식으로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는 것을 암시한다 — 마 4:16, 요 8:12.
      2. 민수기 6장 25절에서 ‘얼굴’이라는 단어는 임재를 상징한다. 우리를 비추시는 얼굴을 가지신 아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보이는 임재이시다 — 벧후 1:16-18, 마 17:1-2.
      3. 민수기 6장 25절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얼굴을 비추실 뿐 아니라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한다. 이 두 가지 요점이 함께 더해질 때, 이것은 요한복음 1장 14절과 16절, 17절과 일치한다.
      4. 하나님의 육체 되심은 그분의 임재의 비춤이었으며, 이러한 비춤과 함께 은혜가 있었다. 이 은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며, 이 은혜는 사실상 그리스도 자신이다 — 고후 13:14.
      C. “여호와께서 그대에게 밝은 표정을 하시고 그대에게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라는 말씀은 그 영과 관련된다 — 민 6:26.
      1. 얼굴은 그 사람의 임재를 의미하고, 표정은 그 사람의 표현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에게 밝은 표정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확증하고, 보증하고, 약속하며, 모든 것을 주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얼굴로 오셨으며, 성령은 하나님의 표정으로 오신다. 우리가 성령을 슬프시게 하면 그분의 표정은 어두워질 것이고(엡 4:30), 우리가 성령께 순종하면 성령은 우리를 기뻐하실 것이고, 밝은 표정을 지으시며 우리에게 확증하고 보증하고 약속하며 모든 것을 주실 것이다.
      Ⅷ. 사도 바울의 축복은 고린도후서 13장 14절에서 볼 수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A. 사도 바울의 축복에서 삼일 하나님은 사람들의 누림을 위해 사람들에게 오신다. 바울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사람들 안으로 이끌었다.
      B.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것은 한 면에서 그들을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끄는 것이며, 또 다른 면에서는 하나님을 사랑과 은혜와 교통으로 사람들 안으로 이끌어 그들이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신 삼일 하나님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C. 사랑과 은혜와 교통은 우리의 누림을 위한 하나님의 세 단계이다. 사랑은 안에 있는 것이고, 은혜는 표현된 사랑이며, 교통은 우리 안에 은혜를 전달해 주는 것이다.
      D. 하나님의 사랑은 근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원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의 과정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하나님의 표현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 영의 교통은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주님의 은혜를 나누어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영께서 하나님과 주님을 함께 전달해 주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신 삼일 하나님과 그분의 신성한 미덕들을 체험하고 누리도록 하려는 것이다.
      E. 거룩한 말씀 안에 있는 신성한 삼일성에 관한 신성한 계시는 신학적인 연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비밀스럽고 놀라운 그분의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 어떻게 그분 자신을 선택받은 사람들 안으로 분배하시는지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사도가 고린도의 믿는 이들에게 한 축복이 가리키듯이, 선택되고 구속받은 사람들인 우리가 이제부터 영원토록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께 참여하고 그분을 체험하고 누리며 소유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Ⅸ. 야곱의 빼앗는 손은 결국 축복하는 손이 되었다 — 창 25:26, 47:7, 10, 48:14-16, 히 11:21.
      A. 창세기 25장에서 우리는 야곱이 어머니의 태 속에 있었을 때조차도 빼앗기 시작한 것을 보지만, 47장과 48장에서는 이 빼앗는 두 손이 축복하는 손이 되어, 사람들을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고 하나님을 사람들 안으로 공급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을 누리게 한 것을 본다.
      B. 빼앗는 사람, 발뒤꿈치를 붙잡는 사람이 그 당시에 땅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되었다. 그는 파라오보다 더 큰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파라오를 축복할 수 있었다. 그는 생명의 길에 의해 그러한 사람이 되었다.
      C. 우리에게는 생명의 성장과 성숙이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채워져서 다른 이들을 축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다.
      Ⅹ. 창세기 49장 당시에 야곱이 그의 열두 아들에 관하여 축복하며 예언하였을 때, 그는 하나님-사람, 곧 하나님으로 채워지고 조성되고 침투된, 심지어 하나님으로 재구성된 사람이었다. 그가 생각한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생각이었고, 그가 표현한 의견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의견이었다 — 비교 고전 7:10, 12, 25, 40.
      A. 축복하며 예언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과 하나님의 목적을 알아야 한다.
      B. 축복하며 예언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 즉 우리는 관련된 각 사람의 실지 상태를 알아야 한다.
      C. 축복하며 예언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충만해야 한다.
      D. 축복하며 예언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강하고 활발한 영을 가져야 한다.
  • 개요

    여름 훈련 : 믿는 이들(1)

    • 메시지1
      제자들, 믿는 이들, 성도들, 그리스도인들
      +
    • 성경: 마 5:1, 28:19, 고후 6:14-16, 고전 1:2, 벧전 4:16
      Ⅰ.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다.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 곧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하나님-사람 생활의 실지 상태에 따라 그리스도를 따르고 배우는 이들이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따르고 배우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체험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함으로써 그분의 유기적인 재생산과 복사판이 되어 그분께서 교회 안에서와 새 예루살렘 안에서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 자신의 단체적인 표현을 얻으시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 마 5:1, 28:19, 엡 4:20-24, 3:21, 사 43:7, 계 21:11.
      A. 우리는 첫 번째 하나님-사람이신 그리스도의 본에 따라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부인함으로 신성한 생명을 살면서, 타고난 사람인 데서 하나님-사람이 되도록 제자로 훈련받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리스도 안에서 가르침을 받는 것이자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생각의 영 안에서 새로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새롭고도 단체적인 하나님-사람이 된다 — 엡 4:23, 신 17:18-20.
      1. “여러분이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들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 요 8:31-32, 36, 15:7.
      2. 우리는 많은 기도로 성경을 읽고, 그 영께서 말씀의 사역을 통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귀를 가져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새로워짐으로 변화되어 주님에 의해 제자로 훈련받게 된다 — 엡 6:17-18, 계 2:7, 롬 12:2, 엡 4:23.
      3. 우리의 생각이 새로워지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성령의 빛 비춤에 의해 하나님의 새로운 사상들을 받아들임으로 인간 생활의 일들에 대한 모든 옛 관념이 제거되는 것이다 — 시 119:105, 130.
      4. 주님의 제자들로서 생명이신 그리스도 자신 안에서 구원을 받음으로 사탄과 죄와 죽음을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리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재조성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지시받고 통치받고 다스림받고 통제받아야 한다 — 롬 5:10, 17, 신 17:18-20, 딤후 3:15-17.
      B.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은 그리스도를 먹음으로 그리스도로 대치되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한 분 예수님의 하나님-사람의 생활)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단체적인 그리스도의 하나님-사람의 생활)가 되는 길은 그리스도를 먹음으로써 우리를 충족하고 우리에게 힘을 주며 우리를 강하게 하고 능력 있게 하는 공급으로 그분을 누리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수행할 수 있다 — 요 6:57, 사 7:14-15, 요 17:4, 히 5:8, 빌 2:8, 요 6:63, 렘 15:16, 히 4:16, 롬 5:5, 17, 12:2, 고후 5:14, 엡 3:20-21.
      C. 우리는 아침마다 그리스도에게서 깨우침을 받음으로써 그리스도를 배우고 있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배울 때, 우리는 가르침받은 이의 귀와 혀를 가져 지친 사람들을 말로 붙들어 줄 수 있게 된다. 주님의 제자들, 곧 주님께 가르침받은 이들로서 우리는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의 이름을 신뢰해야 하며 우리 자신의 빛을 만들어 내지 말아야 한다 — 사 50:4-5, 10-11.
      D. 그리스도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허하시며, 그분의 멍에는 편하고 그분의 짐은 가벼우며, 그분은 우리 혼을 위해 우리에게 안식(온전한 평안과 충만한 만족)이신 그분 자신을 주신다. 우리는 이러한 분이신 그리스도를 배우고 있다 — 마 11:28-30.
      E. 우리는 우리 안에서 충분한 만족의 비결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배우고 있다. 이 비결에 의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간 미덕들 안에서 하나님의 속성들을 표현하며, 온갖 환경과 상황과 처지에서 그분을 살아 그분을 확대한다 — 빌 4:5-13.
      F. 우리는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과 목양하고 찾는 영에 따라 긍휼을 베풀기 원하시는 분이신 그리스도를 배우고 있다 — 마 9:12-13.
      G. 주님을 삼 년 반 동안 따른 제자들은 그분께서 무엇을 하시고 어떻게 행동하시며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보았다. 제자들은 주님을 지켜보았으며, 제자들 안으로 불어 넣어지신 생명의 영, 실재의 영(요 20:22)은 제자들을 그들이 지켜본 것들의 모든 실재 안으로 안내하실 것이다(16:13).
      H. 주 예수님은 그분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또 다른 근원 곧 그분의 아버지에 의해 부활 안에서 인간 생활을 하신 분이셨다. 우리가 또 다른 생명에 의해, 곧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의 인성 안에서 살 때, 이런 종류의 생활은 우리를 주님의 진정한 제자들로 만든다.
      I. 주님의 제자들은 삼일 하나님의 실지적인 임재를 갖는다. 삼일 하나님의 임재는 그들의 큰 기쁨이 되어 그들을 ‘예수님같이 인간적인’ 사람들, 곧 어떤 속임수나 위선 없이 만나는 이들에게 다정하고 호감을 주며 매력적인 사람들이 되게 한다 — 마 1:23, 시 43:4, 롬 14:17, 느 8:10, 빌 1:25, 4:5, 8-9, 딤전 4:15-16.
      J.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하나님-사람의 본으로서 이 땅에 사신 그리스도의 인간 생활을 통해 제자로서 훈련받았다. 그분의 인간 생활은 인성에 있어서 그분 자신을 부인함으로 하나님을 사는 생활이었으며(요 5:19, 30), 사람에 관한 그들의 관념을 혁신시켰다(빌 3:10, 1:21상).
      K. “나는 회복 안에서 십팔 년 동안 워치만 니 형제님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지켜보았다. 내가 니 형제님에게서 지켜본 모든 것이 나를 제자로서 훈련시켜 주었다.”(활력 그룹, 개정판, 2장, 36쪽)
      Ⅱ. 우리는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이다.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생명을 얻고 사는 이들이다. 믿음은 우리를 무효화하며, 우리가 하나님을 살고 하나님을 표현하며 하나님을 사람들 안으로 공급하게 한다 — 고후 6:14-16, 롬 1:17, 히 11:6, 갈 2:20.
      A.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요 3:15-16)은 아담에게서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졌고(고전 15:22), 거듭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물이 되었으며(고후 5:17), 영원한 생명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결되었고, 그리스도와 합하여 그분과 한 영이 되었다(고전 6:17).
      1.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두 번 태어났다. 우리는 첫 번째 출생을 통해 타고난 사람이 되었지만, 어느 날 거듭남으로 신성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새로 태어났다 — 요 3:6-7.
      2. 우리는 로마서 8장 16절에서 우리의 영적인 출생에 대한 두 번째 출생증명서를 볼 수 있다. 이 절은 그 영께서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증언하신다고 말한다. 우리의 신성하고 비밀한 출생증명서는 이중의 영, 곧 우리의 영과 함께 계시는 그 영이다. 우리의 영은 주님과 한 영이 되었다.
      B. 사람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알고, 그분을 감상하고, 그분을 귀하게 여길 때, 그분은 그 사람 안에 믿음이 생기게 하시어 그분을 믿을 수 있게 하신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그 사람 안에서 믿음이 되시고, 그는 그 믿음으로 그분을 믿게 된다 — 히 12:2.
      C. 믿음은 말씀을 듣는 데서 온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신 그분을 접촉한다면, 그분은 그 영인 적용된 말씀이 되심으로 우리 안에 분배되시어 우리의 믿음이 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체현되시고 그 영으로 실재화되시어 우리의 영과 연합되신 하나님이 바로 믿음이시다 — 롬 10:17, 요 1:1, 5:39-40, 6:63.
      D. 믿음을 들음으로 우리에게서 사랑하고 감상하는 마음이 일어나며, 우리가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할수록 믿음이 더 많이 작용하여 우리를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의 풍성과 유익 안으로 이끈다 — 갈 3:2, 5, 5:6.
      E. 로마서 12장 3절은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 이상으로 자신을 더 높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에 따라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라고 말한다.
      1. 분수에 맞게 생각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 이상으로 더 높게 생각하는 것은 몸의 생활의 합당한 질서를 소멸시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질에 있어서 동일한 믿음을 주셨지만, 믿음의 양은 동일하지 않다. 양의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자라는지에 달려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도 바울이 자랐던 것처럼 자란다면, 우리가 받는 믿음의 몫은 아주 커질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믿음을 나누어 주실지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다. 우리가 분수에 맞게 생각하지 않는다면(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 이상으로 자신을 더 높게 생각하고, 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다고 여기지 않으며,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된 줄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나누어 주시는 것을 더 늘리지 않으실 것이며, 오히려 줄이실 수도 있다 — 빌 2:2-3, 갈 6:3, 고전 8:1-3.
      F. 우리 믿는 이들은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믿음으로 산다.
      1.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가지들이다 — 요 15:1-8.
      2. 그리스도는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지체들이다 — 고전 12:27.
      3. 그리스도는 생명의 숨과 생명수와 생명의 떡이시고, 우리는 그분을 숨 쉬고 먹고 마시는 이들이다 — 요 20:22, 4:10, 14, 7:37-39상, 6:35, 51-63, 68.
      4. 그리스도는 신랑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신부이다 — 요 3:29, 엡 5:25-27, 계 19:7-9, 고후 11:2-3.
      5. 그리스도는 고아들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고아들이지만 그분의 자녀가 되어 그분의 돌보심과 건지심을 누리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매일 그분의 구출하심과 구원하심을 누리고 있음을 함축한다 — 요 14:18, 시 68:5-6, 사 9:6, 22:19-22, 요 1:12-13, 14:10, 시 107:1-43, 110:4, 계 2:1, 7, 히 7:25, 롬 5:10.
      6.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사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환자들이다. 그분의 환자들인 우리는 우리의 치료자로서 우리의 용서와 누림과 기쁨과 만족과 자유가 되시는 그분을 누리고 있다 — 출 15:23-26, 막 2:1-3:6.
      7.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시고, 우리는 그분을 따르는 이들로서 생명의 빛을 얻고 신성한 빛을 퍼뜨리는 그분의 발산체가 된다 — 요 8:12, 마 5:14-16, 빌 2:12-16, 요일 1:5, 7, 9, 계 21:23.
      Ⅲ. 우리는 하나님의 성도들이다. 성도들은 하나님께로 분별되어 거룩하게 된 이들이다 — 롬 1:7, 고전 1:2, 30, 비교 민 6:1-9.
      A. 우리는 그분의 구속하는 피로 위치적으로 거룩하게 되었다 — 히 13:12.
      B.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본성으로 기질적으로 거룩하게 되고 있다 — 살후 2:13, 히 2:10-11, 고전 6:11, 엡 5:26, 살전 5:23-24.
      Ⅳ. 우리는 그리스도인들 곧 그리스도-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하나 된 이들이며, 그분과의 유기적인 연결 안에서 넘치게 공급하는 내용이신 그분을 소유함으로써, 매일의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살아 그분을 확대한다 — 행 11:26, 26:28, 벧전 4:16, 고전 6:17, 고후 4:7, 빌 1:19-21상.
      A. 그리스도인이 되는 목표와 하나님께서 그분의 경륜 안에서 우리에게 정해 주신 운명은 우리가 그 영을 따라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 곧 하나님의 표현을 위해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다 — 갈 2:20, 5:16, 25, 6:17, 사 43:7, 고전 6:20, 10:31.
      B.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인마다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도록 기능을 발휘하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주님께서 정해 주신 각자의 특별한 여정을 갖고 있다. 각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여정을 걸어가야 한다. 아무도 그를 대신할 수 없고, 그 또한 다른 누구를 대신할 수 없다 — 행 13:22, 25, 36, 20:24, 고전 9:24, 12:14-22, 딤후 4:7-8.
    • 메시지2
      영원한 생명 ? 신성한 본성을 가진 하나님의 생명, 성경의 구조이신 삼일 하나님, 감추어지신 하나님 곧 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
      +
    • 성경: 요 4:24, 벧후 1:1, 4-11, 요일 1:5, 4:8, 16, 눅 18:1-18
      Ⅰ. 신성한 생명은 하나님의 첫 번째 속성이자 기본적인 속성으로 간주될 수 있다.
      A. 하나님의 생명은 유일한 생명이다.
      B. 에베소서 4장 18절은 하나님의 생명에 대해 말하는 유일한 절이다. “그들은 이해력이 어두워져서, 그들 속에 무지가 있고 마음이 굳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습니다.”
      C. 온 우주에서 하나님의 생명만이 생명으로 간주될 수 있다 — 요일 5:12.
      D.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분의 생명만이 생명이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언급될 때, 하나님의 생명만이 유일한 생명인 것처럼 다루어진다 — 요 1:4, 10:10, 11:25, 14:6.
      E. 하나님의 생명은 창조되지 않았고, 시작이나 끝이 없으며, 스스로 존재하고, 변함없이 영존하신다.
      F. 영원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생명만이 생명이다.
      Ⅱ. 영원한 생명은 신성한 본성을 가진 하나님의 생명이다.
      A.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생명.
      1. 이 시대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음.
      a.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이다 — 요일 1:1-2.
      b. 영원한 생명은 주 예수님 안에 있다 — 요일 5:11-12, 요 1:4.
      c.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이다 — 롬 6:23, 요일 5:11.
      d.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믿을 때 얻는다 — 요 3:16, 36, 5:24.
      e.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이 시대에 알 수 있다 — 요일 5:13.
      f. 영원한 생명을 얻으면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 — 요 10:28-29.
      2. 오는 시대에 영원한 생명을 얻음.
      a. “나와 복음을 위하여 … 버린 사람은 지금 이 시대에 … 백 배나 받지만 … 오는 시대에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입니다.” — 막 10:29-30.
      b. “죽기까지 신실하여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줄 것이다.” — 계 2:10.
      c. “이기는 이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를 주어서 먹게 할 것이다.” — 계 2:7.
      3. 영원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림.
      a.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원천이 되어 샘솟아 올라 영원한 생명에 이를 것입니다.” — 요 4:14.
      b. “내가 생명수의 샘을 목마른 사람에게 주어 거저 마시도록 하겠다.” — 계 21:6.
      c. “생명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얻고” — 계 22:14.
      B. 신성한 본성을 가진 하나님의 생명.
      1.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이들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이들인 우리는 신성한 본성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 벧후 1:4.
      a. ‘신성한 본성’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존재의 풍성과 요소와 조성 성분을 가리킨다 — 요 4:24, 요일 1:5, 4:8, 16.
      b.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본성은 분리될 수 없다. 신성한 본성은 신성한 생명의 실질이고, 신성한 생명 안에 있다 — 요일 1:1-2, 5:11-13.
      2. 우리는 우리 안에 뿌려진 신성한 씨 안에 담긴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본성의 발전을 체험해야만 영원한 왕국 안으로 넉넉히 들어갈 수 있다 — 벧후 1:1, 4-11.
      3.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하나님-사람들로서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소유하고 하나님 종(種)에 속한다 — 요 1:12-13.
      4. 우리가 거듭났을 때, 또 다른 본성이 우리 안으로 넣어졌다. 이것은 하나님의 본성, 신성한 본성이다 — 벧후 1:4.
      5. 신성한 본성에 동참하는 사람은 신성한 본성을 누리고 신성한 본성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 벧후 1:4.
      6. 하나님을 누리고 그분의 존재의 풍성에 동참한다면, 우리는 신성한 본성으로 조성되어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과 똑같이 되어 우리의 온 존재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표현할 것이다 — 벧후 1:3.
      Ⅲ. 삼일 하나님은 신약의 구조이시다.
      A. “내가 하나님의 영에 의해 귀신들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왕국이 이미 여러분에게 와 있는 것입니다.” — 마 12:28.
      B. “모든 민족을 나의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안으로 침례를 주고” — 마 28:19.
      C.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곧 보혜사께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고,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 요 14:26.
      D. “내가 아버지에게서 여러분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실재의 영께서 오시면, 그분께서 나에 대하여 증언하실 것입니다.” — 요 15:26.
      E. “예수님께서 하나님 오른편으로 높아지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으셔서” — 행 2:33상.
      F.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에도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 롬 8:11.
      G. “여러분이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으며, 아들의 영은 ‘아바 아버지!’라고 외치십니다.” — 갈 4:6.
      H. “아버지께서 그분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분의 영을 통하여 능력으로 여러분을 속사람에 이르도록 강하게 해 주시고,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게 하시며” — 엡 3:16-17상.
      I.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 주님도 한 분이시요 … 하나님도 한 분이시며,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십니다.” — 엡 4:4-6.
      J. “더욱이 영원하신 영을 통하여 흠이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신 그리스도의 피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하여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도록 우리의 양심을 얼마나 정결하게 하겠습니까?” — 히 9:14.
      K. “하나님 아버지께서 미리 아신 바에 따라 선택하시고, 그 영께서 거룩하게 하시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되고 그분의 피가 뿌려진 사람들에게 편지합니다.” — 벧전 1:2상.
      L.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분께서, 또 그분의 보좌 앞에 계신 일곱 영께서, 또 신실한 증인이시자 죽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은혜와 평안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 계 1:4하-5상.
      Ⅳ. 하나님은 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 곧 감추어지신 하나님이시다.
      A. “오, 구원자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여, / 정녕 주님은 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사 45:15.
      1. 우리의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고 전능하시며 용서로 가득하시면서도, 에스더기가 암시하는 것처럼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 에 4:14.
      2.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나서 자신을 그 안에 숨기시어, 결국 우리는 어디에서 그분을 찾아야 할지 모른다 — 욥 23:3.
      3.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수없이 많은 일을 하셨고 그들의 개인 생활 안에서도 수없이 많은 일을 하셨지만 자신을 감추셨다. 그분은 끊임없이 일하시지만 항상 감추어져 계셨다 — 사 45:15.
      4. 우리는 우리가 섬기고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특히 우리를 돕고 계실 때 여전히 자신을 숨기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요 14:26, 롬 8:28.
      5. 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은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우리 안에서 운행하고 계신다 — 빌 2:13.
      B. 누가복음 18장 1절부터 8절까지에 나오는 비유의 의미는 심오하며, 우리는 감추어지신 하나님으로 계시되신 이러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1. 누가복음 18장 3절에서 과부는 믿는 이들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이들은 현시대에 그들의 남편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과부이다 — 고후 11:2.
      2. 이 비유에서 과부는 불의한 재판관에게 계속 찾아와서 그녀의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렇게 원한을 풀기 위해서 우리는 끈질기게 기도해야 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 눅 18:1, 3.
      a. 우리의 남편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우리가 이 땅에 과부로 남겨져 있을 때, 잠시 우리의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처럼 보이신다 — 눅 18:6.
      b. 비록 하나님께서 불의하게 보이실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분께 호소하고 끈질기게 기도하며 거듭거듭 그분을 성가시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밤낮 자기에게 부르짖는’ 그분께 선택받은 사람들의 원한을 속히 풀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 눅 18:7-8상.
      3.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보겠습니까?” — 눅 18:8하.
      a. ‘믿음’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직역하면 ‘그 믿음’이다. 이것은 과부의 믿음과도 같이 끈질기게 기도하기 위한 우리의 끈질긴 믿음을 의미한다.
      b. 우리를 구원받게 한 믿음은 믿음의 시작 단계이다. 우리를 그리스도와의 생명의 연결 안으로 이끈 믿음은 연결하는 믿음이다. 연결하는 믿음은 우리가 계속해서 삼일 하나님을 접촉하는 것을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살도록 한다 — 롬 1:17, 갈 2:20, 요 14:19.
      c. 연결하는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승리에 차서 돌아오실 때 이기는 이들이 그분을 만나기 위한 신성한 요구 조건이다 — 눅 18:8하.
      1) 연결하는 믿음은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움직이시면서 우리를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에 연결하시는 것이다 — 엡 3:8.
      2) 연결하는 믿음은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는 이들의 믿음이다 — 고후 1:9.
      3) 주 예수님께서 돌아오실 때, 그분은 연결하는 믿음에 의해 사는 많은 이기는 이들을 찾으실 것이고, 그들을 그분께서 천 년 동안 왕으로서 다스리시는 그분의 왕국을 위한 보물들로 여기실 것이다 — 눅 18:8하, 계 20:4, 6.
    • 메시지3
      생명의 밀, 좋은 씨, 땅의 소금, 세상의 빛, 사람을 얻는 어부
      +
    • 성경: 마 3:12, 13:38, 5:13-16, 4:16-20
      Ⅰ. 믿는 이들은 주님의 곳간으로 모아질 생명의 밀로 상징된다 — 마 3:11-12, 13:24-30, 38-42.
      A. 밀인 믿는 이들 안에는 신성한 생명이 있다. 생명은 사람에게 누림이 되시는 하나님 자신이다 — 시 36:7-9, 요 1:4, 10:10, 14:6, 6:63.
      B.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십자가의 파쇄, 곧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죽이는 죽음을 체험하여 우리 안에 있는 다음과 같은 장애물들을 처리하고 제거해야 한다.
      1.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우리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주의하고 오직 그리스도만 우리의 목표로 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장애물은 생명의 길을 모르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으로 취하지 않는 것이다 — 마 7:13-14, 빌 3:8-14, 골 3:4, 롬 8:28-29.
      2. 두 번째 장애물은 위선이다. 사람의 영성은 외적인 모습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 마 6:1-6, 15:7-8, 요 5:44, 12:42-43, 비교 수 7:21.
      3. 세 번째 장애물은 반역이다. 우리는 매우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무시함으로 그분을 가두고 그분께 불순종할 수 있다 — 레 14:9, 14-18, 11:1-2, 46-47, 롬 16:17, 고전 15:33.
      4. 네 번째 장애물은 우리의 타고난 역량이다. 이러한 타고난 역량이 우리 안에 파쇄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면, 이 역량은 그리스도의 생명에 어려움이 될 것이다 — 고전 2:14-15, 3:12-17, 유 19-21.
      Ⅱ. 믿는 이들은 좋은 씨로 상징된다. 좋은 씨는 왕국의 아들들로서 주님에 의해 심어져 그분의 왕국 안에서 자란다 — 마 13:24, 38.
      A. 씨는 하나님의 말씀(마 13:4, 19, 눅 8:11)이신 그리스도 자신(벧전 1:23)이며, 우리 안에 심어져 우리를 좋은 씨 곧 부활의 아들들이 되게 한다(마 13:38, 눅 20:36-38).
      B. 한 알의 밀인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생명으로 우리 안에 분배하여 우리를 보양한다. 불인 말씀은 우리와 우리가 신뢰하는 많은 것들을 태운다. 또한 망치인 말씀은 우리의 자아와 타고난 생명과 육체와 욕망과 관념을 깨뜨린다 — 렘 23:28-29.
      C. 좋은 씨로서 우리는 주님을 따라 땅속으로 들어가 죽어야 하며 부활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 죽고 십자가를 체험하는 것은 신성한 생명에 의해 살도록 우리의 혼생명 곧 타고난 생명을 부인하고 거절하는 것이다 — 요 12:23-26, 31-32.
      D. 좋은 씨를 뿌리는 것은 순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고전 15:36). 우리는 육신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순교자가 될 수 있다(딤후 4:6, 마 16:25, 고전 16:12, 고후 2:12-14).
      E. 우리는 그리스도의 애정 어린 사랑에 강권되어 그분을 향하여 살고 죽으며 그분을 위해 순교자가 된다 — 고후 5:14-15, 롬 8:35-37, 14:7-9, 계 2:10, 12:11.
      F. 우리의 환경에서 ‘예수님을 죽게 한 것’은 내주하시는 영과 협력하여 우리의 타고난 사람을 죽이며 신성한 생명이 해방되게 한다 — 롬 8:2, 13, 고후 4:10-13, 렘 48:11.
      G. 우리는 그분의 죽음이 우리 안에서 운행하도록 허락해 드림으로써, 주님께 드리는 우리의 모든 봉사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시작되게 해야 한다. 그럴 때 그분의 부활 생명이 우리를 통해 다른 이들 안으로 분배될 수 있다 — 고후 4:12-13, 1:8-9, 4:5, 10:13.
      1. 다윗은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과 협력했다. 비록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역량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멈추었다 — 삼하 7:18, 25, 27, 비교 눅 1:38.
      2. 다윗이 멈춘 것은 이 우주에서 이중 증거를 세웠다. 그것은 첫째로, 이 우주에서 모든 일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로,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하신 일이라는 것이다.
      3. 성전의 건축자와 성전의 부지는 모두 다윗이 죄들을 용서받은 것, 곧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하신 일에서 나왔다 — 삼하 12:24-25, 24:1-10, 18-25, 대상 21:18, 대하 3:1, 시 51편.
      4. 바버(M. E. Barber) 자매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Ⅲ. 믿는 이들은 땅의 소금, 곧 이 땅의 부패시키고 썩게 하는 세균을 죽이고 없애는 이들이다 — 마 5:13, 비교 레 2:13.
      A. 롯의 아내는 머뭇거리며 소돔을 뒤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어 절이는 기능을 잃어버렸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시기로 작정하신 악한 세상을 그녀가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다는 것을 가리킨다 — 창 19:15, 24-26, 눅 17:32.
      B. 주님을 일생토록 따르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드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실패자로서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영광스러운 영역에서 수치스러운 영역으로 내버려질 것이다 — 눅 14:31-35, 비교 계 3:21, 요 16:33.
      C. 우리는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모든 것을 충족해 주는 은혜이신,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에 의해 힘을 얻고 능력을 얻어 신성한 경륜을 살아 내야 한다 — 고전 15:10, 고후 12:9, 딤후 4:22, 골 4:6.
      Ⅳ. 믿는 이들은 세상의 빛, 곧 그들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세상의 어둠을 쫓아내는 이들이다 — 마 5:14-16, 엡 5:8.
      A. 빛은 하나님의 임재이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에 지금 주님 안에서 빛이며 빛의 자녀들답게 행해야 한다 — 요일 1:5, 엡 5:8-9.
      B. 우리가 망상 곧 자기기만에서 구원받는 길은 빛 안에 살고, 주님의 빛 비추심에 자신을 열어 드리며, 우리 자신의 빛을 만들어 내지 않는 것이다 — 시 36:8-9, 80:17-19, 139:23-24, 요일 1:5, 7, 9, 사 2:5, 50:10-11.
      1.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의 증상은 그가 하는 생각이나 일이 완전히 틀렸지만 자기 스스로는 완전히 옳다고 생각하며 믿는 것이다 — 마 6:22-23, 사 5:20.
      2. 죄를 짓는 것은 더러움의 문제이다. 하지만 죄를 짓고도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다고 믿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은 어둠의 문제이다 — 요일 1:8, 10.
      3. 망상 곧 자기기만의 이유는 빛보다 어둠을 사랑하고(요 3:19-20), 교만하며(옵 3), 진리에 대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살후 2:10-11, 잠 23:23), 유일하신 하나님에게서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요 5:44).
      C. 생명은 빛 비춤에서 오고, 빛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으며, 빛은 생명의 내적 감각이다 — 고후 4:6, 시 119:105, 130, 사 66:2, 요 8:12, 롬 8:6, 14.
      D. “그대의 눈은 몸의 등불입니다. 그대의 눈이 단일하면 온몸이 밝지만, 그대의 눈이 악하면 온몸이 어둡습니다. 그러므로 그대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아닌지 살펴보십시오. 그대의 온몸이 밝아 어두운 부분이 조금도 없다면, 등불이 그 빛을 그대에게 비출 때처럼, 온몸이 온전히 밝을 것입니다.” — 눅 11:34-36.
      Ⅴ. 믿는 이들은 사람을 얻는 어부이다 — 마 4:16-20.
      A. 사람을 얻는 어부가 되는 것은 바다와 그 죽음의 물로 상징된 세상에서 사람들을 건져 내어 천국 안으로 이끄는 것이다 — 눅 5:10.
      B. 세상에서 사람들을 건져 내어 천국 안으로 이끄는 길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온 땅에 왕국 복음, 즉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 마 24:14, 눅 4:18-19, 엡 3:8-9.
    • 메시지4
      하나님의 상속자들
      +
    • 성경: 갈 3:29, 4:7, 롬 8:17, 엡 1:18, 딛 3:7
      Ⅰ. 상속자는 어떤 사람의 사후에 그의 재산이나 자산이나 소유권을 법적으로 물려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다.
      Ⅱ. 상속자의 문자적 의미는 ‘유업을 받도록 지정된 사람’이다.
      Ⅲ. 믿는 이들은 상속자들이 된다.
      A. 우리는 거듭남을 통해 새롭게 되어 신성한 본질을 얻었기 때문에, 또한 영원한 생명의 소망에 따라(딛 3:7) 하나님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있는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되었다(롬 4:14, 8:17, 갈 3:29, 4:7).
      B. 이 시대에 우리의 누림이 되고 오는 시대에 우리의 소망이 되는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이 시대에 하나님을 살고 누리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오는 시대와 영원 안에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존재의 모든 풍성을 상속받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가졌다.
      C. 이 소망에 따라 우리는 영원토록 하나님의 모든 풍성을 상속받는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되었다.
      Ⅳ. 성경에서 상속자는 정당하게 재산을 받는 사람이다.
      A. 하나님의 상속자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가족 안으로 태어나 하나님에게서 약속이나 유업을 받는 사람이다.
      B. ‘하나님의 상속자들’은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왕국과 영적인 축복들을 상속받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들로 종종 묘사된다.
      C. 성경에서 상속자는 유업을 받는 사람으로서, 일반적으로 아버지의 유산과 권리와 책임을 차지하는 아들이나 지정된 친척이다.
      D. 영적으로 말해서, 상속자는 하나님의 가족 안으로 태어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들로서 구원과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왕국의 약속을 받는 믿는 이들을 가리킨다.
      Ⅴ. 다음의 절들은 ‘하나님의 상속자들’과 관련된 핵심 절들이다.
      A. “자녀들이라면 또한 상속자들, 곧 하나님의 상속자들이며,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들입니다. 만일 참으로 그렇게 되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 롬 8:17.
      1. 이것은 우리가 상속자들이 되는 데 조건이 있음을 보여 준다.
      2. 단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 해서 상속자들이 되는 것이 아니다.
      3. 그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태어난 후에 반드시 생명이 자라서 아들들이 되어야 하며, 그런 다음에는 합법적인 상속자들이 되는 영광을 받기 위해 반드시 고난을 통과해야 한다.
      B. “여러분은 … 아들입니다. 아들이면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상속자입니다.” — 갈 4:7.
      1. 신약의 믿는 이는 더 이상 율법 아래서 일하는 노예가 아니라, 은혜 아래서 생명 안에 있는 아들이다.
      2. 신약의 믿는 이들은 율법이나 그들의 혈육의 아버지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 심지어 삼일 하나님―아들과 그 영을 보내신 아버지(갈 4:4, 6), 아들의 자격을 위해 구속을 이루신 아들(5절), 우리 안에서 아들의 자격을 완성하고 계시는 그 영(6절)―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된다.
      C.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씨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들입니다.” — 갈 3:29.
      1. 아브라함의 씨가 되려면, 반드시 그리스도께 속하여 그리스도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
      2.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씨 곧 약속에 따른 상속자들로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상속받는다. 이 복은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의 최종 완결, 곧 우리의 몫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이다.
      3. 신약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인 믿는 이들은 성년이 된 아들들이며, 그들은 율법 아래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복을 받는 상속자들이다.
      Ⅵ.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들이라는 믿는 이들의 신분을 살펴볼 것이다.
      A. 그리스도는 만물을 상속받으실 분이시고(히 1:2), 믿는 이들의 운명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들이 되는 것이다.
      B. 구원받은 후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아들들, 신성한 본성에 동참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상속자들이다.
      C.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들이 되는 단계까지 성장할 때, 우리는 영광을 얻을 것이다.
      D. “그것은 우리가 그분의 은혜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들이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 딛 3:7.
      1. 디도서 3장 7절에서 ‘상속자들’은 다만 아들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있는 상속자들이다 — 롬 4:14, 8:17, 갈 3:29, 4:7.
      2. 이러한 상속자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요 3:16)으로 태어났다(1:12-13).
      E.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되었다 — 요 11:25.
      1.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그분의 믿는 이들인 우리는 모두 그분 안에 포함되었다. 이처럼 우리는 그분과 함께 부활했다 — 엡 2:6.
      2.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는 신성한 생명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고 우리를 생명과 본성에서 그분과 똑같이 만드셨다.
      3. 이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상속자들이 되게 하는 거듭남이라는 기본 요인이다.
      F. 하나님의 상속자들의 신분을 가진 믿는 이들은 빛 가운데서 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 체현되신 삼일 하나님을 그들의 몫으로 소유한다 — 골 1:12.
      G. 사도행전 26장 18절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들이 용서받는 것과 거룩하게 된 사람들 가운데 있는 유업에 대해 말한다.
      H. 이 신성한 유업은 삼일 하나님 자신이며, 그분께 구속받은 사람들을 위해 그분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 그분께서 이루신 모든 것, 그분께서 이루실 모든 것을 포함한다.
      I. 하나님의 상속자들로서 믿는 이들은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 롬 8:17하.
      1. 그리스도는 지금 영광 안에 계신다.
      2. 결국 우리는 영광 안으로 이끌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3. 우리가 영광스럽게 될 때, 우리의 비천한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형될 것이다 — 빌 3:21.
      4. 우리 안에 씨로서 있는 생명은 영광의 생명이다. 이 생명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다 — 골 1:27.
      5. 우리가 영광의 요소로 침투되고 적셔질 때, 이 영광이 우리에게서 나올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상속자들인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럽게 되는 것의 의미이다.
      J. 믿는 이들이 신성한 유업을 누리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유업이 되는 것으로 완결될 것이다 — 엡 1:18.
      1. 하나님의 상속자들로서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롭게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거듭남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약속과 소망에 따라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들이 되었다.
      2. 에베소서 1장 18절은 하나님의 유업이 성도들 안에 있다고 말한다.
      3. 하나님의 유업인 우리는 성령으로 도장 찍혔다 — 엡 1:13.
      K. 우리를 하나님의 상속자들인 믿는 이들에 관한 진리 안으로 깊이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 메시지5
      살아 있는 돌들과 양들
      +
    • 성경: 벧전 2:4-5, 슥 3:9, 4:10, 요 10:11-16, 겔 34:11-31
      Ⅰ. 믿는 이들은 살아 있는 돌들로 상징된다. 살아 있는 돌들은 그리스도의 돌의 본성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영적인 집이 된 이들이다 — 벧전 2:4-5.
      A.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이들인 우리는 거듭남과 변화를 통해 그리스도처럼 살아 있는 돌들이 된다. 우리는 진흙으로 창조되었지만(롬 9:21) 거듭날 때에 신성한 생명의 씨를 받았으며(벧전 1:23-24), 이 생명의 씨는 우리 안에서 자람으로써 우리를 살아 있는 돌들로 변화시킨다.
      1. 베드로가 주님께 돌이켰을 때에 주님은 그에게 베드로, 곧 돌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셨다(요 1:42). 베드로가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를 받았을 때에 주님은 그분 자신이 반석, 곧 돌이시라는 더 전진된 계시를 주셨다(마 16:16-18).
      2. 베드로는 이 두 가지 일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그분의 믿는 이들이 모두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한 돌들이라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 벧전 2:4-5.
      B.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건축물의 살아 있는 돌, 기초 돌, 모퉁이 돌, 꼭대기 돌이시다.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인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후에 살아 있는 보배로운 돌들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영적인 집인 교회를 건축한다 — 벧전 2:4, 고전 3:11, 사 28:16, 행 4:11, 슥 4:7, 요 1:12-13, 42, 벧전 2:5-7, 고후 3:12, 마 16:18.
      C. 돌이신 그리스도는 일곱 눈을 갖고 계시는데, 이 일곱 눈은 하나님의 일곱 영 곧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을 상징한다(슥 3:9, 4:10).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은 또한 어린양의 일곱 눈(계 5:6)과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타오르는 일곱 등불(4:5)로 상징되신다.
      1. 등불은 비추고 찾고 드러내고 심판하고 태우기 위한 것이며, 눈은 주입하기 위한 것이다. 일곱 눈은 어린양-돌의 모든 것을 우리 존재 안으로 주입하여 우리를 그분의 금등잔대로 만든다 — 슥 4:2-6, 11-14.
      2. 우리가 살아 있는 돌들이 되는 길은 그분께 나아가 그분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도록 하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비추시고 심판하시면서 우리를 바라보시고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주입하심으로써 우리를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신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일곱 등불이 우리를 비추고, 일곱 눈이 우리를 바라보며,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이 우리에게 생명을 분배해 주시는 것이다.
      3.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살아 있는 돌이신 그리스도를 주관적으로 체험함으로써 그분이 우리 안으로 조성되실 때, 그분은 우리의 안식을 위한 베개가 되심으로써 우리를 하나님의 건축물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 — 창 28:11-12, 17-19상, 슥 4:7, 마 11:28-30, 요 1:16-17, 51.
      D. 결국 단체적인 그리스도, 곧 이기는 신부와 함께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돌로서 오셔서 인간 정부의 총체를 산산이 부수시고 하나님의 왕국을 이끌어 오실 것이다 — 단 2:34-35, 욜 3:11, 계 19:11-21, 비교 창 1:26.
      1. 그리스도의 입에서 예리한 칼이 나오는데, 그리스도는 그 칼로 민족들을 치실 것이다 — 계 19:15상, 비교 1:16, 2:12, 16.
      2. 그리스도로 조성되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단체적인 치는 돌, 곧 그분의 단체적인 전투원-이기는 이가 되려면, 우리에게 원수를 처리하는 죽이는 말씀이 필요하다. 우리는 말씀을 기도로 읽음으로 죽이는 도구인 검을 체험해야 한다 — 엡 6:17-18.
      Ⅱ. 믿는 이들은 양들로 상징된다. 양들은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목양 아래 있는 이들이다 — 요 10:11-16, 시 23:1, 마 9:36, 히 13:20.
      A. 주님은 친히 목자로서 오셔서 그분의 양들을 찾아 나서시고 찾아내신다 — 겔 34:11-31, 눅 15:3-7, 계 7:17, 요 21:15-17, 벧전 2:25, 5:3-4.
      B. 주님은 그분의 양들을 그들 자신의 땅과 높은 산들로 데려오신다. 땅은 가나안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높은 산들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 겔 34:13-14, 골 1:12.
      C. 주님은 그분의 양들을 생명 주시는 영을 상징하는 시내로 다시 데려오시고, 시냇가에서 그분의 양 떼를 먹이신다. 이렇게 양 떼를 먹이시는 것은 그분의 풍성을 믿는 이들에게 먹이시는 것을 상징한다 — 겔 34:13, 계 22:1-2상, 고전 12:13, 시 36:8.
      D. 주님은 그분의 양들을 우리의 생명 공급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좋고 풍성한 풀밭으로 다시 데려오시고, 그들을 눕게 하신다. 이렇게 양들을 눕게 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내적인 안식을 주시는 것을 가리킨다 — 겔 34:14-15, 시 23:2, 요 10:9, 마 11:28-30.
      E. 주님은 상한 이를 싸매 주시고 병든 이를 강하게 하신다. 주님은 그분의 보살피심과 보양하심을 통해 모든 약한 양을 전쟁터의 위풍당당한 말이 되게 하신다 — 겔 34:16상, 슥 10:3, 11:7.
      F. 주님은 의로운 심판을 집행하심으로 하나님의 회복된 백성 가운데 있는 불공정한 모든 것을 완전히 없애신다. 우리를 보양하시고 우리에게 공급을 주시는 분께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정확한 느낌을 갖게 하신다. 그러한 느낌을 갖게 될 때 우리는 자신을 유죄판결 하며, 그 결과 성도들과 진정으로 하나 되어 한 양 떼가 된다 — 겔 34:17-22, 골 3:15.
      G. 참다윗이신 그리스도께서 목자로 세워지셔서 우리를 먹이시고 채우시며 만족하게 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문제와 책임, 우리 생활의 모든 방면을 포함하여 우리를 돌보신다. 주님께서 우리의 목자로서 우리를 돌보신 결과, 우리는 우리의 왕이신 그분께 순종하며 그분의 왕권의 다스림을 받게 된다 — 겔 34:23, 시 23편, 계 7:17, 22:1-2상.
      H. 주님의 목양을 체험하고 주님의 왕권 아래 머물 때, 우리는 확고하고 변하지 않는 그분의 화평의 언약을 누리게 되며, 더 이상 영적인 어려움과 혼란을 겪지 않게 된다 — 겔 37:24-28.
      1. 주님의 목양 아래서 모든 악한 짐승들 곧 모든 악한 사람들은 주님의 회복된 백성에게 가까이 갈 수 없다 — 겔 34:25상, 비교 행 20:28-29, 빌 3:2-3.
      2. 주님은 우리의 멍에를 부수시고, 우리를 노예 상태에서 구출하시며, 우리가 원수에게 먹잇감이 되지 않고 평안하고 안전하게 거주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 겔 34:25하, 27하-28.
      I. 주님의 목양을 체험함으로 하나님의 회복된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며, 그들은 하나님 앞에 있게 된다. 이것은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고 하나님을 우리와 하나 되게 하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온전한 교통을 갖는 것, 곧 하나 안에서 교통을 갖는 것을 묘사한다 — 겔 34:30-31.
      J. 주님은 목양을 통하여 우리를 그분의 축복에 대한 누림 안으로 이끄시고, 복된 소나기 아래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 — 겔 34:26-27상, 29, 창 12:2-3, 롬 15:29, 고후 1:12, 15, 슥 10:1.
      1. 민수기 6장 23절부터 27절까지에 있는 축복은 고린도후서 13장 14절에 있는 축복과 같이 삼일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이다. 이 축복은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의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 우리 안에 그분 자신을 분배하시어 우리의 누림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2. 주님의 축복을 얻으려면 우리는 하나를 실행해야 하며, 하나의 실행은 바로 한마음 한뜻이다 — 시 133편, 엡 4:3-4상, 행 1:14, 2:46, 롬 15:5-6.
    • 메시지6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형제들
      +
    • 성경: 삼하 7:12상, 14상, 롬 1:3-4, 8:28-30, 히 2:10-12, 고전 15:31, 36
      Ⅰ. “내가 … 네 씨를 일으킬 것인데 …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 삼하 7:12상, 14상.
      A. 이 말씀은 바울이 로마서 1장 3절과 4절에서 다윗의 씨이신 그리스도께서 부활 안에서 그분의 인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말한 것과 일치한다.
      B. 사무엘기하 7장의 내재적인 의미는 삼일 하나님께서 과정을 거치고 완결된 그분의 삼일성 안에서 그분 자신을 그분께서 선택하신 사람들 안으로 일해 넣으신다는 것이다.
      C. 사무엘기하 7장 14절 상반절을 인용한 히브리서 1장 5절 하반절에 따르면, 다윗의 씨는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신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이다 — 히 1:5상, 6.
      D. 사무엘기하 7장 12절 상반절의 ‘네 씨’와 14절 상반절의 ‘나의 아들’은 다윗의 씨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 다시 말하면 사람의 씨가 신성한 아들이 된다는 것을 함축한다 — 롬 1:3-4.
      E. 이것은 하나님의 경륜의 의도가 하나님 자신을 사람이 되게 하심으로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는 것임을 함축한다.
      F. 다윗의 씨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에 관한 이 말씀은 신약에서 매우 분명하게 이어지고 발전된다 — 마 22:41-45, 계 22:16.
      Ⅱ. 사도행전 13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씨에서 이스라엘에게 한 구주를 이끌어 오셨으니, 바로 예수님이십니다.”(23절)라고 말했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심으로 … 이 약속을 온전히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시편 제이 편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33절)라고 말했다.
      A. 사도행전 13장 32절과 33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조상들에게 약속되었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살리심으로 이 약속을 이루어 주셨음을 본다.
      B. 부활은 사람 예수님께 일종의 출생이었다.
      1. 그분은 부활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시어 많은 형제들 가운데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다 — 롬 8:29.
      2. 그분은 영원부터 하나님의 독생자이셨다 — 요 1:18, 3:16.
      3. 육체가 되신 후 부활을 통해 그분은 인성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셔서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다 — 히 1:6.
      C. 바울은 “너는 내 아들이다. /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하는 시편 2편 7절에서 주님의 부활을 볼 수 있었다.
      1. 바울은 ‘오늘’이라는 말을 주님의 부활의 날에 적용했다.
      2. 이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하나님의 맏아들로서의 그분의 출생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살리신 것은 곧 예수님을 하나님의 맏아들로 낳으신 것이었다 — 행 13:33.
      D. 육체 되심을 통해 하나님의 독생자는 인성을 입으시고 하나님-사람이 되셨다(요 1:14, 18, 눅 1:35). 그런 다음 이 하나님-사람은 부활 안에서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의 맏아들로 태어나셨다(행 13:33, 히 1:6, 롬 8:29).
      1. 육체 되심 이전에 하나님의 독생자에게는 인간 본성이 없으셨다. 그분에게는 신성한 본성만 있으셨다.
      2.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맏아들에게는 신성한 본성뿐 아니라 인간 본성도 있으시다.
      E.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맏아들로 태어나셨고, 동시에 그분의 모든 믿는 이들도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로 태어났다 — 벧전 1:3, 히 2:10.
      1. 이 많은 아들들 가운데 맏아들만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 — 벧전 1:3, 히 2:10.
      2. 이 하나님의 독생자는 또한 그분의 부활한 인성 안에서 하나님의 맏아들이시다 — 롬 8:29.
      3. 맏아들은 신성과 인성을 둘 다 갖고 계시며, 그분의 믿는 이들로서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인 우리도 인간 본성과 신성한 본성을 둘 다 소유하고 있다 — 벧후 1:4.
      Ⅲ. ‘다윗의 씨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어 하나님의 맏아들로 인정되시는 과정을 말해 준다 — 삼하 7:12-14상, 롬 1:3-4, 마 22:45, 계 22:16.
      A.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분별되었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복음이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위한 아들의 자격에 대한 복음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 롬 1:1, 3-4, 8:28-30, 12:5.
      B. 로마서 1장 3절과 4절은 사무엘기하 7장 12절부터 14절 상반절까지에 있는 예표에 나오는 예언의 성취로서,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는 것의 비밀을 밝혀 준다.
      1.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독생자(요 1:18)이신 그리스도는 육체 되심에 의해 육체 곧 인간 본성을 입으셨는데, 이 인간 본성은 신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인성 안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셨다.
      a. 예수님은 인성 안에서 다윗의 씨, 곧 하나님의 옛 창조물(옛사람—롬 6:6)에 속한 사람의 씨이셨다 — 골 1:15하.
      b. 그리스도는 인성 안에서 다윗의 씨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옛 창조물과 함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고, 마귀를 멸망시키셨으며, 육체 안에서 죄를 유죄판결 하셨고, 세상을 심판하셨다 — 롬 6:6, 히 2:14, 롬 8:3, 고후 5:21, 요 3:14, 12:31.
      2. 부활 안에서 그분의 인성은 신화(神化) 곧 ‘아들화’되었는데, 이것은 그분께서 신성에서뿐 아니라 인성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음을 의미한다 — 롬 1:3-4.
      a. 부활 안에서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시어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신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다 — 롬 8:29.
      b.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그분께서 인정되시고 영광스럽게 되시고 부활하시는 가장 좋은 길이었다.
      1) 하나의 씨가 땅에 묻혀 죽는다면, 그 씨는 결국 싹이 나고 자라고 꽃이 필 것이다. 왜냐하면 씨의 생명의 작용은 죽음과 동시에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 요 12:23-24.
      2)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룩한 영 곧 신성은 그분의 죽음 안에서 작용하게 되었고, 부활 안에서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꽃피셨다’.
      3) 그리스도는 그분의 육체에 따르면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그분의 영에 따르면 강하게 되시고 매우 활발하게 되셔서 신성을 그분의 인성 안으로 넣으시어 그 인성을 신성하게 만드셨다. 이것이 바로 ‘인정되다’의 의미이고, 이것이 아들화되는 것이다 — 벧전 3:18.
      c. 그리스도의 인성은 거룩한 영 곧 그리스도의 신성에 의해 인정되고 표시되고 높이 올려져 신성에까지 높아졌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는 인성에 있어서 다시 태어나시어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다 — 행 13:33.
      1)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서 거듭난 첫 번째 분이셨다 — 롬 8:29.
      a) 그분의 인성은 그분의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났다. 그분의 인성은 사람에게 속하며, 하나님의 아들로 여겨질 수 없고 사람의 아들로 여겨졌다.
      b)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의 인성을 높이 올렸고 그분의 신성을 이 인성 안에 넣었다. 따라서 그분의 인성은 이 부활에 의해 다시 태어나 하나님의 아들의 일부분이 되었다.
      2) 원형은 하나님의 맏아들이고, 재생산은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 곧 이 원형의 지체들이며, 이 지체들은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는 그분의 몸이 된다 — 벧전 1:3.
      Ⅳ. ‘다윗의 씨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우리가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로 인정되는 과정을 말해 준다 — 히 2:10-11.
      A. 그리스도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인정되는 과정, 곧 아들화되고 신화되는 과정에 있다 — 롬 8:28-29.
      B.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이 우리의 영 안에 심어졌다 — 롬 8:10.
      1. 땅에 뿌려진 씨처럼 이제 우리도 반드시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 요 12:24-25.
      2. 이것은 우리의 겉사람이 소멸되게 하지만, 우리의 속생명은 자라고 발전하여 궁극적으로 꽃피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부활이다 — 고전 15:31, 36, 고후 4:10-12, 16.
      3. 우리가 생명 안에서 자라 생명 안에서 변화될수록, 더욱더 하나님의 아들들로 인정된다.
      a. 자라려면 우리에게 주님께 돌이켜진 마음과 하나님을 향해 순수한 마음이 필요하다 — 고후 3:16, 18, 마 5:8, 딤후 2:22.
      b. 자라려면 우리는 말씀의 순전한 젖과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 벧전 2:2, 히 5:12-14.
      c. 자라려면 우리에게 은사 있는 지체들의 물 주는 것이 필요하다 — 고전 3:6상, 요 7:37-39, 잠 11:25.
      d. 우리의 환경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해 그리고 우리의 많은 실패로 말미암아 우리의 추한 자아는 허물어지고, 주님은 우리 안에서 일하실 더 큰 기회를 얻으신다 — 롬 8:28-29.
      e. 어느 날 이 과정은 완성될 것이고, 영원토록 우리는 우리의 영과 혼과 몸에 있어서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와 똑같게 될 것이다 — 요일 3:2, 롬 8:19, 23, 찬송가 764장 2절.
      C. 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며, 이러한 부활에 의해서 우리 또한 하나님의 아들들로 인정되는 과정 중에 있다 — 롬 8:11.
      1. 우리가 인정되고 아들화되고 신화되는 과정은 네 가지 주된 방면, 곧 거룩하게 됨과 변화됨과 같은 형상이 됨과 영광스럽게 됨을 포함하는 부활의 과정이다 — 롬 6:22, 12:2, 8:29-30.
      2. 인정되는 과정의 열쇠는 부활인데, 부활은 바로 우리의 영 안에 계시는 솟아오르시는 영, 인정하시는 영, 생명의 능력으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이다 — 요 11:25, 롬 8:10-11, 행 2:24, 고전 15:36, 5:4.
      a. 우리는 어떻게 영을 따라 행하는지, 곧 인정하시는 영을 어떻게 누리고 체험하는지를 배워야 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 — 롬 8:4, 14.
      b. 그 영을 접촉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거룩하게 되고 변화되고 영광스럽게 되어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더욱더 하나님이 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여 새 예루살렘을 완결하기 위한 것이다 — 고전 12:3, 롬 10:12, 8:15-16, 갈 4:6.
      Ⅴ. 하나님의 목적은 그분의 표현을 위해 그분의 맏아들의 많은 형제들을 산출하시는 것이다.
      A. 로마서 8장 29절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루도록 우리를 미리 정하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B. 맏아들에게 많은 형제들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 마 28:10, 요 20:17.
      C. 그리스도는 맏아들로서 신성과 인성이 있으시고, 우리는 그분의 많은 형제들로서 인성과 신성이 있다. 맏아들과 많은 아들들이 모두 부활 안에서 동일한 하나님에게서 태어났다.
      D. 히브리서 2장 11절은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한 분에게서 났으므로, 예수님께서 그들을 형제들이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라고 말한다.
      E. 맏아들은 원형이시고, 우리는 대량 생산품이다. 그리스도는 원형과 틀과 본이시며,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넣으시어 우리가 그분의 형상으로 빚어지게 하셨다.
      F. 그분의 많은 형제들인 우리는 지금 성숙의 과정에 있으면서 그분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 가고 있다.
      G. 시편 22편 22절을 인용한 히브리서 2장 12절은 “내가 주님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며, 내가 교회 가운데서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겠습니다.”라고 말한다.
      H. 히브리서 2장 12절에 따르면, 교회는 함께 결합되고 연합된 두 본성과 두 생명을 가지신 하나님의 맏아들의 형제들로 이루어진 단체적인 구성체이다.
    • 메시지7
      존귀와 영광에 이르는 긍휼의 그릇들, 밀알들, 포도나무의 가지들
      +
    • 성경: 롬 9:21, 23, 행 9:15, 고후 4:7, 요 12:24, 15:1, 4-5, 7
      Ⅰ.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은 존귀와 영광에 이르는 긍휼의 그릇들이다. 우리는 긍휼과 존귀와 영광이신 그리스도를 담는 그릇들이다 — 롬 9:21, 23.
      A.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들을 그분의 그릇, 그분의 질그릇으로 지으시어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담고 그분으로 채워지게 하심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여 그분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단체적인 그릇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게 하시는 것이다 — 창 2:7, 행 9:15, 롬 9:21, 23, 고후 4:7, 딤후 2:20-21, 마 25:2-4, 8-9, 슥 4:11-14, 비교 계 3:18.
      B. 바울의 열네 서신서 전체는 두 단어, 즉 ‘열린 그릇’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실 수 있는 정도는 우리가 열려 있는 정도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다만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고 우리 자신을 그분께 열어 두는 것이다 — 왕하 4:1-7, 마 5:3, 요 1:16, 사 57:15, 66:1-2.
      2. 쇠퇴는 자기만족에서 시작하고, 발전은 배고픔과 목마름에서 시작한다 — 신 4:25, 눅 1:53, 빌 1:25, 계 3:16-18.
      C. 우리는 긍휼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담도록 긍휼의 그릇들로 창조되었다 — 롬 9:11-13, 16, 20-21, 23, 애 3:21-23, 눅 1:78-79.
      1. 하나님의 긍휼은 하나님의 속성 중 가장 멀리까지 미치는 것이며, 이 긍휼로 인해 우리는 가련한 위치에서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받을 만한 상태로 구원받는다 — 엡 2:1-4, 히 4:16.
      2. 하나님의 긍휼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복음에 반응하지 않을 때 우리는 복음에 반응하였고, 다른 사람들이 생명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거절했을 때 우리는 이 말씀을 받아들였으며, 다른 사람들이 주님의 회복의 길을 취하지 않고 물러났을 때 우리는 이 길을 취했다 — 찬송가 234장 3절.
      3. ‘긍휼’은 우리의 비참한 상태에 대한 반응으로서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외적인 행동을 가리키며, ‘불쌍히 여기는 것’은 그분의 사랑의 본질에서 비롯된 그분의 내적인 애정을 가리킨다 — 롬 9:15, 마 9:36.
      4. 우리는 매일 아침 자애로운 분이신 하나님을 접촉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왕국의 실재 안에 살면서 다른 이들에게 긍휼을 베풀고 다른 이들을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 — 애 3:21-23, 마 5:7, 7:1.
      D. 우리는 귀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담도록 귀한 그릇들로 창조되었다. 귀한 그릇들은 예방접종자들, 곧 교회의 하락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예방접종하는 이들이다 — 딤후 2:20-22, 삿 9:9, 삼상 2:30.
      1. 예방접종자는 교사, 그리스도 예수님의 선한 사역자, 생명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고 자신의 영을 사용하여 교회생활을 위해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사는 이이다 — 딤후 2:2, 1:13-14, 딤전 4:6-7, 6:20.
      2. 예방접종자는 군인으로서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의 다른 가르침들에 대항해 싸우면서 사도의 사역에 따라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며, 생명으로 충만하여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다스림으로써 하나님의 마지막 원수인 죽음에 맞서 싸운다 — 딤후 2:3-4, 딤전 1:18, 롬 8:6, 11, 5:17.
      3. 예방접종자는 경기자로서 자신의 피난처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피함으로써 정상적인 교회생활을 하며,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이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이신 그리스도를 추구한다 — 딤후 2:5, 히 6:18-20, 딤후 2:22.
      4. 예방접종자는 농부로서 모든 것에 적응하는 생명에 의해 하나님과 함께 일하여 생명의 씨를 사람들 안에 뿌리고, 그분의 건강한 말씀에 의해 생명의 영으로 그들에게 물을 준다 — 딤후 2:6, 고전 3:6, 9, 고후 6:1상, 눅 8:11, 요 7:38, 6:63, 고후 3:6.
      5. 예방접종자는 일꾼으로서 (목수가 곧게 자르는 것처럼) 진리의 말씀을 곧게 자른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여러 부분을 조금도 왜곡되지 않게 올바르고 곧게 밝혀 준다.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고, 독에 대해 예방접종을 하며, 죽음을 삼키고, 빗나간 믿는 이들을 합당한 노선으로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밝혀 주는 것이 필요하다 — 딤후 2:15, 비교 행 26:18, 시 119:130, 133.
      E. 우리는 영광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담는 영광의 그릇이다.
      1. 영광은 표현되시고 나타나신 하나님 자신이다 — 렘 2:11, 행 7:2, 엡 1:17, 고전 2:8, 벧전 4:14, 골 2:9.
      2. 질그릇인 우리 안에는 영광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라는 이 보배가 거하고 있다(고후 4:7). 우리 안에 거하고 있는 ‘이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고후 4:6), 곧 그리스도의 임재, ‘그리스도의 인격’(2:10)이다.
      3.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돌이킬 때,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임재이신 주 영을 바라보며,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데, 이것은 주 영에게서 비롯된다’ — 고후 3:16-18.
      4.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 자신이 주님을 보는 것이며, 주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주님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사 60:1, 5.
      Ⅱ.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이들은 밀알들이다 — 요 12:24.
      A.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산출된 많은 밀알들은 한 떡 곧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기 위해 있다. 소제물로 상징된 것처럼, 밀알들은 부서지고 기름과 연합되고 화덕에서 구워지고 한 떡으로 함께 섞여 한 덩어리가 된다 — 고전 10:17, 레 2:4-5.
      B. 주님은 땅에 떨어진 밀알처럼 죽음을 통해 그분의 혼생명을 잃어버리심으로써, 부활 안에서 그분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불을 해방하시어 ‘많은 밀알들’에게 주셨다. 많은 밀알들인 우리도 반드시 죽음을 통해 우리의 혼생명을 잃어버림으로써 부활 안에서 영원한 생명이라는 불을 누리고 이 불을 해방하여 다른 이들에게 주어야 한다 — 요 12:24-26, 눅 12:49-50, 고전 15:31, 36, 고후 4:12.
      C.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처럼 우리의 겉사람은 부서지고 소모되고 있으며, 그 결과 우리의 속사람은 매일 새로워질 수 있다 — 고후 4:16, 10-11, 딛 3:5, 엡 4:23, 5:26.
      D. 영적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위해 반드시 매일 세 가지를 읽어야 한다. 즉 성경을 읽어야 하고, 자신의 내적 느낌을 읽어야 하며, 자신의 환경과 상황 곧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일들과 문제들을 읽어야 한다 — 롬 8:6, 비교 잠 16:9.
      E. 우리는 다른 이들이 바뀌기를 기도하며 바랄지 모르지만, 우리가 이런 식으로 기도할수록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임을 더 분명히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환경을 조성하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루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나타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 롬 8:28-29, 비교 6:3-4, 왕상 7:17, 20-22.
      F. 우리는 운행하시는 영과 협력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안배하신 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 — 빌 4:12, 엡 3:1, 4:1, 6:20, 고전 7:24.
      G. 우리는 하나님께 불평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불평이 최상의 기도, 하나님께 가장 유쾌한 기도일 수 있다. 우리가 불평하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기뻐하시는데, 이는 우리가 그분의 맏아들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루도록 그분께서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이 이루어지게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 비교 시 102편, 제목.
      Ⅲ.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이들은 포도나무의 가지들이다 — 요 15:1, 4-5.
      A. 그리스도인 포도나무와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인 그 가지들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로서 그분의 풍성으로 자라 그분의 신성한 생명을 표현한다 — 요 15:1-5.
      B.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를 떠나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처럼 우리는 그분 안에 거하면서, 즉 그분 안에 머물고 남아 있고 거주하면서, 우리의 어떠함이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죽지 않는 생명이신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 살아야 한다 — 요 14:6상, 고후 5:4.
      C.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함으로써 그분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여 열매 맺음을 통해 신성한 생명을 표현하는 것이다 — 요 15:9-10, 16-17.
      1. “내가 새 계명을 여러분에게 줍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같이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이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이것으로써 여러분이 내 제자인 것을 알 것입니다.” — 요 13:34-35, 비교 요일 4:18-19.
      2.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으로 채워질 것이고, 우리를 내적으로 채운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 밖으로 나올 것이다. 주님을 극도로 사랑할 때 우리는 주님을 말해 낼 수 있도록 자격을 갖고 온전하게 되며 준비된다 — 요 21:15-17.
      D.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매일 매시간 우리 자신을 그분과의 교통 안에 두어, 우리와 주님 사이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교회생활 전체가 신성한 교통에 달려 있는데, 신성한 교통은 바로 순환하시는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누림을 위해 그분의 온 존재를 우리 안으로 일해 넣으시고, 흘러 들어오게 하시며, 전달하시고, 운반하시며, 옮겨 주시고, 분배하시는 것이다 — 요일 1:3, 고후 13:14.
      E.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하려면 우리는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생명을 얻기 위해 주님께 나아감으로써 그분의 기록된 말씀 안에 거한다면, 영과 생명인 그분의 즉각적인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할 것이다 — 요 15:7, 5:39-40, 8:31, 6:63.
      F. 참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의 가지들로서 우리는 각 방면에서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를 자라게 하며,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그리스도를 번식시켜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을 온전히 앎으로써 자라는 것이다’ — 골 1:10.
      G. 열매 맺음은 속생명의 풍성이 넘쳐흐른 것이다. 속생명이 차고 넘칠 때 흐름이 있게 되고, 이 흐름은 다른 이들에게 도달하고 그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 그들을 남아 있는 열매가 되게 하여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할 것이다 — 요 15:16.
    • 메시지8
      마태복음에 나오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체험함
      +
    • 성경: 마 2:1-2, 3:11, 4:12-16, 8:20, 16:16, 21:5
      Ⅰ. 그리스도는 하늘의 왕이시다 — 마 2:1-2, 21:5.
      A.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 곧 구약에 예언되신 메시아이심을 증명한다 — 마 1:1, 17, 2:1-2, 27:11, 37.
      B. 하늘의 왕은 오만한 위엄 가운데 오시지 않고 부드럽고 겸손하고 온유하게 오셨다 — 마 21:5.
      Ⅱ. 주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 마 16:16.
      A.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으신 분을 가리키며,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과 승천과 다시 오심을 통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시는 주님의 위임을 말한다 — 마 16:21, 27.
      B.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은 삼일 하나님의 충만한 표현을 위해 아버지의 체현이시고 그 영으로 완결되시는 그분의 위격을 말한다 — 요 14:10-11상, 고전 15:45하.
      Ⅲ. 그리스도는 사람의 아들이시다 — 마 8:20, 11:19, 13:37, 16:13.
      A.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통치권을 이 땅에 이끌어 오시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뛰어나게 하시는 사람이시다 — 마 9:6, 12:8, 13:41, 16:27-28.
      B. 천국을 세우시기 위해 주 예수님은 승리의 사람, 곧 사탄을 패배시키고 어떤 곤경이나 반대나 공격도 맞설 수 있는 사람으로서 서 계셨다 — 마 4:4, 12:40, 26:64.
      Ⅳ. 그리스도는 침례 주는 분이시다 — 마 3:11.
      A. 주님의 성령 침례는 그분의 구속에 근거한 것으로서, 천국을 개시하여 그분의 믿는 이들을 천국 안으로 이끌었다 — 마 3:12.
      B. 주님의 불 침례는 그분의 심판에 근거한 것으로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불 못에 넣으며 천국을 종결지을 것이다 — 마 3:12.
      Ⅴ. 그리스도는 죽음의 어둠 속에서 빛나는 생명의 빛이시다 — 마 4:12-16.
      A. 천국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은 땅에 속한 능력으로 시작되지 않고 하늘에 속한 빛으로 시작되었다.
      B. 주 예수님은 운동이나 혁명을 일으키지 않으셨다. 그보다 그분은 천국을 세우시기 위해 제자들을 매혹하여 큰 빛이신 그분 자신께 이끄셨다.
      Ⅵ. 왕국을 위해 사람들을 불러 자신을 따르게 하실 때, 그리스도는 의사로서 사역하셨고 그분 자신을 신랑으로 계시하셨다 — 마 9:9-15.
      A. 그분은 우리를 천국의 시민으로 재조성하시기 위해 우리를 치료하고 살리는 의사로 오셨다 — 마 9:9-13.
      B. 우리는 그분의 임재 안에 사는 누림을 갖기 위해 신랑이신 그분을 감상해야 한다 — 마 9:14-15.
      Ⅶ. 그리스도는 새 옷을 만들기 위한 생베 조각이시다 — 마 9:16, 눅 5:36.
      A. 육체가 되신 때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까지 그분은 새 옷을 만들기 위한 생베 조각이셨다.
      B. 그리스도는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의롭게 되고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도록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로서 우리를 덮는 새 옷으로 만들어지셨다 — 눅 15:22, 갈 3:27, 고전 1:30.
      Ⅷ. 개인적인 그리스도는 새 포도주이시고, 단체적인 그리스도는 새 가죽 부대이시다 — 마 9:17.
      A. 새 포도주는 활력으로 가득하여 기운을 북돋우며 우리를 열광하게 하고 만족시키는 새 생명이신 개인적인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B. 새 가죽 부대는 새 포도주를 담는 외적인 용기이신 단체적인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 고전 12:12.
      Ⅸ. 그리스도는 목자이시며 수확의 주님이시다 — 마 9:35-38.
      A. 주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그분의 왕국을 세우기 위한 사역에서 목자로서 사역하셨다 — 마 9:35-36.
      B. 우리가 수확의 주님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이상을 본다면, 수확할 일꾼들을 보내 주시기를 그분께 간청할 것이다 — 마 9:37-38.
      Ⅹ.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친구이시며 하나님의 지혜이시다 — 마 11:19.
      A. 죄인들의 친구이신 그리스도는 그들의 문제를 동정하시고 그들의 슬픔을 함께 느끼신다 — 마 11:19상.
      B.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지혜로 하신 것인데, 그 지혜는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었다. 이 지혜는 그분께서 행하신 지혜로운 일로 말미암아 입증되었다 — 마 11:19하, 고전 1:24, 30.
      ⅩⅠ. 그리스도는 안식을 주시는 분이시다 — 마 11:28-30.
      A.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고 아버지의 뜻에 제한받는 것이다 — 마 11:29, 요 4:34, 5:30, 6:38.
      B. 주님은 언제나 아버지의 뜻으로 만족하셨기 때문에, 항상 마음에 안식이 있으셨다. 이제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에게서 배우라고 하신다 — 마 11:28-30.
      ⅩⅡ. 그리스도는 더 큰 요나이시다 — 마 12:39-41, 16:4.
      A. 요나는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 마 12:39-41.
      B. 주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유대의 종교적인 세대를 위해 가장 큰 표적, 곧 죽고 부활하시는 것 외에 아무것도 행하려고 하지 않으셨다. 이것은 그들이 이 표적을 믿고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 마 16:4.
      ⅩⅢ. 그리스도는 떡이시자 상 아래의 부스러기이시다 — 마 15:21-38.
      A. 하나님의 경륜은 외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음식으로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문제이다 — 마 15:26, 34, 36.
      B. 우리는 떡이신 그리스도, 심지어 상 아래의 부스러기이신 그리스도를 먹음으로써,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분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한다 — 마 15:27.
      ⅩⅣ. 인성 안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를 가진 부활하신 분이시다 — 마 28:18-19.
      A. 인성 안의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에 사람의 아들과 하늘의 왕으로서 모든 권위를 받으셨다 — 마 28:18.
      B. 마태복음은 왕국에 관한 것이고 왕국에는 권위가 필요하므로, 마태복음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민족들을 그분의 제자로 삼기 위한 권위의 문제이다 — 마 28:19.
      ⅩⅤ. 마태복음은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충만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한 놀라운 분이신 그분께 경배하고 그분을 누리며 체험해야 한다 — 마 2:11, 28:9, 17, 17:5.
    • 메시지9
      기둥들과 발광체들
      +
    • 성경: 계 3:7-13, 빌 2:12-16
      Ⅰ. 삼일 하나님 안에서 기둥들이 되려면, 우리는 교회를 위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 곧 빌라델비아의 길을 취해야 한다. 빌라델비아에 있는 교회로 상징된 회복된 교회만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고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을 만족시킬 수 있다 — 계 3:7-13, 비교 21:22.
      A. 빌라델비아에 있는 이기는 믿는 이들은 진리의 기둥과 기반인 교회를 위해 현재의 진리를 알고, 진리의 절대성을 지키며, 진리로 조성된 기둥들이다 — 벧후 1:12, 딤전 3:15-16.
      B. 빌라델비아에 있는 이기는 믿는 이들은 그들이 가진 것을 굳게 붙잡고 있는데, 그들이 소유한 것은 ‘이 사역’ 곧 유일한 신약 사역이다. 사실상 주님의 회복은 우리를 신약의 유일한 사역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 계 3:11, 고후 4:1.
      1. 그 영의 사역은 새 언약의 사역으로서 우리를 신화(神化)한다. 이 사역이 우리를 신화하는 길은 신성하고 비밀한 ‘먹’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의 마음에 써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편지들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신성한 계시의 최고봉이다 — 고후 3:3, 6, 8, 18, 4:1, 비교 계 2:7하, 22:17상.
      2. 의의 사역은 우리의 객관적인 의와 주관적인 의이신 그리스도의 사역이다. 그분은 우리의 객관적인 의로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우리의 주관적인 의로서 하나님의 유기적인 구원 안에서 그 영의 변화시키는 일에 의해 우리 안으로 ‘수놓아지셔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아 내고 참되게 표현하도록 하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사람의 생활이다 — 고후 3:9, 시 45:1, 13-14, 롬 5:10.
      3. 화목의 사역은 법리적인 구속을 위해 죄들을 용서함으로 세상을 그리스도와 화목하게 하며, 유기적인 구원을 위해 영 안에 곧 지성소 안에 사는 사람들이 되도록 믿는 이들을 그리스도와 화목하게 하는 사역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을 따라 사람들을 목양하는 것이다 — 고후 5:18-21, 벧전 5:1-4.
      4. 온전하게 되어 기둥이 되는 길은 이 사역을 굳게 붙잡고, 하나님의 경륜의 긍정적인 내용을 마음껏 누리며, 주님의 머리의 권위 아래서 그분의 움직임의 현재의 흐름 안에 머물고, 죽음과 분열을 멀리하는 것이다 — 딤후 3:10, 딤전 4:15, 롬 8:6, 16:17, 요일 2:18-20, 고전 11:19, 민 16:3, 7.
      C. 빌라델비아에 있는 이기는 이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신성한 계시의 최고봉에 이른 것이다.
      1. 주님은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 중 빌라델비아에 있는 교회만을 유일하게 높이 평가하셨다. 주님은 그들이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그들을 높이 평가하셨는데, 이것은 그들이 사도들의 가르침,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건강한 가르침, 신성한 계시의 최고봉의 말씀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계 3:8, 딤후 3:16-17, 딤전 1:3-4.
      2. 이기는 이들이 성전의 기둥들이 되는 것은 그들이 삼일 하나님 안에서 기둥들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성전은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과 어린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기는 이들 안으로 건축되시어 그들을 살아 있는 보배로운 돌들로 만드시고, 그들은 하나님 안으로 건축되어 하나님 안에서 돌기둥들이 되며, 하나님과 합병되어 하나님과 사람의 상호 거처가 된다 — 계 3:12상, 21:22, 3, 시 90:1, 요 14:23, 비교 왕상 7:15-22.
      3.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님의 새 이름이 이기는 이들 위에 기록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새 예루살렘의 본성과 주님의 인격, 이 모두가 이기는 이들 안으로 일해 넣어져서, 그들에게 삼일 하나님이라는 ‘이름표’가 붙여지고 그들이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된 것을 가리킨다 — 계 3:12하, 22:4하.
      D. 빌라델비아에 있는 이기는 이들의 특징은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림으로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는 것이다 — 계 3:7, 사 22:15, 20-24.
      1. 빌라델비아에 있는 이기는 이들은 적은 능력을 가졌다. 이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우리가 그분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으로 그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임을 가리킨다 — 계 3:8, 고후 12:7-10, 막 14:8.
      2. 빌라델비아에 있는 이기는 이들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사랑한다. 그들에게 ‘주님의 말씀은 금과 은 수천 닢보다 낫다’(계 3:8, 시 119:72, 140). 그들은 하나님께서 숨으로 내쉬신 성경을 온갖 기도로 받아들여 하나님의 숨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된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건강한 가르침 안에 계속 머묾으로써 하나님께서 숨으로 내쉬신 성경을 받아들인다(엡 6:17-18, 딤후 3:14-17, 비교 딤전 6:3-4).
      3. 빌라델비아에 있는 이기는 이들은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는다(계 3:8).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외의 다른 모든 이름을 버리며, 주님의 이름을 불러 그분의 풍성을 받아들이고(롬 10:9-10, 12-13),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린다(빌 2:11).
      E. 빌라델비아에 있는 이기는 이들의 특징은 형제 사랑이다. 사랑이 그들 가운데 넘쳐 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따라, 다시 말하면 그들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과 그들의 구주 그리스도의 목양하고 찾는 영을 따라 사람들을 목양한다.
      1. 주님의 회복은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의 회복이다. 빌라델비아에 있는 이기는 이들은 하나라는 참된 터 위에 서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자신을 지키며, 주님을 사랑하고 모든 형제들을 사랑한다 — 유 20-21, 고후 5:14, 요 12:3, 눅 7:47, 요일 3:14-16, 비교 시 133편.
      2. 교회 안에서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것은 모든 것에서 주님께 첫째 위치를 드림으로써 그분을 첫째가는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과 반대된다 — 요삼 9, 골 1:18하.
      3. 활력 그룹들 안에는 반드시 사랑이 넘쳐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심으로 우리에게 그분의 사랑을 주입하셨고, 그분과 형제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사랑을 우리 안에 산출하셨다 — 고전 12:31하, 13:4-8, 13, 요일 3:14.
      F. 빌라델비아의 길은 시편 23편에 계시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길, 곧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하늘에서의 사역 안에서 교회를 목양하심으로써,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 그분 자신을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하시는 길이다. 이 길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여 신성한 계시의 최고봉에 이르게 된다.
      Ⅱ. 어둡고 부패한 세상 가운데서 우리의 기능은 발광체들로 빛나서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것이다 — 빌 2:12-16.
      A. 그리스도는 해이시며, 달인 교회와 행성들인 믿는 이들은 생명의 말씀을 밝혀 그분을 반사한다.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것은 그리스도를 살아 냄으로써 이 말씀을 세상에 적용하고 제시하고 제공하는 것이다 — 행 5:20.
      B.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는 하나님(빌 2:13)은 공급하시는 영이시자(1:19), 부활 능력이시자(3:10),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이시다(4:13). 발광체들로서 빛나는 것(빌 2:15)은 그리스도를 확대하는 것이고(1:20),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것(2:16)은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다(1:21상).
      C. 우리는 부활 능력이시자,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는 하나님이시자,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어 이 세상에서 발광체들로 빛을 발하여 그분을 확대하게 하시는 분이신 그리스도를 알기를 열망해야 한다 — 빌 3:10, 2:13, 4:13, 1:20.
      D. 베드로를 물리적으로 감옥에서 해방한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었지만, 바울이 감옥에 남아 있는 동안 체험한 능력은 부활의 능력이었다 — 행 5:18-20, 빌 1:19, 3:10.
      1. 하나님의 신약 경륜 안에서 하나님의 의도는 외적인 기적이 아니라 내적인 기적이다. 내적인 경이는 그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으로 일해 넣어지시어 우리의 구원이 되심으로, 약함 가운데 있는 우리를 내적으로 붙들고 강화하고 능력 있게 하시어 그리스도를 비추어 내게 하시는 것이다 — 고후 12:7-10.
      2.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는 우리가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서도 그리스도를 비추어 냄으로 표현하는 비결이시며, 이 비결의 비결은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의 매일, 매 순간의 구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포함하신 영이다 — 빌 1:19, 4:23.
      E. 불평하고 따지는 것은 모두 우리가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는 것을 방해하여,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비추지 못하시게 한다 — 빌 2:14.
      1. 불평은 불만에 차서 은밀히 투덜거리고 구시렁거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트집을 잡는 것, 은밀한 반발, 불쾌함, 투정이 포함된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불평하다가 멸망시키는 이에게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처럼 불평하지 마십시오.” — 고전 10:10.
      2. 따지는 것은 저의에 의심이나 불신이 있는 논쟁과 토론이다. 여기에는 여러 질문을 던지는 것, 의심하는 것, 추정하거나 단정짓는 것이 포함된다 — 비교 딤전 1:3-6, 6:3-4, 고후 11:2-3.
      3. 반역적이거나 비방하는 말은 이유를 따지는 데서 나온다. 주님의 종은 이유를 따지는 데서 구출받아야 한다. 그는 주님께 빛 비춤을 받아 ‘복된 눈멂’을 얻어 어둠의 권세 아래 옳고 그름의 영역 안에 있지 않고, 빛의 권위 아래 생명의 영역 안에서 그리스도의 머리의 권위 아래 살아야 한다 — 행 22:10, 골 1:12-13, 롬 9:20-21, 11:34, 비교 행 16:25.
      4. 사람의 반역은 말과 사상과 이론에서 드러난다. 사상과 이론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이들의 생각 안에 있는 하나님의 대적자인 사탄의 견고한 요새들이다. 영적 전쟁을 통해 이론들은 무너져야 하고, 모든 사상은 사로잡혀 그리스도께 순종해야 한다 — 고후 10:3-5.
      5. 레위기 18장부터 22장까지에서 주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명령하실 때마다, 명령들 사이에 “나는 여호와다.”라는 말을 삽입하셨다. 심지어 ‘왜냐하면’이라는 말조차 없다. “나는 여호와다.”가 바로 이유이다.
      F. 그리스도의 발광체들로서 그리스도를 살고 비추어 내도록 불평하고 따지는 데서 구원받는 길은 우리의 내적 원동력이신 그리스도와의 접촉 안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분과의 접촉 안에 머무르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을 위해 생명의 말씀이신 그분을 누리고, 기도를 통해 그분과의 교통 안에 머물며, 놀라우신 영이신 삼일 하나님에 의해 우리의 놀라운 영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빌 1:19, 2:13, 3:10, 4:13, 2:15, 4:6, 살전 5:16-20.
    • 메시지10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고 뛰어난 부활에 이름
      +
    • 성경: 빌 3:10-11
      Ⅰ.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에 대해 말한다. 이러한 표현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신의 생활의 틀로 취하기를 갈망했음을 가리킨다.
      A.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탁월함,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김, 그리스도를 얻음, 그분 안에서 발견됨, 그분을 앎, 그분의 부활 능력을 앎, 그분의 고난의 교통을 앎은 모두 한 가지,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으로 귀결된다 — 빌 3:7-10.
      B.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은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의 기초이다 — 빌 1:20-21상, 3:9-10.
      C. 그리스도의 죽음의 틀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살기 위해 그분의 타고난 인간 생명을 계속 죽음에 넣으신 것을 가리킨다 — 요 6:57상.
      1. 주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십자가에 못 박힌 생활을 하셨다. 십자가에 못 박힌 생활을 하심으로써 그분은 하나님을 향해 살아 계셨고 하나님을 사셨다.
      2. 그분은 항상 자신의 인간 생명을 죽음에 넘기심으로 그분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이 흘러나올 수 있게 하셨다 — 요 10:10하-11, 17.
      3. 그분은 사시면서 또한 죽고 계셨다. 즉 새 창조물 안에 있는 삶을 사시기 위해 옛 창조물에 대하여 죽고 계셨다. 이것이 빌립보서 3장 10절에 나오는 ‘그분의 죽음’의 의미이다.
      D.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가 같은 형상을 이루어야 하는 틀이다. 이것은 밀가루 반죽이 빵틀에 넣어져서 그 틀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과 흡사하다.
      1.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죽음의 틀 안에 두셨고, 우리가 이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도록 날마다 우리를 형태 짓고 계신다 — 롬 6:3-4.
      2. 우리의 생활은 이러한 틀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야 한다. 곧 신성한 생명을 살기 위해 우리의 인간 생명에 대하여 죽어야 한다 — 갈 2:20, 고후 4:10-11.
      3. 우리가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죽음에 넘긴다면, 우리 안에 또 다른 생명 곧 신성한 생명이 있다는 의식을 가질 것이다. 그러면 이 생명이 해방되어 우리는 체험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게 될 것이다 — 요 10:10하, 요일 5:11-12.
      4. 그리스도의 죽음의 틀 안에서 타고난 사람은 죽음당하고,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히며, 자아는 무효화된다 — 고후 4:16, 롬 6:6, 마 16:24.
      5. 우리가 우리의 환경이 우리를 이 틀 안으로 밀어 넣도록 허락한다면, 우리의 일상생활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모양으로 형태 지어질 것이다 — 롬 8:28-29.
      6.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에 의해 그리스도의 죽음의 틀과 같은 형상을 이룬다 — 빌 3:10, 요 11:25, 엡 1:19-20, 아 2:8-13.
      E.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룰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성취한 그분의 죽음을 체험한다.
      1.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룸으로 우리는 생명을 해방하고 나누어 주고 번성하게 하는 죽음을 죽으신 그리스도를 체험한다 — 요 12:24-25, 고후 4:12.
      2.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더 이룰수록, 우리는 아버지를 더욱더 영광스럽게 한다 — 요 12:28, 13:31.
      3. 그리스도의 죽음을 죽고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룰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끌어당기는 자석이 될 것이다 — 요 12:32.
      4.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수록 우리의 혼생명은 더욱더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에 이를 것이다 — 요 12:25.
      5. 우리가 기꺼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고자 한다면, 우리는 세상을 이기고 사탄을 패배시킬 것이다 — 요 12:31, 히 2:14.
      Ⅱ.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룬 결과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부활에 이르고 도달하는 것이다 — 빌 3:11.
      A. 뛰어난 부활은 이기는 성도들에게 상이 될 탁월한 부활, 특별한 부활이다 — 계 20:4, 6.
      1.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믿는 이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있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의 부활에 참여할 것이다 — 살전 4:16, 고전 15:52.
      2. 주님의 이기는 이들은 그 부활의 특별하고도 탁월한 몫을 누릴 것인데, 그들은 이러한 부활 안에서 왕국을 보상으로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추구했던 것이다 — 히 11:35, 26.
      3. 뛰어난 부활이 우리 그리스도인 생활의 목표와 목적지가 되어야 한다 — 빌 3:11-15상.
      B. 뛰어난 부활에 이르는 것은 뛰어난 부활에 도달하는 것이다. 뛰어난 부활에 이르려면 상을 얻을 수 있도록 경주에서 승리해야 한다.
      C. 뛰어난 부활에 이른다는 것은 우리의 온 존재가 점차적이고 계속적으로 부활하는 것을 가리킨다 — 살전 5:23.
      1.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죽은 영을 부활시키셨다. 그런 다음에 그분은 계속해서 우리의 혼과 우리의 죽을 몸을 부활시키시며, 결국 우리의 온 존재 곧 영과 혼과 몸이 그분의 생명에 의해, 그분의 생명으로 우리의 옛 존재에서 완전히 부활하도록 하실 것이다 — 엡 2:5-6, 롬 8:6, 11.
      2.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룬다면, 우리 존재의 모든 부분이 점차로 부활할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부활의 과정이다.
      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생활을 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에 의해서만 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 빌 3:10-11.
      4.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우리는 옛 창조물에서 새 창조물이 되는 과정을 거친다 — 빌 3:10-11, 고후 5:17.
      D. 뛰어난 부활은 옛 창조물에서 나와 새 창조물이 되는 부활이다 — 갈 6:15, 고후 5:17.
      1. 뛰어난 부활 안에 있다는 것은 옛 창조물에 속한 모든 것을 떠나서 하나님 안으로 이끌리는 것을 의미한다.
      2. 뛰어난 부활 안에는 옛 창조물의 요소가 조금도 없다. 뛰어난 부활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신성한 요소로 충만하다 — 계 21:5상.
      E. 바울에게 있어서 삶은 뛰어난 부활이신 그리스도였다 — 빌 1:21상, 3:11.
      1. 뛰어난 부활은 사실상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탁월하신 그리스도의 인격, 즉 십자가에 못 박힘과 부활을 통해 옛 창조물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신 분이다 — 요 14:3, 20, 히 6:19-20.
      2. 우리가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 자신이 뛰어난 부활이시다 — 빌 1:21상, 3:11, 요 11:25.
      F. 빌립보서 3장 12절에서 바울은 믿는 이들이 일반적인 믿음으로 받는 일반적인 구원은 이미 획득했지만, 부활의 특별한 몫은 아직 획득하지 못했다.
      1. 이 몫을 얻기 위해서 그는 추구하고 달려야 했으며, 경주를 승리로 마쳐야 했다 — 딤후 4:7-8.
      2. 빌립보서 3장 12절에서 ‘추구하다’에 대한 헬라어 단어는 ‘박해하다’에 대한 헬라어 단어와 동일하다. 이 단어는 또한 ‘힘써 전진하다’, ‘뒤를 좇아가다’를 의미한다.
      a. 바울은 상을 획득하고 성숙에 이르기 위하여 그러한 방식으로 경주했다.
      b. 구원받기 전에 그는 그리스도를 박해했다. 그러나 그가 구원받은 후에는 전에 자신이 그리스도를 박해했던 그런 정도로, 그러나 긍정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추구했다.
      G.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부활에 이르러야 한다. 이것이 주님께서 그분의 회복 안에서 전진하시는 유일한 길, 그분께서 그분의 교회를 건축하시는 유일한 길, 우리가 신부를 예비하는 유일한 길, 주님을 다시 모셔 오는 유일한 길이다 — 빌 3:10-11, 마 16:18, 계 19:7-9상, 22:14, 20.
    • 메시지11
      별들, 사내아이, 첫 열매, 수확물, 벽옥과 그 외의 보석들
      +
    • 성경: 계 1:20, 2:1, 12:1-11, 14:1-5, 21:9-11, 18-21
      Ⅰ. 교회가 타락한 시기에 신실한 믿는 이들은 예수님의 살아 있는 증거를 지닌 빛나는 별들이다 — 계 1:20.
      A.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는 야곱에게서 나오는 별이시자 이기는 믿는 이들에게 상으로 주어지는 샛별이시다 — 민 24:17, 계 2:28, 22:16-17.
      B.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따르는 이들은 빛나고 살아 있는 별들, 곧 빛나고 살아 있는 별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다 — 마 2:2-12, 미 5:2, 단 12:3, 계 1:20.
      C. 살아 있는 별들은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과 전부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하늘에 속한, 살아 있는, 최신의, 즉각적인 이상을 따른다 — 행 26:16-18.
      D. 살아 있는 별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축복하는 이들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하여 주님을 찬양하고 믿음으로 그들에 대해 좋게 말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의 축복 아래 있게 될 것이다. 교회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는 이들은 축복을 받을 것이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이들은 저주 아래 있게 될 것이다 — 민 24:9, 엡 1:3, 시 71:14, 103:1-5, 142:7, 창 12:2-3, 마 12:34-37.
      E. 살아 있는 별들은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 성경의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 샛별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떠오르시게 한다 — 벧후 1:19, 요 6:63, 계 2:28.
      F. 살아 있는 별들은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을 누리고 이 영으로 충만하다.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은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해 그들을 강화된 방식으로 살아 있고 빛나게 하신다 — 계 3:1, 4:5, 5:6.
      G. 살아 있는 별들은 교회들의 전달자들, 곧 그 영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귀가 있는 이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달자이시자 하나님에게서 온 신선한 메시지이신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를 누리고 체험함으로, 예수님의 증거를 위해 신선하신 현재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백성 안으로 분배할 수 있다 — 계 1:20-2:1, 말 2:7, 3:1-3.
      H. 살아 있는 별들은 ‘마음에 큰 결심’이 있고 ‘마음에 큰 성찰’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로서 ‘자기들의 길에서’ 하나님과 함께 그분의 원수에 맞서 싸우는 ‘별들’과 같아서 ‘힘 있게 돋는 해’와 같을 것이다 — 삿 5:15-16, 20, 31, 단 11:32, 마 13:43, 비교 단 7:25.
      I. ‘떠돌아다니는 별들’은 하늘에 속한 계시의 변치 않는 진리에 견고히 머무르지 않고, 별과 같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이들이다. 하나님의 증거를 위해 견고한 별들이 되려면, 우리는 교회에 손상을 주는 다음의 일곱 부류의 사람들을 주의해야 한다 — 유 12-13, 19, 비교 고전 3:17.
      1. 암몬은 하나님의 성소(하나님의 거처로서 땅에 장막을 치신, 육체 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함—요 1:14)가 훼손되었을 때, 좋은 땅(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온갖 풍성과 은혜를 지니신 그리스도를 상징함—골 1:12)이 황폐해졌을 때, 유다 집(교회를 상징함—히 3:6)이 쫓겨났을 때 기뻐하였다. 암몬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은혜와 교회를 싫어하는 이들을 상징한다 — 겔 25:3.
      2. 모압 사람들은 유다 집이 더 이상 민족들에게서 분별되지 않은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회를 세상과 연관시키며 교회를 민족들과 같게 만들고 싶어 하는 이들을 상징한다 — 겔 25:8, 계 2:12.
      3. 에돔 사람들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이었다. 그러므로 에돔 사람들과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사촌지간이었다(창 36:1). 에돔은 거듭나지 않은 옛사람을 상징하고, 이스라엘은 거듭난 새사람(롬 6:6, 갈 6:16, 빌 3:3)을 상징한다. 에돔은 이스라엘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하여 끊임없이 보복과 복수를 꾀하였다 — 겔 25:12.
      4. 블레셋 사람들은 좋은 땅과 매우 가까운 곳에서 살았으며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과 섞여 살기도 하였다. 그들은 종교적인 사람들의 타고난 방면을 예표한다. ‘에돔 사람들’과 ‘블레셋 사람들’이 교회생활에 가장 큰 손상을 준다 — 겔 25:15, 고전 3:12, 16-17.
      5. 두로는 하나님의 권익에 관심하지 않고 세상의 부를 추구하는 이들에 대한 예표이다 — 겔 26:2, 28:12-15, 비교 왕상 7:13-14.
      6. 시돈은 이스라엘 집을 찌르는 찔레였고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가시였다. 두로와 시돈은 한 짝으로 간주되는데, 이것은 믿는 이들이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적인 부에 관심하면 그들이 교회생활에 손상을 주는 찔레와 가시가 되어 하나님의 경작지인 교회 안에서 생명의 자람을 방해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 겔 28:21, 24, 마 13:22, 고전 3:9, 비교 계 18:13.
      7. 이집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원을 의지하는 나라이다. 이집트 사람들은 하나님에게서 독립하여 자신의 타고난 지혜를 사용함으로 자신의 천연 자원을 개발하여 공급이 풍부하게 되고 다른 이들에게 공급의 근원이 되려는 사람들을 대표한다 — 겔 29:2-9, 비교 출 4:1-9.
      Ⅱ. 사내아이는 그리스도와 동역하여 그분의 원수에 대항해 싸우고 하나님의 왕국을 이끌어 오는 이기는 이들을 상징한다 — 계 12:1-11.
      A. 사내아이가 되는 길은 우리가 속사람에 이르도록 강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풍성을 체험할 수 있도록 능력을 얻으며, 죽이는 말씀을 기도로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전투 장비를 착용하여 강해지는 것이다 — 엡 3:16, 18, 6:10-11, 17-18, 계 1:16, 19:13-15.
      B. “그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로 그를 이겼으며, 또한 죽기까지 자기들의 혼생명을 사랑하지 않았다.” — 계 12:11.
      1.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온갖 죄에서 깨끗하게 합니다.” — 요일 1:7.
      2. 우리가 증언하는 말은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신성한 사실들을 다른 이들에게 선포하고 선언하는 것이다 — 고전 12:3하, 고후 4:13.
      3. 죽기까지 우리의 혼생명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최고도로 사랑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자아에 의해 살지 않기를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골 1:17, 18하.
      C. 아비가일은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싸우고 전쟁하시는 그리스도와 하나인 교회를 예표한다 — 마 12:3, 삼상 25:42.
      1. 아비가일의 전남편인 (미련한 자를 의미하는) 나발은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를 버리는 데 있어서 얼마나 악한지를 보여 준다. 나발은 다윗이 빈곤할 때 다윗을 멸시하고 배척하고 반대했다 — 삼상 25:10-11, 25, 비교 잠 1:7, 13:20.
      2. 그리스도를 버리고 거절하고 멸시하는 우리의 부패한 본성이 쳐 죽임을 당할 때,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따르고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싸우는 그분의 배필이 된다 — 삼상 25:36-42, 계 1:9.
      D. 기드온과 그의 삼백 용사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끌어 오도록 그리스도와 함께 싸우는 한 무리의 섞인 이기는 이들을 상징한다 — 삿 6:1-6, 11-35, 7:1-8, 19-25.
      1.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 그분의 경륜을 수행하는 데 쓰임받도록 기꺼이 희생을 감수했다 — 삿 7:1-8, 8:4.
      2. 싸우고 수고한 것은 그들이었지만 온 회중이 원수를 내쫓고 수확물을 거두었는데, 이것은 우리가 이길 때 몸 전체가 부흥된다는 것을 상징한다 — 삿 7:22-8:4, 골 1:24, 시 128:5.
      Ⅲ. 초기의 이기는 이들은 하나님의 밭에서 가장 먼저 익은 이들로서 수확 전에 첫 열매로 거두어져 하나님과 어린양께 드려진다 — 계 14:1-5.
      A. 휴거는 주로 우리의 누림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누림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휴거될 준비가 되어야 한다 — 계 12:5, 7-11, 14:1, 4하, 19:7.
      B. 휴거의 의미는 주님의 임재 안으로 데려가지는 것이다. 주님의 임재 안으로 데려가지려면, 우리는 반드시 오늘 그분의 임재 안에 있어야 하고, 주님을 친근하고 친밀하게 접촉하기를 배워야 하며, 주님의 목적을 위해 주님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 고후 2:10, 4:6-7, 요일 1:3.
      C. 이기는 이들의 휴거는 원수를 패배시키고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리기 위한 것이다.
      1. 하나님께는 우리가 휴거되어 그분과 그분의 보좌 앞으로 이끌려 올라가 원수와 맞서 싸우는 것이 필요하시다 — 계 12:5, 7-11.
      2. 주님께는 그분의 원수와 맞서 싸울 사내아이가 필요하시지만, 그분의 만족을 위한 첫 열매가 더욱 필요하시다 — 계 14:1, 4하, 비교 아 8:6, 13-14.
      3. 첫 열매는 하나님의 농작물 중에서 가장 먼저 성숙에 이른 이들이다 — 골 2:19, 히 5:14-6:1, 엡 4:13, 빌 3:15, 비교 눅 21:36.
      4. 첫 열매는 시온에 있는 하나님의 집으로 휴거되어,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하나님께 신선한 누림이 된다 — 출 23:19상, 레 23:10, 비교 롬 8:23.
      D. 우리가 휴거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써, 곧 하나님을 우리의 중심과 모든 것으로 취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계시와 인도를 따라 행함으로써 신성한 생명 안에서 성숙하는 데 달려 있다 — 창 5:22-24, 히 11:5-6.
      E. 대다수의 믿는 이들을 상징하는 수확물은 첫 열매보다 늦게 익을 것이다. 수확물은 대환난이 끝날 무렵에 거두는 분으로서 흰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에 의해 거두어질 것이다 — 계 14:14-16.
      Ⅳ. 이기는 믿는 이들은 벽옥과 그 외의 보석들로 상징된다 — 계 21:9-11, 18-21.
      A. 벽옥은 하나님을 표현하도록 새 예루살렘의 빛인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는 하나님의 모양을 상징한다 — 계 4:3, 21:11, 18-19.
      B. 다른 보석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의 기초를 위한 그리스도의 여러 방면의 아름다움의 풍성을 상징한다 — 계 21:19-21.
      C. 우리는 심판하시는 영이시자 태우시는 영이시자 흐르시는 영이신 주 영에 의해, 고난과 소모시키는 압력과 십자가의 죽이는 일을 통해 얻은 부활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풍성을 체험함으로써 변화되고 있다 — 사 4:4, 11:2, 요 4:14하, 고후 1:8-9.
      D. 변화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자랑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함으로써 은혜이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 위에 장막으로 드리워지도록 한다 — 고후 1:12, 11:30-33, 12:7-9, 롬 5:3, 고전 1:29-31, 빌 3:3.
      E. 우리는 살아 있는 돌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 안에서 자람으로써 보석들로 변화되고 있다. 변화의 과정을 통해 삼일 하나님은 우리 안에 일해 넣어지시고 우리와 함께 구조물을 이루셔서, 사랑하시는 분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이 찬송되도록 하시어, 우리를 성경 전체의 결론이자 온 우주에 전해지는 좋은 소식인 새 예루살렘이 되게 하신다 — 벧전 2:4, 고전 3:12상, 엡 1:6, 계 21:18-21.
    • 메시지12
      신랑, 신부의 성숙, 하나님의 원수를 패배시키는 전투원
      +
    • 성경: 요 3:29상, 마 9:15, 히 6:1, 계 19:7
      Ⅰ. 그리스도는 신랑이시다 — 마 9:14-15, 22:2-3, 25:1, 5-6, 10.
      A. 온 우주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분은 신랑이신 예수님이시다.
      B. 침례자 요한은 “신부를 얻는 사람은 신랑”이라고 말했다 — 요 3:29상.
      C. 예수님은 그분 자신을 신랑으로 제시하셨다 — 마 9:14-15, 막 2:19.
      1. 성경 끝에서 우리는 ‘어린양의 아내’라는 표현을 본다 — 계 21:9.
      2.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은 구속자이시지만, 십자가에서 우리 죄들을 없애신 어린양은 또한 결혼하기 위한 우리의 신랑이시다(계 19:7).
      D. 신랑의 임재에는 두려움이 없다.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만질 때, 곧 신랑이신 주님을 만질 때, 그분의 사랑스러움과 달콤함과 신선함을 만진다. 그분은 너무도 사랑스러우시다!
      E. 찬송가 140장은 “사랑스런 나의 신랑 주 예수는 내 사랑 / 주님 자신 날 이끄니 어찌 사랑 않으리”라고 말한다.
      F. 우리가 우리의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에는 네 방식(네 방면)이 있다.
      1. 첫째, 우리는 신랑의 들러리인 친구들로서 신랑을 누린다 — 마 9:15.
      2. 둘째, 우리는 손님으로서 우리의 잔치이신 그분을 누린다 — 눅 14:15-17, 계 3:20, 19:9.
      3. 셋째, 우리는 처녀로서 신랑의 오심을 누린다 — 마 25:1-13.
      4. 넷째, 우리는 신부로서 신랑을 극도로 누릴 것이다 — 계 19:7.
      G. 오늘날 주님의 움직임의 방향은 구속하시는 하나님과 그분께 구속받은 이들의 영원한 결혼을 위해 신랑의 짝인 신부를 준비하는 것이다 — 계 19:7-8, 21:1-2, 9-10.
      H. 우리는 신랑이신 주 예수님께서 장차 오실 분이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1. 그분은 그분의 신부인 우리를 만나러 오실 것이다.
      2. 주님께서 신랑이신 것에는 그분의 오심에 대한 계시가 포함되어 있다.
      Ⅱ. 우리는 신부의 성숙을 보고 이해해야 한다 — 고후 3:18, 롬 8:29, 엡 4:13, 15, 히 6:1, 계 19:7하, 21:2, 9.
      A. 요한계시록 19장 7절 하반절은 “그분의 아내도 자신을 준비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B. 신성한 생명의 성숙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연인은 술람미(‘솔로몬’의 여성형)가 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연인이 그분과 어울리고 그분과 결혼할 수 있도록 그분의 재생산과 복사판이 되었음을 가리킨다 — 아 6:13, 계 21:2, 9-10.
      C. ‘성숙한’에 대한 헬라어 단어는 ‘끝 지점에 이른’을 의미한다.
      1. 변화되는 것은 우리의 타고난 생명이 신진대사적으로 바뀌는 것이지만, 성숙되는 것은 우리를 바꾸는 신성한 생명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다 — 히 6:1, 골 4:12, 롬 12:2, 벧후 1:3.
      2. 변화의 마지막 단계는 성숙, 곧 생명의 충만이다 — 벧후 1:4-8.
      3. 성숙한 믿는 이는 그리스도의 몸을 알고 몸을 주의하며, 몸을 의식하고 몸을 중심 삼는다 — 고전 12:16, 18-19, 21, 24.
      D. 신약에 사용된 것처럼 ‘성숙한’이라는 단어는 믿는 이들이 완전히 자라서, 거듭났을 때 받은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온전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 딛 3:5, 벧전 1:3, 23, 마 5:48.
      1.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절대로 만족해서는 안 되며,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자라고 성숙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 빌 3:12, 14.
      2. 우리는 뒤에 있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을 향하여 힘을 다해 수고함으로써, 즉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를 극도로 누리기 위해 그리스도를 가장 충만하게 누리고 얻기를 추구함으로써, 성숙에 이르도록 계속 나아가고 전진해야 한다 — 빌 3:12-15.
      3. 영적 생명이 성숙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신성한 생명 안에서 계속 자라는 것이다 — 엡 4:15.
      4.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자라고 성숙한 것의 궁극적인 결과로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 된다. 곧 성숙한 사람으로 자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된다 — 엡 4:13.
      E. 야고보는 그의 서신서에서 농부가 오래 참으면서 땅의 귀중한 열매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을 예시로 사용한다 — 약 5:7.
      1. 주 예수님은 사실상 참된 농부, 유일한 농부이시다 — 마 13:3.
      2. 우리가 주님께서 오시기를 오래 참으며 기다리는 동안, 참된 농부이신 주님도 그분의 밭의 첫 열매와 곡식인 우리가 생명 안에서 성숙하기를 인내하시며 기다리고 계신다 — 계 14:4, 14-15.
      3. 우리가 “주님, 속히 돌아오십시오.”라고 기도한다면, 주님은 “내가 돌아오기를 너희가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희가 성숙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너희가 성숙해야만 내가 돌아가는 것이 앞당겨질 수 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4. 주님께서 돌아오시는 것을 우리가 진심으로 기다린다면, 생명이 자라 성숙에 이르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식을 갖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F. 성숙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속에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그분의 형상으로 완전히 변화되었음을 의미한다 — 갈 4:19, 고후 3:18.
      1. 우리가 거듭난 이후로 주님은 우리가 그분의 형상을 지닐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계속 일해 오셨다 — 고후 3:18, 롬 8:29.
      2. 주님께서 그분의 형상을 우리 속으로 완전히 일해 넣으시고 우리를 통해 완전히 표현되실 때, 우리는 생명의 성숙에 이를 것이다 — 엡 3:16-17.
      Ⅲ.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원수를 패배시키는 전투원이어야 한다 — 엡 5:25-27, 6:10-18, 계 19:7-9, 11-16.
      A. 골로새서 2장 15절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일어났던 전쟁을 묘사해 준다. 그 순간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주의 중심이었다.
      B. 영적 전쟁의 목적은 하나님의 왕국을 이끌어 오는 것이다 — 계 12:10.
      C. 영적 전쟁은 몸의 문제이다. 우리는 단체적인 군대로서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권익을 위해 전투를 치르고 있다 — 계 17:14, 19:14, 비교 딤후 2:4.
      D. 그리스도는 싸우는 장군으로서 그분의 군대인 그분의 신부와 함께 오셔서, 아마겟돈에서 적그리스도와 싸우실 것이다 — 계 19:11-21.
      1. 그리스도는 그분의 군대와 함께 오실 때, 사람의 아들로서 오실 것이다 — 마 26:64, 계 14:14.
      2. 사람의 아들로서 그분은 그분께 어울리고 그분을 완전하게 하는 짝이 필요하실 것이다. 이 짝이 그분의 신부일 것이다 — 계 21:2, 9.
      3. 그리스도는 이미 악한 자에게 승리한 이기는 이들과 결혼하실 것이다.
      4. 결혼 예복, 곧 우리가 매일의 의로 살아 낸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결혼식에 참여할 자격을 주실 뿐 아니라, 아마겟돈 전쟁에서 적그리스도에 대항해 그리스도와 함께 싸우는 군대에 참여할 자격을 주신다 — 마 22:11-12, 계 19:7-8, 14.
      E. 아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기는 연인이 디르사만큼 아름답고 예루살렘만큼 사랑스럽지만, 원수에게는 깃발을 든 군대만큼 두렵다는 것을 본다 — 아 6:4, 10.
      1. 그리스도의 연인들은 사랑스러울 뿐 아니라 동시에 두려움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믿는 이들이 주님 앞에서 사랑스러움을 잃어버렸고 원수에게 두려움을 주지 못한다 — 아 6:4, 10.
      a. 그리스도의 연인은 주님 앞에서 아름답고 어여쁘며, 하늘에 속한 성처럼 견고하고, 성소처럼 고요하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연인은 원수와 세상 앞에서 자신의 승리의 영광을 나타내 보인다 — 아 6:4, 10.
      b. 그리스도의 이기는 연인은 소망으로 가득한 장래가 있고 절대적으로 하늘에 속한 생활이 있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승리자이다 — 아 3:7-8.
      2. 두렵게 하는 군대는 주님의 이기는 이들이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을 두렵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아 6:4, 10.
      a. 원수는 하나님의 성으로 건축된 교회를 두려워한다 — 느 6:15-16, 시 102:12-16.
      b. 사탄은 개인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무서워하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곧 사탄과 그의 왕국에 대항해 싸우는 단체적인 전투원은 두려워한다 — 엡 6:10-20.
      F. 다윗은 고난 가운데서 전쟁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하고(삼상 25:28), 아비가일은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싸우며 전쟁하는 교회를 예표한다(2-42절).
      1. 사무엘기상 25장부터 아비가일은 항상 전사인 다윗 곁에 있으면서 전쟁 중인 다윗을 따랐다 — 삼상 25:40-42.
      2. 아비가일이 다윗과 결혼한 것은 교회가 전쟁을 위해 군대로 징집된 것을 예표한다 — 엡 6:10-20.
      3. 아비가일이라는 예표는 교회가 주 예수님과 함께 영적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묘사해 준다.
      a.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성취되고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이 만족되어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 또한 패배당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 교회는 전투원이 되어야 한다.
      b. 영적 전쟁이 필연적인 것은 사탄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에 맞서기 때문이다 — 마 6:10, 7:21, 사 14:12-14.
      1) 영적 전쟁의 근원은 신성한 의지와 사탄의 의지의 충돌에 있다.
      2) 교회로서 우리의 싸움은 사탄의 의지를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원수를 패배시키는 것이다 — 계 12:11.
      3) 우리의 영적인 행함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고, 우리의 생활은 그리스도의 만족을 위한 것이며, 우리의 전쟁은 하나님의 원수를 패배시키고 그분의 승리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G. 영적 전쟁을 통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완전히 성취된다. “세상의 왕국이 우리 주님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이 되었으니, 그분께서 영원무궁히 왕으로서 다스리실 것입니다.” — 계 11:15.
  • 개요

    현충일 특별 집회 : 새로운 부흥에 대한 큰 필요성

    • 메시지1
      주님과 동역하여 이 시대를 끝낼 새로운 부흥을 가져옴
      +
    • 성경: 합 3:2, 행 26:19, 22, 마 14:19, 22-23, 빌 1:19-22, 25, 요 21:15-17
      Ⅰ. 하나님의 선민 가운데에는 언제나 부흥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 왔다 — 합 3:2, 호 6:2, 롬 8:20-22, 시 119:25, 50, 107, 154, 요 6:57, 63, 고후 3:3, 6.
      Ⅱ.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성한 계시의 최고봉, 곧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관한 계시에 도달함으로써 새로운 부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딤전 1:3-4, 고전 9:17, 행 26:19, 22). 이 계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과 그분께서 선택하신 백성을 다루시는 목적과 관련한 위대한 질문에 대한 위대한 답변이다(창 1:26, 욥 10:13, 비교 엡 3:9).
      A. 하나님의 마음속에 감추어진 비밀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이다(엡 1:10, 3:9, 딤전 1:4).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은 그분의 마음의 갈망이 담긴 그분의 영원한 의도로서, 그분의 신성한 삼일성 안에서 곧 아버지로서 아들 안에서 그 영에 의해, 그분 자신을 그분께서 선택하신 백성 안으로 분배해 넣으시어 그들의 생명과 본성이 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을 그분과 똑같은 그분의 복사판으로 만드시어(롬 8:29, 요일 3:2), 그들을 하나님의 충만 곧 하나님의 표현(엡 1:22-23, 3:19)을 위해 유기체, 곧 새사람인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시고(엡 2:15-16), 결국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게 하시는 것이다(계 21:2-22:5).
      B.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심으로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는 그리스도의 몸을 산출하고 건축하시는 것이 바로 성경 전체의 정수(精髓)이자, 성경이라는 ‘상자’ 안에 있는 ‘다이아몬드’인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이다 — 창 1:26, 요 12:24, 롬 8:29.
      1. 하나님은 육체 되심을 통해 사람의 인성에 참여하심으로써 사람이 되셨다. 사람은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함으로써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된다 — 요 1:14, 고후 3:18, 골 3:4, 벧후 1:4, 빌 2:5, 롬 8:29, 히 2:10, 엡 1:5, 롬 8:19, 요일 3:2, 요 1:12-13.
      2. 이러한 신성하고 인간적인 로맨스가 성경 전체의 주제이고, 하나님의 경륜의 내용이며, 우주 전체의 비밀이다 — 아 1:1, 6:13, 비교 합 1:1, 2:4, 롬 1:17.
      a. 그리스도는 신성하시고 인간적이시며, 그분의 변화된 연인은 인간적이고 신성하다. 그들은 생명과 본성에서 동일하며 서로 완전히 어울린다.
      b. 완결되시어 남편이 되신 삼일 하나님과 변화되어 신부가 된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은 한 부부, 곧 단체적이며 위대한 하나님-사람이 된다 — 계 21:2, 9, 22:17상.
      C. 하나님의 중심 계시이자 주님의 회복의 중심 계시는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시고(요 1:1, 14), 육체가 생명 주시는 영이 되며(고전 15:45하), 생명 주시는 영은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이 되시어(계 1:4, 3:1, 4:5, 5:6) 교회를 건축하시고(마 16:18), 이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엡 4:15-16)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된다는 것이다(계 21:2, 9, 22:17상, 비교 창 2:22, 요 19:34).
      D. 하나님과 사람은 한 실체가 될 것이고, 그 한 실체는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다. 이러한 연합은 성경 전체의 결론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것이다 — 계 21:3, 22, 2, 9, 비교 레 2:4-5, 시 92:10.
      E. “나는 온 땅의 모든 교회들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 특별히 동역자들과 장로들이 이 계시를 보고서 일어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새로운 부흥을 주시도록 기도하기 바란다.” — 역대상·하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2, 22쪽.
      Ⅲ.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인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실행한다면, 자연스럽게 단체적인 본, 곧 하나님의 경륜 안에 사는 본이 세워질 것이다. 이 본이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흥이 되어 주님을 다시 모셔 올 것이다 — 시 48:2과 각주 1, 계 3:12, 21.
      A. 하나님은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신성한 계시의 고봉을 통해 일으켜져 이 계시에 따라 생활하는 단체적인 한 백성이 필요하시다. 부흥은 우리가 본 이상을 실행하는 것이자 이상이 실행된 상태이다.
      B.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마 5:1, 28:19)은 하나님-사람의 본이신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의 인간 생활을 통해 제자가 되는 훈련을 받았다. 그리스도는 인성에 있어서 그분 자신을 부인하심으로써 하나님을 사셨는데(요 5:19, 30), 이러한 그분의 인간 생활은 사람에 관한 그들의 관념을 혁신시켰다(빌 3:10, 1:21상).
      C. 우리의 생활은 첫 번째 하나님-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생활의 본의 복사판이자 재생산이어야 한다 — 벧전 2:21, 마 11:28-29, 엡 4:20-21, 요 17:4, 5:17, 빌 1:19-22, 25.
      D. 제자들 안으로 불어 넣어지신, 생명과 실재의 영은 제자들이 삼 년 반 동안 주님과 함께하면서 지켜본 것의 모든 실재 안으로 그들을 안내하셨다 — 요 16:13, 20:22.
      1. 첫 번째 하나님-사람의 사역의 시작에서 그분은 모든 의를 이루시기 위해 침례를 받으심으로, 그분의 육체(그분의 인성 — 요 1:14, 롬 1:3, 8:3)에 따르면 자신이 죽고 장사되기에만 적합하다는 것을 인정하셨다(마 3:15-17).
      2.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서 주님은 제자들을 그분에게서 배우도록 훈련시키셨다(마 11:29). 주님께서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복하신 것(마 14:19)은 축복의 근원이 보내심을 받은 자신이 아니라 보내신 분이신 아버지이신 것을 인식하셨음을 가리킨다(요 10:30, 5:19, 30, 7:6, 8, 18).
      3. 주님은 무리와 함께 기적의 결과 안에 머물지 않으시고, 그들을 떠나 산에서 기도하시며 은밀히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 — 마 14:22-23, 눅 6:12.
      4. 주님은 하나님을 접촉하시며(막 1:35, 눅 5:16, 6:12, 9:28, 히 7:25) 끊임없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사는 생활을 하셨고(행 10:38상, 요 8:29, 16:32), 사람들을 접촉하며 하나님을 그들 안에 공급하시어 그들을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희년 안으로 이끄는 생활을 하셨다(눅 4:18-19, 히 8:2, 비교 창 14:18, 행 6:4).
      5. 주님은 이 세상의 통치자인 사탄이 그분 안에서 아무것도(그 어떤 일에서도 아무런 입지나 기회나 희망이나 가능성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이셨다 — 요 14:30하, 비교 20절, 고후 12:2상, 골 1:27, 딤후 4:22, 요 3:6하, 4:23-24, 요일 5:4, 18.
      E. 주님의 본에 따라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전 존재를 연합된 영에 두고, 연합된 영에 따라 행하고 살며 처신하는 것이다 — 롬 8:2, 4, 10, 6, 11, 16, 고전 6:17, 롬 10:12, 갈 5:25, 엡 6:17-18, 살전 5:16-20, 딤전 4:6-7, 딤후 1:6-7.
      F. “우리는 모두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기 원한다고 선포해야 한다. 결국 하나님-사람들은 승리자들, 이기는 이들, 예루살렘 안의 시온이 될 것이다. 이것은 전대미문의 새로운 부흥을 이끌어 올 것이고, 이 시대를 끝낼 것이다.” — 역대상·하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4, 37쪽.
      Ⅳ. 우리가 새로운 부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귀결되는 교회인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기 위해, 그분의 어린양들을 먹이고 그분의 양들을 목양하는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들의 사역을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과 합병시키는 것이다 — 요 21:15-17, 벧전 2:25, 5:1-4, 히 13:20-21, 계 1:12-13.
      A.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수행하시기 위한 그분의 사역에서 보여 주신 본에 따라 사람들을 목양해야 한다 — 마 9:36, 요 10:11, 히 13:20, 벧전 5:4.
      1.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신약 경륜 전체의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아들로서 우리를 보살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를 보양하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아들로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심으로써, 즉 그분의 죽음을 통해 법리적인 구속을 성취하심으로써 우리를 보살피시며(딤전 1:15, 엡 1:7),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를 보양하심으로 신성한 생명을 우리 안에 넘치게 나누어 주시어, 부활 안에서 유기적인 구원을 수행하고 계신다(요 10:10, 고전 15:45하, 엡 5:29).
      2. 우리에게 아버지의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과 구주의 목양하고 찾는 영이 없는 것이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이다 — 눅 15:1-24.
      3. 우리는 예수님의 인성 안에서 사람들을 보살펴야 하며(그들을 행복하게 하고, 즐겁고 편안한 느낌을 갖게 해야 하며)(마 9:10, 눅 7:34), 그리스도의 신성 안에서 사람들을 보양해야 한다(세 단계의 사역 안에 계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먹여야 한다)(마 24:45-47).
      4. 그리스도는 사마리아를 거쳐 가시다가 의도적으로 우회하여 수가라는 동네에 가셔야 했는데, 이는 부도덕한 한 여인을 얻으시기 위해서였다. 주님은 그 여인에게 마실 물을 좀 달라고 부탁하시며 그 여인을 소중히 보살피셨는데, 이는 생명수의 강으로서 흐르시는 삼일 하나님으로 그 여인을 보양하시려는 것이었다 — 요 4:3-14, 계 22:1.
      5. 죄 없는 분이신 주님은 간음한 여인을 유죄판결 하지 않으시고 법리적으로는 죄들을 용서하시고 유기적으로는 죄들에서 해방하심으로써 보살피셨다(요 8:1-11, 32, 36).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첫 번째로 구원하신 사람이 사형 선고를 받은 강도였다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눅 23:42-43).
      6. 주님은 단지 세리장 한 사람을 방문하여 얻으시려고 여리고에 가셨으며, 이러한 주님의 복음 전파는 일종의 목양이었다(눅 19:1-10). 주님은 또한 어린아이들에게 안수하심으로써 그들의 부모를 보살피셨다(마 19:13-15).
      B. 우리는 사도 바울의 본을 따라 사람들을 목양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기 위해 젖을 먹이는 어머니와 권유하는 아버지처럼 성도들을 목양했다 — 살전 2:7-8, 11-12, 딤전 1:16, 행 20:28.
      1. 바울은 ‘대중 앞에서나 이 집 저 집에서’(행 20:20) 에베소의 성도들을 가르치고, 삼 년 동안 눈물로 성도들 각 사람을 훈계하며(31, 19절), 하나님의 모든 의결을 그들에게 선포함으로써(27절) 그들을 목양했다.
      2. 바울은 믿는 이들에게 친밀한 관심을 가졌으며(고후 7:2-7, 몬 7, 12), 연약한 사람들을 얻기 위해 그들의 수준에까지 내려갔다(고후 11:28-29, 고전 9:22, 비교 마 12:20).
      3. 바울은 성도들을 위해서 그가 가진 것 곧 그의 소유물을 기쁘게 소비하고, 그의 존재 곧 그 자신까지도 기쁘게 소비하고자 했다(고후 12:15). 그는 전제물로서, 곧 포도주를 생산하는 분이신 그리스도와 하나인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했다(빌 2:17, 삿 9:13, 엡 3:2).
      4. 바울은 그 영을 따라 행하여 하나님을 존귀하게 함으로써 그 영을 공급하여 사람을 존귀하게 할 수 있었다 — 고후 3:3, 6, 8, 갈 5:16, 25, 삿 9:9.
      5. 바울은 그의 가르침에서 교회가 사람들을 양육하는 가정이고, 사람들을 치료하고 회복시키는 병원이며, 사람들을 가르치고 온전하게 하는 학교임을 시사했다 — 엡 2:19, 살전 5:14, 고전 14:31.
      6.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이 되든 무엇을 하든 사랑이 가장 뛰어난 길임을 계시했다 — 고전 8:1, 12:31, 13:4-8상, 엡 1:4, 3:17, 4:2, 15-16, 5:2, 6:24, 계 2:4-5, 골 1:18하, 살전 1:3.
      C. “나는 우리가 목양에 관한 이러한 부담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가운데 진정한 부흥이 있기를 바란다. 모든 교회가 이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의 놀라운 목양에 참여한다면 회복 안에 큰 부흥이 있을 것이다.” — 활력 그룹, 개정판, 4장, 68쪽.
    • 메시지2
      신성한 계시의 최고봉에 도달함
      +
    • 성경: 딤전 1:4, 엡 1:10, 3:9, 롬 1:3-4
      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성한 계시의 최고봉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관한 계시이다.
      A.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관한 설명인 성경 전체는 영원의 두 부분과 시간이라는 다리에서 볼 수 있는 삼일 하나님의 자서전이다.
      1. 삼일 하나님은 사람 안에서 직접 움직이시기 위해 영원에서부터 시간 안으로 오시고, 그분의 신성을 가지고 인성 안으로 들어오심으로써 육체 되신 하나님이 되셨다. 이것은 그분의 법리적인 구속을 성취하기 위한 것으로서 사복음서에서 볼 수 있다 — 요 1:14, 29.
      2. 부활 안에서 그분은 복합되신 하나님,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다. 이것은 그분의 유기적인 구원을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서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에서 볼 수 있다 — 요 1:32, 42, 고전 15:45하, 빌 1:19.
      3. 영원 미래에 그분은 단체적인 하나님, 곧 새 예루살렘이 되실 것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에서 볼 수 있다.
      4.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과 거듭나고 변화되고 영광스럽게 된 믿는 이들의 우주적이며 신성하고도 인간적인 합병체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목표이다 — 요 1:51, 계 21:3, 22.
      5. 하나님의 중심 계시와 주님의 회복은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시고, 육체가 생명 주시는 영이 되며, 생명 주시는 영이 일곱 배로 강화되신 영이 되시어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는 교회를 건축하신다는 것이다.
      B.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는 것이 성경 전체의 본질이자 성경이라는 ‘상자’ 안에 있는 ‘다이아몬드’인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이다 — 창 1:26, 요 12:24, 롬 8:29.
      1. 하나님은 육체 되심을 통해 사람의 인성에 참여하심으로써 사람이 되셨다. 사람은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신성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이 된다.
      a.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함으로써 — 요 3:15, 골 3:4.
      b.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함으로써 — 엡 1:4, 벧후 1:4.
      c. 하나님의 생각에 참여함으로써 — 엡 4:23, 빌 2:5.
      d. 하나님의 존재에 참여함으로써 — 고후 3:18하, 엡 3:8.
      e. 하나님의 형상에 참여함으로써 — 고후 3:18상, 롬 8:29.
      f.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함으로써 — 롬 8:30, 히 2:10.
      g.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에 참여함으로써 — 엡 1:5, 롬 8:23.
      h. 하나님의 나타나심에 참여함으로써 — 롬 8:19.
      i. 하나님의 모양을 지님 — 요일 3:2.
      j. 하나님 종류, 곧 하나님 종(種)이 됨 — 요 1:12, 롬 8:14, 16.
      2. 이러한 신성하고 인간적인 로맨스가 성경 전체의 주제이고, 하나님의 경륜의 내용이며, 우주 전체의 비밀이다 — 아 1:1, 6:13.
      Ⅱ. 신성한 계시의 고봉, 곧 성경이라는 ‘상자’ 안에 있는 ‘다이아몬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는 것에 대한 계시이다 — 삼하 7:12-14상, 롬 1:3-4, 엡 3:17상.
      A.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되시고 사람은 하나님이 된다’ — 딤전 1:4.
      B.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은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과 똑같이 되게 하고, 하나님 자신을 사람과 하나 되게 하고 사람을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표현이 확대되고 확장되어, 그분의 모든 신성한 속성들이 사람의 미덕들로 표현되게 하는 것이다 — 엡 3:9, 1:10.
      1. 하나님의 선한 기쁨은 사람과 하나 되시고, 사람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그분과 똑같이 만드시는 것이다 — 엡 1:5, 9.
      2.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목적은 그분 자신을 대량 재생산하심으로써 새로운 종류 곧 하나님-사람 종류를 산출하는 것이다 — 요 1:1, 14, 12:24.
      C.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 자신을 우리의 생명과 본성과 조성 성분으로 우리 안으로 건축하시어, 우리를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시는 것이 필요하다 — 엡 3:17상, 골 3:4, 10-11.
      D. 하나님은 육체 되심을 통해 사람이 되셨고, 사람은 거듭남과 거룩하게 됨과 새롭게 됨과 변화됨과 같은 형상이 됨과 영광스럽게 됨을 통해 하나님이 된다 — 요 3:5-6, 1:12-13, 롬 6:19, 22, 12:2, 8:29-30.
      Ⅲ. 오직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사람을 하나님이 되게 하심으로써만 그리스도의 몸이 산출될 수 있다. 이 요점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상의 고봉이다 — 롬 8:3, 1:3-4, 8:14, 12:4-5.
      A.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사람을 하나님이 되게 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산출하기 위한 것인데, 이 몸은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이며 이 몸의 궁극적인 나타남은 새 예루살렘이다 — 엡 1:22-23, 4:4-6, 계 21:2, 9-10.
      B. 성경은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유기체가 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 롬 1:3-4, 12:4-5.
      1. 이 유기체는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사람과 결합시키고 연합시키시어 사람을 하나님이 되게 하신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고 사람이 하나님이 된 결과는 하나의 유기체이다. 이 유기체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결과 연합인 그리스도의 몸이다 — 엡 4:4-6, 12.
      C.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을 보내시어 사람이 되게 하셨고, 신성한 생명에 의해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게 하셨다. 이러한 생활이 그분과 똑같은 우주적인 한 사람, 곧 신성한 생명에 의해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는 단체적인 한 사람을 산출한다 — 롬 8:3, 12:4-5.
      D.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는 하나님과 사람이 연결되고 연합되어 한 단체적인 하나님-사람을 살아 내는 것이다 — 엡 4:4-6, 24.
    • 메시지3
      새로운 부흥을 위한 하나님-사람의 생활
      +
    • 성경: 레 1:3, 9, 6:8-13, 요 21:15-17, 요일 3:14, 5:1, 2:6, 4:17, 갈 6:2-3, 롬 8:2
      Ⅰ.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은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하나님-사람의 생활의 실지 상태인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엡 4:21)가 실재의 영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의 많은 지체들 안에 복사되어, 새로운 부흥을 위해 하나님의 경륜의 최고봉인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가 되게 하는 것이다(20-24절).
      A. 사복음서는 하나님께서 갈망하시는 생활의 본, 곧 하나님을 만족하시게 하고 그분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생활의 틀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해 하는 생활을 하셨다. 하나님은 그분의 생활 안에 계셨고, 그분은 하나님과 하나이셨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의 의미이다.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틀 안으로 넣어져 형태가 만들어지는 것, 즉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되는 것이다 — 롬 8:28-29, 엡 4:20-21.
      B. 우리는 첫 번째 하나님-사람이신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부인함으로 신성한 생명을 사는 하나님-사람들이 되도록 주님에 의해 온전하게 되고 있다 — 마 11:29상, 17:5하, 벧전 2:21.
      1. 그리스도는 사복음서에 계시된 대로 이 땅에서 사실 때, 하나의 본을 세우셨다. 그런 다음에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셔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는데, 이것은 그분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의 생명이 되시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통하여 그분께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활 안에서 우리의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본을 따라 그분께 배우는 것이다 — 고전 15:45하, 골 3:4.
      2.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활이며 또한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활이다. 우리는 틀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분은 우리의 생명으로서 우리 안에 계신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그리스도를 배우며, 이 실재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이다 — 고전 1:30, 고후 5:17, 12:2상, 골 1:27, 갈 2:20, 롬 8:10.
      C.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접촉하고 주님께 기도할 때, 자동적으로 우리는 복음서들에 묘사된 틀, 모습, 본에 따라 그분을 살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이 틀의 형상으로 형태 지어지고 이 틀의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된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배운다는 말의 의미이다 — 마 11:29, 롬 8:29.
      D. 우리가 연합된 영 안에 살 때, 우리는 실재의 영에 의해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에 따라 그리스도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본이신 그분에게서 배움으로 그분의 전기(傳記)가 우리의 역사(歷史)가 되게 한다. 새사람인 그리스도의 몸의 생활은 복음서들에 계시된 예수님의 생활과 똑같아야 한다 — 갈 6:17-18, 롬 1:1, 9, 엡 4:20-24, 빌 2:5, 마 11:29, 벧전 2:21.
      E.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을 보내셔서 사람이 되게 하신 목적은 그분께서 신성한 생명에 의해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도록 하시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분을 먹을 때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어, 그분과 똑같은 우주적이고 위대한 사람, 곧 신성한 생명에 의해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 된다 — 애 3:22-24, 55-56, 계 2:4, 7, 요 6:57, 63, 렘 15:16, 엡 6:17-18, 시 119:15.
      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유일한 생활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사셨던 생활을 반복하는 생활이다. 이러한 생활은 번제물로서 여러 체험을 겪으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생활이다 — 레 1:9, 요 8:29, 고후 5:9.
      A. 번제물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만족을 위한 생활을 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번제물은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이러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 레 1:3, 민 28:2-3, 요 5:30, 6:38, 8:29, 히 10:5-10.
      B. ‘번제물’로 번역된 단어는 ‘위로 올라가는 어떤 것’을 뜻한다. 이렇게 올라가는 것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레 1:3, 10, 14). 땅에서 하나님께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생활인데, 이것은 그분이 하나님을 위해 절대적인 생활을 하신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이다(요 6:38).
      C. 번제물은 ‘여호와를 만족시키는 향기’였다(레 1:9). ‘만족시키는 향기’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직역하면 ‘안식의 향기’ 혹은 ‘만족의 향기’를 의미한다. 만족시키는 향기는 만족과 평안과 안식을 가져다주는 향기이다. 만족시키는 이러한 향기는 하나님께 누림이 된다.
      D.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번제물의 실재이다. 이 생명은 순종의 생명, 복종의 생명, 생명나무의 원칙에 따라 하나님을 완전히 의지하는 생명이다 — 빌 2:8, 요 5:19, 30, 히 5:8, 10:7.
      1.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밖에서 홀로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죄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일에서 그분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기를 원하신다 — 시 40:7-8, 요일 3:4.
      2.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왕국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누구도 그 안으로 결코 들어가지 못합니다.”(눅 18:17)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어린아이처럼 되기를 원하시는데, 이는 우리가 항상 그분을 의지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자기 확신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의 원수이다.
      E. 합당한 기도를 통해 우리의 번제물이신 그리스도께 안수함으로써 우리는 그분과 연결되며 그분과 우리는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실 때, 그분은 이 땅에서 사신 생활 곧 번제물의 생활을 우리 안에서 반복하신다 — 레 1:4, 고전 6:17, 갈 2:20.
      F. 이러한 연결, 곧 이러한 동일시 안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약함과 결함과 흠을 가져가시고 그분의 모든 미덕은 우리의 것이 된다 — 고후 5:21, 갈 2:20상.
      G.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태우시도록 허락해 드림으로 지속적인 번제물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이들을 태울 수 있고, 또 재로 감소되어 하나님의 표현을 위한 새 예루살렘이 될 수 있다 — 시 20:3, 레 1:16, 6:8-13, 고전 3:12상, 계 3:12, 21:2, 10-11, 18-21.
      1. 재는 감소되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우리는 감소되어 재가 되신 그리스도와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 또한 감소되어 재가 된다. 즉 감소되어 아무것도 아닌 것, 무(無)가 된다 — 막 9:12, 사 53:3, 고전 1:28, 고후 12:11.
      2. 우리는 죽음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동일시될수록 자신이 한 줌의 재가 되었음을 더욱더 깨달을 것이다. 우리는 재가 될 때 더 이상 타고난 사람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고 종결되고 불태워진 사람이다 — 갈 2:20상.
      H. 재를 제단 동쪽, 해가 뜨는 곳에 두는 것은 부활을 함축한다 — 레 1:16, 요 11:25, 빌 3:10-11, 고후 1:9.
      1. 번제물이신 그리스도께는 재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재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에 넘겨지신 것을 의미하지만, 동쪽은 부활을 상징한다 — 막 9:31.
      2.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감소되어 재가 될수록 더욱더 동쪽에 두어질 것이고, 동쪽에서 해가 떠올라 부활의 일출을 체험하리라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 빌 3:10-11.
      I. 결국 재는 새 예루살렘이 될 것이다 — 계 3:12, 21:2, 10-11.
      1.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끝내고 감소시켜 재가 되게 하며, 부활 안에서 재는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한 귀한 재료가 된다 — 고전 3:9하, 12상.
      2. 감소되어 재가 될 때, 우리는 삼일 하나님의 변화시키시는 일 안으로 이끌려 새 예루살렘을 건축하기 위한 귀한 재료들이 된다 — 롬 12:1-2, 고후 3:18, 계 21:18-21.
      Ⅲ. 번제물의 실재이신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신약 사역을 수행하실 때,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고(요 5:19), 자신의 일을 하지 않으셨으며(4:34, 17:4), 자신의 말을 하지 않으셨고(14:10, 24), 자신의 뜻으로 어떤 것도 하지 않으셨으며(5:30),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다(7:18). 그분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만족하셨기 때문에 결코 낙심하지 않으셨다(사 42:4, 50:4-5, 53:2상, 비교 요 4:13-14, 6:15, 막 9:7-8).
      A. 주님의 생활은 주님의 일과 움직임과 사역이었다. 그분의 일은 그분의 생활이었고, 그분의 움직임은 그분의 존재였다. 그분께는 그분의 생활과 일과 움직임과 사역이 차이가 없었다. 주 예수님은 그분의 사역을 사셨다 — 비교 눅 22:26-27, 요 10:10하, 고전 15:45하, 요일 5:16상, 고후 3:6, 빌 1:25.
      B. 주 예수님은 기도의 사람이셨다. 그분은 기도하시기 위해 자주 산으로 가시거나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물러가셨다 — 마 14:23, 막 1:35, 눅 5:16, 6:12, 9:28.
      C.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베푸신 후에 그분은 아버지께 홀로 기도하는 시간을 더 가지시려고 제자들을 재촉하여 떠나게 하셨다 — 마 14:22-23.
      1.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로서(마 3:17) 사람의 위치에 서 계시는(4:4) 하늘의 왕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홀로 기도하실 필요가 있었는데, 이것은 천국을 세우시기 위해 이 땅에서 무엇을 하시든지 아버지와 하나 되시고 아버지와 함께하시기 위해서였다.
      2. 그분은 외딴곳에서 이렇게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혼자 아버지를 접촉하시기 위해 모든 사람, 심지어 그분의 제자들까지 떠나 산에서 기도하셨다.
      D. 그분은 하나님과 하나이신 기도의 사람이셨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그분과 함께 계시므로 그분은 결코 혼자 계시지 않았다. 매 순간 그분은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셨다 — 요 5:19, 16:32, 시 16:7-8, 비교 27:8.
      Ⅳ. 우리가 하나님 자신인 사랑 안에 거할 때, 사랑이 ‘우리에게서 온전해진다. 그래서 우리가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그분의 존재 그대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존재하기 때문이다’(요일 4:17). 번제물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사랑이신 하나님의 생명을 사셨고, 지금은 우리의 생명이 되신다.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동일한 사랑의 생활을 하여 그분의 존재와 똑같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요일 3:14, 5:1, 2:6).
      A. 우리의 영 안에 있는 생명의 영의 법은 사랑의 법인 그리스도의 법이다(롬 8:2, 갈 6:2). 사랑의 법이 생명의 영의 법에 의해 실질화되어야만 우리가 서로의 무거운 짐을 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교만으로 가득하다면 다른 사람의 짐을 질 수 없을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된 줄로 생각하여 자신을 속이기 때문이다(갈 6:3).
      B. 사랑의 법이 우리 안에서 작용할 때, 우리는 자동적이고도 자연스럽게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과 우리 구주 그리스도의 목양하고 찾는 영을 가진 목자들이 될 것이다 — 요 21:15-17, 눅 15:3-7.
      C. 사랑의 법이 우리 안에서 작용할 때, 주님 안에서의 우리의 수고(고전 15:58)는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고’(행 20:35) ‘연약한 사람들을 붙들어 주는’(살전 5:14) 사랑의 수고가 된다(살전 1:3). ‘연약한 사람들’은 영이나 혼이나 몸이 연약하거나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가리킨다(롬 14:1, 15:1).
      D.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를 목양하시고, 그에게 그분의 어린양들을 먹이고 그분의 양들을 목양하라는 위임을 주셨다. 이것은 사도들의 사역을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과 합병시켜 하나님의 양 떼인 교회를 돌보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렇게 돌보는 것은 결국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는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으로 귀결되어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할 것이다 — 요 21:15-17.
    • 메시지4
      신성한 종의 영역인 하나님의 왕국 안에 삶으로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함
      +
    • 성경: 막 1:15, 요 3:3, 5-6, 1:12-13, 벧후 1:4, 요일 3:1
      Ⅰ.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 종(種)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다 — 요 3:3, 5-8.
      Ⅱ. 하나님-사람들에게는 하나님 종에 참여할 신성한 권리가 있다 — 요 3:3, 5-6, 18:36.
      Ⅲ.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고 있다 — 막 1:15, 요 14:17하, 20, 롬 8:9상, 10, 갈 5:25.
      A.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사람 안으로 조성되시고 사람은 하나님 안으로 조성됨으로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연합되어 한 실체가 되었다. 이 한 실체를 우리는 하나님-사람이라고 부른다 — 마 1:21, 23, 눅 1:35, 딛 2:13, 딤전 2:5.
      B. 하나님의 아들들인 하나님-사람들은 첫 번째 하나님-사람이신 그리스도의 복사판이자 연장이다 — 요 12:24, 히 2:10, 롬 8:29.
      C. 하나님-사람은 하나님에게서 태어나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에 참여하여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어 하나님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 요 1:12-13, 3:15, 벧후 1:4, 고전 6:17.
      D. 하나님-사람은 하나님으로 조성되어, 하나님을 그의 생명과 본성과 모든 것으로 소유한다. 하나님-사람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이고 하나님이지만 사람이다 — 엡 3:16-17상.
      E. 그리스도의 인간 생활은 사람이 하나님을 살면서 하나님의 속성들을 인간 미덕들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분의 인간 미덕들은 신성한 속성들로 채워지고 신성한 속성들과 연합되고 신성한 속성들로 적셔졌다 — 눅 1:26-35, 7:11-17, 10:25-37, 19:1-10.
      F. 첫 번째 하나님-사람의 재생산과 복사판인 우리는 그분께서 사신 것과 똑같은 종류의 삶을 살아야 한다.
      1. 주님께서 하신 하나님-사람의 생활은 우리가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기 위한 본을 세웠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성 안에서 표현되시도록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하나님을 사는 것이다 — 갈 2:20.
      2. 주 예수님은 영적이 되거나 거룩하게 되거나 승리하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지 않으셨다. 그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약 경륜과 일치하고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위한 삶을 사셨다.
      3. 우리는 사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신 것을 보며, 사도행전에서는 제자들도 그러한 생활을 한 것을 본다.
      4. 그리스도는 고난의 삶, 곧 고난받는 삶을 사셨다. 이제 우리는 그분의 동반자들로서 동일한 종류의 삶을 산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간주하신다 — 히 3:14.
      5.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며, 그분의 영의 넘치는 공급으로 그분을 확대해야 한다 — 마 16:24, 빌 3:10, 1:19-21상.
      6.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신 그분은 이제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를 통해 살고 계신 그 영이시다. 우리는 반드시 자기 수양을 하거나 타고난 사람을 견고하게 하는 것을 거절해야 하고, 그분 외의 어떤 것도 우리를 채우고 점유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된다. 그럴 때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그분의 몸인 교회 안에서 단체적으로 그분을 살고 표현할 수 있다 — 엡 3:16-19, 1:22-23.
      Ⅳ.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살고 있다 — 롬 14:17.
      A.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 자신이다 — 막 1:15, 마 6:33.
      B. 하나님의 왕국은 신성한 생명과 이 생명의 모든 활동의 총체이신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이다 — 요 11:25, 10:10하, 14:6.
      C. 하나님의 왕국은 신성한 생명의 영역으로서, 이 생명이 움직이고 일하고 다스리고 통치함으로써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D.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조성된 한 유기체로서, 그분의 다스림을 위한 생명의 영역이다. 이 영역 안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생명에 의해 왕으로서 다스리시며, 신성한 삼일성이신 그분 자신을 신성한 생명 안에서 표현하신다 — 요 15:1-8, 16, 26.
      E. 하나님의 왕국은 신성한 통치의 영역일 뿐 아니라, 모든 신성한 것들이 있는 신성한 종(種)의 영역이다 — 요 3:3, 5-6, 18:36.
      1. 요한복음 3장에서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의 다스림보다는 하나님 종을 가리킨다.
      2. 하나님은 사람 종 안으로 들어오시기 위해 사람이 되셨고, 사람은 신성한 종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된다 — 요 1:1, 12-14, 롬 8:3, 1:3-4.
      3. 신성한 종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려면,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나서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본성을 가져야 한다 — 요 1:12-13, 3:3, 5-6, 15, 벧후 1:4.
      a. 하나님은 사람을 사람 종류에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모양에 따라 창조하시어, 사람이 하나님 종류 곧 하나님 종이 되게 하셨다 — 창 1:26.
      b. 믿는 이들은 거듭남으로 하나님에게서 태어나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이들이며, 아담보다 더 하나님 종류이다 — 요 1:12-13.
      1) 아담에게는 겉의 모양만 있었을 뿐 신성한 생명의 내적인 실재는 없었다.
      2)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이자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신성한 생명의 실재를 갖고 있으며, 우리의 온 존재가 변화되어 주님과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 — 고후 3:18, 롬 12:2, 8:29.
      3) 우리는 두 번째 출생인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 하나님 종이 되었다 — 요 3:3, 5-6.
      4) 우리는 거듭나서 하나님 종류가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우리는 하나님 종류 곧 하나님 종이다 — 롬 8:19, 히 2:10.
      5)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신성한 종의 신성한 영역 안에 있다 — 요 1:12-13, 3:3, 5.
      6) 믿는 이들은 신성한 종 안에, 곧 하나님의 왕국 안에 있는 하나님-사람들이다 — 요일 3:1상, 요 3:5.
      F. 우리는 생명의 감각에 의해 신성한 생명의 영역인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산다 — 롬 8:6.
      G. 교회 안에서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살고 있다. 로마서 14장 17절은 오늘날의 교회생활이 왕국임을 보여 주는 확고한 증거이다.
      H. 우리가 우리 존재 중에서 새 창조물인 그 부분, 곧 하나님의 왕국의 요소이신 그리스도 자신을 사용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I. 이기는 이들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아 천국의 출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딤후 4:18.
      Ⅴ.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신성한 종의 영역 안에서 사는 믿는 이들의 생활의 여러 방면을 본다 — 요 1:16, 15:4상, 9, 11, 4:23-24, 14:2, 20, 23, 17:22-24.
      A. “우리가 다 그분의 충만에서 받았으니, 은혜 위에 은혜였다.” — 요 1:16.
      B.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원천이 되어 샘솟아 올라 영원한 생명에 이를 것입니다.” — 요 4:14하.
      C.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 요 6:57하.
      D.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십시오. 내가 있는 그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 요 12:26.
      E. “나의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습니다. … 내가 가서 여러분을 위하여 한 곳을 예비하겠습니다.” — 요 14:2.
      F.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여러분이 내 안에 있으며, 내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 — 요 14:20.
      G.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나의 말을 지킬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서로 거처를 정할 것입니다.” — 요 14:23.
      H. “내 안에 거하십시오. 그러면 나도 여러분 안에 거하겠습니다.” — 요 15:4상.
      I. “여러분이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여러분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 요 15:7.
      J.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여러분을 사랑하였으니, 내 사랑 안에 거하십시오.” — 요 15:9.
      K. “내가 이러한 것들을 여러분에게 말한 것은 내 기쁨이 여러분 안에 있게 하고, 여러분의 기쁨이 충만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 요 15:11.
      L. “내가 여러분에게 이러한 말들을 한 것은 여러분이 내 안에서 평안을 얻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평안을 남겨 둡니다.” — 요 16:33상, 14:27상.
      M.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 안에 그들을 지키시어,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도록 하여 주십시오.” — 요 17:11하.
      N.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 요 17:22.
      O.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온전하게 되어 하나가 되도록 하려는 것이요” — 요 17:23상.
      P. “아버지,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도록 하여 주시고 … 나의 영광을 그들이 보도록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 요 17:24.
    • 메시지5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과 새로운 부흥을 위해 하나님의 양 떼인 하나님의 교회를 목양하는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과 협력하는 사도들의 사역
      +
    • 성경: 요 10:11, 16, 21:15-17, 벧전 2:25, 5:4, 히 13:20, 계 1:13, 2:1, 7
      Ⅰ. 시편 22편부터 24편까지는 하나의 그룹을 이루는데, 십자가에 못 박히심부터 목양하심을 거쳐 오는 시대에 왕권을 얻으심까지의 그리스도를 계시한다.
      A. 부활과 승천 안에 계신 목자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시편 23편은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죽음과 교회를 산출하는 부활에 대해 말하는 시편 22편과, 왕으로서 다시 오셔서 그분의 몸인 교회를 통해 온 땅을 다시 얻으시는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시편 24편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B. 하늘에서의 사역에서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목양하시며, 우리는 사람들을 목양함으로써 그분과 협력해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교통을 받아들인다면, 이 땅에 주님을 다시 모셔 올 큰 부흥이 있을 것이다.
      Ⅱ. 요한복음 21장은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과 협력하는 사도들의 사역을 계시한다. 이것이 요한복음의 완성이자 완결이다.
      A. 요한복음은 스물한 장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상 20장으로 끝난다.
      B. 요한복음 전체는 그리스도의 땅에서의 사역을 다룬다. 그리스도의 땅에서의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분께서 육체 되심을 통해 육체 안의 사람이 되신 것으로 시작해서(요 1:14), 마지막 아담이신 그분께서 부활하심으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것으로 끝마친다(20:22). 따라서 21장은 부록에 해당한다.
      C.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확하지만, 좀 더 내재적으로 말하면 요한복음 21장은 요한복음의 완성이자 완결이다. 21장은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과 사도들의 이 땅에서의 사역이 함께 협력하여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요한복음 전체를 완결한다.
      Ⅲ. 요한복음 10장 10절과 11절과 16절에서 주님은 자신이 선한 목자인 것을 제자들에게 밝혀 주신다. 이 선한 목자가 오신 것은 양들이 생명을 더 풍성히 얻도록 하시려는 것이며, 또한 다른 양들(이방인들)을 얻으셔서 그들을 이끌어 처음 양들(유대인 믿는 이들)과 함께 결합하여,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한 교회)가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A. 주님의 목양하심은 먼저 그분의 땅에서의 사역 안에 있었다 — 마 9:36, 비교 10:1-6.
      B. 주님의 목양하심은 다음으로 그분의 하늘에서의 사역 안에 있으며(벧전 5:4), 그리스도의 몸으로 귀결되는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기 위한 것이다.
      Ⅳ. 주님은 베드로에게 그분의 어린양들을 먹이고 그분의 양들을 목양하라고 위임하셨다.
      A. 주님은 부활하신 후부터 승천하시기 전까지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하시면서 여러 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중 한 번, 주님은 자신이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늘들에 있는 동안에 베드로에게 그분의 어린양들을 먹이고 그분의 양들을 목양하라고 위임하셨다 — 요 21:15-17.
      B. 이것은 사도들의 사역을,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는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과 합병시킨 것이다. 하나님의 양 떼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귀결되는 교회이다.
      C. 이후에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그리고 말씀의 사역을 꾸준히 계속할 것입니다.”(6:4)라고 말했다. 이것은 중보기도 하시고(히 7:25) 하나님을 그분의 백성 안으로 공급하시는(8:2)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과 협력하는 것이다.
      D. 베드로는 주님의 이러한 위임에 너무나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첫 번째 서신서에서 믿는 이들에게, 그들이 길 잃은 양과 같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혼의 목자이시며 감독이신 분께로 돌아왔다고 말한다 — 벧전 2:25.
      1.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이 되시지만, 또한 우리 내적 존재의 상태와 상황을 감독하시며 관찰하신다.
      2. 그리스도는 우리의 내적 존재의 유익을 돌보시고 우리의 참된 인격인 우리 혼의 상태를 감독하심으로써 우리를 목양하신다 — 비교 히 13:17.
      E.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그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라고 권한다. 이렇게 목양한다면, 목자장께서 나타나실 때 신실한 장로들인 그들은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 벧전 5:1-4.
      F. 베드로의 말은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이 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귀결되는 하나님의 양 떼인 하나님의 교회를 목양하는 것임을 가리킨다.
      Ⅴ. 다음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말도 사도들의 사역이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는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과 합병된 것임을 보여 준다.
      A. 사도행전 20장 28절에서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성령께서 여러분을 온 양 떼의 감독들로 세우셨으니,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과 온 양 떼를 위해 스스로 조심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 오신 하나님의 교회를 목양하십시오.”라고 말했다.
      B. 바울은 “나는 압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 들어올 것이며, 그들은 양 떼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행 20:29)라고 말했다. 사도는 자신의 목숨을 돌아보지 않았으며(행 20:24), 자신과 하나님께 보배와 같은 교회의 장래를 매우 염려했다.
      C. 바울은 히브리서 13장 20절에서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 하나님께서”라고 말한다.
      1. 영원한 언약은 한 양 떼를 얻기 위한 신약의 언약이다. 이 양 떼는 몸으로 귀결되고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는 교회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은 목양함으로써 새 예루살렘을 완결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은 우리의 주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키셔서,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에 따라 새 예루살렘을 완결하는 큰 목자가 되게 하셨다.
      Ⅵ.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과 합병된 사도들의 사역의 주된 목적과 목표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하도록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될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것이다 — 비교 엡 3:2, 8-9, 벧전 5:10.
      Ⅶ.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주된 목표와 궁극적인 완결을 위해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는 문제는 아가에서도 언급된다.
      A. “내 혼이 사랑하는 이여, 말해 주세요. 당신은 어디서 (만족을 위해) 양 떼를 먹이시나요? / 한낮에는 어디서 (안식을 위해) 양 떼를 쉬게 하시나요?” ― 아 1:7상.
      B.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가다가 / 목자들의 천막 곁에서 / 그대의 어린 염소들을 먹이도록 하오.” — 아 1:8하.
      C. “내 사랑하는 이는 나의 것, 나는 그이의 것 / 그이는 백합화들(단일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이들)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인답니다.” — 아 2:16.
      D. “나는 내 사랑하는 이의 것, 내 사랑하는 이는 나의 것. / 그이는 백합화들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인답니다.” — 아 6:3.
      Ⅷ. 믿는 이들을 목양하는 것은 믿는 이들의 생명의 성장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 목양하는 길을 취해야 한다.
      A.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님, 저는 부흥되기 원합니다. 오늘부터 저는 목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사람들을 먹이고, 사람들을 목양하며, 사람들을 양 떼처럼 함께 모이게 하고 싶습니다.”
      B. 요한복음 10장과 21장에서 주님은 목양에 관해서 ‘먹이다(feed)’, ‘목양하다(shepherd)’, ‘양 떼(flock)’(요 10:16, 21:15-16), 이렇게 세 단어를 사용하셨다. 우리는 또한 ‘양 떼’를 ‘모이다’라는 의미의 동사로 사용할 수도 있다.
      C. 모든 교회들은 어떻게 무리 지어 모이는지를 배움으로 함께 섞일 수 있어야 한다. 장로들과 동역자들은 앞장서서 이것을 실행해야 한다.
      Ⅸ.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사역은 금등잔대를 유기적으로 보수하는 것인데, 이 사역은 그분의 인성 안에서 교회들을 보살피고 그분의 신성 안에서 교회들을 보양함으로써, 그분의 유기적인 목양을 통해 이기는 이들을 산출하는 것이다 — 계 1:13, 2:7, 요 10:11, 14, 벧전 2:25, 5:4, 히 13:20.
      A. 사람의 아들은 그분의 인성 안에 계시고, 금띠는 그분의 신성을 상징하며, 가슴은 사랑의 표시이다.
      1. 그리스도는 허리에 띠를 띠심으로 교회들을 산출하는 신성한 일을 위해 강화되셨지만(출 28:4, 단 10:5), 이제는 가슴에 띠를 띠시고 자신이 산출하신 교회들을 사랑으로 보살피신다(계 1:13).
      2. 금띠는 그리스도의 신성한 힘인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하고, 가슴은 금과 같은 이 힘이 그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사랑으로 발휘되고 사용되어 교회들을 보양하는 것을 상징한다.
      B. 그리스도는 사람의 아들로서 그분의 인성 안에서 교회들을 돌보시며 보살피신다 — 계 1:13상.
      1. 그리스도는 등잔대들의 등잔들을 손질하여 합당하게 만드시면서 우리를 보살피심으로써 우리를 행복하고 기쁘고 편안하게 하신다 — 출 30:7, 비교 시 42:5, 11.
      a. 주님의 임재는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를 제공하여 우리의 존재를 보살핌으로써 우리에게 안식과 위로와 치료와 씻음과 격려를 준다.
      b. 우리는 교회 안에서 주님의 임재의 보살피는 분위기를 누리면서, 보양하는 생명 공급을 받을 수 있다 — 엡 5:29, 비교 딤전 4:6, 엡 4:11.
      2. 그리스도는 등잔대의 등잔들의 심지를 손질하시면서, 우리가 빛을 비추는 것을 방해하는 부정적인 모든 것을 잘라 내신다 — 출 25:38.
      a. 심지의 검게 탄 부분 곧 불똥은 우리의 육체와 타고난 사람과 자아와 옛 창조물과 같이 하나님의 목적에 맞지 않아 잘라 낼 필요가 있는 것들을 상징한다.
      b. 그리스도는 교회들 사이의 모든 차이점(잘못과 부족과 실패와 결점)을 잘라 버리심으로써 교회들을 본질과 외양과 표현에 있어서 똑같이 되게 하신다 — 비교 고전 1:10, 고후 12:18, 빌 2:2.
      C. 그리스도는 가슴에 있는 금띠로 상징된 그분의 신성과 신성한 사랑으로 교회들을 돌보심으로써 보양하신다 — 계 1:13하.
      1. 그리스도는 세 단계로 된 그분의 충만한 사역 안에서 모든 것을 포함한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보양하심으로써, 우리가 신성한 생명 안에서 자라고 성숙하여 그분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하는 그분의 이기는 이들이 되게 하신다.
      2. 거니시는 그리스도로서 그분은 각 교회의 상태를 알게 되시며, 말씀하시는 영으로서 그분은 등잔대들을 정돈하시고, 신선한 기름이신 그 영을 공급하시어 등잔대들을 채우신다 — 계 2:1, 7, 비교 출 27:20-21, 슥 4:6, 11-14.
      3. 그분의 움직임에 참여하고 그분의 돌보심을 누리려면 우리는 반드시 교회들 안에 있어야 한다.
      Ⅹ. 그리스도의 놀라운 목양을 통해 우리는 오늘뿐 아니라 영원토록 그리스도를 우리의 복으로 누릴 것이다 — 사 49:10, 계 7:9-17, 요 6:35, 4:13-14, 시 36:7-9, 91:1, 사 12:1-6, 계 22:1.
    • 메시지6
      하나님을 따라 목양함
      +
    • 성경: 요 21:15-17, 행 20:28, 벧전 5:2, 4, 엡 4:16
      Ⅰ. 오늘날 주님의 회복 안에는 목양에 대한 긴급한 필요가 있다.
      Ⅱ. 목양하는 것은 모든 것을 포함한 부드러운 돌봄으로 양 떼를 돌보는 것이다 — 요 21:15-17, 행 20:28.
      A. 목양하는 것은 양들의 모든 필요를 돌보는 것을 가리킨다.
      B. 모든 양들은 충분히 공급을 받고, 세심하게 돌봄을 받아야 한다.
      Ⅲ.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 큰 목자, 목자장, 우리 혼의 목자이시다 — 요 10:9-17, 히 13:20-21, 벧전 5:4, 2:25.
      A. 선한 목자이신 주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우리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 요 10:10-11.
      1. 그분은 자신의 양들을 위해 구속을 성취하시려고 자신의 혼생명 곧 인간 생명을 버리셨는데, 이것은 그들이 그분의 조에 생명 곧 신성한 생명을 함께 나누어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 요 10:11, 15, 17.
      2. 그분은 그분의 양들을 우리에서 나오게 하시어, 먹이는 장소인 풀밭이신 그분 자신 안으로 이끄셨다. 그곳에서 그들은 그분을 자유롭게 먹고 그분에게서 보양을 받을 수 있다 — 요 10:9.
      3. 주님은 유대인 믿는 이들과 이방인 믿는 이들을 그분의 목양 아래 한 양 떼(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되게 하셨다 — 요 10:16.
      B. 하나님은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끌어 내셨다 — 히 13:20.
      1. 영원한 언약은 목양함으로 새 예루살렘을 완결한다는 것이다.
      2. 영원한 언약은 한 양 떼를 얻고자 하는 새 유언의 언약이다. 이 양 떼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귀결되고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는 교회이다.
      C. 목자장으로서 그리스도는 교회들의 장로들을 통해 그분의 양 떼를 목양하신다 — 벧전 5:4.
      1. 장로들의 목양이 없다면 교회는 건축될 수 없다.
      2. 장로들의 목양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통해 목양하시는 것이어야 한다.
      D. 우리 혼의 목자로서 공기 같은 영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내적 상태를 감독하시고, 우리의 내적 존재의 상황을 돌보신다 — 벧전 2:25.
      1. 그분은 우리 혼의 유익을 돌보시고 우리의 내적 존재의 상태를 감독하심으로써 우리를 목양하신다.
      2. 우리의 혼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우리의 영 안에 계신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혼을 목양해 주시는 것, 곧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 그리고 우리의 여러 문제와 필요와 상처를 돌보시는 것이 필요하다.
      Ⅳ. 하나님을 따라 목양하려면,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 되고, 하나님으로 조성되며, 하나님을 살고, 하나님을 표현하며, 하나님을 대표하고, 하나님을 공급해야 한다.
      A. 하나님을 따라 목양하려면, 하나님과 하나 되고 하나님으로 조성되는 것이 요구된다 — 요 14:20, 고전 6:17, 엡 3:17상, 골 3:10-11.
      B. 하나님을 사는 이들만이 하나님을 따라 목양할 수 있다 — 빌 1:21상.
      C.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그분 자신을 우리의 생명으로 우리 안에 일해 넣으시어 우리가 그분을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 창 1:26, 엡 1:11, 3:11, 딤후 1:9.
      D. 하나님을 따라 목양하고자 하는 이들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 고후 1:3-4, 12, 15-16, 2:10, 10:11, 11:2.
      E. 하나님을 따라 목양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공급하는 것이다.
      1.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얼마나 공급할 수 있는지는 생명을 흘려 보내기 위해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에 의해 얼마나 파쇄되었는지에 달려 있다 — 고후 4:10-12, 16, 히 4:12.
      2. 우리가 서로에게 하나님을 공급하려면, 우리는 은혜와 진리와 영과 생명에 속한 말을 하여, 우리의 존재 안에 일해 넣어지신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을 공급해야 한다 — 엡 3:16-17상, 4:25, 29, 요 6:63.
      Ⅴ.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라고 당부했다 — 벧전 5:2.
      A. ‘하나님을 따라’는 우리가 하나님을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B.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일 때 하나님이 되며, 다른 이들을 목양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다.
      C. 하나님을 따라 목양하는 것은 우리의 선호나 흥미나 목적이나 기질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본성과 갈망과 길과 영광을 따라 목양하는 것이다.
      D. 하나님을 따라 목양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들의 어떠함에 따라 목양하는 것이다.
      E. 하나님을 따라 목양하려면 우리는 생명과 본성과 표현과 기능에서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1. 우리는 신성한 생명으로 넘치도록 채워져야 하고, 원천과 샘과 강이신 삼일 하나님을 누림으로 신성한 생명의 총체가 되어야 하며, 심지어 신성한 생명 자체가 되어야 한다 — 요 4:14, 골 3:4.
      2. 우리는 사랑과 빛과 의와 거룩함이라는 하나님의 속성들에 있어서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3.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생산 곧 하나님의 표현이 되어, 목양할 때 기질과 특이함을 지닌 자아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표현해야 한다.
      4. 하나님은 그분의 어떠하심에 따라, 그리고 그분의 경륜의 목표에 따라 양 떼를 목양하신다. 우리는 이렇게 양 떼를 목양하시는 하나님의 기능에 있어서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Ⅵ.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목양은 상호 목양이다 — 고전 12:23-26.
      A.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목양 아래 있어야 하고, 그분과 하나 되어 다른 이들을 목양해야 한다 — 요 21:15-17.
      B. 모든 믿는 이들은 생명이 얼마나 자랐든 목양이 필요하다.
      C. 우리는 모두 결점과 부족이 있으며, 우리를 목양해 줄 다른 이들이 필요하다.
      D. 우리는 양들인 동시에 목자들로서 서로 목양하고 목양받는다.
      E. 이러한 상호 목양을 통해 몸은 사랑 안에서 스스로 건축된다 — 엡 4:16.
  • 개요

    봄 장로 국제 훈련 : 말씀의 사역과 하나님의 경륜을 위한 하나님의 분배

    • 메시지1
      “기도하는 것과 그리고 말씀의 사역을 꾸준히 계속할 것입니다.”
      +
    • 성경: 행 6:4, 유 20, 막 11:20-24, 엡 3:17-19
      Ⅰ. “기도하는 것…을 꾸준히 계속할 것입니다.” — 행 6:4.
      A.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기도가 참된 자아 부인이라는 것을 함축한다 — 막 8:34, 9:29.
      B. 기도의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 마 26:39, 요 4:34, 5:30, 6:38.
      C. 기도의 참된 의미는 우리의 영 안에서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 자신을 흡수하는 것이다 — 유 20, 요 14:13, 15:7.
      1. 기도는 사람의 영이 신성한 영을 접촉하는 것이고, 이렇게 접촉하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을 들이쉰다 — 유 20, 요 4:24.
      2. 진정한 기도는 우리의 영 안에 계신 영 하나님과 연합된 기도이다 — 유 20, 엡 6:18, 롬 8:16, 고전 6:17.
      a.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과 연합되시어 하나님과 우리의 영이 함께하는 기도여야 한다.
      b. 참된 기도, 곧 하나님과 사람이 포함된 기도는 하나님의 영께서 사람의 영과 연합되시고 사람의 영이 하나님의 영과 연합된 결과이다 — 유 20, 롬 8:4, 26.
      c. 이러한 기도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연합되고, 하나님은 시작하시는 분이시자 동기를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사람 안에서 기도하시고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기도한다 — 약 5:17.
      3. 우리가 진정한 기도, 곧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하나님을 접촉하는 기도를 하려 한다면, 반드시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우리와 성령이 두 영의 교통 안에서 함께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 유 20, 고후 13:14, 빌 2:1.
      4. 우리가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을 들이쉬고 하나님을 흡수하고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기도가 진정한 기도이다. 우리는 오직 이런 종류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 계 5:8, 8:3-4.
      D. 성경에는 가장 높고 영적인 기도인 권위의 기도가 포함되어 있다 — 마 18:18-19, 막 11:23-24, 엡 1:20-22, 2:6, 6:12-13, 18-19.
      1. 우리가 기도의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 권위의 기도를 배워야 한다. 마태복음 18장 18절에서 주님께서 묘사하신 기도가 바로 이런 종류의 기도이다.
      2. 마태복음 18장 18절에는 묶는 기도라고 부를 수 있는 기도와 푸는 기도라고 부를 수 있는 기도가 나온다. 묶고 푸는 이것이 권위의 기도이다.
      E. 권위의 기도는 마가복음 11장 23절과 24절에 나오는 기도이다.
      1. 믿음은 우리가 구한 것을 이미 받았음을 믿는 것이다 — 막 11:24.
      a. 주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는 받을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았음을 믿어야 한다.
      b. 바라는 것은 장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이지만, 믿는 것은 무언가가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c. 믿음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 수 있거나 하실 것임을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그 일을 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2. 마가복음 11장 20절부터 24절까지에 나오는 기도는 권위의 기도이다 — 막 11:23.
      a. 권위의 기도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하시도록 요청하기보다, 하나님의 권위를 사용하고 적용하여 제거되어야 할 문제들과 일들을 처리한다 — 슥 4:7, 마 21:21.
      b. 하나님은 그분께서 명령하신 것을 우리도 명령하고, 그분께서 분부하신 것을 우리도 분부할 수 있는 권한을 우리에게 주셨다 — 마 17:20.
      c. 교회는 완전한 믿음을 갖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며, 우리가 하는 일이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인식함으로써, 이러한 권위의 기도를 할 수 있다 — 마 6:10, 18:19-20.
      d. 권위의 기도는 이기는 이들과 많은 관련이 있다. 이기는 이들은 모두 ‘이 산’을 향하여 말하기를 배워야 한다 — 막 11:23.
      Ⅱ. “말씀의 사역을 꾸준히 계속할 것입니다.” — 행 6:4.
      A. 사도들이 실행했던 것처럼 기도가 말씀의 사역에 선행되어야 한다 — 행 6:4.
      B.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게 하시며”라고 하는 에베소서 3장 17절 상반절은 말씀의 사역에 대한 하나의 예시이다.
      1.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으로 확장되실 때, 그분은 우리의 인격이 되신다 — 엡 3:17상.
      a.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영 안에 생명으로 취할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 안에 인격으로 취해야 한다.
      b.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인격이 되시는 유일한 길은 그분께서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는 것이다.
      c. 우리가 우리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를 우리의 인격으로 취할 때, 우리의 마음 안에서 사는 인격은 우리 자아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실 것이다 — 갈 2:20.
      2.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고 계시는 그리스도는 무한하고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이시다 — 엡 3:18.
      a.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실 때, 우리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닫는다.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는 우주의 차원, 곧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차원이다.
      b. 그리스도는 측량할 수 없는 분이시지만, 우리의 마음에 그분의 거처를 정하고 계신다.
      c. 그리스도는 우주적인 입방체이시고, 몸 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은 ‘입방체’ 곧 삼차원적인 것이어야 한다.
      3.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에 이르도록 충만하게 될 것이다 — 엡 3:19.
      a. 하나님의 충만은 삼일 하나님을 최고도로 표현하는 그리스도의 몸, 곧 삼일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의 궁극적인 완결이다.
      b. 그리스도의 몸은 무한하신 그리스도의 무한한 표현이다.
      c.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게 해 드린다면, 우리는 삼일 하나님의 완전한 표현이 되는 정도까지 그분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4. 진정한 교회생활은 무한하고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신 결과이다 — 엡 3:17상, 4:16.
      a. 교회의 내용은 우리가 우리의 인격으로 취한 그리스도, 우리의 존재 안으로 일해 넣어지신 그리스도이다.
      b.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갖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c.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교회 건축에 관하여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 성취되려면, 교회는 반드시 성도들이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는 것을 허락해 드림으로 그분께서 그들의 내적 존재 전체를 소유하시고 점유하시고 적시시는 그러한 상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d.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내적 존재를 차지하실수록, 우리는 몸 안에서 다른 이들과 더욱더 건축될 수 있을 것이다 — 엡 2:21-22, 4:16.
    • 메시지2
      화목의 사역
      +
    • 성경: 롬 5:10, 골 1:20, 고후 5:18-20
      Ⅰ. 화목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A. 화목의 필요성 — 적대감, 원수들 — 롬 5:10, 골 1:21.
      B. 화목의 의미 — 화평을 이룸 — 골 1:20, 고후 5:18.
      C. 화목의 매개체 — 그리스도 — 골 1:20, 고후 5:18.
      D. 화목의 수단 — 십자가 — 골 1:20, 엡 2:16.
      E. 화목의 범위 — 하늘들과 땅에 있는 모든 것 — 골 1:20.
      F. 화목의 영역 — 한 몸 안에서 — 엡 2:16.
      G. 화목의 사실 — 우리가 법리적인 구속과 믿음에 의한 의롭다 함에 근거하여 하나님 앞에서 얻은 위치 — 롬 5:10.
      H. 화목의 체험 — 한 영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 — 엡 2:18.
      Ⅱ. 그리스도의 대사들로서 새 언약의 사역자들은 화목의 사역을 수행한다 — 고후 5:18-20, 6:1.
      A. 그리스도의 대사는 우주 안에서 최고 권위이신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B. 사도들은 그리스도에게서 권위를 받아 그분을 대표하여 화목의 일을 한다 — 고후 5:18, 20.
      C. 화목의 사역은 죄인들을 하나님께 되돌아가게 할 뿐 아니라, 믿는 이들을 온전히 하나님 안으로 이끌어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 되게 하는 것이다.
      D. 사람들을 하나님과 완전히 화목하게 하려면 두 단계가 필요하다.
      1. 첫 번째 단계는 죄인들을 죄에서 나오게 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이다 — 고후 5:19.
      a. 그리스도는 이 목적을 위하여 우리의 죄들 때문에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게 하셨다 — 고전 15:3.
      b.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들을 짊어지심으로 우리의 죄들이 하나님께 심판받게 하셨다 — 벧전 2:24.
      2. 두 번째 단계는 타고난 생명 안에서 사는 믿는 이들을 육체에서 나오게 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이다 — 고후 5:20.
      a. 이 목적을 위하여 그리스도는 사람인 우리들을 대신하여 죽으셔서 우리가 부활 생명 안에서 그분을 향하여 살도록 하셨다 — 고후 5:14-15.
      b.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심으로 죄가 하나님께 심판받고 제거되었다 — 고후 5:21, 롬 8:3.
      E. 우리가 화목의 사역을 수행하려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동일시되어야 한다 — 고후 4:10-12, 5:14, 갈 2:20, 5:24.
      F. 고린도 성도들은 여전히 육체 안에서 살았다. 다시 말하면, 겉사람이자 타고난 존재인 혼 안에서 살았다 — 고전 3:1, 2:14.
      1. 육체, 곧 타고난 사람이라는 휘장이 그들을 하나님에게서 분리했다.
      2. 바울은 고린도의 믿는 이들이 지성소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육체라는 분리하는 휘장을 완전히 찢어 버리려고 일하고 있었다 — 히 10:19-20.
      G. 우리는 하나님과 완전히 화목하게 될 때에만 완전히 구원받는다 — 고후 6:1-2, 롬 5:10, 히 7:25.
      H. 우리가 다른 이들을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께로 그리고 하나님 안으로 인도할 수 있는지는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현재 위치로 결정된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더 있을수록, 우리는 다른 이들을 하나님 안으로 더 화목하게 할 수 있다 — 고후 12:12상, 5:20.
      Ⅲ. 화목의 사역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는 정도까지 우리를 하나님께 돌아가게 한다 — 고후 5:21.
      A. 우리는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을 뿐 아니라(갈 2:16), 사실상 하나님의 의가 된다.
      B.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속자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하나님은 그분을 죄를 짊어지신 분으로 여기셨을 뿐 아니라 죄 자체로 여기셨다. 이제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는 생명으로서 우리 안에 오시고, 이 생명은 우리 안에 살면서 우리를 하나님의 의로 조성한다.
      C. 그리스도는 그분의 대치하심을 통하여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다. 이제 그분의 조성하심을 통해 우리는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된다 — 고후 5:21.
      1. ‘그분 안에서’라는 표현은 위치적으로뿐만 아니라 부활 안에서 유기적으로 그리스도와 연결됨을 의미한다.
      2.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육체 안에서 그분을 죄라고 유죄판결 하심으로(롬 8:3, 요 3:14), 우리가 그분의 부활 안에서 그분과 하나 되어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유기적인 연결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된다.
      D.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은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께 올바르게 되는 문제이다. 이것은 내적 존재가 투명하고 수정같이 맑게 되는 것, 다시 말하면 내적 존재가 하나님의 생각과 의지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 고후 5:21.
      E. 고린도후서는 믿는 이들을 하나님과 철저히 화목하게 하는 것과 화목의 수단이신 그리스도를 계시한다.
      Ⅳ. 화목의 두 단계는 성막의 두 휘장으로 분명히 묘사된다 — 출 26:31-37, 히 9:3.
      A. 두 휘장 모두가 유일하신 그리스도, 곧 우리의 죄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 때문에 죽으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B. 첫째 휘장은 ‘막’이라고 불린다 — 출 26:36-37.
      1. 화해시키는 피로 화목하게 되어 하나님께 이끌린 죄인은 이 막을 지나 성소 안으로 들어갔다.
      2. 이것은 첫 번째 단계의 화목을 예표한다.
      C. 둘째 휘장(출 26:31-35, 히 9:3)은 여전히 그 죄인을 지성소 안에 계신 하나님과 분리되게 했다.
      1. 이 휘장은 죄인이 지성소 안에 계신 하나님께 이끌릴 수 있도록 갈라져야 했다 — 마 27:51, 히 10:19-20.
      2. 이것은 두 번째 단계의 화목을 예표한다.
      Ⅴ. 하나님과 완전히 화목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넓힌다 — 고후 5:20, 6:11-13.
      A.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넓은지는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정도에 달려 있다.
      B. 마음이 좁은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부분적으로만 화목하게 되었고, 우리가 구원받은 정도가 상당히 낮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는 표시이다 — 고후 6:2, 롬 5:10.
      C.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을 용서하고 잊을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넓어진 사람,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는 표시이다 — 마 18:21-35, 엡 5:21, 골 3:13.
      D. 우리는 마음이 좁은 것과 마음이 넓은 것의 대조에 깊은 인상을 받아야 한다.
      Ⅵ. 다음은 화목의 결과이다.
      A. 하나님을 향해 화평을 누림.
      1.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첫 번째 결과는 하나님을 향해 화평을 누리는 것이다 — 롬 5:1.
      2.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향해 화평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화평의 길을 걷는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결과이다.
      B. 하나님 안에서 자랑함.
      1.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자랑할 수 있다 — 롬 5:11.
      2.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자랑하고 크게 즐거워하며 기뻐한다.
      3.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소망 안에서 자랑한다 — 롬 5:2.
      4. 이것 또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결과이다.
      C. 그분의 생명 안에서 구원받음.
      1.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결과로 우리는 그분의 생명 안에서 구원받게 된다 — 롬 5:10.
      2. 이렇게 생명 안에서 구원받는 것 또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결과이다.
      Ⅶ. 화목의 사역을 통해 우리는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 안으로 합병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확대되고 우주적이며 신성하고도 인간적인 합병체가 된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성소, 그분의 거처, 그분의 지성소인 새 예루살렘이 된다 — 요 14:20, 23, 계 21:2, 10, 16.
    • 메시지3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생명을 공급함
      +
    • 성경: 요일 5:14-17, 요 15:4-5, 7, 롬 12:4-5
      Ⅰ. 요한일서 5장 14절부터 17절까지에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누릴 뿐 아니라 이 생명을 그리스도의 몸의 다른 지체들에게 공급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암시가 있다.
      A. 요한일서 5장 14절부터 17절까지는 우리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죽음뿐 아니라 교회의 다른 지체들 안에 있는 죽음도 이길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B. 요한일서 5장 16절은 성경에서 생명을 누군가에게 공급하는 것을 언급한 유일한 절이다.
      1. 생명을 공급하는 것은 생명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2. 우리가 차고 넘치도록 생명을 얻을 때, 이렇게 공급받은 것에서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다 — 요일 5:16.
      C. 요한일서 5장 14절은 영원한 생명의 교통 안에서 기도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1. 우리는 우리의 방식이나 갈망이나 선호에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해야 한다.
      2.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이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 거하고 또한 주님 자신 안에 거하여 참으로 주님과 하나라는 것을 가리킨다 — 요 15:4-5.
      3. 요한일서 5장 15절에 있는 ‘앎’은, 우리가 신성한 생명을 받아들인 후에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의 이름 안에서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주님과 하나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 요 15:7, 16, 16:23-24.
      4. 요한일서 5장 16절에서 ‘구하는 사람’과 ‘생명을 주는 사람’은 동일한 사람, 곧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보고 그 형제에 관해 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a. 이렇게 구하는 사람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과 하나 되며, 주님과의 한 영 안에서 구함으로써(고전 6:17), 하나님의 생명 주시는 영께서 중보기도 대상자들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도록 하는 수단과 통로가 된다.
      b. 이것은 신성한 생명의 교통 안에서 생명을 공급하는 문제이다.
      5. 핵심 요점은 우리가 요한일서 5장 16절에 묘사된 것처럼 형제를 위해 기도하려면, 주님과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요 15:7.
      D. 생명의 사역은 우리가 체험한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 고후 1:3-4.
      1. 사역은 십자가의 일로 말미암아 산출된다. 십자가의 길에 의해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생명으로 공급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갖는다 — 고후 4:12.
      2. 우리가 얼마나 생명을 공급하고 그리스도의 풍성의 실재를 공급할 수 있는지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계시를 받고 우리에게 계시된 것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았는지에 달려 있다 — 엡 3:8.
      Ⅱ. 우리가 생명을 공급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부활의 하나님으로 알고 체험하고 얻어야 한다 — 롬 4:17, 고후 1:9, 요 11:25.
      A. 하나님은 우리가 더 이상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부활의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종결하고 끝내는 일을 하고 계신다 — 고후 1:9.
      B. 부활의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실 때, 그분의 생명과 본성이 우리 안으로 일해 넣어진다 — 고후 4:16.
      C. 십자가의 죽임은 결과적으로 부활 생명이 나타나도록 한다 — 고후 4:10-12.
      1. 예수님을 죽게 한 것은 타고난 사람과 겉사람과 육체를 허물어뜨리며, 그 결과 속사람이 발전하고 새롭게 될 기회를 얻어 부활 생명을 살아 낼 수 있게 된다 — 고후 4:16.
      2.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고 계시는 모든 일은 우리의 타고난 겉사람을 허물어뜨려, 우리가 우리 속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생명을 살아 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신약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관한 가장 깊은 사상이다 — 요 12:24-26, 빌 1:21상.
      3.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머물고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심오한 원칙이다 — 롬 6:4-5, 빌 3:10.
      a.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머물 때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을 체험한다 — 빌 3:10-11, 롬 8:11, 고후 1:8-10, 4:14.
      b. 우리가 이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수록, 그분의 부활 능력은 우리 안에서 더 나타날 것이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게 생명을 더욱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 요 11:25.
      4. 우리의 타고난 힘과 능력은 십자가로 처리되어야만 부활 안에서 생명의 사역을 위해 유용해질 수 있다 — 빌 3:3.
      D. 싹이 나고 꽃 피고 열매 맺는 막대기는 우리가 생명을 몸에게 공급하도록 하는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상징한다 — 민 17:8.
      Ⅲ. 우리는 생명에 있어서 몸을 알아야 한다 — 요일 5:11-12, 골 3:4, 2:19, 롬 8:2, 6, 10-11, 12:4-5.
      A.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 안에 생명으로 계신 그리스도에 의해 형성된다. 이 생명이 우리와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 — 요일 5:11-12, 골 3:4, 1:18, 2:19.
      1.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은 ‘지체’의 생명이 아니라 ‘몸’의 생명이다.
      2. 우리는 이 생명 안에서 모두 하나이다. 이렇게 생명 안에서 하나 된 것이 그리스도의 비밀한 몸이다 — 엡 5:30.
      B. 생명에 있어서 몸을 아는 것은 우리가 생명을 체험하고 영적으로 성장한 결과이다 — 요일 2:12-14.
      1. 몸을 알고 몸의 실재를 접촉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생명의 체험과 생명의 성장에 있어서 진보해야 한다 — 고전 3:1-2, 14:20.
      2. 영적인 생명의 넷째 단계에 도달한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의 비밀을 알 수 있다 — 엡 4:12-13, 15-16.
      3. 몸을 알고 몸 안에서 살려면, 우리는 육체와 자아와 타고난 조성을 처리해야 한다 — 갈 2:20, 5:24, 마 16:24.
      a. 우리가 여전히 육체에 따라 우리 자신 안에서 살며 우리의 타고난 능력으로 봉사한다면,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자신인 몸의 생명은 나타날 수 없고 우리는 몸을 알 수 없다.
      b. 육체가 처리되고 자아가 버려지고 타고난 조성이 파쇄될 때에만, 우리는 몸의 실재를 만질 수 있다 — 고전 12:12, 엡 4:4-6.
      C. 몸을 아는 것은 개인주의를 처리하는 것이다. 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두 개인주의자들이다 — 고전 12:14-22.
      D. 우리가 몸을 안다는 증거는 우리가 개인주의적일 수 없고, 몸 안에 있지 않은 사람들을 분별할 수 있으며, 몸의 질서 안에서 드러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권위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 고전 12:18.
      Ⅳ. 우리는 실행에 있어서 몸을 알아야 한다 — 고전 12:20, 27, 15:58.
      A. 한 지방에 있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그 지방에서 표현된 것이다 — 고전 1:2, 10:32하, 12:12-13, 20, 27.
      1. 우주적인 한 교회인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몸이 지방적으로 표현된 많은 교회들이 된다 — 롬 12:4-5, 16:1.
      2. 그리스도의 유일한 몸은 각지 교회들로 표현된다 — 엡 4:4, 계 1:4, 11.
      3. 각 지방에 있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유일하고 우주적인 몸의 일부, 곧 몸의 지방적인 한 표현이다 — 고전 1:2, 12:27.
      4. 우리가 몸을 안다면, 우리는 몸을 가장 먼저 고려하고 각 지방에 있는 교회는 두 번째로 고려할 것이다 — 롬 12:4-5, 16:1, 4, 16.
      B. 주님의 회복 안에는 오직 한 일 곧 몸의 일만 있다. 오늘날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우리 개인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의 일 곧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일이다 — 고전 15:58, 16:10, 골 2:19, 엡 4:4, 12, 16.
      Ⅴ. 성경의 가르침과 우리의 영적 체험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의식이라는 것이 있다 — 고전 12:26-27, 고후 11:28-29.
      A.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의식은 그리스도를 누리는 데서 생긴다 — 골 2:16-19.
      1. 우리가 우리의 음식과 음료와 숨으로 누리는 사랑스러우시고 소중하신 분은 몸의 머리이시다 — 고전 10:3-4, 요 20:22, 골 1:18, 2:19.
      2. 우리가 누리는 것은 사실상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릴 때, 이러한 누림으로 인해 그분은 주관적이며 체험적으로 우리의 머리가 되신다 — 엡 3:8, 17, 4:15.
      3.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릴 때, 머리이신 그분은 우리가 몸에 대한 의식을 갖게 하신다 — 골 2:19.
      B.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의식은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감각이다 — 골 3:4, 15, 롬 8:2, 6, 10-11, 12:4-5.
      1.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 각 사람 안에 계시며 우리와 연합되신, 생명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형성된다 — 골 3:4, 2:19.
      2.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의식에 관하여,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생명의 감각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 롬 8:6.
      C. 그리스도의 몸은 우주적이고, 우리 안에 있는 생명도 우주적이며, 몸에 대한 감각도 우주적이다 — 고전 12:26-27, 고후 11:28-29.
      1. 일단 신성한 생명과 그 영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는 우주적인 감각 곧 몸에 대한 의식을 가질 것이다 — 롬 8:2, 10-11, 12:4-5, 15.
      2. 몸의 감각은 우주적인 것이지만, 이 감각은 우리 자신의 느낌과 견해로 인하여 우리 안에서 제한받아 왔다 — 잠 14:10, 고후 6:11-13.
      3. 우리가 주님의 파쇄를 더 체험하고 자신에게서 더 구출될수록, 몸의 감각이 우주적이라는 것을 더욱더 발견할 것이다 — 고후 11:28-29.
      4. 우리가 몸의 감각을 갖는다면 다른 이들이 고통을 당하거나 축복을 받을 때,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할 것이고 동일한 고통과 축복을 느낄 것이다.
      D.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서 우리는 몸의 의식과 몸의 느낌을 가져야 한다 — 롬 12:15, 고후 11:28-29.
      1. 몸의 생활을 하려면 우리는 몸을 의식해야 한다 — 고전 12:26-27.
      2.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의식을 갖고 몸에 관심한다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서 몸을 규칙으로 삼을 것이다 — 엡 4:15-16.
    • 메시지4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분량의 한계와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사역
      +
    • 성경: 고후 10:12-15, 엡 2:6, 6:10-12
      Ⅰ. “우리는 우리의 분량을 벗어나 자랑하지 않고, 분량을 재어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에 따라 자랑하는데” — 고후 10:13.
      A. 사도 바울은 담대하였으나 제한 없이 담대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그가 주님의 제한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1. 바울의 자랑은 분량을 재어 주시는 하나님, 곧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누어 주신 그 분량의 한계에 따른 것이었다.
      2. 고린도를 포함한 이방 세계에 대한 바울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재어 주신 분량에 따른 것이었다(엡 3:1-2, 8, 갈 2:8). 그러므로 그의 자랑은 이러한 한계 안에 있었다.
      B. 고린도후서 10장 13절에서 ‘한계’라고 번역된 단어는 직역하면 목수의 자와 같이 ‘측량하는 막대기’를 의미한다.
      1. 이 절에서 ‘분량’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에 의해 재어진 것을 시사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과 체험에 맞게 우리에게 할당하셨다.
      2. 재어 주시고 측량하시는 분, 곧 분량을 재어 주시고 측량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재어 주시고 측량하신 한계 안에 머물러야 한다.
      C. 고린도후서 10장 13절부터 15절까지에서 우리는 주님의 일이 확산되기를 기대할지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제한 아래 있는 법을 배워야 함을 볼 수 있다.
      1. 우리는 한계 없이 확산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확산은 분명 그 영을 따라 행함으로 제한받은 것이 아닐 것이다 — 롬 8:4-5, 14.
      2. 체험을 통해 우리는 그 영을 따라 일을 확산시킨다면 언제나 제한이 있다는 것을 증언할 수 있다.
      a. 내적으로 우리는 어떤 지점 이상으로 일을 확산시킬 때 평안을 갖지 못한다.
      b. 외적으로 환경이 우리가 특정한 경계선을 넘어서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D. 바울은 주님의 제한을 받아들이는 것을 배워야 했다.
      1. 바울은 로마에 가기를 원했지만 결박당한 채로 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 행 26:29.
      2. 바울은 로마에 있는 믿는 이들에게 그들을 거쳐 스페인에 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지만(롬 15:24), 결국 스페인에 가지 못했다.
      3. 바울은 하나님께서 재어 주신 분량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바울이 결박당하고 감옥에 갇힌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제한이었다.
      E. 하나님의 측량하심이라는 원칙에 근거하여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자신이 행하고 말한 것은 모두 그의 분량을 넘어선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바울은 언제나 자신의 분량 안에서 활동하고 처신했다 — 고전 2:1-5, 12-13.
      F. 사도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재어 주심에 따라 움직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측량해 주신 것은 모두 그들의 관할이 되었다.
      G. 교회 봉사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정 분량만 측량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며, 우리 스스로 우리의 분량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 고후 10:12, 14.
      H. 바울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측량해 주신 만큼 움직이고 활동해야 한다 — 고후 10:13.
      Ⅱ. 우리가 부활 안에 있는 새 창조물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승천 안에서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을 위한 영적 전쟁에 참여한다 — 아 4:8, 6:4, 10, 엡 2:6, 6:10-12.
      A. 승천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사자들의 굴에서, / 표범들의 산에서’ 바라본다 — 아 4:8하.
      1. 사자들의 굴과 표범들의 산은 사탄과 그의 부하들이 있는 하늘들의 영역을 상징한다.
      2. 승리는 이미 얻었지만, 사탄과 그의 악한 군대들은 여전히 하늘들의 영역에 있다. 우리의 생활은 반드시 악한 세력들보다 훨씬 높이 승천 안에 있어야 한다 — 엡 3:10, 6:12.
      3. 여기에서 우리는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권능 안에서 굳세게 됨으로써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완전한 전투 장비로 무장함으로써 사탄과 그의 어둠의 권세와 싸운다(엡 6:12-20). 이것이 그리스도의 승천 안에서의 삶의 실재이다.
      B. 영적 전쟁이 필요한 이유는 사탄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에 대항해 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싸움은 사탄의 의지를 정복하고 하나님의 원수를 패배시키는 것이다 — 마 6:10.
      1. 우리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 엡 5:17, 골 1:9.
      2.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성취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 엡 1:5, 9, 11.
      a. 하나님은 영원한 뜻을 갖고 계시는데, 이 뜻이 그분의 영원한 목적의 근원이다 — 엡 1:11, 3:11.
      b.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영원하시므로 그분의 뜻 역시 영원하다. 하나님의 뜻은 우주의 기원의 심장부에 있다 — 계 4:11.
      c.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시고 이루시기 위해, 그분의 뜻에 따라 만물을 창조하셨다 — 엡 3:11.
      d.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께 집중되어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만물 가운데 첫째 위치를 가지시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뜻 안에서 모든 것이시다 — 골 1:15-18, 3:4, 10-11.
      e.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함께 교회를 얻기 원하신다.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얻으시는 것이다 — 엡 5:32, 1:9, 22-23, 2:21-22, 4:16.
      C. 영적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승천의 위치를 유지해야 한다 — 아 4:8, 엡 2:6.
      1. 에베소서 6장 10절부터 12절까지에서 언급된 영적 전쟁은 2장 6절에 나오는 승천의 위치에 근거한다.
      2. 승천의 위치는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하게 한다. 왜냐하면 오직 승천의 위치 안에서만 우리는 하늘에 속한 권위를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의 원수를 처리하는 권위의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D. 영적 전쟁은 그리스도의 승리에 근거한다. 죽음을 통해 주 예수님은 마귀를 멸망시키시고 무효화하셨다 — 마 27:51-54, 히 2:14.
      E. 우리는 사탄적인 혼돈을 정복하고 신성한 경륜 안에서 승리하기 위해 영적 전쟁에 참여한다 — 엡 1:10.
      1. 우주의 역사는 하나님의 경륜과 사탄의 혼돈의 역사이다 — 창 1:1-2, 26, 계 20:10-21:4.
      a. 사탄은 혼돈의 근원이고, 하나님 자신은 신성한 경륜이시다.
      b. 성경과 우리의 체험 모두에서 사탄적인 혼돈은 항상 신성한 경륜과 병행한다 — 고후 4:6, 딤전 1:4.
      2. 하나님은 우리를 혼돈에서 구출하시는 대신, 우리가 그분과 하나 되어 옛 창조물 안에 있는 파괴적인 사탄적 혼돈을 정복하고 새 창조물을 위한 건설적인 신성한 경륜을 수행하기를 원하신다 — 엡 3:8-10, 고후 5:17.
      3. 혼돈을 겪는 동안 우리는 신성한 경륜을 위해 서서 신성한 경륜을 살아 내야 한다 — 딤전 1:4, 18, 딤후 4:7.
      F. 우리는 신성한 건축물, 곧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 영적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전쟁을 위한 복무이다 — 마 16:18, 민 4:3, 26:2, 느 4:14-23, 딤전 1:18, 6:12, 딤후 4:7.
      G. 영적 전쟁의 목적은 하나님의 왕국을 이끌어 오는 것이다 — 계 12:10.
      1. 영적 전쟁은 하나님의 왕국과 사탄의 왕국 사이의 전쟁이다 — 마 12:26, 28-29.
      2. 하나님의 왕국은 신성한 의지를 행사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탄의 능력을 전복시키는 것이다 — 마 6:10, 12:28.
      3. 교회의 일은 하나님의 왕국을 이끌어 오는 것이며, 교회는 반드시 기도를 통해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왕국의 능력을 해방해야 한다 — 마 16:18-19, 6:9-10, 13, 18:19, 계 11:15.
      Ⅲ. 그리스도는 그분의 결혼 날에 오랫동안 하나님의 원수에 맞서 전쟁을 치러 온 이들과 결혼하실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는 이미 악한 자를 이긴 이기는 이들과 결혼하실 것이다 — 계 19:7-9, 11-16.
      A. 그리스도는 적그리스도와 그의 군대에 맞서 싸우러 오실 때 사람의 아들로서 오실 것이며, 사람의 아들이신 그분은 그분과 어울리고 그분을 완전하게 할 짝이 필요하실 것이다. 이 짝이 곧 그분의 신부일 것이다 — 계 14:14, 19:7-9.
      B. 그리스도의 신부를 구성하는 이기는 이들은 하나님의 모든 원수에 맞서 전투하여 그들을 패배시킨다 — 계 2:7, 11, 17, 26, 3:5, 12, 21.
      1. 이기는 이들은 죽음에 대항하는 생명의 전쟁에 참여하며, 생명 안에서 왕으로서 죽음을 다스린다 — 마 16:18, 요 5:24, 딤전 6:19, 딤후 1:10, 요일 3:14, 롬 5:17, 21.
      2. 이기는 이들은 파괴적인 혼돈을 정복하고 건설적인 신성한 경륜 안에서 승리한다. 현재의 혼돈에서 구출되는 대신 그들은 모든 것을 충족하는 은혜이신,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에 의해 혼돈을 정복한다 — 딤후 1:9, 15, 2:1, 17-18, 4:22.
    • 메시지5
      주님에게서 부담을 받아 말씀을 공급하고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 동역하는 주님의 신실한 청지기들이 됨으로써 주님과 협력하여 그분의 경륜을 수행함
      +
    • 성경: 사 1:1, 2:1, 13:1, 15:1, 슥 12:1, 말 1:1, 행 1:14, 2:46, 6:4, 고전 14:4하
      Ⅰ. 하나님의 계획인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은 그분의 가정 경륜 혹은 그분의 가정 행정이며, 하나님의 분배하심 혹은 하나님의 나누어 주심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경륜을 성취하시는 과정과 수단이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의 분배하심은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있다 — 딤전 1:3-4와 4절 각주 4.
      A.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 둘레, 요소, 영역, 수단, 목표, 푯대이시다. 사실상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모든 내용은 다만 그리스도이다 — 마 17:5, 눅 24:44.
      B. 우리가 하나님의 경륜을 알지 못한다면 성경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성경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경륜이며,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것이다 — 눅 24:45, 욥 10:13, 비교 엡 3:9.
      C.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 자신을 우리의 존재 안으로 분배함으로써 우리의 존재가 그분의 존재로 조성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신성한 생명이신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는 것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 엡 3:16-17상, 요 10:10, 14:6상, 고전 15:45하, 롬 8:2, 6, 10-11.
      Ⅱ. 하나님께서 그분의 경륜을 수행하시려면, 반드시 신성한 생명 공급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분배하는 신실한 청지기들, 신실한 분배자들을 얻으셔야 한다 — 눅 12:42, 딛 1:7.
      A. ‘청지기’에 대한 헬라어 단어는 디모데전서 1장 4절과 에베소서 1장 10절에 나오는 ‘경륜’에 대한 헬라어 단어와 같은 어근을 갖는다.
      B.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경륜의 선하고 신실한 청지기들, 곧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리스도를 공급함으로써 하나님의 가족인 성도들의 필요를 채우는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이신 그리스도를 분배하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 고전 4:1-2, 엡 3:2, 벧전 4:10, 엡 2:19.
      C. 날마다 놀라운 전달이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은 은혜의 영을 넘치게 공급하고 계시고, 우리는 은혜의 영을 계속 받아들이고 분배해야 한다 — 요 1:16, 히 10:29하, 갈 3:2-5, 엡 3:2, 4:29.
      D.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은혜를 체험하는 은혜의 생활이므로 우리는 은혜를 분배하는 우리의 은혜의 청지기 직분을 수행해야 한다 — 엡 3:1-2, 고후 12:7-9.
      E. 우리는 은혜의 영을 넘치게 공급하는 통로들, 즉 성도들이 생명이 자라고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공급하고 분배하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 행 6:4, 20:32, 고후 3:6, 빌 1:19-25, 히 10:29하, 요일 5:16.
      Ⅲ. 우리는 주님에게서 부담을 받아 말씀을 공급해야 한다.
      A. 하나님께 열려 있는 영은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부담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다. 우리는 주님과의 친밀한 교통 안에서 기도함으로 부담을 받고 부담을 해방하기를 배워야 한다 — 눅 1:53, 시 27:4, 사 59:16, 골 4:2.
      1. 기도와 일은 분리될 수 없다. 기도가 없다면 일도 없다 — 렘 33:2-3, 사 62:6-7, 행 6:4.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부담을 주신다면, 그분은 우리가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를 원하신다. 부담은 말로 표현해야만 해방된다 — 막 7:29, 히 5:7.
      3. 우리가 집에서 크게 기도할 수 없다면,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부담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작은 목소리로 기도하더라도 들릴 수 있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부담을 분명히 말해 내기를 원하신다 — 막 1:35, 눅 6:12, 시 4:1, 5:1-3, 77:1, 102:1, 116:1, 142:1, 아 2:14.
      B. 신언자들이 받은 계시는 그들이 받은 부담이 된다. 부담이 없다면 교회를 건축하기 위한 말씀의 사역, 곧 신언이 없다 — 사 1:1, 2:1, 13:1, 15:1, 슥 12:1, 말 1:1, 행 6:4, 고전 14:4하.
      1. 우리의 부담은 하나님의 계시를 사람들에게 해방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시의 말씀을 통해 해방된다 — 고전 2:11-16.
      2.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할 때, 우리의 관심은 우리가 말하려는 주제에 있지 않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하심이 있는지의 여부에 있어야 한다. 말씀을 공급하는 이에게 하나님의 말씀하심이 있으려면 반드시 그에게 부담이 있어야 한다 — 말 2:7.
      3. 말씀을 공급하는 이들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의 상태를 짊어지고, 그들의 상태를 감지하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기 원하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 출 28:29-30.
      C. 교회의 행정과 말씀의 사역에서 가장 큰 문제는 주님에게서 받은 부담이 없는 것이다.
      1. 부담이 없다면 우리의 모든 활동은 죽어 있고 효과가 없을 것이다. 부담이 있다면 우리는 살아 있고 번성할 것이다.
      2. 부담을 가질 때 우리는 가장 많이 처리받는다. 부담이 있으면 자아가 감소되고 처리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부담이 우리가 하도록 허락하지 않는 일들이 있고, 우리가 받은 부담을 해방하기 전에 우리의 존재가 처리되어야 할 영역들이 있기 때문이다.
      3. 우리가 부담을 가지고 봉사하기보다 의무에 따라 봉사한다면, 이러한 봉사는 우리에게 주님의 임재를 잃게 할 것이다 — 비교 말 3:14, 신 4:25.
      4. 언제든지 우리의 봉사가 의무를 이행하는 일이 된다면, 우리의 봉사는 이미 하락한 것이다.
      Ⅳ.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 동역해야 한다 — 행 1:14, 2:46.
      A. 우리가 몸을 보았다는 가장 큰 표시는 독립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 1절에서 소스데네를 언급한 것은 바울에게 몸의 의식과 동역의 영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B. 몸 안에서 동역하기 위해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필요하다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배우는 이의 영이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영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다 — 마 5:3.
      1. 동역은 우리에게 서로가 없다면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우리에게 서로가 필요하다는 느낌이 없고 교통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없는 것은 교만의 가장 큰 형태이다. 이것은 주님과 몸에게 가장 크게 득죄하는 일이다.
      3. 우리에게 다른 이들과 동역하는 것이 부족하다면, 우리는 항상 다른 이들이 하는 일을 비판할 것이다.
      C.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가 한마음 한뜻이 되고, 영 안에서 서로 조화되며, 참된 동역을 갖고, 진정한 하나를 갖는 것에 근거한다 — 행 1:14.
      1. 우리는 말씀을 공급하고 교통하며 기도할 때 다른 이들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 특별히 우리는 다른 이들과 함께 기도할 때 상반된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2. 우리는 말씀의 사역을 할 때 다른 이들을 비판하는 것을 절대로 피해야 한다. 다른 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우리가 좁다는 것을 보여 주며, 이것은 분열을 가져올 것이다.
      3.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들과 동역하며 협력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몫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다른 사람들의 몫을 존중해야 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몫이나 다른 사람들의 몫이 모두 주님께서 맡기신 것이기 때문이다. 각 사람은 반드시 겸손하게 자기의 몫을 다른 사람의 몫보다 높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 빌 2:3-4.
      4. 형제들은 파쇄되어 다른 사람들을 수용하고 다른 사람들의 기능을 존중하는 공과를 배워야 한다. 이렇게 할 때에만 우리는 우리 가운데 몸의 의식을 보전하고 건축을 산출할 수 있다.
      5. 우리는 모두 한 혼이 되어 누가 메시지를 전하든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그에게 공급하고 그를 부축해야 한다. 만일 주님을 섬기는 이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지 않고 계속해서 의견을 달리한다면, 이러한 사실을 원수가 알고 성도들이 알고 심지어 자녀들까지도 알 것이다.
      6.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보다 높다는 인상을 성도들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 성도들은 우리가 하는 말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과 조화를 이룬다는 인상을 받아야 한다.
      7. 한 형제가 말할 때, 어떤 사람은 비평하면서 마음속으로 ‘나는 이것을 이미 알고 있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영은 하나님의 일을 파괴한다.
      8. 신실한 성도들이 우리를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 관련해서나 주님의 회복과 관련해서 그들에게 염려를 끼칠 만한 것은 그 무엇도 행하거나 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고전 1:10, 고후 12:18, 딤전 4:12, 딛 2:7-8.
      9. 교만은 파멸을 불러들이지만, 겸손은 축복을 가져온다 — 잠 16:18, 벧전 5:5.
      10. 봉사하는 이들 가운데 건축이 부족한 이유는 그들에게 서로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a.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과 우리를 위해 하신 기도는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 요 13:34-35, 15:12, 17.
      b. 봉사자들 사이에는 특출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서로에 대한 이러한 사랑은 우리가 주님과 하나 된 데서 나온다.
      c. 장로들과 동역자들은 서로 목양하고 서로 사랑하여 몸의 생활의 본이 되어야 한다 — 요 21:15-17, 벧전 1:22.
      D. 우리는 우리의 영을 사용하고 해방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함으로써 함께 섞여야 한다 — 마 18:19, 행 1:14, 찬송가 614장.
      1. 우리는 개인주의적으로가 아니라 단체적인 한 몸으로서 기도해야 한다.
      2. 한 면으로 우리는 우리 옆에 있는 사람이 우리의 기도를 이어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도해야 하고, 다른 한 면으로는 다른 사람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그들의 기도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기도에 이어서 기도해야 한다.
      3. 우리는 주님께 설명하고 묘사하고 지시하는 말이 가득한 긴 기도를 하기보다, 간구하고 탄원하는 짧은 기도를 해야 한다.
      4. 긴 기도는 항상 기도 집회를 죽인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과 자신의 느낌만을 주의하고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이나 집회 안의 분위기와 그 영의 흐름을 주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Ⅴ. 교회 안에서 서로 동역하며 봉사하는 것은 생명나무와 감추어진 만나와 잔치 음식이신 그리스도를 먹음으로써 일곱 배로 강화되신 하나님의 영에 의해 교회의 타락을 이김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최종 완성한다 — 계 4:5, 5:6, 2:7, 17, 3:20-21, 슥 4:11-14.
      A. 교회 안에서 서로 동역하며 봉사하는 것은 의와 화평, 그리고 성령 안에 있는 기쁨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이렇게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는다’ — 롬 14:17-18.
      B. 교회 안에서 서로 동역하며 봉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따라 사람들을 목양하는 것이다 — 벧전 5:1-6.
      C. 교회 안에서 서로 동역하며 봉사하는 것은 즐거이 드리는 이가 되는 것이다 — 고후 9:7, 행 20:35.
      D. 교회 안에서 서로 동역하며 봉사하는 것은 흐르시는 삼일 하나님으로 넘쳐흐르는 신언하는 생활을 함으로써 교회를 건축하여 하나님의 충만인 교회를 조성하는 것이다 — 요 4:14하, 7:38-39, 고전 14:4하, 26, 엡 3:19.
    • 메시지6
      요한의 사역에 있는 삼일 하나님의 분배
      +
    • 성경: 요 1:1, 14:7-21, 23, 3:34, 16:13-15, 요일 2:27, 3:9, 계 21:9-10, 22:13
      Ⅰ. 요한의 글들의 주제는 온 우주의 실재와 중심과 내용이다. 이 주제는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그분께 선택받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생명과 생명 공급으로 분배하시어 그들 모두를 신성하게 하심으로써 그분 자신을 충만하고도 영원토록 표현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실재와 중심과 내용이 되어야 한다.
      Ⅱ. 요한의 글들은 신성한 삼일성이 그분 자신을 신성한 움직임과 우리의 체험 안에서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는 것을 밝혀 준다.
      A. 요한복음 14장 6절은 “내가 곧 길이요 실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가지 못합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우리의 목표이신 아버지께 가려면, 반드시 길이신 아들을 통해 가야 한다.
      B. 요한복음 14장 7절부터 14절까지는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 체현되시어 믿는 이들 가운데서 보이셨다는 것, 다시 말하면 아들께서 믿는 이들 가운데서 아버지의 체현이시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절들에서 주님은 그분이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께서 그분 안에 계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이시다. 아들과 아버지는 상호적으로 서로 안에 내주하신다.
      C. 요한복음 14장 15절부터 20절까지는 계속해서 아들께서 그 영으로 실재화되시어 믿는 이들 안에 거하시는 것, 다시 말하면 그 영께서 아들의 실재화로서 믿는 이들 안에 거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D. 목표이신 아버지와 체현이신 아들과 실재화이신 그 영께서 그릇인 우리 안에 계신다. 목표와 체현과 실재화는 질그릇인 우리 안에 있는 탁월한 보배이다 — 고후 4:7.
      E. 요한복음 14장 21절과 23절은 아들께서 그분을 사랑하는 이에게 그분 자신을 나타내시고, 아버지께서 아들과 함께 오셔서 아들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서로 거처를 정하실 것임을 보여 준다.
      1. 목표이신 아버지는 체현이신 예수님 안에 계시고, 이 체현은 그분의 실재화이신 그 영 안에 있으며, 이 실재화는 지금 우리 모두 안에 거하시는 바로 그 영이다. 하지만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것을 매일, 심지어 매시간 누리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2.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것을 잃어버릴 수 있지만, 이것은 그 영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잃어버린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영은 언제나 믿는 이들 안에 거하신다.
      3. 자신의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사실상 ‘엘리베이터 구원’을 믿는 것이다. 그들은 엘리베이터가 올라갈 때 구원받고, 엘리베이터가 내려갈 때 구원을 잃어버린다.
      4. 하지만 우리의 구원은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우리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계단’이다. 우리는 이 계단 위에 있지만, 계단의 제일 윗부분에서 얻는 축복을 누리기 원한다.
      5. 우리는 ‘지하’가 아닌 ‘제일 위층’에 있기를 원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주 예수님을 사랑하고, “주 예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씀드려야 한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할 때 제일 위층으로 이끌려 하늘들에 있는 모든 것을 보게 된다 — 고전 2:9-10, 골 3:1-2.
      6. 우리가 주 예수님을 사랑할 때, 그분의 영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뿐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분과 교통을 나눌 때 그분의 임재를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7.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할 때,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아버지도 우리를 사랑하신다. 아들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때, 아버지는 그분과 함께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서로 거처를 정하시며 우리와 함께 머무신다 — 요 14:21, 23.
      8. 우리는 아들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아버지와 아들께서 우리와 함께 서로 거처를 정하시는 것 안으로 더욱더 이끌려야 한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의 구원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9. 그럴 때 주님은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아버지와 아들은 우리의 누림을 위해 우리와 함께 거처를 정하실 것이다.
      F. 요한복음 16장 13절부터 15절까지에는 신성한 삼일성을 믿는 이들에게 분배하는 신성한 전달이 계시되어 있다.
      1. 이 전달은 전류의 전달과 똑같다. 전기 스위치가 켜지면, 전류 곧 전기의 움직임이 있게 되며, 이 움직임이 전달이다 — 비교 롬 8:2, 살전 5:16-20.
      2. 첫째로, 아버지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은 아들의 것이다 — 요 16:15상.
      3. 둘째로, 아들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을 그 영께서 받으신다 — 요 16:14하.
      4. 셋째로, 그 영께서 아들에게서 받으신 모든 것이 믿는 이들에게 알려진다 — 요 16:13, 15하.
      5. 결국, 신성한 삼일성의 온 존재와 신성한 삼일성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다. 찬송가 382장 3절은 이러한 전달에 대해 말한다.
      a. “아버지는 아들 안에 / 아들 풍성 영 안에 있네 / 그 영 내 안에 안식하시며 / 내 생활의 실재 되네”.
      b. 이러한 전달은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아들에게서 그 영에게로, 그 영에게서 우리에게로 이어진다. 이것이 우리의 체험을 위한 신성한 삼일성의 움직임이다.
      Ⅲ. 우리는 생명이신 삼일 하나님을 세 부분으로 된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하기 위해 요한이 공급한 그리스도를 보아야 한다.
      A. 요한은 태초에 계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공급했다. 이 하나님은 바로 생명의 근원이실 뿐 아니라, 생명수의 강으로서 흐르는 영원한 생명이시다 — 요 1:1, 3:36, 5:26, 계 22:1.
      B. 요한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영원한 로고스 곧 하나님을 정의하고 설명하고 표현하는 분이시다 — 요 1:1, 요일 1:1, 계 19:13.
      C.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 곧 말씀과 생명과 빛과 은혜와 실재에 의해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신 분이시다 — 요 1:18, 3:16, 1:34, 20:31.
      D.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 곧 하나님의 신성하고 창조되지 않은 생명으로서 그분의 영원한 분배를 위해 시간에 있어서 영구하실 뿐 아니라 본성에 있어서 영원하시고 신성하시다 — 요일 1:2, 요 11:25, 14:6.
      E.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도달하신 삼일 하나님이신 그 영을 주시는 분이시다. 삼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달하실 때,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신다 — 요 3:34.
      F. 우리의 그리스도는 인간 본성을 지니신 사람의 아들이시다(요 1:51, 계 1:13). 그분은 구속을 위한 사람의 아들로서, 우리의 죄들을 없애시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시어 하나님께서 우리 안으로 분배되시도록 하셨다.
      G. 요한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공급하였다(요 1:29, 계 5:6, 7:14, 17, 13:8, 22:1). 구속하시는 어린양은 생명이신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분배하시기 위한 분이시다(비교 출 12:8-11).
      H.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들에 대한 화해 제물이시다(요일 2:2).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들(히 9:28)에 대한 희생 제물로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셨다. 이것은 우리의 구속을 위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는 진정되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시는 희생 제물이시다.
      I.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함께하시는 우리의 변호자이시다(요일 2:1). ‘변호자’에 대한 헬라어 단어는 다른 사람 편에서 돕도록 요청받은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조력자이다. 이 말은 또한 법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사람이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중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변호자, 법률 고문, 혹은 중재자이다.
      1. 요한계시록 12장 10절과 11절에 따르면, 사탄은 밤낮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비난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린양의 피로 그를 이길 수 있다.
      2. 사탄은 우리가 더럽고 거룩하지 않고 불의하다며 우리를 비난하려고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사탄아, 의로운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라. 나의 자녀들에게는 좋은 변호자가 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3. 우리는 사탄에게 “입을 다물어라! 아무 말도 하지 마라!”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 다음 우리는 “어린양께 할렐루야! 피로 인해 할렐루야!”라고 말하며 어린양을 찬양해야 한다.
      4. 우리가 “할렐루야!”라고 외칠 때, 생명이 한 번 더 우리 안으로 더 분배된다. 생명 분배가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우리의 변호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소송 사건을 처리하고 계신다.
      J. 우리의 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이시다(계 22:13상). 생명의 다함이 없는 분배를 위해 그리스도는 헬라어 알파벳에서 첫 글자인 알파이시고 마지막 글자인 오메가이시며 그 사이의 모든 글자이시다.
      K. 그리스도는 처음과 마지막(계 2:8, 22:13하), 곧 영원히 존재하시며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1. 박해하는 환경이 어떠하더라도 주님은 여전히 동일하시다. 어떤 것도 그분을 앞설 수 없고, 어떤 것도 그분보다 나중에 존재할 수 없다.
      2. 모든 것은 그분께서 통제하시는 한계 안에 있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과 모든 곳을 차지하신다.
      L. 그리스도는 시작과 끝이시다(계 22:13하). ‘시작’이라는 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의 기원이시라는 것이고, ‘끝’이라는 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의 완결이시라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것은 주 예수님 이전에나 이후에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분 없이는 기원도 완결도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비교 롬 11:36).
      M.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시다(계 3:14하).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은 하나님의 창조의 기원 혹은 근원이신 주님을 가리키며, 하나님을 그분께 선택받은 사람들 안으로 분배하는 목적을 위해 주님께서 하나님의 일의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근원이시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회복되었다가 타락한 라오디게아 교회가 근원이신 주님을 떠남으로 변했음을 시사한다(렘 2:13).
      N. 그리스도는 살아 계신 분이시다. 요한계시록 1장 17절과 18절에서 그리스도는 “나는 … 살아 있는 이이다. 내가 죽은 적이 있다. 그런데 보아라, 영원토록 살아 있으며, 죽음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분배하시려면 반드시 살아 계신 분이셔야 하며, 그럴 때 교회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이 되게 하실 수 있다 — 딤전 3:15.
      O. 그리스도는 거룩하신 분과 참되신 분이시다(계 3:7). 형제 사랑의 교회에게 주님은 거룩하신 분, 참되신 분이시다. 회복된 교회는 이분에 의해, 이분과 함께 거룩하고 세상에서 분별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참되고 신실할 수 있다.
      P. 그리스도는 아멘이시며 신실하시고 참되신 증인이시다 — 계 3:14하.
      1. 바벨에서의 혼돈은 모든 언어를 파괴했지만, ‘할렐루야’와 ‘아멘’이라는 두 단어는 파괴되지 않았다. ‘아멘’은 바로 ‘그렇다’라는 뜻이다.
      2. 아멘은 일종의 영원한 ‘예’이다. ‘그렇다’는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리스도는 이름을 갖고 계시는데, 그분의 이름은 ‘아멘’, 곧 ‘그렇다’이다. 이것은 생명 분배를 위한 것이다.
      3. 그리스도는 (‘견고한’, ‘확고한’, 또는 ‘신뢰할 만한’을 의미하는) 아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신실하시고 참되시다.
      Q. 요한이 공급한 이러한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산출되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요 3:16), 주님 안에 거하고 빛 안에서 행함으로 영원한 생명의 교통에 참여하며(요일 1:3-7, 2:6), 기름바름의 가르침을 받고(20, 27절), 신성한 씨로 인한 신성한 출생에서 비롯된 미덕들을 누리며(3:9, 2:29, 4:7, 5:1, 4, 16-21), 예수님의 증거 곧 삼일 하나님의 표현인 등잔대들이 되고(계 1:9-12, 20), 생명의 표현으로서 첫 열매를 포함한 수확물이 되며(14:1-5, 15-16), 그리스도의 증가와 만족인 어린양의 신부가 된다(요 3:29-30, 계 19:7-9).
      R. 결국 삼일 하나님은 그분께서 구속하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변화시키시고 영광스럽게 하신 세 부분으로 된 사람들과 연결되고 연합되고 합병되심으로, 삼일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분배되시는 것의 궁극적인 완결인 새 예루살렘이 되실 것이다 — 계 21:2-3, 9-10, 22-23, 22:1-2.
    • 메시지7
      우리의 누림과 하나님의 경륜의 성취를 위해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는 영원한 축복
      +
    • 성경: 고후 13:14, 요일 1:2-7, 9, 계 22:1
      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고후 13:14) 이것은 우리의 누림과 하나님의 경륜의 성취를 위해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는 영원한 축복이다.
      A. 아버지의 사랑과 함께하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순환 혹은 전달이신 성령은 우리의 그리스도인 생활과 교회생활에서 공급이 되신다.
      B. 교회생활 전체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신성하고도 영적인 순환을 묘사하는 고린도후서 13장 14절에 달려 있다.
      C. 고린도후서 13장 14절에 계시된 신성한 삼일성의 내적 순환인 신성한 삼일성의 흐름은 우리의 영적 맥박이다.
      D. 하나님께서 그분의 경륜 안에서 갖고 계신 의도는 그분의 신성한 삼일성, 곧 아버지와 아들과 영 안에서 그분 자신을 그분께 선택받은 사람들 안으로 분배하시는 것이다. 시간 안에서 하나님의 유일한 목표는 그분 자신을 매일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는 것이다 — 시 36:8-9.
      Ⅱ.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는 영원한 축복을 누리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안으로 들어가 이 사랑 안에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 렘 31:3.
      A.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요일 4:19)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써 그분의 사랑을 우리 안에 주입하시고, 또 우리 안에 사랑을 산출하셨다. 우리는 이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한다(요일 4:20-21).
      B. 신명기 30장 19절과 20절은 “나는 오늘 여러분 앞에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내놓아 둡니다. 그러니 생명을 선택해 그대와 그대의 씨가 살도록 하며, 여호와 그대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을 굳게 붙잡으십시오. 그분께서 그대의 생명과 수명이시니”라고 말한다.
      1. 이 절들은 생명을 선택하는 길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주님을 사랑하는 길이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을 굳게 붙잡는 것임을 계시한다 — 신 30:19-20, 계 2:4, 7, 아 3:4, 8:13-14.
      2. 사도행전 11장 23절은 우리가 어떻게 그분을 굳게 붙잡을 수 있는지 계시한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갔을 때, “모든 사람에게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머물러 있으라고 격려하였다.”
      a. 주님을 굳게 붙잡는 것은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머물러 있는 것이다.
      b. 이것은 지속적으로 주님께 신실하고, 주님께 붙어 있으며, 주님과의 긴밀한 교통 가운데 사는 것이다.
      C. 주 예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신성으로 풍성하게 된 그분의 인성에 있어서 그분과 똑같이 된다. 풍성한 속성들을 지니신 넘치시는 하나님은 향기로운 ‘예수님과 같은’ 우리의 인간 미덕들을 통해 표현되신다 — 고후 2:15.
      D. ‘예수님과 같은’ 이러한 인간 미덕들은 비범한 사랑, 끝없는 관용, 비할 데 없는 신실함, 절대적인 겸손, 최고의 순수함, 지고한 거룩함과 의, 우리의 빛남과 올바름을 포함한다. 이러한 미덕들은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실지 생활을 묘사하며, 이 생명은 지금 우리의 내주하는 생명이 되시어 우리가 이 생명을 체험하고 누리며 표현할 수 있게 하신다 — 엡 4:20-21.
      E. 내주하는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만족을 위하는 생활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생활은 번제물로 예표된 예수님의 인간 생활의 재생산이 된다 — 레 1:4, 13.
      F. 우리는 모두 주님과 충분한 개인적인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우리의 영 안에서 그분과 다정하고 내밀하며 영적인 교통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의 본질로 채워짐으로써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목양하실 수 있고, 주님의 빛나는 요소로 채워짐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볼 수 있게 된다 — 아 1:1-4, 요 4:24, 눅 15:20, 마 5:15-16.
      G. 주님을 섬기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의 인성이 보호받는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인성이라는 영역과 범위 안에 지켜진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분께 매혹됨으로 받게 되는 제한을 벗어 버리고 무슨 일이든 다 범할 수 있다 — 딤후 4:10, 14, 엡 4:17-21.
      Ⅲ.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는 영원한 축복을 누리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 이 은혜 안에 계속 서 있어야 한다. 이 은혜는 바로 우리의 누림이신 삼일 하나님이다 — 롬 5:2.
      A. 매일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귀를 열어 주시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의 말씀을 듣게 해 주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 때 우리는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분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그분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고, 우리의 말을 듣는 이들에게 은혜를 줄 수 있다 — 엡 1:6, 사 50:4-5, 아 8:13, 눅 4:22, 행 20:32, 엡 4:29.
      B. 우리는 교회생활 안에서 생명의 은혜라는 내리는 이슬을 누림으로, 신성한 삼일성의 신성한 분배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점진적으로 건축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진정한 하나 안에 지켜야 한다 — 시 133편.
      Ⅳ.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는 영원한 축복을 누리려면, 우리는 신성한 생명의 내적 흐름인 성령의 교통 안으로 들어가 이 교통 안에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 고후 13:14, 민 6:22-27.
      A. 교통은 신성한 생명을 받아 소유하고 있는 모든 믿는 이들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의 흐름이다. 이 교통은 새 예루살렘에 있는 생명수의 강의 흐름으로 묘사된다 — 계 22:1.
      B. 요한일서 1장 2절과 3절, 6절과 7절은 신성한 생명의 교통에 수직적인 방면과 수평적인 방면이라는 두 방면이 있음을 계시한다.
      1. 요한일서 1장 2절과 3절은 이렇게 말한다. “(이 생명이 나타났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난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는 보았으며, 이제 증언하며 여러분에게 전해 줍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는 것은 여러분도 우리와 함께 교통을 갖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통은 아버지와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a. 교통의 수직적인 방면은 우리와 삼일 하나님과의 교통을 가리키며, 교통의 수평적인 방면은 우리 믿는 이들 서로 간의 교통을 가리킨다.
      b. 사도들의 체험은 처음에는 수직적이었지만, 사도들이 신성한 생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을 때 신성한 교통의 수평적인 방면을 체험하게 되었다.
      2. 요한일서 1장 6절은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을 갖는다고 말하면서 어둠 가운데 행한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행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교통의 수직적인 방면이다.
      3. 요한일서 1장 7절은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안에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안에서 행하면, 우리는 서로 교통을 갖게 되고”라고 말한다. 이것은 교통의 수평적인 방면이다.
      4. 생명의 교통, 곧 생명의 내적 흐름은 기쁨을 낳고, 생명의 빛의 내적인 비춤 곧 내적인 다스림을 낳는다 — 요일 1:4-5, 요 1:4, 8:12, 비교 고후 5:13.
      C. 우리는 신성한 교통의 수직적인 방면과 수평적인 방면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1. 우리가 주님과 합당한 교통을 갖지 못한다면, 동료 믿는 이들과 교통을 갖기가 어렵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동료 믿는 이들과 합당한 교통을 갖지 못한다면, 주님과 교통을 갖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바로 신성한 교통은 한 교통이기 때문이다 — 행 2:42.
      2. 우리가 실제로 이 교통 안에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 영 밖에, 삼일 하나님 밖에, 신성한 생명 밖에 있는 것이다 — 비교 고후 13:14, 고전 1:9, 빌 2:1.
      3. 우리는 동료 믿는 이들과 가능한 한 많은 교통을 갖기를 힘써야 한다. 이러한 신성한 교통은 우리를 교정할 뿐 아니라 우리의 형태를 빚어 주고 우리를 재조성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교통은 신성한 조성 성분을 우리의 영적 존재 안으로 가져와 우리 존재를 바꾼다.
      D. 수평적인 교통은 수직적인 교통과 함께 짜인다. 이렇게 짜인 교통이 참된 교통이다.
      1. 우리가 우리의 영을 사용함으로써 진정으로 서로 교통할 때, 우리는 간절히 기도하며 주님을 접촉하게 된다. 이것은 교통의 수직적인 방면과 수평적인 방면이 서로 얼마나 긴밀히 연관되는지를 보여 준다.
      2. 우리가 성도들과 갖는 수평적인 교통은 우리를 주님과의 수직적인 교통 안으로 이끌어 준다. 그다음 우리가 주님과 갖는 수직적인 교통은 우리를 성도들과의 수평적인 교통 안으로 이끌어 준다.
      Ⅴ. 신성한 교통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모든 것이다. 우리는 교통이 사라질 때 하나님도 사라지신다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교통으로서 임하신다.
      A. 전류가 전기 자체이듯이, 신성한 생명의 교통 곧 신성한 생명의 흐름은 신성한 생명 자체이다.
      B.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생명의 교통 안에 있는 생활이다. 결국 이러한 신성한 교통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짜이신다. 이렇게 함께 짜이는 것이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이다.
      C. 신성한 교통은 삼일 하나님을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인 우리 안으로 분배하는 것으로서, 우리와 하나님을 하나로 만든다. 교통에 대한 헬라어 단어는 ‘공동 참여’를 의미하고, 이러한 공동 참여는 하나를 산출한다.
      D. 사실상 교통은 바로 하나(oneness)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통을 나누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을 나누고 있을 때, 이러한 교통이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 온 우주 안에는 큰 하나가 있는데, 이 큰 하나가 신성한 교통이다.
      E. 주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영께서 하나이시듯이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기를 갈망하신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주님은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22하절)라고 기도하셨다.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는 신성한 삼일성의 확대된 하나이다(요 17:21상).
      F. 신성한 교통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생활하는 것의 실재이다.
      1. 주님께서 아직 다시 오시지 않는 이유(계 22:20)는 믿는 이들이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적이며 의견을 고집하고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신성한 교통 안에 제한받는 것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 안에 보존되고 사역의 일은 계속 전진하게 된다. 모든 것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교통이다 — 엡 4:11-12, 비교 겔 47:9.
      G. 교통은 또한 개인적인 이익을 버리고 어떤 공통된 목적을 위하여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신성한 교통 안에서 사는 것은 우리의 개인적인 이익을 제쳐 놓고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사도들과 삼일 하나님께 연결되는 것이다 — 행 2:42, 요일 1:3, 고전 1:9, 3:6, 12.
      H. 결국 교회와 신성한 삼일성은 교통 안에서 하나이다 — 요 14:21, 23.
      Ⅵ. 우리는 신성한 교통 안에서 그리스도를 누리면서 네 가지 긴요한 것, 곧 영원한 생명, 영원한 생명의 교통, 신성한 빛,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영적 생명의 순환을 계속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순환은 우리를 신성한 생명의 성장에 있어서 계속 전진하게 하여, 결국 생명이 성숙하여 단체적으로 충분히 성장한 사람에 이르게 하고 그리스도의 충만의 신장의 분량에 이르게 한다 — 요일 1:1-9, 히 6:1, 엡 4:13.
    • 메시지8
      하나님의 의에 따라, 하나님의 거룩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생명이신 삼일 하나님을 세 부분으로 된 사람 안으로 분배함
      +
    • 성경: 롬 1:17, 6:19, 22, 8:2, 6, 10-11, 18, 21, 9:23, 11:36, 12:1-5, 16:27
      Ⅰ.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은 생명의 영의 법이신 그분 자신을 사람 안으로 분배함으로써 의와 거룩함과 영광이라는 그분의 신성한 속성들이 사람의 인간 미덕들이 되어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러한 단체적인 표현은 각지 교회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로서, 의와 거룩함과 영광의 성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된다 — 창 2:9, 요 10:10하, 14:6상, 고전 15:45하, 롬 8:2, 벧후 3:13, 계 21:2, 9-11.
      A. 하나님의 갈망은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계속 일해 넣으심으로, 그분께서 우리가 되시고 우리가 그분이 되는 정도에까지, 우리와 그분이 생명과 본성과 형상에 있어서 완전히 똑같이 되는 정도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의 정점이다 — 요 1:12-13, 벧후 1:4, 고후 3:18.
      B.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 있는 그릇으로 창조되어 생명이신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담아, 생명에 있어서 하나님의 재생산 혹은 복사판이 될 수 있다 — 창 1:26, 2:7, 롬 9:21, 23, 고후 4:7, 요 12:24.
      Ⅱ.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과 영광의 요구를 만족시키셨고, 부활하심으로 생명나무의 실재이신 생명을 분배하시는 영이 되심으로 우리의 의와 거룩함과 영광이 되신다 — 창 3:24, 고전 15:45하, 1:30, 비교 엡 5:25-27.
      A. 세 부분으로 된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된 삼일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를 생명의 사람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아들들과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되게 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그리스도의 몸을 조성하며, 이로써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를 이룬다 — 창 2:7, 9, 롬 8:14, 12:5.
      1. “왜냐하면 생명(헬라어로 ‘조에(zoe)’임)의 영의 법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 롬 8:2.
      2.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 때문에 생명(조에)입니다.” — 롬 8:10.
      3. “영에 둔 생각은 생명(조에)과 평안입니다.” — 롬 8:6.
      4.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에도 생명(조에)을 주실 것입니다.” — 롬 8:11.
      B. 보좌 주위의 무지개의 세 가지 기본색은 파랑(하나님의 의를 상징하는 청옥 보좌의 색—겔 1:26, 시 89:14)과 빨강(하나님의 거룩함을 상징하는 거룩하게 하는 불의 색—겔 1:4, 13, 27, 히 12:29)과 노랑(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빛나는 호박금의 색—겔 1:4, 27, 히 1:3)이다.
      C.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있는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의미한다. 이 하나님은 이 땅에 그분의 심판을 집행하시는 동안에도 그분의 언약을 지키셔서, 그분께 선택받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새로움을 분배하심으로 그들을 새 예루살렘이 되게 하실 것이다 — 창 9:8-17, 계 4:3, 21:2, 롬 6:4, 겔 1:26-28, 36:26-27.
      1.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죽음의 심판이 없을 것이라는 그분 자신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실 것임을 나타내는 표징이다. 우리는 새 언약 아래 살아야 하고, 어떠한 실패나 약함이나 어둠이나 부정적인 것도 믿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언약을 맺은 백성이며,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약속의 말씀을 갖고 있다 — 애 3:22-23, 롬 8:1, 고후 12:9, 딤후 1:10, 2:1, 유 24, 요일 1:9, 고전 1:9.
      2. 우리는 교회생활 안에서 확신을 갖고 평안할 수 있는데, 이는 더 이상 죽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더 이상 없다.”라고 말할수록 우리에게 죽음이나 실패나 약함이나 어둠이 없다는 것을 더욱더 깨달을 것인데, 이는 우리가 우리의 느낌이나 확신이나 어떤 환경 아래 살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 아래서 살기 때문이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에 의해 지켜지고 보장되며 보호받는다(벧후 1:4). 하나님의 언약은 하늘에 구름이 낄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께 그분의 신실하심이 오기를 구해야 한다고 선포한다. 이것은 우리가 ‘무지개를 불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4.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에 신실하시고, 그분의 말씀은 유언 혹은 언약이다(고전 1:9, 요일 1:9). 교회 사람들은 언약 아래 있는 백성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실상 ‘언약의 교회’라 불릴 수 있다.
      D. 이 무지개의 영적 실재가 오늘날 교회 안에서 나타나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의로운 임재로 채워 주시도록 허락해 드려야 하는데, 그 길은 우리가 단체적인 그리스도로서 협력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거룩하게 하는 불로서 그분의 빛나는 영광의 표현을 위해 일하실 완전한 기회를 그분께 드리는 것이다 — 겔 1:5-14, 26-28.
      E. 의와 거룩함과 영광의 무지개로 상징되신 그리스도 자신은 하나님의 백성을 ‘그리스도화’하기 위해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이시다. 그리스도화는 그들을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과 표현에서 그분과 똑같이 만드는 것이다 — 사 42:6, 히 8:10-12.
      F.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서 나오셔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신 분으로서, 그분 자신을 (우리가 영 안에서 다시 태어나도록) 의와 (우리가 혼 안에서 변화되도록) 거룩하게 함과 (우리가 몸 안에서 영광스럽게 되도록) 구속으로 우리 안에 전달하고 계신다 — 고전 1:30, 롬 8:10, 12:2, 8:23, 빌 3:21.
      G. 하나님의 각종 지혜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존재 안으로 전달되시어, 우리를 삼일 하나님의 온 존재를 지혜롭게 전시하는 그분의 걸작품, 곧 그분의 무한한 지혜와 신성한 구상을 표현하는 시로 만드신다 — 고전 1:30, 엡 2:10, 3:9-11.
      H. 영원 안에서 새 예루살렘(무지개 모양의 기초를 가진 성―계 21:19-20)인 우리는 무지개가 되어, 우리를 의와 거룩함과 영광이신 그분 자신과 똑같이 만드시겠다는 새 언약을 수행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언할 것이다 — 계 21:10-11.
      Ⅲ. 로마서는 각지 교회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얻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안으로 우리가 이끌리기 위해서는 모든 교회 안에 반드시 하나님의 의(하나님의 절차)라는 기반과 하나님의 거룩함(하나님의 본성)이라는 과정과 하나님의 영광(하나님의 표현)이라는 목표가 있어야 함을 계시한다 — 롬 1:17, 8:10, 6:19, 22, 8:18, 21, 9:23, 11:36-12:5, 16:27.
      A. 로마서는 교회생활 안에서 실현되는 몸의 생활인 하나님의 성막을 계시하고(12-16장), 이 하나님의 성막의 기본 구조가 의(3:21-5:11)와 거룩함(5:12-8:13)과 영광(8:14-39)이라는 것을 계시한다.
      1.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의롭게 됨은 바깥뜰에 있고, 거룩하게 됨은 성소에 있으며, 영광스럽게 됨은 지성소에 있다.
      2. 교회생활은 삼일 하나님과 그분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의 연합이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은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영광스럽게 되고 함께 건축되어, 성막 곧 각지 교회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가 되어 하나님의 궁극적인 성막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된다 — 계 21:3.
      3. 삼일 하나님의 분배는 그분의 의에 따른 것이고, 그분의 거룩함을 통한 것이며, 그분의 영광에 이르기 위한 것이다. 생명이신 삼일 하나님을 분배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표현인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 — 롬 5:17, 6:19-23, 8:18, 21, 16:27, 엡 3:16-21.
      B.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의를 위한 것이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위한 것이며, 그리스도의 승천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의 성도들의 영광스럽게 됨이 완결될 것이다.
      C. 우리의 대속자로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들을 이루셨으며, 그 결과로 생명이신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실 수 있다 — 요 19:34, 롬 1:17, 3:23-25, 5:18, 계 22:14.
      1. 합당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이고, 이 사실에 따라 매일 처신하는 사람이다. 어떤 믿는 이가 천연적으로 생활한다면 의롭지 않을 것이지만, 십자가의 죽음을 체험한다면 모든 일에서, 모든 사람에게, 모든 방식에서 의로울 것이다 — 갈 2:20, 고후 3:9.
      2.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리스도와 함께한 우리의 죽음만이 하나님의 의의 요구를 이루고, 하나님께 그분 자신을 신성한 생명으로 우리 전 존재 안으로 의롭게 분배하실 근거를 드린다. 그럴 때 우리는 생명에게 삼켜져서 생명의 성이 될 것이다 — 롬 8:10, 6, 11, 고후 5:4.
      3. 새 언약의 사역자로서 살고 섬기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될 자격이 조금도 없고 육체 안의 사람이므로 죽고 장사되기에만 적합하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의의 길 곧 그리스도를 살아 내고 그리스도의 진정한 표현이 되는 길을 취하는 것이다 — 마 3:13-17, 21:32.
      D. 거룩하게 함은 거룩함의 주관적인 활동이다. 거룩하게 함은 활동하는 거룩함이다.
      1. 거룩하게 함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 안에서 ‘그 영, 거룩하신 분’ 곧 거룩하게 하시는 영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이신 그분 자신을 우리 존재 안으로 일해 넣으시어 우리를 거룩한 성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 살전 5:23, 롬 6:19, 22, 15:16, 8:4.
      2. 신성한 거룩하게 함은 신성한 경륜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붙잡아 주는 노선으로서 하나님의 유기적인 구원의 과정이다. 하나님의 유기적인 구원은 사람을 신화하는, 곧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움직임이다 — 히 2:10-11, 엡 1:4-5, 계 21:2.
      3. 새 언약의 사역자로서 살고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제사장으로서 생명의 새로움 안에서 행하고 영의 새로움 안에서 섬기는 것인데, 이것은 구원받은 죄인들을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하여 기쁘게 받아들여질 만한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한 것이다 — 롬 6:4, 7:6, 15:16.
      E. 삼일 하나님을 분배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표현되심으로써 교회 안에서 영광을 얻으시는 것이다 — 엡 3:20-21, 롬 8:19, 21, 28-30, 16:27.
      1. 요한복음 17장에 있는 하나는 교회이다. 우리가 자아를 완전히 부인함으로써 하나가 철저히 실현될 때, 아들은 교회 안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신다 — 요 17:1, 21-23.
      2. 이것은 합당한 교회생활이 있는 곳마다, 그러한 교회생활이 아버지를 표현하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신다는 것을 가리킨다.
      3. 새 언약의 사역자로서 살고 섬기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함으로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다 — 롬 11:36, 고전 10:31, 빌 1:20, 고후 4:5.
      F. 하나님의 의에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생명이신 삼일 하나님을 분배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견고한 기초인 의와 우리의 순수한 조성 성분인 거룩함과 우리의 찬란한 표현인 영광이 되시는 새 예루살렘이 되기 위한 것이다 — 계 21:2, 9-11.
      G. 그리하여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하나님이신 그 영과 과정을 거치고 완결된 교회인 신부가 결합하여 영원토록 생명 안의 한 실체인 서로 사랑하는 한 쌍이 된다 — 계 22:17상, 비교 고전 6:17.
  • 개요

    국제 중국어 특별 집회 : 노아와 다니엘과 욥 ―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도록 생명의 노선에서 이기는 생활을 하는 본들

    • 메시지1
      시대를 바꾸도록 시대의 이상에 따라 생활하고 일함
      +
    • 성경: 겔 14:14, 20, 창 6:8, 마 24:37-39, 단 2:34-35, 욥 42:5-6
      Ⅰ. 노아와 다니엘과 욥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도록 생명의 노선에서 이기는 생활을 할 수 있는지를 계시하는 본들이다. 그 길은 시대를 바꾸도록 시대의 이상에 따라 생활하고 일하는 것이다 — 겔 14:14, 20, 창 2:9, 계 2:7, 22:1-2, 마 24:37-39, 45-51, 단 2:34-35, 행 26:19, 딤후 4:8.
      Ⅱ. 노아와 다니엘과 욥의 생활은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원한 경륜을 이루시도록 그분 자신을 그분께 선택받고 구속받은 사람들 안으로 분배하시고 일해 넣으시는 것을 계시한다. 성경 전체는 통제하는 원칙에 따라 기록되었는데, 그 원칙은 바로 우리가 삼일 하나님을 체험하고 누리고 표현함으로 그분의 신성한 경륜을 이루도록,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는 것이다 — 비교 딤전 1:3-4, 엡 3:2, 벧전 4:10, 시 36:8-9, 고후 13:14, 엡 3:16-19.
      A. 노아에게서 우리는 (무지개로 상징된) 영원한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본다. 그분의 영원한 언약은 그분의 영원한 경륜으로서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의와 거룩함과 영광으로 그분께 선택받은 사람들 안으로 분배하여, 그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온 존재가 지혜롭게 전시되게 하는 것이다 — 창 3:24, 9:8-17, 겔 1:26-28, 36:22-38, 마 26:28, 히 8:8-12, 고전 1:9, 24-30, 2:9-10, 엡 2:10, 5:25-27, 계 4:3, 21:18-20.
      B. 다니엘에게서 우리는 아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움직임의 중심과 전부이시라는 것과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목표가 단체적인 그리스도, 곧 이기는 이들과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를 얻는 것임을 본다. 단체적인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시대적인 도구인 산산이 부수는 돌로서 이 시대를 종결하고 온 땅을 채우는 큰 산이 되어, 온 땅을 하나님의 왕국이 되게 한다 — 단 2:31-45, 7:13-14, 10:4-9, 욜 3:11, 계 12:1-2, 5, 11, 19:7-21.
      C. 욥에게서 우리는 영 하나님께서 그분의 연인들을 성령의 새롭게 하심에 의해 변화의 과정을 거치도록 이끄시는 것을 본다. 그분의 연인들은 하나님을 봄으로써 하나님을 얻고 하나님에 의해 변화되어,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과 외양에서 하나님이 됨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것을 이루어 낸다 — 욥 10:13, 42:5-6, 엡 3:9, 마 5:8, 고후 3:16-18, 딛 3:5, 고전 10:31, 엡 3:20-21, 계 21:10-11.
      Ⅲ.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 앞에 은총을 입었다.” — 창 6:8.
      A. 노아의 생활과 일은 은혜가 타락한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지 계시해 준다. 은혜는 우리의 짐을 짊어지는 분이신 놀라우신 그리스도로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누림을 위해 모든 것을 한다 — 창 6:1-14, 마 24:37-39, 고후 12:7-9.
      1. 육체는 마귀의 임재이고, 은혜는 하나님의 임재이다. 우리가 사탄의 임재에 맞서려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필요하다 — 창 6:3, 8, 롬 7:17-21, 히 4:16, 고전 15:10.
      2. 은혜의 산물은 의이다. 은혜의 능력, 은혜의 힘, 은혜의 생명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께 올바를 수 있고, 서로에게 올바를 수 있으며, 심지어 우리 자신에게 올바를 수 있다 — 롬 5:17, 21, 벧후 2:5.
      B. 노아는 신성한 경륜을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과 동행하며 방주를 건조했다 — 창 6:8-22, 히 11:7, 벧전 3:20-21, 마 16:18.
      1.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첫 번째 건축물은 노아의 방주이다.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과 사람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하나님의 건축물은 하나님-사람이다 — 요 1:14, 2:19, 고전 3:9, 16-17, 계 21:2, 22, 엡 2:22, 시 27:4.
      2. 방주를 건조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풍성의 요소를 건축 재료로 하여 단체적인 그리스도, 곧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는 것의 예표이다 — 마 16:18, 고전 3:9-12상, 엡 3:8-10, 4:12.
      3. 방주의 세 층은 우리의 체험에 따른 삼일 하나님을 상징한다. 제일 낮은 층으로 상징되시는 그 영은 우리를 아들께로 이끄시고(벧전 1:2, 요 16:8, 13-15), 아들은 우리의 체험에서 우리를 더 높이 아버지께로 이끄신다(요 14:6, 엡 2:18, 요일 1:5, 4:8).
      4. 방주의 셋째 층에는 하늘을 향해 오직 하나의 창문만 있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건축물인 교회 안에는 하나의 신약 사역을 통해 주어지는 오직 하나의 계시와 하나의 이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창 6:16, 행 26:19, 잠 29:18상, 딤전 1:3-4, 고후 3:6-9, 4:1.
      Ⅳ. 다니엘은 우리가 반드시 시간을 아껴 하나님의 최고의 보배이신 그리스도를 누려야 함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누릴 때, 우리는 그분으로 조성되어 하나님의 개인적인 보물인 보배로운 사람들, 심지어 보배 자체가 된다 — 단 9:23, 10:11, 19, 벧전 2:7, 출 19:4-6.
      A. 탁월하신 그리스도는 다니엘에게 최고로 보배로운 한 사람으로 나타나셨는데, 이것은 다니엘에게 감상과 위로와 격려와 희망과 안정을 주시기 위해서였다 — 단 10:4-9.
      1. 그리스도는 포로 되어 있는 그분의 선민을 돌보시기 위해 세마포 겉옷으로 상징된, 인성을 지니신 제사장으로 나타나셨다 — 단 10:5상, 출 28:31-35.
      2. 그리스도는 모든 백성들을 다스리시기 위해 금띠로 상징된, 신성 안에 있는 왕의 직분을 가지시고 다니엘에게 나타나셨다 — 단 10:5하.
      3.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귀하게 여기도록, 녹주석 같은 그분의 몸으로 상징된, 보배로움과 존엄함을 지니시고 나타나셨다. ‘녹주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청록색이나 황색 빛의 보석을 가리킬 수 있는데, 이것은 체현되신 그리스도께서 신성하시고(황색) 생명으로 충만하시며(녹색) 하늘에 속하심(청색)을 상징한다 — 단 10:6상.
      4. 그리스도는 또한 번개의 모습 같은 그분의 얼굴로 상징되는 것처럼, 그분의 백성에게 빛을 비추시기 위해서 광채를 지니시고 나타나셨으며(단 10:6상), 횃불 같은 그분의 눈으로 상징되는 것처럼, 살피시고 심판하시기 위한 빛 비추는 시선을 지니시고 나타나셨다(6상절).
      5. 그리스도는 광낸 놋이 빛나는 것 같은 팔과 발로 상징된, 빛나는 일과 움직임 가운데 나타나셨다 — 단 10:6하.
      6. 그리스도는 무리의 소리와 같은 그분의 말소리로 상징된, 백성을 심판하시는 강한 말씀 가운데 나타나셨다 — 단 10:6하.
      B. 다니엘은 온 세계정세가 모든 것에서 그리스도께 으뜸의 위치, 첫째 위치를 드리기 위해 하늘들의 하나님에 의해 하늘들의 통치 아래 있다는 계시를 받았다 — 단 2:34-35, 44-45, 7:9-10, 4:34-35, 골 1:15, 17-18, 계 2:4-5.
      Ⅴ. “그때 여호와께서 … 욥에게 응답하여 말씀하셨다.”(욥 38:1), “그러자 욥이 여호와께 응답하여 말하였다.”(42:1), “여호와께서 욥을 사로잡혔던 데서 돌아오게 하시고”(10상절).
      A. 욥의 친구들의 논리는 선과 악의 지식나무의 노선에 따른 것이었다. 그들은 욥이 겪는 고통이 하나님의 심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욥이 겪는 고통은 하나님께서 욥을 얻으심으로 욥이 하나님을 더 얻을 수 있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욥을 소모되게 하는 것이었다 — 욥 9:15, 11:12, 13:4, 빌 3:8, 12-13.
      1. 욥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는 스스로 온전하고 올곧았던 타고난 욥을 허물어뜨리심으로써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들로 새롭게 된 욥을 건축하시는 것이었다 — 욥 1:1, 딛 3:5.
      2. 하나님의 의도는 욥이 하나님을 더 깊이 추구하도록 이끄심으로, 욥이 자신의 인간 생명에 부족한 것이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서 하나님을 추구하고 얻으며 표현하게 하시는 것이었다 — 골 2:19.
      3. 하나님의 의도는 욥을 생명나무의 노선 안에 두셔서 욥을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이었다 — 창 2:9, 딤전 6:11, 딤후 3:17, 엡 3:14-21.
      B. 욥기는 육십육 권으로 된 성경이 오직 한 가지를 위해 있음을 계시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 영에 의해 그분 자신을 우리 안에 분배하심으로 우리의 생명과 본성과 모든 것이 되심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는 원칙이 되어야 한다 — 욥 10:13, 엡 3:9, 빌 3:8-9, 엡 1:22-23, 2:15, 계 21:2.
      C. 이 원칙에 따라 생활하고 일하는 길은 우리의 영을 사용함으로 그 영에 의해, 그 영과 함께, 그 영 안에서, 그 영을 통해 존재하고 모든 것을 하는 것이다 — 갈 5:25, 롬 8:4, 빌 3:3, 계 2:7, 22:17상.
    • 메시지2
      노아가 따른 생명의 노선 ― 시대를 바꾸는 생활과 일
      +
    • 성경: 창 6:5-14, 히 11:7
      Ⅰ. 노아는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과 동행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하나님의 온 존재를 누렸다.
      A. 사탄이 사람을 극도로 부패시켰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창조하신 사람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셨다.
      B. 그러므로 하나님은 패배하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러나 노아는’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해 가지셨던 원래의 목적을 계속하여 수행해 나가실 수 있도록 그분께 길을 마련해 드리는 주권적인 요인이 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C. 노아의 생활과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분의 원수를 이기셨고 시대를 바꾸셨다.
      Ⅱ. 노아의 생활은 시대를 바꾸는 생활이었다 — 비교 빌 1:19-21상.
      A. 시대를 바꾸는 생활은 조상들의 경건한 길들을 물려받는 생활이다.
      1. 노아는 아담이 취한 구원의 길을 물려받아, 여자의 씨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약속을 받았고 하나님을 만족하시게 하는 의이신 그리스도로 자신을 덮었다 — 창 3:15, 20-21, 비교 사 12:2.
      2. 노아는 아벨이 취한 제물을 드리는 길을 물려받았다. 그 길은 우리의 죄들에 대한 희생 제물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물이신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길이다 — 창 4:4.
      3. 노아는 에노스가 취한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그분의 온 존재를 누리는 길을 물려받았다 — 창 4:26, 렘 33:3, 롬 10:12, 딤후 2:22.
      4. 노아는 에녹이 취한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을 물려받았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리의 중심과 모든 것으로 취하여,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과 함께 살고 모든 일을 하는 것이다 — 창 5:22-24, 히 11:5-6, 고후 5:4, 9, 14-16, 6:1.
      B. 하나님은 노아가 살던 부패한 시대의 실지 상황을 노아에게 보여 주셨다 — 창 6:3, 5, 11, 13, 마 24:37-39, 딤후 3:1-5.
      C. “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 앞에 은총(은혜)을 입었다.” — 창 6:8.
      1. 사탄이 힘을 다해 상황을 망쳐 놓았을 때,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어 시대를 바꾼 몇몇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 — 비교 단 1:8, 9:23, 10:11, 19.
      2. 창세기를 기록한 주된 목적은 타락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타락한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a. 은혜란 우리의 누림을 통해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고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서,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하시는 하나님 자신 곧 하나님의 임재이다 — 요 1:14, 16-17, 계 22:21.
      b. 은혜이신 주님에 대한 누림은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다 — 엡 6:24, 요 21:15-17.
      c. 우리는 우리 사람의 영을 사용함으로써 삼일 하나님의 풍성한 공급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누린다 — 히 10:29하, 갈 6:18, 빌 4:23, 몬 25, 딤후 4:22.
      d.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의 말씀이다 — 행 20:32, 골 3:16, 비교 렘 15:16.
      e. 우리는 하나라는 터 위에서 성도들과 함께 모일 때 생명의 은혜이신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을 체험한다 — 시 133:3, 벧전 3:7, 행 4:33, 11:23.
      f. 우리는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증가하며 모든 것을 충족하는 우리의 은혜이신 주님을 체험할 수 있다 — 고후 12:9.
      g. 우리는 주님의 은혜의 능력으로 주님을 위해 수고해야 한다 — 고전 15:10, 58, 3:12.
      h. 우리는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들이 되어야 한다 — 벧전 4:10, 엡 3:2, 고후 1:15, 엡 4:29.
      i. 은혜의 능력과 은혜의 힘과 은혜의 생명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께 올바를 수 있고 서로에게 올바를 수 있다. 은혜는 의를 산출한다 — 히 11:7, 롬 5:17, 21.
      Ⅲ. 노아의 일은 시대를 바꾸는 일이었다 — 고전 3:9, 고후 6:1, 마 16:18, 고전 3:12.
      A. 하나님은 노아에게 모든 것을 포함한 계시, 더 전진된 계시, 곧 방주를 건조하라는 계시를 주셨다. 이 방주는 하나님께서 부패한 세대를 종결하시고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오실 수 있게 하는 길이었다.
      1. 방주는 그리스도의 예표(벧전 3:20-21)인데, 방주로 예표되시는 그리스도는 개인적인 그리스도일 뿐 아니라 단체적인 그리스도인 교회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자 새사람이며,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된다(마 16:18, 고전 12:12, 엡 2:15-16, 골 3:10-11, 계 21:2).
      2. 방주를 건조하는 것은 단체적인 그리스도를 건축하는 것을 보여 주는 예표이며, 이 단체적인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리스도의 풍성의 요소를 건축 재료로 하여 건축된다 — 고전 3:9-12상, 엡 4:12, 2:22.
      3. 이러한 건축은 그리스도를 사람들 안으로 일해 넣음으로 그리스도에 의해 그들을 함께 건축하여, 그들을 육체 안에서의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되게 한다 — 딤전 3:15-16.
      a. 우리의 일에서 가장 중요한 방면은 건축하시고 건축되신 하나님을 다른 이들 안으로 공급함으로,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그들의 존재 안으로 건축하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마 16:18, 엡 2:21-22, 3:17상, 고전 14:4하.
      b. 우리는 한 가지 것을 실행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과정을 거치시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을 다른 이들 안으로 공급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그들의 속사람 안으로 건축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러한 방식으로 일하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 고후 13:14, 고전 3:9상, 10, 12, 롬 11:36.
      B. 교회를 건축하고 교회생활 안으로 들어옴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대환난을 통하여 오늘날의 악한 세대에 집행하실 심판에서 구원받고 그 세대에서 분별되어, 새로운 시대 곧 천년왕국의 시대 안으로 이끌릴 것이다 — 히 11:7, 마 24:37-39, 눅 17:26-27.
    • 메시지3
      다니엘과 그의 동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이기는 이들의 승리
      +
    • 성경: 단 1-6장
      Ⅰ. 우리는 주님의 회복의 원칙을 ‘다니엘과 그의 동반자들(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서 볼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과 절대적으로 하나 되어 사탄의 책략에 맞서 승리한 이기는 이들이었다 — 단 2:13, 17, 비교 계 17:14, 마 22:14.
      A. 느부갓네살은 다니엘과 그의 동반자들을 마귀적으로 유혹하면서,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나타내는 그들의 이름을, 우상들과 하나 되게 만드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 단 1:6-7.
      B.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이시다’를 의미하는 다니엘이라는 이름은 ‘벨(바빌론 신)의 왕자’ 혹은 ‘벨이 총애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벨드사살로 바뀌었다 — 사 46:1.
      C. ‘야(여호와)께서 은혜롭게 주셨다’ 혹은 ‘야께 은총 입은 사람’을 의미하는 하나냐는 ‘태양신에게서 깨우침을 얻었다’를 의미하는 사드락으로 바뀌었다.
      D.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를 의미하는 미사엘은 ‘누가 사크 여신과 같을 수 있는가?’를 의미하는 메삭으로 바뀌었다.
      E. ‘야께서 도우셨다’를 의미하는 아사랴는 ‘불의 신 느고의 신실한 종’을 의미하는 아벳느고로 바뀌었다.
      Ⅱ. 다니엘과 그의 동반자들은 귀신적인 음식에 맞서 승리했다 — 단 1장.
      A. 느부갓네살의 마귀적인 유혹은 먼저 하나님의 패배한 선민 가운데 네 명의 명석한 젊은 후손 곧 다니엘과 그의 세 동반자를 꾀어서, 부정한 음식 곧 우상들 앞에 바쳐진 음식을 먹게 하여 그들을 더럽히는 것이었다.
      B. 다니엘과 그의 동반자들이 그 음식을 먹었다면, 더럽혀진 것을 받아들이고 우상들을 받아들여 사탄과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 비교 고전 10:19-21.
      C. 다니엘과 그의 동반자들이 느부갓네살의 부정한 음식을 거절하고 채식을 선택했을 때(단 1:8-16), 원칙상 그들은 선과 악의 지식나무를 거절하고(비교 창 3:1-6), 그들을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는 생명나무를 받아들인 것이다(비교 창 2:9, 16-17).
      D. 주님의 회복은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예수님을 먹는 것을 회복하는 것이다 — 창 2:9, 16-17, 계 2:7, 17, 3:20.
      E.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먹음으로써, 그리고 사람들을 접촉하는 데 주의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분을 부르는 이들과 함께함으로써 예수님을 먹을 수 있다 — 렘 15:16, 딤후 2:22, 고전 15:33, 잠 13:20.
      Ⅲ. 다니엘과 그의 동반자들은 사람들이 거대한 인간 형상을 보지 못하게 하고 인간 역사 속에 있는 신성한 역사인 산산이 부수는 돌을 보지 못하게 하는 마귀적인 눈멀게 함에 맞서 승리했다 — 단 2장.
      A. 돌과 산인 단체적인 그리스도, 신랑과 신부, 하나님의 호흡을 가진 하나님의 단체적인 사람은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호흡, 곧 칼로 적그리스도와 그의 군대를 산산이 부수고 멸절할 것이다 — 단 2:34-35, 44-45, 살후 2:8, 계 19:11-21, 창 11:4-9, 비교 사 33:22.
      B. 하나님의 건축물의 살아 있고 보배로운 돌, 기초 돌, 모퉁이 돌, 꼭대기 돌이신 그리스도는 보배이신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주입하시어, 우리를 그분의 건축물을 위한 살아 있고 보배로운 돌들로 변화시키신다 — 벧전 2:4-8, 사 28:16, 슥 3:9, 4:7, 9-10.
      Ⅳ. 다니엘과 그의 동반자들은 우상숭배에 대한 회유에 맞서 승리했다 — 단 3장, 비교 마 4:9-10.
      A.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 계신 참되신 하나님이 아닌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대치하는 우상이다. 영 안에 있지 않거나 영에 속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상이다 — 요일 5:21.
      B. 몸의 원수는 자기 유익, 자기 높임, 자기 영광, 자기 아름다움, 자기 힘으로 하나님을 대치하는 자아이다. 몸 안에서, 몸을 위하여 우리는 자아를 부인하고, 우리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주님이심을 전파한다 — 마 16:24, 고후 4:5.
      C. 다니엘의 동반자들은 진정으로 순교의 영을 가졌다. 그들은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유일하신 하나님이신 주님 편에 서고 우상숭배에 맞섰는데, 그 때문에 그들은 느부갓네살의 명령으로 이글거리는 불가마에 던져졌다 — 단 3:19-23.
      D. 느부갓네살이 불가마를 자세히 보았을 때, 그는 네 사람이 불 한가운데를 걸어 다니는 것을 보았다(단 3:24-25). 이 넷째 사람은 사람의 아들이신 뛰어나신 그리스도이셨는데, 이 그리스도는 이미 거기에 오시어 고난받고 박해받는 세 명의 이기는 이들과 함께하시며 그 불 속을 거닐기에 쾌적한 곳으로 만드셨다.
      E. 세 명의 이기는 이들은 하나님께 불가마에서 건져 주시기를 구할 필요가 없었다(비교 단 3:17). 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곧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동정하실 수 있는 자격과 역량이 있으신 분(히 4:15-16)께서 오셔서 그들의 동반자가 되셨고, 그분의 임재로 말미암아 고난의 환경을 쾌적한 상황으로 바꾸심으로써 고난 중에 있는 그들을 돌보셨다.
      Ⅴ. 다니엘과 그의 동반자들은 사람들이 하늘들의 하나님에 의한 하늘들의 통치를 못 보게 가로막는 덮개에 맞서 승리했다 — 단 4장.
      A. 그리스도를 으뜸이 되시게 하는 백성이 되도록 하나님께 선택받은 이들로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으뜸이 되시게 할 목적으로 하나님의 하늘에 속한 다스림 아래 있다 — 단 4:18, 23-26, 30-32, 롬 8:28-29, 골 1:18하, 고후 10:13, 18, 렘 9:23-24.
      B. “그분께서 교만하게 행하는 이를 낮추실 수 있으시기 때문이다.” — 단 4:37하.
      Ⅵ. 다니엘과 그의 동반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방탕하게 행하며 그분의 거룩함을 모독한 결과에 대한 무지함에 맞서 승리했다 — 단 5장.
      A. 벨사살이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데 사용된 그릇들을 가져다 우상들에 경배하는 데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모독한 것이었다(단 5:4).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의 체험에서 교훈을 얻었어야 했다(단 4:18-37). 그러나 그는 교훈을 얻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해를 입었다(단 5:18, 20, 24-31).
      B. “다니엘에게는 탁월한 영과 지식과 통찰력이 있어, 그가 꿈을 해몽하고 수수께끼를 풀며 난제(직역하면 매듭)를 해결하였기 때문입니다.” — 단 5:12상.
      C. “벨사살왕께서는 이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마음을 낮추시기는커녕 오히려 하늘들의 주님이신 분을 거슬러 자신을 높이셨고, 하나님 집의 그릇들을 왕 앞에 가져오게 하시어 왕과 왕의 대신들과 아내들과 후궁들이 그 그릇들로 술을 마시셨으며, 은과 금과 놋과 쇠와 나무와 돌로 만든 신들 곧 아무것도 보거나 듣거나 알지 못하는 것들을 찬양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왕의 호흡을 손에 쥐고 계신 하나님, 왕의 모든 길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은 존경하지 않으셨습니다.” — 단 5:22-23, 비교 20절.
      Ⅶ. 다니엘과 그의 동반자들은 이기는 이들이 신실하게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간교함에 맞서 승리했다 — 단 6장.
      A. 다니엘서 6장의 중심은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기 위하여 사람이 기도하는 것이다. 다니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기 위해, 그리고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기도를 의지했다.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하나님의 경륜을 완전히 이루고 성취할 다른 길이 없다. 이것이 다니엘서 6장의 내재적인 비밀이다.
      B.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을 열고 하루에 세 번 기도했다. 그의 은혜로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들의 조상의 땅으로 다시 데려오셨다(단 6:10, 비교 왕상 19:12, 18).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 안의 목표인 (거룩한 땅으로 예표되신) 그리스도와 (거룩한 성으로 예표된) 하나님의 왕국과 (성전으로 예표된) 하나님의 집을 향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 — 왕상 8:48-49.
    • 메시지4
      욥과 두 나무
      +
    • 성경: 창 2:9, 17, 계 22:1-2, 14, 욥 1:1, 2:3, 42:1-6
      Ⅰ. 신성한 계시에는 두 나무, 두 근원, 두 길, 두 원칙, 두 완결이 있다.
      A. 두 나무.
      1. 생명나무는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서 사람에게 생명이 되시는 삼일 하나님을 상징한다 — 창 2:9, 시 36:9상.
      2. 선과 악의 지식나무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타락할 때 사람에게 죽음이 된 악한 자 사탄 마귀를 상징한다 — 창 2:17.
      B. 두 근원.
      1. 생명나무는 자신의 공급과 누림을 위해 생명이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근원이다 — 요 1:4, 15:1.
      2. 선과 악의 지식나무는 죽음과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하는 독인 사탄을 따르는 사람들의 근원이다 — 요 8:44.
      3. 이 두 근원의 결과는 두 왕국, 곧 하나님의 왕국과 사탄의 왕국이다 — 마 21:43, 12:26, 골 1:13.
      C. 두 길.
      1. 첫 번째 길은 생명의 길 곧 비좁은 길이며,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얻으며, 하나님을 그분의 영원한 생명 안에서 공급으로 누리게 하는 길이다 — 마 7:14, 행 9:2, 16:17, 18:25-26, 벧후 2:15, 21.
      2. 두 번째 길은 죽음과 선악의 길 곧 널찍한 길이며, 사람들이 사탄을 따라가 사탄의 자녀가 되게 하는 길이다 — 마 7:13, 요일 3:10상.
      D. 두 원칙.
      1. 첫 번째 원칙은 생명의 원칙, 곧 하나님을 의지하는 원칙이다 — 요 15:5, 창 4:4.
      2. 두 번째 원칙은 죽음과 선악의 원칙, 곧 하나님에게서 독립하는 원칙이다 — 렘 17:5-6, 창 4:3.
      E. 두 완결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취한 두 길의 최종 결과이다.
      1. 하나님의 생명의 길의 완결은 생명수의 성인 새 예루살렘이다 — 계 21:2, 10-11, 22:1-2.
      2. 죽음과 선악의 길의 완결은 불 못이다 — 계 19:20, 20:10, 14-15, 21:8.
      Ⅱ. 하나님의 의도는 선과 악의 지식나무의 노선 안에 머무는 욥이 아닌, 생명나무의 노선 안에 머무는 욥을 얻으시려는 것이었다.
      A. 욥과 그의 친구들의 논리는 선과 악의 지식나무의 노선에 따른 것이었다 — 욥 2:11-32:1.
      B. 욥은 자신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경륜을 알지 못한 채 옳고 그름에 대한 지식에만 머물러 있었다 — 욥 4:7-8.
      C. 욥과 그의 친구들은 선과 악의 지식나무의 영역에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 영역에서 구출하여 생명나무의 영역에 넣으려고 하셨다 — 욥 1:1, 2:3, 19:10.
      D. 하나님께서 욥을 다루신 목적은 그를 선과 악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돌이키게 하여 하나님을 극도로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욥 42:1-6.
      Ⅲ. 우리는 생명나무에 대한 이상, 곧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음식이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상이 필요하다 — 창 2:9, 계 22:1-2, 14.
      A. 생명나무는 생명이신 그분 자신을 음식의 형태로 그분께서 선택하신 사람들 안으로 분배하시는, 그리스도 안에 계신 삼일 하나님을 상징한다 — 창 2:9.
      B. 생명나무는 우주의 중심이다.
      1. 하나님의 목적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땅이고, 땅의 중심은 에덴동산이며, 에덴동산의 중심은 생명나무이다. 그러므로 우주는 생명나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2.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 생명나무보다 더 중심적이고 중요한 것은 없다 — 창 3:22, 계 22:14.
      C. 신약은 그리스도께서 생명나무라는 상징의 성취이심을 계시한다 — 요 1:4, 15:5.
      D. 요한복음에 계시된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모든 방면은 생명나무의 결과이다 — 요 6:48, 8:12, 10:11, 11:25, 14:6.
      E. 생명나무를 누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모든 사람의 영원한 몫일 것이다 — 계 22:1-2, 14.
      1. 생명나무는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해 태초부터 의도하셨던 것을 영원히 이룬다 — 창 1:26, 2:9.
      2. 생명나무의 열매는 영원토록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사람들의 음식이 될 것이다. 이 열매는 달마다 맺혀 언제까지나 신선할 것이다 — 계 22:2.
      Ⅳ. 우리가 거듭났을 때,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을 생명나무로서 우리 안에 심으셨다 — 요 1:12-13, 3:3, 5-6, 15, 11:25, 15:1, 5.
      A. 우리는 우리의 실지적인 생활에서 생명나무의 노선 안에 있지 않고 선과 악의 지식나무의 노선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 잠 16:25, 21:2.
      B. 욥은 윤리의 영역에 있는 것을 추구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이들인 우리는 하나님의 영역에 있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 고전 15:28, 엡 3:16-21.
      C.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선과 악의 지식나무의 영역에 있지 않고, 생명 주시는 영의 영역에 있어야 한다 — 고전 15:45하, 롬 8:2.
      D.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를 허무시고 우리의 생명과 본성이신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재건축하시어, 우리를 그분과 완전히 하나인 사람들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 고후 1:9, 4:14.
    • 메시지5
      욥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 ― 선한 사람이 하나님-사람이 됨
      +
    • 성경: 욥 1:1, 8, 2:3, 9, 27:5, 31:6, 42:5-6
      Ⅰ. 성경 육십육 권은 오직 한 가지를 위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 영으로서 그분 자신을 우리의 생명과 본성과 모든 것으로 우리 안에 분배하심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를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 엡 3:16-17상, 빌 1:21상.
      A. 이것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는 원칙이어야 한다 — 요 6:57.
      B. 실지적인 방면에서 이것이 우리의 누림을 위한 오늘날의 생명나무여야 한다 — 계 22:14.
      Ⅱ. 욥은 온전하고 올곧고 순전한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선한 사람이었다 — 욥 27:5, 31:6, 32:1.
      A. 온전한 것은 속사람과 관련이 있고, 올곧은 것은 겉사람과 관련이 있다 — 욥 1:1.
      B. 욥은 순전한 사람이었다. 순전함은 온전하고 올곧은 것의 총체이다 — 욥 2:3, 9, 27:5, 31:6.
      1. 욥에게 있어서 순전함이란 그의 존재의 총체적인 표현이었다.
      2. 그는 성격적으로 온전하고 올곧았으며, 윤리적으로는 높은 수준의 순전함을 지니고 있었다.
      C. 욥은 긍정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부정적인 것을 처리하는 면에서는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다 — 욥 1:1.
      1. 하나님은 사람이 다만 그분을 경외하거나 잘못된 일을 하지 않도록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사람이 그분을 표현하도록 그분의 형상대로 그분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다 — 창 1:26.
      2.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것보다 더 뛰어난 것이다.
      3. 욥이 자신의 온전함과 올곧음과 순전함을 통해 도달한 것들은 전적으로 허무한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지도, 하나님의 갈망을 만족시키지도 못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랑 안에서 욥을 염려하셨다 — 욥 1:6-8, 2:1-3.
      D. 오직 하나님만 욥에게 한 가지 부족이 있다는 것을 아셨는데, 그것은 욥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의 성취를 위해 욥이 그분을 표현하도록 그분을 얻기 원하셨다 — 욥 42:5-6.
      Ⅲ. 하나님의 의도는 욥이 하나님-사람이 되어 하나님 자신의 속성들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 욥 22:24-25, 38:1-3.
      A. 하나님은 욥을 또 다른 영역 곧 하나님이라는 영역 안으로 이끄셔서, 욥이 자신의 온전함과 의와 순전함을 통해 도달한 것들을 얻는 대신 하나님을 얻도록 하셨다 — 욥 42:5-6.
      B. 욥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는 그를 소모되게 하시고, 그가 온전함과 올곧음을 통해 최고 수준의 윤리 안에서 도달하고 성취한 것들을 그에게서 벗겨 내시려는 것이었다 — 욥 31:6.
      C. 하나님의 의도는 스스로 온전하고 올곧았던 타고난 욥을 허물어뜨리심으로써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들로 새롭게 된 욥을 건축하시려는 것이었다 — 욥 1:6-8, 2:3-6.
      D. 하나님의 의도는 욥을 하나님의 사람, 곧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충만이 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만드시려는 것이었다 — 딤전 6:11, 딤후 3:17.
      E. 하나님께서 욥을 벗겨 내시고 소모되게 하신 것은 욥을 허물어뜨리심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으로 욥을 재건축하실 수 있는 기초와 길을 얻으시어, 욥이 신격에서는 아니지만 생명과 본성에서 그분과 똑같아져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님-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엡 3:16-21.
      Ⅳ.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사람 안으로 조성되시고 사람은 하나님 안으로 조성되었으며, 하나님과 사람은 함께 연합되어 하나님-사람이라 불리는 한 실체가 되었다 — 마 1:21, 23, 눅 1:35, 딛 2:13, 딤전 2:5.
      A. 많은 하나님-사람들 곧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은 첫 번째 하나님-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증가이자 재생산이자 복사판이자 연장이다 — 요 12:24, 히 2:10, 롬 8:29.
      B. 하나님-사람은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에 동참하여 생명과 본성에서 하나님과 하나 됨으로써 하나님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 요 3:15, 벧후 1:4, 고전 6:17.
      C. 하나님-사람은 하나님에게서 태어나,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 요 1:12-13, 3:6.
      1. 하나님-사람은 두 생명 곧 인간 생명과 신성한 생명, 그리고 두 본성 곧 인성과 신성을 소유하고 있다.
      2. 하나님-사람은 생명-사람이다 — 요일 5:11-13, 롬 8:2, 6, 10-11.
      3. 하나님-사람은 금-사람이다 — 출 25:11, 벧전 1:7, 계 3:18, 21:18하.
      D. 하나님-사람은 하나님으로 조성되어 하나님을 그의 생명과 생명 공급과 모든 것으로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사람은 사람이자 하나님이며, 하나님이자 사람이다 — 엡 3:16-17상.
      E. 하나님-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창조물이자 하나님의 의이다 — 고후 5:17, 21.
      F. 하나님-사람은 그의 온 존재로, 곧 그의 마음과 혼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한다 — 막 12:30.
      G. 하나님-사람은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자아를 부인하며, 영을 사용하여 그리스도를 산다 — 빌 3:3, 마 16:24, 딤전 4:7, 빌 1:21상.
      H. 하나님-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숨을 들이쉬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 딤전 6:11, 딤후 3:16-17.
      I. 하나님-사람은 자신이 독립적인 한 개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자 한 새사람인 단체적인 하나님-사람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 고전 12:12-13, 엡 4:16, 골 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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