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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주제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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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세 방면

천국에 관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분명히 알아야 할 세 주요 방면들이 있다. 첫 번째 방면은 천국의 외형이다. 이 외형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 모든 거짓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하는 기독교계이다. 두 번째 방면은 천국의 실재이다. 이 방면은 이기는 이들, 승리한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다. 승리하였든 패배하였든,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인 것이다. 그러나 참된 믿는 이들 가운데 있는 실재적인 교회 안에는 승리한 이들과 패배한 이들 사이에 구별이 있다. 승리한 이들에게는 천국의 실재가 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네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즉, 천국의 실재 안에 있는 승리한 그리스도인들, 교회 안에 있으나 천국의 실재 안에는 있지 않은 패배한 믿는 이들,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 곧 참된 교회의 지체가 아닌 거짓 그리스도인들, 모든 불신자로 이루어진 세상이 그들이다. 천국의 외형인 기독교계와 천국의 실재인 이기는 이들이 교회 시대를 구성한다. 교회 시대 후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다. 그것은 천국의 출현이 될 것이다. 오늘날 천국의 실재 안에 사는 사람들은 천년왕국 시대에서 주님과 함께 왕들로 나타나 제사장들인 유대인들과 함께 이 땅 위의 민족들을 다스릴 것이다. 그리스도 안의 이기는 이들인 왕들과, 구원받은 유대인들인 제사장들과, 민족들인 백성들이 천국의 출현을 구성하는 사람들이다. …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네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1) 천국의 실재 안에 있는 승리한 그리스도인들
2) 교회 안에 있으나 천국의 실재 안에는 있지 않은 패배한 믿는 이들
3)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 곧 참된 교회의 지체가 아닌 거짓 그리스도인들
4) 모든 불신자로 이루어진 세상 사람들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천국─실재가 있는 외형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마태복음 13장에서 첫 번째 비유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보십시오, 씨를 뿌리는 사람이 뿌리러 나가서”(3절). 이 비유는 천국을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이때에는 천국이 아직 오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씨를 뿌리는 사람은 사람 안에 그분 자신을 생명의 씨로 뿌리러 오시는 주님 자신이다. 이것은 천국의 임함을 위한 예비이다.

가라지의 비유
두 번째 비유는 24절에서 시작된다.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 또 다른 비유를 드셔서 말씀하셨다. ‘천국은 마치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천국이 두 번째 비유에서 언급된다.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은 첫 번째 비유에서의 씨를 뿌리는 사람, 곧 주 예수님이시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 가라지를 뿌리고 갔습니다.”(25절) 이것은 오순절날 이후 곧 발생하였다. 오순절날이 이르렀을 때 수천 명의 믿는 이들이 교회에 더해졌다. 그 믿는 이들 가운데는 밀 가운데 있는 가라지처럼 거짓 믿는 이들이 있었다. 두 번째 비유는 천국의 시작인 교회에 관한 비유인 것이다.

겨자씨의 비유
세 번째 비유는 겨자씨의 비유이다.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 또 다른 비유를 드셔서 말씀하셨다. ‘천국은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31-32절) 겨자는 먹을 수 있는 채소이다. 생명의 씨에서부터 나오는 참된 교회는 다른 이들에게 식용으로 쓰이는 겨자와 같아야 한다. 그러나 이 채소는 큰 나무가 되어서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첫 번째 비유에서 나오는 새들(4절)은 악한 자 사탄을 뜻하는데, 새들은 와서 굳어진 마음에 뿌려진 왕국의 말씀을 빼앗았다(19절). 새는 악한 자들, 악한 영들, 마귀에게서 나온 것들로서 이 큰 나무에 깃들이는 것들이다. 이것은 4세기 초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교회와 세상을 혼합시켰을 때 일어났다. 그는 수많은 거짓 믿는 이들을 교회 안으로 이끌어서 기독교계가 되게 함으로써 더 이상 교회가 아니게 하였다.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고, 콘스탄티누스는 모든 불신자들을 부추겨서 교회 안에 들어가게 하였다. 이전에는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박해했었지만, 콘스탄티누스의 지배 기간 동안에는 그것을 환영하였다. 그때부터 계속 교회의 본질이 변질되었다. 그것은 이 땅에 깊이 뿌리 내리고 정착하여 악한 자들과 악한 것들이 거주하는 가지들로서 그 기업이 무성한 큰 나무가 되었다. 오늘날의 기독교계는 많은 가지들이 있는 큰 나무이며 죄로 가득한 많은 사람들과 악한 영들이 그 가지들 안에 거하고 있다. 이전에는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박해했었지만, 콘스탄티누스의 지배 기간 동안에는 그것을 환영하였다. 그때부터 계속 교회의 본질이 변질되었다.

고운 가루 속에 감추어진 누룩의 비유
마태복음 13장 33절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로 말씀하셨다. ‘천국은 마치 어떤 여자가 밀가루 서 말 속에 몰래 집어넣어 그 전체를 부풀게 한 누룩과 같습니다.’” 이 여자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예표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은 로마 가톨릭 교회를 진홍빛 짐승 위에 앉아 있는 여자에 비유하신다(계 17:3). 짐승은 로마 제국이고, 짐승 위의 여자는 로마 가톨릭 교회이다. 이것은 종교와 정치의 연합을 묘사한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받아들인 후에, 교회는 거대한 세상적인 어떤 것으로 변형되었고 세상적인 권세가 되기까지 하였다. 이 세상적인 권세는 마태복음 13장의 여자로 예표된 로마 가톨릭 교회가 되었다. 이 여자가 취한 누룩은 악한 것들(고전 5:6, 8)과 악한 교리들(마 16:6, 11-12)을 의미한다. 소제를 만들기 위한 ‘밀가루’(레 2:1)는 하나님과 사람의 음식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는 참된 것들이 있지만 거짓된 것들도 넣어졌다. 심지어 개신교 가운데 있는 오늘날의 현대주의는 주 예수님의 신격과 그분이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처녀에게서 태어난 바로 그 하나님이심을 언제나 인정한다. 이것은 밀가루, 즉 고운 가루이지만 그들은 고운 가루 안에 누룩을 더했다(레 2:4-5, 11). 많은 이교도적인 실행들과 이단들이 고운 가루 안에 더해졌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고운 가루의 한 부분이지만 크리스마스는 고운 가루에 더하여진 누룩이다. 역사는 12월 25일이 태양신의 탄생일로 기념되었음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기독교가 서기 313년에 로마 제국에 의하여 국교로 받아들여지자 교회 안에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많게 되었다. 이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 중에 얼마는 태양신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12월 25일에 축제를 갖는 것에 익숙했었다. 이런 불신자들에게 맞춰 주기 위해, 변절된 교회는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선포하였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기원이다. 변절된 교회에는 고운 가루가 있지만, 고운 가루 안에 누룩이 있는 것이다. 이런 불신자들에게 맞춰 주기 위해, 변절된 교회는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선포하였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기원이다.

그리스도는 고운 가루이시지만, 소위 예수님의 초상화들은 누룩에 포함된다. 예수님에 대한 어떤 초상화도 거짓이다. 이사야서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그분에게는 “그에게는 매력적인 모습도 우리가 주목할 만한 위엄도 우리가 사모할 만한 멋진 풍채도 없다.”(사 53:2)라고 말한다. 이사야서 52장 14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용모가 어떤 사람보다도 더 상하고 그의 모습이 사람의 아들들보다더 더 상하여 그를 보는 사람마다 크게 놀랐듯이” 오늘날 예수님의 초상화들은 언제나 그분을 잘 생긴 남자로 묘사한다.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참된 그림이 아닌 누룩이다.

고운 가루에 누룩을 더한 것은 사람들이 먹기 쉽도록 한다. 누룩 없는 떡은 사람들이 먹기가 어렵다. 이것은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 작용하고 있는 원칙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관한 것들 속에 누룩을 넣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하나님께서 그 영으로서 그리스도 안에 계신다고만 간단하게 사람들에게 말해 준다면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 따르면, 성당 입구에 그리스도의 그림을 걸거나 그리스도의 형상을 세우고 사람들에게 이것이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쉽게 경배하며 깨닫게 해 줄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그것들이 실재로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할지라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해 준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형상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접하기 쉽게 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고운 가루 안에 있는 누룩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변절한 교회의 악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이교도적인 것을 흡수하여 그것들을 고운 가루에 더한다. 이것은 얼마나 사악한가!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교와 이방의 풍속과 우상과 형상과 죄악된 것들과 거짓된 것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전파한다. 주님께서 이것을 천국의 비유에서 말씀하셨으므로, 이것은 천국의 외형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참된 것이 아니다.

천국의 실재
천국의 실재는 마태복음 5, 6, 7장에 계시되어 있다.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비유들은 많은 악한 것들, 누룩, 거짓 믿는 이들을 계시한다. 그러나 마태복음 5, 6, 7장에서는 천국이 매우 순수한 어떤 것으로 계시된다. 이것이 천국의 실재이다. 마태복음 5장 3절은 “영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10절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20절은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 구절들은 천국이 얼마나 엄격하며, 이 왕국(천국)이 얼마나 순수한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마태복음 7장 21절은 “나에게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갑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천국의 실재이다. 우리가 천국의 실재 안에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 안에서 가난해야 하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아야 하고, 아버지의 뜻을 행해야 하며, 순수하고 온유해야 한다(마 5:3-10).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비유들은 천국의 외형에 대해서 밝혀 주고, 마태복음 5, 6, 7장에 있는 가르침들은 천국의 실재에 대해서 밝혀 준다.

교회 안의 참된 믿는 이가 반드시 이기는 이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천국의 실재 안에는 없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천국의 외형인 기독교계 안에 있지만, 실재적으로 교회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 안에 있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믿는 이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거듭난 이후에 승리하신 주님과 함께 계속 전진해야 한다. 그는 반드시 죄악 된 모든 것들을 이겨야 한다. 그럴 때 그가 천국의 실재 안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천국의 실재 안에 있는지 없는지를 보기 위해서는 자신을 마태복음 5, 6, 7장에 있는 가르침들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구원받았지만 천국의 실재 안에 있는가? 마태복음 5, 6, 7장에서는 천국이 매우 순수한 어떤 것으로 계시된다.
이것이 천국의 실재이다.
우리가 천국의 실재 안에 있는지 없는지를 보기 위해서는 자신을 마태복음 5, 6, 7장에 있는 가르침들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구원받았지만 천국의 실재 안에 있는가?


천국의 출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천국의 출현이 실현될 것이다. 이것은 마태복음 24장과 25장에서 계시된다. 오늘날 천국의 실재 안에 있는 이기는 이들만이 장래 천국의 출현 안에서 몫을 얻을 것이다. 천국의 출현은 이기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보상(報償), 즉 상(賞)이 될 것이다.

출처: 천국의 정의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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