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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52주시대사역의말씀│개요│4주-벧엘의 실재와 고통의 아들이자 오른손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산출함
  작성자 한국복음서원   작성일 2014/09/04 13:51   조회수 5,302
  첨부파일  

52주 시대 사역의 말씀

 

메시지 4│ 벧엘의 실재와

고통의 아들이자 오른손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산출함

│개요

 

성경: 창35:1-20, 27

 

Ⅰ. 창세기 35장에서 벧엘의 이상이 다시 임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상이 꿈으로서 온 것이 아니라 실재로서 임했다 ― 창 35:1-15.
A. 우리는 모두 두 번 교회생활 안에 온다 ― 창 28:12, 16-17, 35:15.
1. 첫 번째로 우리는 꿈에서 교회생활 안에 오고, 두 번째로는 실재로 교회생활 안에 온다. 우리에게는 꿈과 실재 모두가 필요하다.
2. 처음에 있는 꿈은 참된 그림이었고, 실재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꿈에 있는 것과 똑같다.
B. 벧엘에서 야곱의 이름은 이스라엘로 바뀌었다. 이것은 그의 존재가 바뀌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제 벧엘에서 그는 이스라엘이었다 ― 창 32:28, 35:10.
C. 창세기 35장에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데서 단체적으로 체험하는, 즉 하나님을 벧엘의 하나님으로 체험하는, 중대하고도 근본적인 전환이 있다 ― 엡 3:17-21, 4:4-6.
1. 창세기 35장 7절에서 우리는 새로운 신성한 칭호인 ‘엘벧엘’, 곧‘하나님의 집의 하나님’을 본다.
2. 창세기 35장 이전에 하나님은 개개인들의 하나님이셨다. 여기서 그분은 더 이상 개개인들의 하나님이 아니시라, 엘벧엘 곧 단체적인 몸의 하나님, 하나님의 집의 하나님이시다.
3. 벧엘은 단체적인 생활, 곧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벧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을 때, 야곱은 개인적인 체험에서 단체적인 체험으로 전진하였다―고전12:12.
a. 야곱이 세겜에서 세운 제단은 ‘엘엘로헤이스라엘’ 곧 한 개인과 관련된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었다 ― 창 33:17-20.
b. 야곱이 벧엘에서 세운 제단은‘엘벧엘’ 곧 단체적인 한 몸과 관련된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 리었다 ― 창 35:6-7.
c. 세겜에 있는 제단은 개인적인 제단이고, 벧엘에 있는 제단은 단체적인 제단, 곧 하나님의 집을 위한 제단이다.
D. 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하나님은 벧엘의 건축을 위해 계시되신다. 오직 벧엘에서만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께 서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분이심을 깨달을 수 있다 ― 창 35:11상.
1.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분으로 계시하신 목적은 그분의 건축물을 위한 것이다. 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하나님은 그분의 건축물을 위하신다.
2. 우리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하나님을 단독적인 방식으로 체험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충족시키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벧엘 안에, 곧 교회 생활 안에 있어야 한다.
3.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시는 것은 몸을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이 방면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집 곧 건축물이 필요하다 ―빌1:19.
4. 아버지와 아들과 영과 교회는 하나 안의 넷이다.
궁극적으로 교회는 삼일 하나님과 연결되고 연합되고 합병된 한 무리의 사람들이다 ― 엡 4:4-6, 3:16-21.
E. 벧엘에서 야곱은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부었다. 이것은 전제물이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 창 35:14상.
1. 전제물은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하나님 앞에 참된 포도주로 쏟아 부어진 분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출29:40-41, 민15:1-10, 28:7-10.
2. 전제물은 또한 하늘에 속한 포도주이신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적시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이 그리스도는, 그분과 우리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누림과 만족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해 쏟아 부어질 때까지, 우리를 그분 자신으로 적시신다―마9:17, 빌2:17, 딤후4:6.
3. 우리가 전제물로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쏟아 붓는 것은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해 그 영을 쏟아 부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창35:14하.
F. 하나님의 집인 벧엘의 기능은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것이다 ― 엡 1:22-23.
1.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안에서의 단체적인 문제이다― 요17:22, 엡3:21, 롬9:23.
2. 그리스도의 단체적인 표현을 위해 그리스도를 낳으려면, 우리의 타고난 선택과 타고난 갈망과 타고난 생명이 대가로 지불되어야 할 것이다.
G. 벧엘의 실재를 체험한 후에 야곱은 헤브론에서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통 안으로 들어갔다. 헤브론에서의 교통은 친밀함과 평안과 만족과 기쁨을 의미한다 ― 창 35:27, 고전 1:9.
1. 비록 우리가 교회생활 안에 있을지라도, 여전히 우리는 헤브론에 와서 주님과의 완전한 교통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계속 여행해야 한다―요일1:3.
2. 헤브론에서의 교통은 하나님과의 교통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의 다른 지체들과의 교통이다 ― 빌2:1, 요일1:7.
3.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생활을 안다면 교통의 중요성을 볼 것이며, 몸의 교통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고전12:14-27.
H. 야곱은 그의 삶의 마지막에 주님께서 일생 동안 자신 을 목양해 주셨다고 분명히 말하였다. 주님의 목양은 하나님의 집인 벧엘을 위한 것이다 ― 창 48:15-16, 28:10-22, 35:1, 3, 7-11.
Ⅱ. 베냐민의 출생은 고통의 아들이자 오른손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산출을 예표한다 ― 창 35:16-18.
A. 베냐민의 출생과 라헬의 죽음은 동시에 일어났다. 이것은 야곱이 라헬을 잃음으로써 아들을 얻었음을 의미한 다 ― 창 35:16-20.
1. 라헬은 야곱이 자신의 마음의 원함에 따라 천연적으로 선택한 사람이었다―창29:18-20.
2. 라헬의 죽음, 곧 야곱이 자신의 천연적인 선택을 잃어버린 것은 야곱을 깊고도 개인적으로 다루는 것이었다―창35:16-20.
3. 야곱은 라헬을 잃었지만, 그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예표인 베냐민을 얻었다―창35:18-19.
a.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결국 우리가 천연적으로 선택한 것을 가져가실 것이고, 그렇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를 낳고 그분을 표현하게 하실 것이다.
b. 하나님의 목표는 그분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이 손실을 입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낳는 것이다 ― 빌 3:7-8.
B. 라헬은 죽어가는 동안에 아이를 ‘내 고통의 아들’을 의미하는 베노니라고 불렀지만, 야곱은 즉시 그 아이의 이름을 ‘오른손의 아들’을 의미하는 베냐민으로 바꾸었다 ― 창 35:18.
1. 고통의 아들로서 베냐민은, 육체가 되시고 이 땅에서 인간 생활을 하신 슬픔의 사람으로서 그분의 완전한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을 성취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사53:3, 히9:12.
2. 오른손의 아들로서 베냐민은, 부활하시고 승리하시고 승천하신 오른손의 아들로서 하늘들에서 사역하시면서 그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구속을 적용 하는 일을 수행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 히 8:1-2, 7:25.
3. 그리스도는 육체 되심으로 베노니, 곧 슬픔의 사람이 되셨으나, 부활 안에서 베냐민, 곧 영광과 존귀 가운데 계신 오른손의 아들이 되셨다 ― 시 68:27, 80:17, 막16:19, 행2:33,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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